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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멕스님의 서재입니다.

삼류 시사평론가 강대구, 토론의 신에 등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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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완결

엘멕스
작품등록일 :
2024.05.08 16:30
최근연재일 :
2024.07.29 01:13
연재수 :
8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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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509
글자수 :
454,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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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6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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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70화

DUMMY

주말이 다가왔다.

여전히 송주나 측으로부터 연락은 없다.


하지만 전혀 섭섭하지 않았다.

프롬프터를 통해 그녀의 어쩔 수 없는 현재 입장에 대해 알게 되었고

일요토론이라는 생각지도 않은 대체제가 나타났으니까.


여자와 권력.

송주나 라디오 방송과 일요토론은 각각 내게 그 두 가지를 상징하고 있었다.


만약 조만간 두 군데에서 동시에 주말 섭외 요청이 올 경우 나는 둘 중 어떤 곳을 택해야 할까.

다시 말해 여자와 권력 중 무엇을 택할까나.


그 어떤 시사 문제보다 내게는 난제처럼 여겨졌다.

그런데 솔직히 지금 그 문제 대해 고민할 시간적 여유는 그리 많지 않았다.


이번 주 일요토론에서 나를 섭외한 것은 물론 문창섭의 강력한 천거도 있었지만, 한 가지 더 다른 이유가 있었다.

지난 주 중구난방에서 내가 이번 총선에서 진보 진영이 204 석을 얻을 것이라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한 것에 일요토론 제작진이 단단히 꽂힌 듯 보였다.


‘‘강소장님! 여전히 그 입장에서 변화는 없으신 거죠?’’

‘‘예, 물론이죠.’’

‘‘그럼, 이번 저희 방송 때는 지난주 중구난방 때보다도 보다 더 구체적으로 수치 분석 좀 해주실 수 있으시겠어요?’’

‘‘예? 아! 예. 그러죠. 그래야죠.’’


일요토론 제작진이 그리고 있는 그림은 대충 이거 같았다.

보수 쪽 진보 쪽 중진 의원 각 한 명씩 섭외해 맞붙게 하고

진보 쪽 대승을 예측한 나와 보수 쪽 우세를 점치고 있는 문창섭을 다른 한 편에서 매치업 시키려는 의도.


지난 중구난방에서 나는 지역 별로 구체적인 의석수까지 말한 바 있다.

그런데 하루하루 전략 공천지가 결정되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그 숫자는 내가 봐도 점점 신뢰감을 잃어가고 있었다.


물론 여전히 진보 쪽이 우세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전체 300석 중 진보가 과반수인 150석에서 맥시멈 180석 정도 가져가는 것으로 보고 있는 상황이다.


더군다나 이번 주 공천 신청을 한 진보 쪽 인사들의 과거 음주운전이나 설화 전력들이 무더기로 밝혀지면서 말들이 많은 상황.

그래서 진보 쪽이 200석을 넘게 가져갈 것이라 예측하고 있는 평론가는 현재 나밖에 없는 상태다.


그런데 그렇다고 이제 와 내가 입장을 바꿀 이유는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까지 백프로 정확성을 자랑하는 프롬프터가 준 정보니까.


앞으로 공천이 확정되고 본격적으로 선거 운동이 전개되고 그러면서 이런 저런 반전과 굴곡이 발생하게 되고, 그로부터 결국 프롬프터 예측대로 진보 쪽이 정확하게 204석을 가져갈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을 터.

그리고 그 구체적인 숫자를 정확히 맞춘 나는 더 이상 걍됐구나 깡다구도 아닌 강문어라는 새로운 별명을 획득하게 될 것이 자명하다.


어쩌면, 1,2년 후 일요토론 패널이 아니라 진행자 자리를 꿰차게 될 지도.

푸하하하하.



+++



결국 일요일 아침, 일요토론 방송가기 직전에서야 진보 진영 204석 수치에 억지로 이것저것 이유와 근거들을 꿰맞추어냈다.

그런데 맞춘 건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더불어 양복도 한 벌 맞추었다.

그동안은 시사팩폭쇼나 저품격 토크쇼 같은 곳에서 좀 급이 떨어지는 애들과도 어쩔 수 없이 어울려야 하는 인생이었다.

그러다 보니, 고급 정장 같은 게 딱히 필요 없었다.


하지만 이제 장차관들, 주요국 대사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기업인들 등이 주로 출연하는 일요토론에 섭외된 인생이다.

그 만큼 사람 품격이 업그레이드 된 이상, 내 외관도 이전보다 한층 클래식해져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 것이다.


원래 내가 그린 그림은 50년 이상 전통의 장인 양복점에서 기백만원 대로 맞추는 것이었는데,

그건 멀지 않은 시점에 일요토론 사회자가 진짜 되었을 때 그렇게 하기로 하고,

우선은 50 만원 안팎으로 한 벌 맞췄다.


좀 더 일찍 맞출 생각을 했더라면 오늘 일요토론 스튜디오에 입고 갈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이미 마음만큼은 티셔츠도 기성복도 아닌 고급 맞춤 정장 차림이다, 하하하.


제 시간에 맞춰 MBS 방송국에 도착했다.

나름 만반의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일요토론 스튜디오에 도착하니까 많이 떨렸다.

녹화 방송인데다가 보다 자유로운 분위기인 중구난방 첫 출연했을 때보다도 확실히 더 가슴이 떨려왔다.

분장 받는 동안 메이크업 하시는 분에게 가슴 두근두근하는 게 들킬까 더더욱 가슴이 조마조마해졌다.


설상가상으로 옆에 나란히 분장을 받고 계시는 다른 게스트 분들 면모를 보니 긴장감이 배가되었다.

한 명은 국회 부의장 출신이고 또 한 명은 원내대표 출신.


이런 분들과 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국사를 논하는 레벨에까지 오르다니.

내가 생각해도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다.


이 모든 게 프롬프터 덕인데.

오늘도 프롬프터가 중간 중간 적기에 나타나서 도움을 좀 줘야 할 텐데.


제일 먼저 메이크업을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드디어 문창섭이 모습을 드러냈다.

두꺼운 안경을 쓴 전형적인 참모형 지식인 외모.

그가 여전히 메이크업 중인 국외부의장과 원내대표에게는 오랜 인연인 듯 대충 손을 흔들며 인사말을 건네더니 나에게는 양손으로 정중하게 악수를 청해왔다.


‘‘반갑습니다, 강소장님. 방송 잘 보고 있습니다.’’

‘‘예. 만나서 정말 영광입니다, 차장님.’’


그의 손을 맞잡는데 정체불명의 악력 같은 게 느껴졌다.


‘‘전화 상 말씀드린 대로 방송 끝나고 식사 가능하시죠?’’

‘‘물론이죠, 차장님.’’

‘‘그럼, 우리 서로 방송 파이팅하고, 이따가 맛있는 거 같이 먹으면서 본격적으로 회포 풀도록 하죠.’’


그가 두어 번 내 어깨를 두드려주었는데, 거기에서도 악력 같은 게 느껴졌다.



+++



오프닝 음악과 함께 지미집 카메라가 움직이면서 드디어 일요토론 생방송이 시작되었다.

사회자는 미중년 풍모의 정치학 교수님.


‘‘자! 오늘 첫 출연이시죠? 강대구 정치연구소 소장이신 강대구 소장님.’’

‘‘예, 반갑습니다.’’

‘‘얼마 전 다른 모 프로에서 총선 판세 분석한 것이 꽤나 회자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진보 진영이 전례 없는 대승을 거둘 것이라 예상하시던데, 여전히 같은 생각이신가요?’’

‘‘예, 그렇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좀 이따 그 이야기 천천히 들어보도록 하죠.’’


소개에 이어 게스트들이 돌아가며 인트로 격으로 이번 총선의 의미에 대해서 자기 의견을 개진해나갔다.

상대적이어서 그럴까?

시사팩폭쇼, 중구난방, 저품격 토크쇼 같은 곳에 출연하는 내 기준에서는 다들 너무 재미없게 말들을 하고 있었다.


‘‘자! 그러면 이번에는 이번 총선의 의미에 대해 강소장님 말씀을 들어보도록 하죠.’’


그런데 인간은 역시나 환경의 동물이란 말인가.

나 역시 어느새 다른 게스트들에 동화되어 다른 방송 때와는 달리 아주 지루하고 답답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잘 들었습니다. 자! 그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이번 총선 초반 판세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하는 데요. 이번에는 역순으로 강소장님께 제일 먼저 여쭤보겠습니다. 다른 시사평론가 분들과 달리 왜 강소장님은 진보가 초유의 대승을 거둘 것이라고 판단하고 계시는 건지. 구체적인 어떤 근거가 있으신가요?’’

‘‘예, 제가 지역 별로 일일이 계산한 바로는 ......’’


어제 오늘 긴 고민 끝에 준비한 이유와 근거.

하지만 막상 생방송에서 그걸 이야기 하고 있으니 내가 생각하도 조악하고 신뢰가 안 간다.

강원도 표심 이야기를 하면서 내 매제 고향이 거기라서 그곳 민심을 잘 전해 들어서 나온 계산이다, 라는 말을 할 때는 자괴감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 ...... 티케이 지역 공략은 이번에도 좀 한계가 있겠지만, 피케이는 오히려 진보가 다수당이 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피케이 사람들은 티케이 지역과 자신을 한 묶음으로 보는 걸 아주 불쾌하게 생각한답니다. 원래 박정권 때만 해도 야당의 성지였고 또 티케이 지역과는 달리 외지인들이 많은 동네라 바람이 한 번 불면 걷잡을 수 없이 .....’’


이것은 녹화방송인 중구난방이나 별의별 드립과 해프닝이 활개 치는 시사팩폭쇼나 저품격 토크쇼 같은 인터넷 방송에서는 큰 타격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공중파 생방송 프로, 개 중에서도 가장 점잖다고 할 수 있는 프로그램 일요토론에서는 절대 발생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내가 말을 하다가 중간에 멈춘 채 그만 멍을 때리는 것.

멍을 때린 이유는 물론 이번에도 역시 프롬프터가 또 나타난 탓이었다.


사실 나는 오늘 방송 중 프롬프터가 나올 상황에 대비해 이런 저런 시나리오들을 사전 준비해 놓고 있었다.

엄근진한 프로그램 분위기상 나 때문에 문제가 생겨서는 안 되어야 하니까 말이다.


우선, 남이 발언하는 동안 프롬프터가 나오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손에 종이와 필기도구를 준비해 간 이상, 다른 사람 말을 듣는 척 하면서 메모해 두었다가 써 먹으면 되니까.


그런데 문제는 내가 발언하는 동안에 프롬프터가 뜨는 경우다.

아무래도 그런 경우 주의력이 분산될 수밖에 없으니 고도의 순발력이 요구될 수밖에 없다.

지금 내가 하는 말보다 프롬프터가 주는 정보가 더 중요할 가능성이 훨씬 높으므로 대충 입으로 일반론 적인 이야기로 시간을 끌면서 손으로 재빨리 프롬프터 내용을 메모하는 것.

심지어 그 상황에 대한 실전 훈련 및 이미지 트레이닝까지 마치고 이 자리에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순간 멍을 때리며 말을 멈춘 이유는?

내가 지금 말하고 있는 내용과 정반대 사실이 프롬프터에 흘러나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프롬프터가 지난 번 지가 한 말을 스스로 뒤집어엎고 만 것이다.



‘’아이 저 주의 산만한 새끼, 또 저 지랄이네. 야! 걍됐구! 너 진짜 양심 있으면 이번 주는 출연료 반납해라, 알았냐?’’


시사팩폭쇼 최웅이라면 이렇게 막말 으름장을 놓았을 터이고.


‘‘대구 오빠. 혹시 나 몰래 나 불법촬영하고 어제 밤새 그 사진 가지고 이상한 짓 한 거 아니야? 갑자기 왜 눈을 뜨고 자고 지랄이야.’’


저품격 토크쇼 홍일점이라면 이렇게 저질 섹드립을 했을 것이다.


‘‘하하하, 강소장님, 오늘 처음 뵙는데 평소 참 생각이 많으신 분 같네요. 말씀 도중 잠시 생각에 빠지신 것 같습니다. 사색하는 거, 참 좋죠. 자! 그럼, 잠시 강소장님께 사색의 시간의 자유 드리고 대신 다른 분께 발언 기회를 드리도록 하죠. 문대표님?’’


일요토론 사회자님, 역시나 배우신 분.

이런 고급스런 멘트로 위기상황을 모면하셨다.


그 사이, 나는 프롬프터 창에 나타난 내용을 막 메모해 놓은 종이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앞 서 말한 대로, 프롬프터는 지난 번 지가 한 말을 식언하고 있었다.


지난번에 분명 진보 쪽이 204석 얻을 거라고 했던 프롬프터.

하지만 지금 새로 업그레이드 된 버전에서는 진보 쪽 의석이 182석으로 뚝 떨어져 있다.


‘‘저기, 사회자님!’’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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