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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임규진
작품등록일 :
2016.12.06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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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30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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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2.21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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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각개격파

DUMMY

“도대체 작전을 어떻게 진행한 것이오?”

전주가 탁자를 손으로 강하게 내려쳤다. 하지만 내공은 전혀 사용하지 않았는지 탁자는 멀쩡한 모습으로 탕~하는 소리만 강하게 났다.

대공자가 중대한 부상을 당해 회로 이송되어 왔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지만 회복에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문제는 부상회복이 아니다. 회의 대공자가 심각한 부상을 당했다는 것이고 그것도 자신이 수립한 작전을 수행하다 그리 되었다는 점이다.

“그런 변수가 있으리라 짐작하지 못했습니다.”

장세모 부전주가 고개를 숙이며 담담한 어조로 대답했다.

“부전주? 부전주의 문제가 무엇인지 아시오?”

전주가 장세모에게 삿대질하듯이 물었다.

“······”

“바로 안이하다는 것이오. 작전을 수립하고 추진하면서 발생 가능한 모든 변수를 고려해야지 항상 안이하게 생각한다는 것이오. 저번 목걸이 회수 작전도 초반에 안이하게 생각해 독립검수 따위를 보냈고 사건이 커진 다음에야 사절까지 파견했지만 결국 목걸이도 회수하지 못하고 삼공자만 죽었소. 이제 그 안이함으로 인해 대공자까지 큰 부상을 당했으니 어찌할 생각이오?”

전주가 연신 장세모를 다그쳤고 장세모는 유구무언의 태도로 일관하고 있었다.

기실 대공자를 동원해 무림맹 주변을 공격하란 지시는 전주가 내린 것이다. 자신은 그에 맞추어 횡일수전과 횡삼수전의 부전주들과 세부 작전을 수립한 것뿐이다. 더욱이 작전 자체는 횡삼수전에서 진행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장세모는 어떠한 변명도 하지 않았다.

장세모도 오랜 세월, 무림이란 도산검림刀山劍林에서 온몸을 부대끼며 살아왔다.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 정도는 자신도 안다. 지금은 변명해도 상황이 바뀌지 않을 것이다. 대공자를 동원한 무림맹 주변 공격은 신임전주의 첫 번째 작전이나 다름없었고 그것에 커다란 문제가 발생했다. 신임전주의 입장이 어떠하리라는 것은 익히 짐작할 수 있다.

이런 경우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전임 전주처럼 자신이 먼저 책임을 지는 부류와 신임전주처럼 자신의 책임을 떠넘기는 부류. 사실 어떠한 경우에도 변명은 거의 필요 없는 짓이다. 장세모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신임전주가 후자의 경우에 속하는 이상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한다. 죽지는 않을 것이다. 어딘가 현장조직으로 강등되어 배치될 것이다.

장세모는 마음 깊은 곳에서 사실 그렇게 되기를 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언뜻 놀랐다. 갑자기 전임 전주가 보고 싶어졌다. 전임 전주가 있다는 종육각으로 발령 난다면 좋겠다는 바램까지 한 순간 떠올렸으나 이내 속으로 피식 웃었다. 조직에서 그렇게 할 리가 없지 않은가?

“어찌 감히 책임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회의 조치를 기다릴 뿐입니다.”

장세모가 전주의 방을 나왔다.



창문 밖으로 펼쳐진 화원은 어느 듯 새로운 생명을 태동할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가지마다 보이지 않을 정도의 작은 싹들이 움틀 듯 했고, 성질 급한 놈들은 이미 제법 고개를 들이밀고 나왔다. 하지만 그런 생동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바람은 으스스했고 공기는 싸늘했다.


‘헛된 짓을 한 것인가?’

세상에 출도하여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많은 공을 들여 기반을 구축하고 다양한 안배를 했다. 바쁜 세월이었다. 어느 듯 자신이 설계한 준비는 거의 구할에 다다르고 있었다. 하지만 처음 꿈꾸어왔던 만족감은 기대와 같지 않다. 무림의 태산북두가 되어 무림이라는 세상에서는 자신이 황제가 되어 보리라던 지난날의 욕망이 이제는 강력한 매력과 흥분으로 다가오지 않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이런 차질이 빚어지고 있는가?’

객관적인 상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자신 마음 속의 차질을 말하는 것이다. 물론 그 이유를 모르는 회주가 아니다.

공허함을 계산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계획했던 것과 차질이 빚어진 것은 거의 없다. 문제는 늙어가는 것이었다. 젊은 시절 이점을 고려하지 못했다. 나이가 들어 가면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모든 것이 심드렁해졌고 이제 칠십을 넘어서니 공허해지는 속도가 점차 빨라지고 있었다. 그것이 첫 번째 문제였다.

상실감을 염두에 두지 못했다. 자신이 그런 꿈을 꾸면서부터 스승의 뜻을 져버렸고, 오랜 친구들이 떠나갔고, 막내 제자가 죽었으며, 첫째 제자가 큰 부상을 당했다.

첫째 제자는 부상이 문제가 아니라 심마로 미쳐가고 있었다. 자신 탓이었다. 물론 이것들이 계획에 중대한 차질을 빚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씩의 상실감이 자신을 갉아 먹고 있음을 이제는 느낄 수 있었다. 이것도 늙어 가면서 생기는 문제라고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제는 조급함까지 생겼다. 알 수 없는 뭔가에 쫓기는 듯한 심정이었다.

‘그들이 다가오기 때문인가?’

이런 공허함, 상실감, 조급함을 생각하면 차라리 조금 답답했지만 옛날이 나았던가? 하는 생각에 이르고는 했다.

그러나 이제는 돌아갈 수 없다. 비가역적非可逆的이다.

돌아갈 수 없으면 나아가는 수 밖에 없다. 여기서 멈추면 자신이라는 존재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부귀영화나 명예, 권력의 맛은 이제 중요하지 않다. 다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만 한다.

회주는 두 주먹을 꽉 쥐었다. 내쳐 가야 한다. 비록 후회만이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상념에 잠긴 회주 뒤로 학창의를 화사하게 차려 입은 선비 풍의 노인이 나타났다.

“의식을 회복했으니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조그만 탁자에 마주앉아 따스한 김이 피어 오르는 차를 한 모금 한 후, 태상호법이 놀랍다는 듯 입을 열었다.

“대체 누가 있어 대공자와 양패구상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혹시 그자도 그들의 전인일까요?”

“노을빛 강기가 일었다 들었소. 그렇다면 아마 서천西天의 전인傳人일 것이오. 동천東天의 전인에 이어 서천의 전인까지 나타났으니 조만간 남천南天도 나타나겠지.”

“어떻게 그 자와 대공자가 격돌하게 되었는지 모르겠군요”

“나도 그 점은 의문이오. 비록 첫째가 표행을 습격했다 하나 그 정도로 세상일에 개입하진 않을 터인데··· 그 이유를 나도 모르겠소.”

“그들이 이렇게 나타났으니 이젠 본격적인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것 같습니다.”

“···”

태상호법의 말에 회주는 말이 없었다. 태상호법에게 맡긴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들이 왜 나타났는지 모르겠으나 아직 그들끼리 협력하는 단계는 아닌 듯 합니다. 각개격파를 해야겠습니다. 현재 추적이 가능한 놈은 동천의 후예입니다. 남경에 있는 이황야의 거처에서 나와 혼자 항주 방향으로 가고 있다 합니다.”

“어떻게 할 생각이오?”

회주가 태상호법의 생각을 묻는다. 처음으로 태상호법의 행사가 궁금한 것이다.

“성장로에게 일임해 보겠습니다. 회주님께서 큰 뜻을 품고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드신 조직입니다. 그런 만큼 그 힘이 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눈 앞에 적이 나타났는데 회주님만 쳐다볼 뿐 스스로 헤쳐 나가지 못하는 조직이라면 회주님의 큰 뜻을 앞으로 어떻게 담아내겠습니까? 비록 실패가 있을지라도 스스로 대처하게 하는 게 장래를 위해 나은 방책이라 생각됩니다.”

회주는 태상호법답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뒤로 하고 성장로를 앞세우고 있었다. 회주는 한편으론태상호법의 말이 맞기도 하다고 생각했다.

세상은 자신 혼자의 강함만으로 지배할 수 없다. 조직으로 지배하는 것이다.

무림인 개개인들은 군부나 관부에 종사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강하다. 하지만 군부나 관부의 조직을 이기진 못한다. 물론 일정한 조직을 구성하지만, 관부나 군부의 방대한 체계와 비교할 순 없다. 그래서 관부나 군부가 국가를 세우고 세상을 통제하는 것이다. 만일 무림인 모두를 하나의 조직으로 결집시킬 수 있다면 그 맹주가 곧 황제가 되리라.

회주는 조직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요성을 일깨워준 사람이 바로 눈앞의 태상호법이었다. 이미 초절정고수이긴 하지만, 만일 그 무공이 자신과 같은 수준이었다면 무림은 이미 그의 발 아래에 있을 터였다.

“태상호법이 오늘도 나를 일깨워 주는구려. 그렇게 하시오”

“회주님께서 스스로를 낮추어 제 말씀을 받아주시니 송구스러울 뿐입니다.”

“하하~ 태상호법이야 말로 스스로를 너무 낮추지 마시구려”

“그럼 저는 이만 성장로에게 회주님의 뜻을 전하려 가겠습니다.”

어느새 성장로에게 전달될 지사사항은 회주의 뜻이 되고 있었다. 태상호법이 그렇게 인사하고 나타날 때처럼 표홀히 사라졌다.



길음표국에서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새벽, 주은백은 힘겹게 길음표국에서 도망치듯 나와 근처의 객잔에 방을 잡고 며칠을 더 정양했다.

눈 앞에서 집안의 원수를 갚지 못한 주은백의 심경은 자책으로 타 들어가는듯했다.


주은백은 스승과의 비무에서 일정한 수준에 이르자 그때까지 열심히 한 무공수련에 갑자기 흥미를 잃었다.

자신은 무공의 극의極意를 볼 생각이 없었다. 그것도 하나의 집착이라고 생각했다.

무공은 집안의 원수를 갚을 수준이면 족했다. 그때만해도 자신이 알고 있는 집안의 원수는 시골의 일개 흑도방주였으니 그때의 주은백 무공이면 차고도 넘친다는 생각이었다. 주은백이 염두에 두는 삶은 바람 같은 삶이었다. 자유롭게 떠돌아 다니는, 어딘가에 매이지 않고 스스로의 집착도 없는 그런 삶을 주은백은 동경했다. 스승도 은연중에 주은백의 그런 생각에 동의했다. 스승 자신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을 동경했으니 제자인 주은백이 바람을 동경하는 것을 나무랄 수 없었다. 오히려 자신도 자신의 스승이 옭아매어준 굴레를 짐스러워 했기에 주은백에게는 스승으로서 어떠한 사명이나 굴레를 남겨주고 싶지 않았다. 다만 한가지 당부를 잊지 않았다.

“은백아~ 네가 모자람을 알면서도 스스로 만족하니 더 이상 스승이라고 강요하진 않겠다. 다만, 네가 무엇이 모자라는지를 분명히 알고 있어라. 세상 일이란 혹시 알 수 없는 것이다. 네가 바람의 정수가 필요하게 되거든 하시라도 익힐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하고 살펴는 놓거라”

스승의 그런 당부에 주은백도 흔쾌히 스승의 최고 절기인 바람의 정수, 풍정風精의 구결을 외웠었고 한 점 의문이 없도록 스승과 논論 했었다.

태원 인근의 객잔에서 대략 몸을 갈무리한 주은백은 스승과 수련했던 한중漢中의 이름없는 야산으로 걸음을 옮겼다. 풍정風精을 얻으리라···

파파와 유혜연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함이 미안했으나 주은백은 풍정 외 다른 모든 것을 머리와 마음에서 지워 나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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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40. 깊어지는 눈 +3 16.12.21 3,982 54 11쪽
40 39. 현무당玄武堂 삼조三組 +4 16.12.18 4,209 56 10쪽
39 38. 단서端緖 +3 16.12.18 4,160 59 10쪽
38 37. 표면表面과 이면裏面 +3 16.12.18 4,110 53 11쪽
37 36. 대면對面 +4 16.12.16 4,242 58 10쪽
36 35. 요동搖動 +3 16.12.16 4,216 54 11쪽
35 34. 독대獨對 +3 16.12.16 3,976 58 12쪽
34 33. 사령주四領主 +4 16.12.16 4,047 52 10쪽
33 32. 국면局面 변화 +2 16.12.16 4,172 54 11쪽
32 31. 기품氣稟 +3 16.12.14 4,275 56 10쪽
31 30. 이황야 +2 16.12.14 4,214 58 11쪽
30 29. 은밀한 전운戰雲 +3 16.12.14 4,330 57 11쪽
29 28. 짧은 이별 +3 16.12.13 4,487 63 9쪽
28 27. 동서남북 +3 16.12.13 4,463 56 12쪽
27 26. 삼각과 사각 +4 16.12.13 4,307 61 10쪽
26 25. 가을밤의 격전 - 묵진휘 2 +4 16.12.11 4,284 54 10쪽
25 24. 가을밤의 격전 - 묵진휘 1 +3 16.12.11 4,027 59 11쪽
24 23. 가을밤의 격전 - 주은백 +2 16.12.10 4,223 60 9쪽
23 22. 가을밤의 격전 – 서은후 +2 16.12.10 4,177 58 10쪽
22 21. 가을밤의 정담情談 +2 16.12.09 4,562 57 11쪽
21 20. 결전의 그림자 +4 16.12.09 4,155 58 8쪽
20 19. 서은후와 주은백 +2 16.12.09 4,310 54 10쪽
19 18. 무림맹 결성 +2 16.12.07 4,475 56 11쪽
18 17. 사절四絶도 무한으로 +2 16.12.07 4,548 60 11쪽
17 16. 어지러워 지는 영웅대회 +2 16.12.07 4,614 56 10쪽
16 15. 또 하나의 친구 +3 16.12.07 4,464 58 10쪽
15 14. 방해꾼들 +4 16.12.07 4,519 59 11쪽
14 13. 목걸이의 비밀 +2 16.12.07 4,670 56 10쪽
13 12. 조우遭遇 +3 16.12.07 4,646 5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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