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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진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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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임규진
작품등록일 :
2016.12.06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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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30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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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6.12.09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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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19. 서은후와 주은백

DUMMY

황학객잔 별실에서 진행된 하북팽가와 모용세가간의 화기애애한 식사는 마무리되고 있었다.

모용세는 식사자리가 끝나가는 지금까지도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얘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팽윤기는 모용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대략 짐작하고 있었다. 모용세도 팽윤기가 알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얘기하지 않고 있는 것이리라. 접대하는 자리에서 자신의 요구를 끄집어 내는 것이 항상 현명한 것은 아니다. 그건 상대가 요구를 짐작할 수 없을 때 하는 것이다. 모용세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뻔하다. 아마 팽윤기를 맹주로 추대해 줄 테니 당주 자리 하나는 모용세가로 밀어달란 얘기일 것이다. 팽윤기 입장에서 짐작하지 못할 이유도 없고, 그렇게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요구를 말하지 않는 것이 보다 현명한 접대인 것이다. 그리고 상황은 그렇게 되어 갈 것이고, 그렇게 되어 간다면 모용세는 끝에 가서 뭔가 다른 요구를 하나 정도 더할 것이다. 그것이 균형이라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상황을 보아가며 얘기해도 된다.


“나간다고 채비를 넣어라”

모용세가 모용준을 보며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마차에게 떠날 채비를 넣어라 했다. 모용준이 일어나서 별실 문을 열고 나갔다. 모용세가 물끄러미 모용준이 나가는 모양을 지켜보고 있었다.

순간 모용세의 얼굴이 심각해지며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시오? 모용가주”

팽윤기가 모용세의 안색이 변하는 것을 보며 물었다.

[가주님, 잠깐만 그대로 있으십시오]

갑자기 모용세가 전음으로 팽윤기에게 말했다. 당연히 팽윤기도 긴장했다.

[밖에 있는 식탁에 웬 노파가 젊은 남녀 둘과 식사를 하고 있는데 낯이 익다 여겨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전대의 대마녀였던 불측은비 서은후인듯 합니다.]

전음으로 말하는 모용세의 목소리가 긴장되어 있었다.

[뭐라구요?]

팽윤기가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서려 하는 걸 모용세가 소매를 잡고 주저 앉힌다.

[아무리 생각해도 분명한 것 같소. 비록 세월이 많이 흘렀다고 하나 어찌 불측은비를 못 알아보겠습니까? 하물며 불측은비는 그리 변하지도 않았습니다. 곧 나갔던 아우가 들어올 터이니 이 자리로 와서 그때 문틈으로 보십시오.]

모용세가 덧붙였다.

팽윤기가 모용세 옆으로 왔고 이어 모용준이 들어왔다.

“준비되어 있습니다.”

모용준의 말에 모용세와 팽윤기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있었다. 둘은 전음으로 얘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보셨습니까?]

[봤소. 불측은비가 분명하구려. 저 늙은 마두가 웬일로 이곳 무한에 나타났단 말인가? 동석하고 있는 젊은 남녀가 누군진 아시겠소?]

[전혀 짐작되는 바가 없습니다. 어찌하시겠습니까? 혹시 저들이 이번 영웅대회 습격사건과 관련이 있지 않겠습니까?]

[···]

팽윤기가 생각에 잠겼다.

[우리 두 세가에서 저 마두를 잡아봅시다. 전대의 대마두를 우리가 잡아 이번 습격사건을 해결한다면 무림맹 결성까지도 내쳐 우리 두 세가에서 주도권을 쥐고 움직일 수 있을 것입니다.]

모용세가 팽윤기를 부추겼다. 만일 팽윤기가 없었다면 모용세가 단독으로는 절대 불측은비를 건드릴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편 팽윤기도 순간적으로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불측은비를 잡는 다면 분명 더욱 강한 입김을 발휘할 수 있을 터이다. 더구나 이번 습격사건까지 불측은비의 소행으로 매듭짓는다면 이런 금상첨화가 따로 없을 것이다. 다만, 자신이 불측은비를 잡을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두 세가에서 데려온 호위무사들 수십 명이 있고 모용가주까지 가세한다면 해 볼만도 할 테지’

[잡읍시다]

팽윤기가 결단을 내리고 모용세를 바라봤다.


팽윤기와 모용세가 머리를 맞대고 있는 별실 밖의 탁자에서는 불측은비 서은후가 호호깔깔대는 주은백과 유혜연을 그윽하게 바라보고 있다.

“네 놈은 고향이 어디냐?”

바야흐로 서은후의 주은백 탐문조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섬서 한중漢中입니다. 양친 모두 돌아가시고 저는 유랑 삼아 떠돌고 있습니다.”

주은백의 안색이 살짝 굳어지는 것을 보고 서은후는 탐문을 중지할까 하고 잠깐 고민했다. 괜히 남의 아픈 상처를 건드리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런데 주은백이 내쳐 말을 이어갔다.

“아버님은 한중에서 가문의 이름을 붙여 조금만 문파를 세워 운영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십여 년 전에 아버님 문파의 문도들과 인근에 있던 큰 흑도방파 문도들간에 사소한 시비가 붙어 흑도 문도 하나가 큰 부상을 입었습니다. 흑도방파에서 사과를 요구했고, 아버님이 사건이 확대되는걸 우려해 흑도방파로 사과를 하러 갔더니 흑도방파의 문주가 사과의 의미로 아버님의 누이인 고모님을 요구하셨습니다. 알고 보니 흑도방주의 아들이 한중에서 미모로 소문이 자자했던 고모님을 우연히 한 번 보곤 욕심을 내어 청혼을 하였으나 이미 고모님은 정혼자가 있어 이를 거절하셨는데 이를 괘씸히 여긴 흑도방주가 일부러 문도들간 시비를 붙여 사과의 명목으로 고모님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주은백의 얘기에 유혜연의 얼굴이 점점 슬퍼지며 눈망울이 촉촉해졌다.

“아버님은 이를 거절했고 흑도방파의 시비와 방해는 나날이 드세어져 문도들이 모두 떠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 지경이 되자 고모님이 스스로 흑도방파를 찾아가 혼인을 약조하셨고, 방주의 아들은 음심에 혼인도 전에 고모님을 욕 보이곤 혼인을 미루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들은 이미 혼인한 자였고 결국 고모님은 자결하셨습니다. 아버님은 더 이상 울분을 참지 못하고 흑도방파로 쳐들어가 그 아들을 베어버렸습니다. 물론 아버님도 그 곳에서 죽임을 당하셨고요. 아버님은 혼자 흑도방파로 찾아가기 전에 그동안 우의가 돈독했던 인근의 정도 문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아시다시피 도와 주는 문파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주은백은 알지 않느냐는 듯이 손바닥을 하늘로 향해서 두 손을 들어 보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고 그런 얘기가 정말 현실에 있지요?”

주은백이 유혜연을 바라보며 익살맞게 웃었다. 마치 그 슬픔은 자기 것이 아닌 것처럼.

“그 뒤는 어떻게 되었어요?”

유혜연이 눈물을 글썽이며 물었다.

“그 다음도 있을 것 같지 않은 흔한 얘기가 이어집니다. 어머니와 단 둘이 남아 어렵게 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머님도 돌아가시게 됐지요. 홧병~. 어머님이 돌아가신 후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산에 묻어 드린 후 어느 날 어머님을 보러 산으로 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엄마 묘소에 앉아 울고 있는데 웬 초로인이 나타나더니 왜 우냐고 묻더군요. 그 간의 얘기를 주섬주섬 했더니 자기를 따라 가겠냐고 그래요. 할아버지가 착해 보여 따라갔지요. 그분이 내 스승님이에요.”

엄마 묘소에서 울고 있었다는 대목에선 기어이 닭똥 같은 굵은 눈물을 흘리던 유혜연이 스승님 얘기가 나오자 그 다음 얘기를 재촉했다.

“그 뒤도 뻔해요. 난 열심히 수련하고, 나름 고수가 됐지요. 그리곤 스승님이 돌아가시고, 하산해서 한중으로가 그 흑도방주를 죽여 아버님 복수를 했지요. 그 다음에는 부모님 묘소를 찾아 인사드리곤 이렇게 떠돌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 얘기를 하듯이 단숨에 자기 얘기를 마친 주은백은 재미없지 하는 표정으로 서은후와 유혜연을 바라봤다. 서은후는 주은백이 담담히 얘기했지만 거짓으로 여기지 않았다. 주은백의 눈에는 쉽게 알아볼 수 없는 슬픔이 흐릿한 그늘로 남아 있었다. 거짓이 있다면 주은백의 유쾌한 척 하는 태도가 오히려 거짓이다.

주은백은 흑도방주가 죽기 전에 자신의 아들이 고모를 탐한 것이 아니라 어떤 적발인이 탐한 것이었으며 자신들은 어쩔 수 없이 적발인의 지시를 따를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한 것은 얘기하지 않았다.


셋은 한동안 말이 없이 음식을 먹었다.

서은후는 주은백의 스승이 누군지 마저 묻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주은백이 얘기하는 것을 보니 묻지 않아도 자신이 얘기하고 싶으면 하고, 물어도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을 성정인 듯 했기 때문이다. 그런 성정은 함부로 건들지 않는 것이 현명한 것이다.

“우리가 누군진 궁금하지 않느냐?”

서은후가 주은백에게 물었다.

“때가 되면 말씀해 주시거나 아님 자연히 알게 되겠지요.”

주은백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가볍게 얘기했다.

주위는 벌써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영웅대회는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우승 후보자들 여덟 명만 남은 상태다. 예선에서 출중한 실력을 보여줬던 10여 명의 고수들은 본선에서 명문 대파나 세가의 후기지수들을 감당하지 못하고 추풍낙역처럼 떨어졌다.

사람들은 저들이 저 정도 실력밖에 되지 않았었나 의아해 하면서도 한편으론 역시 구대문파와 오대세가로군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제 남은 여덟 명은 구파나 오대세가, 해남검문의 후기지수 들이었다. 남궁이현도 무난히 여덟 명 중에 포함되어 있었다.


무림맹 결성 문제로 인해 본선이 연기되고 있었다. 당연히 남궁이현은 새로 사귄 친구들과의 시간을 즐기고 싶었다.

남궁이현까지 덧붙여진 묵진휘 일행 네 명은 무한 중심가에서 조금 벗어난 골목을 걷고 있었다.

“참 이해 안 되는구먼. 요즘 왜 이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많아졌지?”

서홍이 툴툴거렸다.

“구하려 했는데 딱히 기회가 없었다지 않은가?”

남태혼이 자신도 이해할 수 없지만 억지로 이해했다는 듯이 설명했다.

“아니 그게 기회 봐서 해결하는 말고 문제냐구? 내 말은···”

서홍이 이번에는 남궁이현을 바라보며 물었다.

“나는 그런 문제를 당한 적이 없어 잘 모르겠네. 우리 집에는 그게 아주 많거든.”

당하지 않은 문제를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넌 알 수 있느냐는 듯이 남궁이현이 서홍을 뻔히 쳐다봤다.

“이해되지 않는 게 여기 또 하나 있구먼. 어이그~”

서홍이 넌덜머리가 난다는 듯이 남궁이현을 쳐다보았다. 남궁이현은 둘러가는 것, 곡선 자체를 모르는 듯 했다. 오로지 직선···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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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37. 표면表面과 이면裏面 +3 16.12.18 4,110 5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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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35. 요동搖動 +3 16.12.16 4,216 54 11쪽
35 34. 독대獨對 +3 16.12.16 3,975 58 12쪽
34 33. 사령주四領主 +4 16.12.16 4,047 52 10쪽
33 32. 국면局面 변화 +2 16.12.16 4,172 54 11쪽
32 31. 기품氣稟 +3 16.12.14 4,275 56 10쪽
31 30. 이황야 +2 16.12.14 4,214 58 11쪽
30 29. 은밀한 전운戰雲 +3 16.12.14 4,330 5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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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2. 가을밤의 격전 – 서은후 +2 16.12.10 4,177 58 10쪽
22 21. 가을밤의 정담情談 +2 16.12.09 4,562 57 11쪽
21 20. 결전의 그림자 +4 16.12.09 4,155 58 8쪽
» 19. 서은후와 주은백 +2 16.12.09 4,309 54 10쪽
19 18. 무림맹 결성 +2 16.12.07 4,475 56 11쪽
18 17. 사절四絶도 무한으로 +2 16.12.07 4,548 60 11쪽
17 16. 어지러워 지는 영웅대회 +2 16.12.07 4,613 56 10쪽
16 15. 또 하나의 친구 +3 16.12.07 4,464 58 10쪽
15 14. 방해꾼들 +4 16.12.07 4,519 59 11쪽
14 13. 목걸이의 비밀 +2 16.12.07 4,670 56 10쪽
13 12. 조우遭遇 +3 16.12.07 4,646 5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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