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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진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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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임규진
작품등록일 :
2016.12.06 09:35
최근연재일 :
2018.03.30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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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6.12.14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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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30. 이황야

DUMMY

계절은 벌써 겨울로 접어든지 오래되어 바람은 매서웠고 산과 들의 그늘진 곳에는 내린 눈이 녹지 않고 조금씩 쌓여 있었다.

묵진휘와 서홍, 남태혼은 공녀일행과 함께 무한을 떠나 남경으로 왔다.

무진신개는 사절을 보낸 세력들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기 위해 무한에 남았으며, 남궁이현은 무림맹 출범을 지원하기 위해 역시 무한에 남았다.

소노는 이제 거의 완치되어 예전처럼 입가에 웃음이 가득했다.

남경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차를 이용하라는 소노와 냉보모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공녀는 일행과 같이 걸었다.

남경 외곽에 위치한 이황야 거처는 묵진휘가 보기에 판단이 서지 않는 규모였다. 장원의 주인이 현 황제의 동생임을 생각하면 그 규모가 작은 듯 했고, 자신이 봐왔던 장원들을 생각하면 난생처음 보는 큰 규모였다.

“오늘은 씻고 편히 쉬시게. 이 사람이 거처를 안내할 걸세. 아마 내일쯤 되어야 황야를 뵐 수 있을 것이야. 불편하거나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이 사람에게 말하게.”

소노가 옆에 있는 중년인에게 묵진휘 일행을 가리켜 귀중한 손님이니 잘 모셔야 한다고 거듭 말하곤 곧 자리를 떴다. 공녀와 냉보모는 장원으로 들어오자 마자 묵진휘 일행에게 쉬라는 인사를 하곤 사라졌었다.


서홍과 남태혼은 말끔하게 씻은 후 약속이나 한 듯 묵진휘 방으로 모여들었다. 묵진휘는 어서 오라거나 나가란 말도 없이 들어오는 둘을 가만히 바라봤다. 당연히 올 것인 줄 알았다는 듯이.

“이거 우리가 너무 출세하는 것 아냐?”

서홍이 방에 놓여 있는 조그만 탁자 곁에 앉으며 말했다.

“그러게 말일세.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무리 잘 만나야 일급 무인들이었는데 요즘은 만났다 하면 초절정고수들이고, 예전에는 지방관아 하급관리 만나기도 어려웠는데 이제는 이황야를 뵌다 하니 출세가 빨라도 빨라도 너무 빠른 듯 하네. 곧 추락할 것 같은 공포가 온 몸을 짓눌러 요즘 밤잠도 잘 못 잔다네.”

남태혼이 보기 드물게 서홍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이게 다 내가 가져온 그 목걸이 덕분이겠지?”

서홍이 남태혼에게 거들먹거렸다.

“언제는 자기가 감당할 수 없다고 벌벌 떨면서 진휘에게 넘기지 않았나? 그리고 그게 목걸이 덕분이겠어? 내가 보기엔 진휘 덕분인 것 같군.”

“무슨 소린가? 진휘 덕분이라니? 진휘가 한 게 뭐 있다고 그러는가? 다 목걸이 덕이지?”

“그럼, 목걸이가 불러온 무정도나 사절도 자네가 모두 처리했으려나?”

“물론 진휘가 처리했지. 그런데 그 진휘도 목걸이 때문에 인연이 이어진 것 아닌가? 결국 목걸이 덕분인 거지”

남태혼의 빈정거림에도 전혀 기죽지 않고 서홍이 맞받아쳤다. 말인 즉은 맞기도 했다.

“그래 그래 이 모든 게 다 그 목걸이 덕분이네. 그리고 결국 그 목걸이를 가져온 자네 덕분이네.”

남태혼이 못 말리겠다는 듯이 서홍을 바라봤고 서홍은 당연하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으며, 묵진휘는 둘의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웃으며 듣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방 밖에서 중년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협들께 긴히 말씀 올립니다. 황야께옵서 지금 뵙기를 원하십니다.”

낄낄대던 서홍과 남태혼이 중년인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의관을 정제하고 방문을 열고 나갔고 묵진휘가 뒤따라 나섰다. 내일이나 뵐 수 있으리라 든 황야가 지금 보자는 것이다.


묵진휘 일행은 중년인이 열어준 방문 안으로 들어갔다.

황야의 집무실은 꽤 넓었다. 방의 중앙에는, 가운데가 사각 모양으로 비어있는 커다란 사각 탁자가 놓여있었다. 황야가 여러 사람들과 회의를 하는 공간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황야가 집무를 보는 별도의 탁자와 의자는 방의 구석에 놓여 있었다.

사각 모양의 탁자 한 변의 중앙에 이황야로 보이는 호리한 체구의 장년인이 앉아 있었고 황야의 좌측으로 공녀와 소노 냉보모가, 우측으로는 학사처럼 보이는 단아한 모습의 두 선비가 앉아 있었다.

묵진휘 일행은 황야께 크게 허리를 숙여 절을 한 후 중년인의 안내에 따라 황야 맞은편 사각 탁자에 앉았다.

“무한에서 큰 일이 있을 뻔 했는데 다행히 자네들 덕분에 화禍를 면했다고 들었네. 고맙게 생각하네”

이황야가 먼저 말했다. 무한에서 사절의 습격을 받은 일을 두고 하는 말이다. 온화한 말투다.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고마움을 표하고 있다.

평소 말이 많던 서홍과 남태혼은 황야의 말에 어떠한 대답도 없이 목이 타는지 침만 삼키고 있었다.

“저희로 인해 생긴 일이었습니다. 오히려 저희가 크나큰 불찰不察을 저지를 뻔 하였습니다. 송구스럽습니다.”

묵진휘가 대답했다.

“아니네. 우리가 없었다면 그렇게 확대되지도 않았을 터. 자네 탓이 아니야. 그건 그렇고 소노로부터 자네가 대단한 고수라고 들었네. 젊은 나이에 그런 성취를 이루다니 대단한 일일세”

“성취라고 말할 수준이 아닙니다.”

“허허~ 그렇게 겸손할 필요 없네. 소노가 없는 소리할 사람이 아니니 대단한 고수임에 틀림없을 것이야”

황야의 칭찬에 묵진휘는 대답 없이 고개를 숙였다.

“나도 무공에 관심이 많네만 무리武理를 깨치지는 못했네. 좀 일러줄 텐가 하하?”

이황야가 웃으며 묵진휘에게 무리를 물었다.

글을 읽는 사람들이 문리文理를 깨쳐야 하듯 무공도 무리를 깨우쳐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문리나 무리를 말로써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기는 매우 어려운 법이다. 더구나 학식이 대학사를 능가한다는 이황야 앞에서 비록 무리에 관한 것이라지만 이치理에 대한 것을 설명하는 것은 여간 어색하고 낯선 것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묵진휘는 담담히 입을 열었다.

“우선 힘力의 근원을 살펴야 합니다. 흔히 논하는 빠름(快), 변화(變), 무거움(重)은 힘의 운용이고초식이지 근원은 아닙니다. 물이 아래로 흘러가는 것은 물의 성질이기도 하지만 땅이 낮아지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자연 환경 자체가 힘의 근원 중 하나입니다. 누구도 그 환경을 바꾸긴 어렵습니다. 그 힘은 쾌快, 변變, 중重하지 않으나 끊임이 없고 두루 퍼져있어 피할 수 없습니다. 또 다른 힘의 근원은 물은 물이고, 바위가 바위이며, 나무가 나무일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땅이 낮아져도 물이 스스로 흘러 내릴 줄 모른다면 물은 흐르지 않을 것입니다. 모래가 흘러내리지 않음과 같습니다. 하지만 물은 흘러 내립니다. 바위는 모래로 이루어져 있으나 모래처럼 흐트러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깨뜨리기도 어렵습니다. 모래들이 서로 당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물질 자체의 성질이 또한 힘의 근원입니다. 무공은 이러한 힘의 근원을 깨닫고 사람의 몸이 힘의 근원과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묵진휘가 여기까지 말하고 눈을 들어 이황야를 쳐다봤다. 이황야는 입가에 웃음이 사라진 채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다.

“하면, 그 힘의 근원을 사람의 몸 속에 쌓아 운용하는 것이 무공이냐?”

이황야가 무겁게 물었다.

“아닙니다. 힘의 근원은 너무 크고 강력해서 사람의 몸 속에 쌓을 수 없습니다. 힘의 관점에서 본다면 사람의 몸이란 그렇게 훌륭한 것이 되지 못합니다. 상승은 무공은 사람이 사람의 몸에서 벗어 나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몸이라는 틀을 깨트리는 것이 시작입니다.”

묵진휘가 여전히 담담하게 대답했다.

“사람의 몸은 훌륭하지 못하다. 몸을 깨트리는 것이라···하하. 역시 어렵구나 어려워”

이황야가 갑자기 호탕하게 웃었다.

“힘의 근원은 속도도 변화도 아니요 무거움도 아니라는 네 말은 마치 짐을 두고 하는 듯 하구나. 하하. 아무렴 그렇지. 속도, 변화, 무거움은 신하臣下들이 펼치는 정치政治지. 네 말대로 무공의 초식 같은 것일 게야. 하지만 황제의 보살핌은 끊임이 없고 두루 퍼져 만백성이 피할래야 피할 수 없어야 한다. 그것이 황제의 힘의 근원인 게야. 하하하핫”

이황야가 혼자 정리하면서 더욱 호탕하게 계속 웃었다.

“소노는 저렇듯 중요한 무리를 왜 이제까지 내게 숨긴 거요? 아까워서 그러셨소? 하하”

이황야의 웃음이 소노를 향한 농담으로 이어졌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전하. 소신도 들어본 적 없는 상승의 무리이옵니다. 왜 진작 저런 무리를 몰랐을까? 하는 만시지탄晩時之歎의 심정을 금할 수 없습니다.”

소노가 당황하면서 대답했다.

“하하~ 그렇다고 내 소노를 추궁하진 않을 터이니 걱정하지 마시오. 그리고 자네가 남태혼이라고 했는가?”

“예~ 전하”

남태혼이 갑작스런 이황야의 물음에 놀라 답했다.

“아버님께서는 건강하신가?”

“염려 덕분에 건강하십니다. 전하”

“속 썩으시는 아버님 생각해서 이제 그만 돌려 보내려 했더니 저런 친구와 함께 있음도 나쁘지 않을 터. 하하”

이황야의 웃음에 남태혼이 고개를 푹 숙였다.

“자네는 계속 새벽 이슬을 밟고 다닐 텐가?”

이번에는 서홍을 쳐다보며 이황야가 물었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전하. 다시는 그러하지 않을 것이옵니다.”

서홍이 놀라 벌떡 일어나며 바닥에 머리를 조아렸다. 자신의 월담 취미를 두고 하는 말임을 서홍이 재빨리 알아듣고 놀라 말했던 것이다.

“과연 재빠르군. 하하하”

이번에도 이황야가 큰소리로 웃었고, 앉아 있던 모든 사람들도 서홍의 재빠름에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이황야와의 첫날 대면은 끝났다.


“어떻게 보셨소?”

묵진휘 일행과 공녀, 소노, 냉보모가 나가고 이황야가 우측에 있던 초로의 선비에게 물었다.

“곤鯤이랄 수 있겠습니다. 곧 대붕大鵬이 되겠지요. 아니면 이미 대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허허”

선비가 흐뭇한 듯 웃으며 대답했다.

“마치 오랫동안 기다려 온 놈을 만난 듯 하오. 하하하”

이황야가 기분 좋은 웃음이 끊어지지 않고 있었다.

“전하, 선대 황제 시절 상서尙書를 지낸 묵대부를 기억하시는지요?”

옆에 있던 다른 선비가 이황야에게 조용히 물었다.

“당연히 기억하고 있소. 아버님께서 얼마나 총애하셨소? 그와 같은 충신은 흔치 않을 것이오”

이황야가 대답했다.

“저는 좀 전 그 친구를 보면서 묵대부가 갑자기 생각났습니다.”

선비가 신중하게 말했고 이황야와 다른 선비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러길 얼마 후,

“과연 그러하오. 허허. 곰곰히 생각해보니 너무나 닮았소. 허허. 어찌 이런 일이···”

이황야가 옆에 있던 선비에게 의견을 묻듯 쳐다보았다.

“틀림없는 듯 합니다. 묵墨이라는 성姓도 흔치 않을 뿐더러···”

선비는 확신하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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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34. 독대獨對 +3 16.12.16 3,975 58 12쪽
34 33. 사령주四領主 +4 16.12.16 4,047 52 10쪽
33 32. 국면局面 변화 +2 16.12.16 4,172 54 11쪽
32 31. 기품氣稟 +3 16.12.14 4,275 56 10쪽
» 30. 이황야 +2 16.12.14 4,214 58 11쪽
30 29. 은밀한 전운戰雲 +3 16.12.14 4,330 57 11쪽
29 28. 짧은 이별 +3 16.12.13 4,487 63 9쪽
28 27. 동서남북 +3 16.12.13 4,462 56 12쪽
27 26. 삼각과 사각 +4 16.12.13 4,307 6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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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3. 가을밤의 격전 - 주은백 +2 16.12.10 4,222 60 9쪽
23 22. 가을밤의 격전 – 서은후 +2 16.12.10 4,177 58 10쪽
22 21. 가을밤의 정담情談 +2 16.12.09 4,562 57 11쪽
21 20. 결전의 그림자 +4 16.12.09 4,155 58 8쪽
20 19. 서은후와 주은백 +2 16.12.09 4,308 54 10쪽
19 18. 무림맹 결성 +2 16.12.07 4,475 56 11쪽
18 17. 사절四絶도 무한으로 +2 16.12.07 4,548 60 11쪽
17 16. 어지러워 지는 영웅대회 +2 16.12.07 4,613 56 10쪽
16 15. 또 하나의 친구 +3 16.12.07 4,464 58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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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3. 목걸이의 비밀 +2 16.12.07 4,670 56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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