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저, 민정이랑 결혼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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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한의 양손에 들린 고기가 어디로 가는지 알아본 까닭이었다.
검둥이가 인한의 뒤를 좇아 냉큼 식당 뒤편 천막으로 들어갔다.
인한이 제 뒤를 바로 따라 들어온 검둥이를 보고 씩 웃었다.
“짜식! 네가 귀신이다, 귀신, 고기 귀신.”
***
밤이 늦어서야 끝난 식당을 정리하고, 인한의 차로 집에 들어온 가족들이었다.
인한이 제 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오더니 순덕의 방으로 쑥 들어왔다.
“할머니, 말씀드릴 게 있어요.”
- 잉. 혀. 뭔디?
“잠깐만요. 인희도 부를게요. 인희야, 잠깐 와봐!”
인희가 제방에서 씻을 준비를 하고 나왔다.
“왜?”
“앉아봐. 할 말 있어.”
뜬금없이 다른 때와 달리 진중한 인한의 태도에 인희가 어리둥절해서 자리에 앉았다.
인한이 목을 한번 가다듬더니 말을 시작했다.
“할머니, 저 내년에 민정이랑 결혼할까 해요.”
인희가 그 말에 눈이 커졌다.
“뭔 말이야? 민정이? 우리 식당 민정 언니?”
“응. 그래. 민정이.”
순덕은 놀랍지 않은 듯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 민정이헌티 물어는 본 거여?
“뭐야? 할머니도 알고 계셨어요?”
- 가만 있어봐. 인한이 얘기부터 듣고.
인한이 괜스레 제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말을 꺼내는 인한의 얼굴이 조금씩 붉어졌다.
“아까 할머니께서 내년 결혼 얘기까지 하셔서, 내친 김에 다 물었어요. 민정이 말로는 식당에서 다른 직원들이 눈치를 채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 내가 딱 봐도 너만 몰러. 아니다. 인희, 쟤랑. 으째 똘똘한 것들이 그런 눈치는 없냐? 쯧쯧쯧.
인한에 민망함에 제 머리만 긁적거렸다.
순덕의 말을 들은 인희가 인한을 향해 눈을 부라리며 불퉁스럽게 입을 열었다.
“뭐야? 나 왕따야? 왜 나만 몰라?”
- 왕따는 무신! 이번엔 니가 눈치가 없었어.
순덕이 인한의 편을 들어주자 인한이 용기를 얻었다.
덕분에 인희가 그러거나 말거나 인한이 제 말을 이어갔다.
“아직 내놓고 직원들한테 알리는 건 싫대요. 하지만 내년에 결혼하는 건 좋다고 했어요. 결혼하기 전에 청첩장 돌릴 때쯤 말하재요. 다들 자기보다 나이 많은 분들인데 일 하기 불편하다고. 흐흐흐하하하.”
인희가 인한의 너털웃음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헐···, 좋기도 하겠다.”
인희의 빈정거림에도 인한은 얼굴에서 웃음을 지우지 못했다.
- 그럼, 좋지! 나도 좋은디 인한이는 당사자니께 더 좋지, 암!
순덕의 반응에 인희의 화살이 순덕에게 향했다.
“아니, 할머니도 좋으세요?”
- 아까 말 혔잖어. 내가 가급적이면 빨리 허라고. 내가 식당에서 찬찬히 살펴봤어. 민정이 괜찮은 애여.
‘아니, 언제 할머니는 저렇게까지 알아봤대?’하는 딱 그 표정으로 인희가 순덕을 쳐다봤다.
아직도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우지 못한 인한이 인희를 보며 물었다.
“너 민정이 기억 안 나?”
“아니, 식당에서 매일 얼굴 보는데 어떻게 기억이 안 나? 무슨 질문이 그래?”
여전히 불퉁대는 인희였다.
제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어지간히 마음이 꼬인 것 같았다.
“그게 아니고, 나 6학년 때 네가 매일 우리 교실로 왔잖아. 그때 너한테 사탕도 주고 했던 민정이가 지금 민정이야.”
“···알아.”
“알아? 그런데 왜 아는 체도 안 했어?”
“···그걸 아는 체 하려면 떠올리기 싫은 기억을 떠올려야 하니까.”
“···.”
인한이 그제야 인희의 뜻을 알아들었다.
‘그랬구나, 부모님 사고를 떠올리는 게 싫었던 거였구나.’
실어증까지 걸렸던 인희였다.
살면서 아직까지 그때의 이야기를 못 하는 인희였다.
인한은 괜히 이야기 꺼냈다 싶었다.
“···미안하다. 내 생각이 짧았다.”
인희가 피식 웃었다.
“왜 오빠가 미안해? 난 그 나쁜 놈한테 사과 받을 거야. 어쨌든 잘 되서 좋겠네. 축하해. 그러면 내년에 나 새언니 생기는 거지?”
인한의 사과에 어느새 말투가 달라진 인희가 대꾸했다.
“응.”
“오빠, 그럼 난 씻으러 들어간다.”
“그래.”
일어서는 인희가 활짝 웃었지만 어쩐지 아프게 보이는 미소였다.
순덕은 그것이 제 부모 생각이 나서 그런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렇게 밤이 깊어져갔다.
***
“이놈의 새끼, 하라는 공부도 안 하더니, 너 나이가 얼만지나 알아? 내일 모레면 새해야, 새해! 언제까지 내 등에 빨대 꽂고 백수로 살래, 엉?”
쨍그랑!
투닥거리는 소리에 이어 물건을 던지는 소리가 들렸다.
“에이씨, 이제까지 나한테 해준 것도 없으면서 뭔 잔소리가 그렇게 많아? 나한테 용돈이라도 제대로 줘봤어? 그거 다 엄마가 벌어서 준 거잖아! 이-씨.”
“경수야, 제발 그만해. 당신도 그만해요, 좀! 그런다고 되는 일이 아니잖아!”
허름한 단독주택 현관문이 쾅 소리와 함께 열리며 경수가 튀어나왔다.
그 뒤로 쫓아 나오는 중년 여성, 경수의 엄마였다.
눈썹 사이에 깊게 파인 굵은 주름과 온 얼굴을 덮다시피한 기미가 그녀의 마음고생을 대변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경수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었다.
이경수는 오늘도 제 아버지한테 한 소리 듣고 집을 나온 것이다.
“에이씨, 허구한 날, 잔소리야, 꼰대가. 아-씨발.”
씩씩대며 나가는 경수를 경수 엄마가 경수 팔을 잡았다.
“그러지 마, 경수야. 아빠도 속상해서 그래. 너, 졸업하고 계속 노니까.”
“내가 언제 계속 놀았어, 엉? 지지난달까지 일했잖아! 일자리가 안 구해지는 걸 어쩌라고! 노는 건 꼰대잖아! 고생은 맨날 엄마가 다 하면서···.”
그랬다. 경수는 비록 지난 일 년 중 반을 놀았지만 일을 하기는 했다.
배달알바도 해봤고, 주방일도 해봤다.
얼마 전에는 편의점 알바를 하기도 했다.
경수는 컴퓨터 수리 등 전자계통에 약간의 손재주가 있어 그런 계통의 일자리에 취직하고 싶었지만, 경수 정도의 실력 가지고는 써주는 곳을 찾기 어려웠다.
차선으로 찾았던 주방일도 익숙해질 만하니까 다니던 식당이 잘 안 된다며 직원을 자르면서 그도 잘렸다.
제 스스로도 지지리도 일복이 없다며 한탄하는 중이었다.
놀고 싶어 노는 것도 아닌데 요즘 특히 잦아진 아버지의 구박이 못내 서러웠다.
홱 돌아서서 나가려는 경수에게 엄마가 무엇인가를 손에 쥐어주었다.
“밥은 먹어야지.”
안 봐도 뭔지 알고 있었다.
그걸 엄마 앞에서 확인할 자신은 없던 경수가 모른 척 주먹을 쥐고 달려 나갔다.
모퉁이를 돌아 엄마가 보이지 않을 때쯤 경수가 멈춰 섰다.
안 봐도 얼마인지 안다.
한참 주저하던 경수가 슬그머니 제 손바닥을 폈다.
두 번을 곱게 접은 만 원짜리 두 장.
경수의 눈에서 후두둑 눈물이 떨어졌다.
손바닥으로 쓱 눈가를 훔친 경수가 주머니에 돈을 집어넣었다.
‘진작 공부 좀 할 걸. 아니 무단결석이라도 안 할걸.’
경수가 목적지도 없이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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