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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J 님의 서재입니다.

태양의 전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MrJ
작품등록일 :
2015.11.02 21:31
최근연재일 :
2017.03.08 20:34
연재수 :
4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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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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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3.04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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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Chapter12. 재회

DUMMY

웨하스토 지방에 위치한 펜잘 마을. 이렇다 할 장점도 특징도 없는 평범한 마을이지만, 펜잘 마을을 다스리는 영주의 성과 인접해 있어 도적의 침입이 거의 없고 특별히 수탈해가려는 귀족들도 없어 나름대로 살기 좋은 곳이었다.

특히나 추수의 계절인 가을이 다가오면 풍작을 기원하고 여름의 더위를 잊기 위해 축제를 열어왔다. 축제란 것이 그렇듯 떠돌이 유랑극단과 음유시인이 마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 넣어주고, 아이들은 더욱 활기차게 뛰어 놀며, 흥겨운 분위기에 취한 젊은이들이 낭만적인 사랑을 꿈꾸기에 분위기가 들뜬다.

허나 올해는 달랐다. 마을은 마치 무덤처럼 활기란 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늑대인간의 습격과 플라닐과의 전쟁 때문이었다.

두 사건의 영향으로 한 해의 정성이 가득 담긴 농경지는 초토화되었고, 젊은 사내들이 모조리 징집 당했다. 젊은 처자들과 아이들은 상당수가 피난을 떠난 지 오래였기에, 마을에 남아 있는 사람이라곤 대부분이 노인들뿐이었다.

그런 펜잘 마을의 어느 작은 방에서 베론은 생각에 잠겨 있다. 라데시모 전투의 대패 이후, 앞으로 어찌 해야 할지에 대해.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명령을 성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베론은 쉽사리 답이 나오지 않는 고민을 하다, 며칠 전 옥스얀트와의 마지막 대화를 회상했다.

전쟁에서 대패했던 그 날, 단기필마로 옥스얀트를 탈출시키는데 성공한 베론. 옥스얀트를 안전한 곳에 피신시키자마자 베론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게 특수부대를 창설하고 지휘할 권한을 주십시오.”



그러나 옥스얀트는 단칼에 그 말을 거절했다.



“그것은 안 되네. 지금 자네마저 없다면 내 무엇을 믿고 전장에 나서겠는가?”

“허락해주십시오. 지금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수단입니다.”

“자네,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지금 나는 자네가 없으면 안 된다네······.”



옥스얀트는 간절히 애원했다. 라데시모 전투의 대패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많이 피폐해진 그에게 베론은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그런 베론이 지금 자신의 곁으로 떠났다간 이대로 무너져 폐인이 될 것만 같았다.

눈물을 글썽인 채 무릎마저 꿇으며 하는 옥스얀트의 호소에 베론은 마음이 흔들렸지만, 이내 독하게 마음을 다잡고 옥스얀트를 일으켜 세웠다.



“냉정히 생각해보십시오. 제가 옥스얀트 장군님의 일개 호위기사로 전장에 참여하는 것과 소수정예의 특수부대를 이끌고 적의 후방을 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효과적인지를.”

“그, 그렇다면 내가 자네를 승진시켜주겠네! 최소 천인장의 대우를 받는 직위까지. 자네가 대군을 이끄는 지휘관이 된다면 분명 전쟁에 많은 도움이 될 걸세.”

“옥스얀트 장군님, 당신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저 같은 신분의 사람이 갑자기 높은 자리에 올라간다면 필시 질투를 사게 된다는 것을요. 제가 대군을 이끄는 지휘관이 되어봤자, 귀족 신분의 다른 지휘관들은 필히 저를 질투할 것이며, 제 밑에서 일하는 귀족장교들이 저를 따르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시간이 많았으면 천천히 그들을 제 사람으로 만들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제가 갑자기 대군을 이끄는 것이 해가되면 해가됐지, 절대 득이 되진 않을 것은 분명합니다.”

“하, 하지만······.”



옥스얀트는 베론을 어떻게 해서든 설득시키고 싶었지만, 마땅히 그를 설득할만한 명분이 떠오르질 않았다.



“후우- 장군님. 제가 막 장군님과 인연을 맺었을 때, 당신께서 하셨던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위에서 남을 통치하는 자는 두 개의 심장을 가져야 한다. 하나는 따스한 심장이고, 다른 하나는 차가운 심장이다.’”



베론이 말을 이었다.



“‘따스한 심장은 다른 이들을 살피고 가엽게 여길 줄 아는 것이고, 차가운 심장은 조직과 대의(大意)를 위해 자신에게 엄격하고, 그 어떤 지독한 짓도 서슴지 않는 것이다.

따스한 심장을 지닌 통치자는 당장 아랫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순 있지 몰라도 조직을 파멸시켜 아랫사람에게 큰 고통을 줄 위험이 있고, 차가운 심장만 지닌 통치자는 조직을 성공으로 이끌 수는 있겠지만 끊임없이 아랫사람에게 작은 고통을 주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진정한 통치자는 따스한 심장과 차가운 심장, 이 두 개의 심장을 가져야한다.’

제게 이런 말씀을 하셨던 것이 기억나십니까?”



베론의 말에 옥스얀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만 듣고서도 옥스얀트는 이미 자신의 말을 이해한 듯 했지만, 더욱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베론이 말을 덧붙였다.



“냉정해지십시오. 늘 그래오셨듯이 오로지 이 나라를 승리로 이끌 방법만 생각해주십시오. 그럼··· 허락해주시는 것이라 알고, 저는 이만 떠나겠습니다. 특수부대에 필요한 인원은 장군님의 이름을 빌려 차출해가겠습니다. 그리고 장군님께서 빌려주신 말과 무구는 두고 가겠습니다.”



말을 마치자마자 무구를 벗으려는 베론. 그런 베론의 손을 붙잡으며 옥스얀트가 말했다.



“알았네. 내 자네 원하는 데로 해줌세. 내가 졌네."



마침내 옥스얀트가 패배를 시인했다.



"무구와 말은 자네가 가져가게. 내가 가지고 있는 것보단, 자네가 가지고 있는 것이 훨씬 가치 있게 쓰이겠지.”

“그럼······ 잘 쓰겠습니다.”



옥스얀트의 제안에 베론은 거절하지 않았다. 그가 빌려 준 무구와 말이 제법 마음에 들었기에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이것을 가져가게.”



그렇게 말하며 옥스얀트는 자신이 끼고 있던 목걸이를 베론에게 건네주었다.



“내가 주는 부적이라 생각하고 받아가게.”

“장군님······.”



옥스얀트가 건네준 목걸이는 그의 젊은 시절부터 그가 애지중지하던 목걸이였다. 그 사실을 잘 아는 베론이었기에 선뜻 받기가 부담스러웠지만, 옥스얀트의 진지한 눈빛에 못 이겨 결국 건네받고 말았다.



“반드시··· 이 전쟁에서 승리한 뒤에 돌려드리겠습니다······.”

“그래. 반드시 돌려주어야 할 거야. 아주 비싼거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네.”



옥스얀트가 말을 이었다.



“이 전쟁의 영웅이 되어주게.”



의외의 말에 베론은 살짝 당황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말 그대로네. 어떻게 해서든 자네의 공을 널리 퍼뜨려 영웅이 되어주게. 지금까지 아군은 적에게 패배만 해왔어. 샤몬 강에서는 마리앙에게, 라데시모 평원에서는 나르트에게 패배를 당했지. 그리고 이 패배로 인해 우리의 병력이 상당히 손실됐고, 사기도 많이 떨어졌다네. 어쩌면··· 앞으로도 우리는 계속해서 패배하고, 병력과 사기는 가면 갈수록 저하가 될지도 모르지.

그런데 이렇게 힘든 전황 속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베론은 옥스얀트의 의도를 간파했지만, 구태여 그의 말을 끊지 않았다.



“바로 우리 다렌을 하나로 모을 구심점이라네. 모두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적에게 맞서 싸워줄 구심점. 현재의 상황을 뒤집기 위해선 그 구심점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네.

허나··· 안타깝게도 현재 다렌에는 그런 인물이라 할 만한 사람이 없지. 황제 폐하가 나서서 그런 역할을 해주시면 좋겠지만······ 자네도 알다시피 폐하는 그럴 능력이 되지 않으시네. 황태자님이나 다른 황자님들도 아직 나이가 어려 무리이고.

귀족들 중 그나마 그런 역할을 하실만한 분은 내 보기엔 보르고 제독님 정도이지만··· 그 분은 나이가 너무 많으시고, 무엇보다 육상부대를 이끌어본 경험이 없으시다네. 한 평생 바다에 미쳐서 산 분이셨으니까.

이런 상황에서 다렌의 구심점이 되어줄만한 사람은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자네 밖에 없다네. 그러니 자네가 영웅이 되어주게. 지금의 난세를 종식시켜줄 영웅이. 자네가 영웅이 되어, 이 나라의 희망이 되어주게. 그리고 플라닐과의 전쟁에서 모두의 희망이 되어 다렌을 이끌어주게.”

“저는··· 그럴 위인이 되질 못합니다.”



베론은 옥스얀트의 말이 자신에겐 너무도 과분하다 여겨졌다.



“자신을 폄하하지 말게. 자네가 겸손하고, 욕심이 많지 않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그것도 지나치면 단점일세. 이 나라에 그 누구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지만, 자네의 직속상관이자 ‘감시자’였던 나는 잘 알고 있다네. 자네가 아무도 모르게 썼던 전설들을! 아국의 안보를 위해 자네가 외국에서 해냈던 눈부신 활약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단 말일세!

비록 그 모든 일들을 은밀하게 묻어버린 덕에 자네는 자네의 공에 합당한 보상을 받지 못했지! 하지만 이번에는 다를 걸세. 이번엔 내 이름을 걸고 자네의 위명과 활약을 널리 알려줄 터이니······! 반드시 전쟁이 끝난 후, 자네의 활약에 걸맞은 대가를 받을 수 있을 걸세!”



뒤로 가면 갈수록 옥스얀트의 음성이 커진다.



“수없이 많은 불가능한 임무들을 성공시킨 자네라면! 상부에서 자네를 제거하기 위해 지시했던 위험한 임무까지 성공시킨 자네라면! 반드시, 반드시 이 나라의 영웅이 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네.

그러니 부디 이 나라의 영웅이 되어주게. 이것은 부탁이 아니라, 명령일세.”



옥스얀트의 진지한 부탁, 아니 명령에 베론은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의 말처럼 다렌엔 구심점이 필요했고, 그 구심점이 될 만한 사람이 없다면 자신이라도 구심점이 되어야만 했다.



'그래. 나라를 지키고, 나의 본분에 충실할 수 있다면······ 까짓것 이 나라의 영웅이라도 되어주마.'



일말의 권력적 야망도, 일말의 금전적 욕망도, 일말의 잡다한 욕심도. 그 어느 것 하나 없는 오로지 책임과 충심만이 담백하게 담긴 다짐을 하며, 베론은 옥스얀트의 곁을 떠났다.



“에이런 님.”



누군가의 목소리에 베론은 상념에서 깨어났다. 푸어와 함께 크림슨 산맥에 갔던 베너다. 전쟁이 일어나자마자 베론이 걱정된다는 이유로 레나는 베너를 그의 곁으로 파견했다. 곁에서 베론을 지켜주고 도와주라는 명령과 함께. 전시상황에서 고급 정보요원은 매우 유용했기에, 베론 또한 거절하지 않고 베너에게 많은 도움을 받아왔다.



“무슨 일인가?”

“테이오드 일행이 곧 도착할 것 같습니다.”

“그래······?”



힘없이 대답하는 베론의 맥박이 점점 빨라지고 있다.

전쟁 탓에 잠깐 잊고 지냈다. 하지만 그전까지만 해도 수없이 테이오드만을 생각하며 밤을 지새웠다.

몸은 괜찮은 건가? 무슨 일을 겪었을까? 다치진 않았을까? 자신을 원망하진 않을까? 어딘가 심한 부상을 입은 것은 아닐까? 자신이 삼촌이란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떻게 행동할까?

드디어 테이오드를 만난다 생각하니, 그동안 했던 온갖 상념들이 떠오른다.

베론은 담배 한 대를 입에 문 뒤, 천천히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조금 있으면 다시 만나게 될 조카를 기대하며.







테이오드의 짐마차는 어느덧 펜잘 마을의 입구에 도착했다. 그동안 제법 많은 거리를 이동했지만, 다행스럽게도 도적이나 짐승들의 습격을 받은 적은 없었다. 아무래도 늑대인간과 나르트 군에 대한 두려움 탓에 모두 숨어버린 듯 했다.

자신을 기다리는 베론이 그렇듯 테이오드 또한 에이런과의 만남을 기대하고 있었다. 소년이 에이런의 얼굴을 상상한다. 서글서글한 눈매와 푸근한 미소, 그리고 볼록이 튀어나온 배와 여유로운 걸음걸이. 테이오드가 상상하는 삼촌의 모습은 자신의 아버지와 닮은 중년의 남성이었다.

푸어는 말없이 마차를 끌고 있고, 클라하와 백호는 낮잠을 자고 있는 탓에 소년의 즐거운 상상을 방해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여기입니다. 에이런 씨는 여기에 계십니다.”



푸어가 어느 작은 집 앞에 다 마차를 멈춰 세웠다.



“깨우지 말고, 우리 둘부터 먼저 갈까요?”



푸어가 자고 있는 클라하를 보며 말하자, 테이오드가 고개를 끄덕인다.

설레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걸어가 문을 두드린다. 이어서 손잡이를 잡고 천천히 문을 연다.


드르르륵······.


천천히 문이 열리며 커다란 탁자가 보인다. 탁자 옆에 전에 만난 적 있는 베너가 보이지만, 흐릿하게만 보일 뿐, 그리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테이오드의 온 신경이 오로지 탁자에 앉아 있는 한 사람에게 집중된다.

서글서글한 눈매가 아닌 날카롭게 치켜 올라간 눈매, 푸근한 미소가 아닌 굳게 다문 입술, 볼록한 배가 아닌 군살 없는 몸매에 여유가 느껴지지 않는 단호한 기백. 에이런으로 추정되는 그 남자의 외형은 모든 것이 테이오드의 상상과는 달랐다.



“오랜만이구나.”



그의 입에서 담담히 흘러나오는 목소리. 익숙하지만 다시는 듣고 싶지 않았던 목소리의 주인공을 보니, 순간 테이오드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네··· 네가 왜 여기 있는 것이냐?”



테이오드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서, 서, 설마··· 너가··· 아, 아니 당신이··· 설마··· 에이런 삼촌이십니까······?”



베론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테이오드의 머릿속에 베론 때문에 고생했던 지난날들이 떠올랐다.

읽고 싶은 책도 맘껏 읽지 못하고, 놀고 싶을 때 놀지도 못하고 날마다 힘든 수련을 했었다. 나가기 싫은 전투에도 억지로 끌려가 끔찍한 풍경을 보게 하였으며, 두려움에 벌벌 떠는 매일을 살아야만 했었다.

피가 끓어올랐다. 테이오드의 손이 자신도 모르게 검을 꽉 잡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검을 뽑아 베론을 베고 싶었다.

하지만 도저히 검을 뽑을 수는 없었다. 베론이란 남자가 소년의 무의식 속에 공포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자신의 가족을 공격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공격적인 테이오드를 보며 베론은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아무리 테이오드를 위해서였다지만, 당시의 테이오드에게 자신은 너무도 엄격했으니까. 그 죄책감에 베론의 입이 자신도 모르게 열려 소리를 내었다.



“미안하다······.”



어색하게 한 마디를 내뱉은 후,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가슴 속에만 간직했던 진심들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너를··· 너를 좀 더 이해하고 아껴주었어야 했는데··· 그저 강하게 키우고 싶단 마음에 너를 너무 몰아붙였구나. 내가, 내가 잘못했다. 용서해달라는 말은 하지 않으마. 나를 이해해달라는 말도 하지 않으마. 나는, 나는 그저··· 네가 고맙기만 하구나. 그 힘든 곳에서 살아남아, 이토록 멋지게 변하여 돌아와 줘서······ 정말··· 정말 고맙고··· 또 미안하구나······.”



베론의 눈가는 어느새 촉촉이 젖어있었다. 말을 하는 동안 본인도 모르게 눈물이 뚝뚝 떨어졌기 때문이다.

가끔 그럴 때가 있다고 한다. 정말로 미워하고, 정말로 싫었했던 사람인지라 무슨 보상을 해줘도 용서하지 못할 것만 같았던 사람이 있어도, 그 사람의 진심 어린 사과에 그 모든 악감정이 녹아내리는 때가 있다고 한다.

테이오드의 심정이 지금 딱 그랬다.

베론의 사과를 듣는 순간, 그동안 그에게 가졌던 악감정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던 것이다. 정말 우습게도 그 사람에 대해 가지고 있던 미움과 분노가 눈 녹듯이 자취를 감추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안 좋은 기억들이 사라지자, 그만큼 비어 버리게 된 마음속을 애써 무시하고 있던 또 다른 추억들이 새록새록 자라나 채워나가기 시작한다.

베론이 가끔씩 보여주었던 친절함과 즐거웠던 밤의 공부시간. 그리고 베론 덕택에 확실히 과거보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강해졌단 사실과 그 덕에 크림슨 산맥에서 버텨낼 수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유일하게 살아 있는 자신의 가족이란 사실.

새롭게 떠오르는 생각들이 소년의 마음속을 가득 채우자 테이오드의 눈시울 또한 베론처럼 붉어지기 시작했다.

참으려고 했다. 하지만 마주 보고 있는 강철 같은 사내의 눈물 탓에 결국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려 버렸다.

소년이 울자, 베론은 자리에서 일어 나 테이오드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천천히 소년의 등을 토닥인다. 베론의 따스한 손길에 테이오드의 울음소리가 더욱 커지며 양손이 점점 베론의 어깨로 올라갔다.

베너와 푸어는 두 사람의 해우를 방해하지 위해 자연스레 방 밖을 벗어났다.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으며 베론과 테이오드는 그동안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베론은 어린 시절 에드워드와의 추억을 이야기했고, 테이오드는 탈영 이후 자신이 겪었던 나날들을 이야기했다.

베론의 이야기는 테이오드를 유쾌하게 해주었지만, 테이오드의 이야기는 베론을 먹먹하게만 만들뿐이었다. 크림슨 산맥에서의 겪을 일들은 인간이 경험하기엔 너무도 가혹한 일투성이였으니까.



“고생했구나. 그동안 참 고생이 많았어.”



테이오드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뒤, 베론이 말했다. 따스한 그 한 마디에 테이오드는 지금까지 했던 모든 고생에 대한 보답을 받은 것처럼 느껴졌다.



“아, 아니에요.”



쑥스럽게 코를 긁적이는 테이오드. 그런 테이오드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베론이 미소를 지었다.



“처음 봤을 땐 마냥 아이만 같았던 네가··· 이제는 다 컸구나. 어른이 되었어.”



그 말에 테이오드의 입 꼬리가 귀에 걸릴 듯이 올라갔다.

항상 자신에게 실망을 하고, 불만족스러워하던 사람이 자신을 인정하였기에 그 기쁨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컸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을 만큼 미웠지만, 이제는 세상 누구보다 좋아하는 사람.

그 사람의 인정에 소년은 더 이상 소년이 아닌 청년이 되었다. 어느 누구도 부정 못할 멋지고 자랑스러운.



“헤헷··· 감사합니다.”



소년이··· 아니 그가 웃으면서 대답한다.

달빛이 아름다운 어느 밤하늘 아래에서.


작가의말

정말 미워하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무슨 짓을 해도 용서하지 못할 것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서 다시 만난 어느 날.

그 사람이 저를 찾아와 사과를 하더군요.

진심이 담긴 그 사람의 사과 한 마디에 우습게도 지난날 가졌던 미움과 분노가 눈 녹듯이 사르르 사라진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의 재회씬을 이런 식으로 서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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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Chapter13. 도적토벌 17.03.05 446 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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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Chapter12. 재회 17.03.03 461 8 11쪽
35 Chapter11. 라데시모 전투 +3 17.03.02 506 8 13쪽
34 Chapter11. 라데시모 전투 17.03.01 487 6 14쪽
33 Chapter11. 라데시모 전투 17.02.28 510 8 12쪽
32 Chapter11. 라데시모 전투 17.02.27 572 8 14쪽
31 Chapter11. 라데시모 전투 17.02.26 595 8 16쪽
30 Chapter11. 라데시모 전투 17.02.24 631 7 13쪽
29 Chapter10. 약탈의 밤 17.02.22 741 8 15쪽
28 Chapter10. 약탈의 밤 17.02.21 709 8 14쪽
27 Chapter10. 약탈의 밤 17.02.20 721 9 11쪽
26 Chapter9. 하산 +1 17.02.19 730 12 14쪽
25 Chapter9. 하산 17.02.18 683 7 15쪽
24 Chapter8. 개전 17.02.17 692 9 8쪽
23 Chapter8. 개전 17.02.15 699 9 13쪽
22 Chapter8. 개전 17.02.14 688 12 14쪽
21 Chapter8. 개전 17.02.13 891 12 14쪽
20 Chapter7. 야수 17.02.12 832 10 16쪽
19 Chapter7. 야수 17.02.12 688 10 13쪽
18 Chapter6. 거인 토벌전 17.02.10 756 10 14쪽
17 Chapter6. 거인 토벌전 17.02.09 766 9 15쪽
16 Chapter6. 거인 토벌전 17.02.07 880 9 11쪽
15 Chapter5. 전사 17.02.06 958 11 15쪽
14 Chapter5. 전사 17.02.05 1,018 10 15쪽
13 Chapter4. 오니 17.02.05 957 11 21쪽
12 Chapter4. 오니 17.02.04 957 8 13쪽
11 Chapter4. 오니 17.02.03 1,065 11 14쪽
10 Chapter3. 절체절명 17.02.02 1,111 13 20쪽
9 Chapter3. 절체절명 17.02.01 1,369 12 15쪽
8 Chapter3. 절체절명 17.01.31 1,146 14 15쪽
7 Chapter2. 겨울 17.01.30 1,187 12 15쪽
6 Chapter2. 겨울 +2 17.01.29 1,271 17 13쪽
5 Chapter2. 겨울 17.01.28 1,425 16 18쪽
4 Chapter1. 베론 상사 17.01.27 1,571 12 17쪽
3 Chapter1. 베론 상사 +1 17.01.26 1,770 18 14쪽
2 Chapter1. 베론 상사 17.01.25 2,287 2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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