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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J 님의 서재입니다.

태양의 전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MrJ
작품등록일 :
2015.11.02 21:31
최근연재일 :
2017.03.08 20:34
연재수 :
4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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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759
추천수 :
426
글자수 :
253,732

작성
17.02.05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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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Chapter4. 오니

DUMMY

지혜의 창고에서 기록물을 읽는 시간은 늘었지만, 기상 시간은 점점 늦어졌고 무예 수련을 하는 시간은 점점 줄어만 갔다.

또한 테이오드는 오니들이 자신에게 베풀어 주는 호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것이 아주 당연한 일인 것처럼. 특히 타미르가 베푸는 호의는 그것이 호의라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 부모를 여위고 오랜 시간 혼자 살아 온 타미르. 정에 굶주린 그는 테이오드를 자신의 친동생처럼 아끼고 사랑해주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이러한 그의 사랑을 지극히 고맙게 여겼을 것이다.

문제는 테이오드가 백작가의 외동아이로 태어나, 그 누구보다 많은 사랑을 받고 자라난 아이라는 점이었다. 사랑을 받는 것에 익숙한 소년은 혈연관계도 없고, 이질적인 생김새를 지닌 타미르를 형처럼 여기지 않았다.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하인처럼 여기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타미르에 대한 소년의 태도는 점점 무례해졌고, 요구하는 것은 많아졌다.

이런 테이오드의 무례한 행동거지는 테이오드를 마냥 귀엽고 안쓰럽게만 여겼던 타미르의 마음 또한 변화시키고 있었다. 그는 점점 소년에게서 짜증을 느끼기 시작했고, 귀찮은 존재로 여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한 달이란 시간이 흘렀다. 타미르는 늘 그랬듯이 일찍 일어나 아침식사를 준비했고, 또 다시 늦잠을 자는 버릇이 생긴 테이오드는 여전히 잠을 자고 있었다.



“일어나. 아침 먹어야지.”

“으음··· 좀만 더 잘게······.”

“너 아까 전부터 그 소리만 하고 있잖아. 얼른 일어나.”

“아. 알았어! 일어나면 되잖아!”



소년이 모포를 걷어차며 짜증스럽게 일어났다. 타미르는 순간 욱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겨우 참아내며 세안을 하는 테이오드를 기다렸다. 밥상에 앉은 테이오드는 자신의 그릇에 담긴 음식을 보았다. 밀가루를 반죽해 만든 난과 독특한 향이 나는 커리란 이름의 스프가 다였다.



“하아··· 또 이거야? 좀 다른 것도 먹자.”



소년이 불평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없어서 못 먹는 것이 음식이었지만, 그동안의 규칙적인 식사로 어느덧 예전처럼 입이 짧아져 있었다. 타미르는 테이오드의 음식투정에 다시 한 번 화가 치밀었지만 애써 참았다.



“그런데 너, 또 내가 아껴둔 사과절임을 몰래 먹었더라. 그거 귀환 약초를 넣어 만든 거라 함부로 먹지 마라 했잖아. 그리고 왜 먹고 치워 두질 않는 거야? 제대로 보관하지 않으면 상해버린다고 몇 번을 말했어? 나도 일하고 와서 피곤한데 집에서 놀고먹는 네가 어지러 놓은 걸 치운다고 한 번 더 고생해야겠어? 또······.”



타미르는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요즘 들어 부쩍 그의 잔소리가 늘었다. 그의 잔소리에 테이오드는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건성건성 대답한다. 소년에게 무뚝뚝한 대꾸만 나오자, 타미르의 잔소리 강도 또한 더욱 높아진다. 잠시 후, 결국 끊임없는 타미르의 잔소리에 테이오드가 폭발했다.



“아 씨! 밥먹는데 그만 좀 해! 안 그래도 맛없는데 더 입맛이 떨어지잖아!”


퍽!



그런 소년의 무례한 태도에 마침내 이성을 잃은 타미르가 식탁을 내려쳤다.



“야 이 새끼야!!”



타미르의 안광이 평소보다 더욱 붉어진다.



“지금 장난해? 응?! 오냐오냐 해주니까 내가 정말 호구로 보여? 호의가 지속되면 그게 권리인줄 안다 더니··· 네놈이 지금 하는 꼬라지를 보면 정말······! 아후-.”



한숨을 내쉰 후 말을 잇는다.



“아무리 어려서 뭘 모른다 해도 제발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면서 살자! 좀!”



타미르는 말을 마침과 동시에 집을 나가 버렸다.


쾅!


문을 부셔버릴 듯이 쌔게 닫으며 출근하는 그를 보며 테이오드 또한 화가 났다. 홧김에 자리에서 일어나 뭐라고 소리치려 했다. 하지만 막상 말을 내뱉으려 하니, 마땅히 할 말이 없어 입술만 들썩일 뿐이었다.

그 자리에 서서 굳은 채, 가만히 생각에 잠기는 테이오드. 처음 머릿속엔 타미르를 향한 분노와 짜증으로 가득했지만, 생각을 하면 할수록 그동안 자신이 저질렀던 무례한 행동들이 하나 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런 무례한 행동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 속에서 죄책감이란 감정이 싹을 트고 자라난다.

시간이 지날수록 소년의 머릿속엔 짜증과 분노가 아닌 자신의 잘못에 대한 반성과 타미르를 향한 미안함으로 가득 채워져 간다.

잠시 후, 아침상을 치운 테이오드는 오두막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또 다시 생각에 잠겼다. 타미르에게 어떻게 사과를 할지. 앞으로는 어떻게 행동할지. 만약 그가 자신을 쫓아내면 어떻게 생활할지 등등.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누군가가 오두막의 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아이야, 안에 있느냐?”



오도네였다.



“네, 잠시 만요.”



문을 여니, 인자한 미소의 오도네와 함께 강인한 기백의 붉은 거인이 보였다.



‘대전사장이 웬 일로 나를······? 그러니까 이름이 무츠오라 했던가?’



오랜만에 무츠오를 마주하자, 소년은 숨이 막히는 듯 했다. 왜 자신을 찾아온건지 이유를 묻고 싶었지만, 감히 질문할 용기가 나질 않았다.



“오랜만이군.”

“네, 넵!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소년의 말에 무츠오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근엄한 무츠오와 그런 무츠오의 분위기에 짓눌려 어쩔 줄 몰라 하는 테이오드 사이엔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오도네는 웃으면서 두 남자를 오두막 안으로 이끌었다.

잠시 후, 탁자에 앉은 세 남녀. 그들의 찻잔에 오도네가 끓여 온 치야차(Chiya-tea)가 모두 따라지자, 오도네가 입을 열었다.



“아이야, 네 나이가 몇이라 했지?”

“올해로 열다섯이 됩니다.”

“열다섯이면 성인식을 치러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구나”

“아, 네.”



하라클의 일기에도 분명 오니는 15~16세를 기준으로 성인이 된다고 적혀있었다. 만 17살이 되면 성인으로 인정해주는 인간사회보다 1~2년 정도 빠르다 할 수 있었다.



“그러면 이제 너도 마을의 일원으로 일을 해야겠구나.”



오도네의 말에 테이오드는 놀랐다. 언젠가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은 했지만, 아직까지 자신은 일을 하기에는 어리다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이제 몸도 완전히 회복 된 것 같으니, 우리와 함께 살려면 반드시 부족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단다. 혹시 따로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것이냐?”

“저··· 그게······.”



테이오드는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먼저 자신이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곤 생각해보질 않았고, 만약 일을 하게 된다면 하라클이 그러했듯이 마을의 전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해왔다. 그렇게 하는 것이 조금이나마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갈 확률이 높아 보였으니까. 하지만 군대에 대해 좋지 않은 기억 밖에 없고, 또한 자신의 실력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했기에 선뜻 전사가 되고 싶다는 말이 나오질 않았다.



“아직 정하지 못했다면 전사가 되는 것이 어떻겠느냐?”

“저, 전사 말씀이십니까?”



생각지도 못한 오도네의 말에 테이오드는 다시 한 번 놀랐다.



“그래. 본 녀는 무예를 잘 모르지만, 대전사장이 너를 원한단다. 네가 무예에 재능이 있어 보인다며 전사단에 거두고 싶어 하는구나.”



오도네의 말에 소년이 무츠오를 바라보자, 그가 굳게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나는 네가 전사가 되길 바란다. 제법 쓸만한 자질을 지니고 있으니까. 정해진 것이 없다면 전사단으로 와라.”



그 말에 소년은 당황스러웠다. 무예에 재능이 있단 소리를 난생 처음으로 들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자신은 무술과는 맞지 않다고 생각해 왔다. 만약 가문이 몰락하지 않았다면 평생 무예를 멀리했을 거라 생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한 편으론 기쁘기도 했다. 어쨌거나 무예에 관해 태어나서 처음으로 칭찬을 받았으니까.



“정말 제가 재능이 있습니까?”



여전히 미심쩍었기에 다시 한 번 물었다.



“네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니 하얀 오니, 아니 너희 말로 인간이었을 무렵엔 그리 신체능력이 뛰어나질 못했나보구나.”



정곡을 찌르는 그녀의 말에 소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보니 테이오드는 무의식적으로 현재의 몸과 과거 뚱뚱하고 나약했던 자신의 몸과 동일시하고 있었다.

테이오드는 의식하지 못했지만 소년의 몸은 오니의 기준으로나 인간의 기준으로나 제법 뛰어난 운동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인간의 기준으론 가히 천재라 칭하기에 모자람이 없었고, 오니의 기준으론 천재까진 아닐 지라도 수재라 말할 정도는 되었다.

오도네와 무츠오 덕분에 소년은 자신의 육체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육체가 예전과는 달리 뛰어나단 사실을 인지하자, 소년의 마음 속 깊숙이 숨어 있던 웅심이 깨어났다.

유년 시절, 다른 사내아이들처럼 영웅을 선망하고 최강이 되길 바랬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자신에게 재능이 없음을 자각하고 무예에 대한 뜻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제는 달랐다. 노력하면 얼마든지 강해질 수 있는 재능을 갖게 되었다.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꿈이 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자격이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행하라. 할 수 있음에도 꿈을 포기하는 자는 미련한 멍청이일 뿐이다. 한 순간의 짧은 안녕과 만족을 위해 꿈을 거부한다면 평생을 후회하며 살지니, 멈추지 말고 나아가라······.”



테이오드는 하라클이 쓴 일기의 어느 구절을 조용히 읊조렸다.



“한 가지만 묻고 싶습니다.”



소년이 무츠오에게 물었다.



“무엇이 궁금한가?”

“제가 전사가 된다면··· 얼마나 강해질 수 있습니까?”



그 말에 무츠오의 눈꼬리가 조금 부드러워졌다.



“노력 여하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네가 오랜 시간 뼈를 깎는 시련을 견뎌낼 수 있다면 능히 대전사의 반열에 오를 것이다.”



테이오드는 하라클의 일기에 나온 대전사들의 무위를 떠올렸다.

이 크림슨 산맥에는 이만 명에 가까운 오니가 있고, 그 중 대전사라 불리는 이는 스무 명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런 대전사들의 무력은 가히 일기당천이라 불릴 만 했다. 특히 대전사들 중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오니는 개인의 무력만으로 전장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초인’들과 비견할 만 했다.

대전사가 될 수 있다는 말에 소년은 자신의 재능에 대해 완전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저는 전사가 되겠습니다!”



결심을 세운 테이오드가 큰 소리로 말했다. 소년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패기에 무츠오가 활짝 미소를 지으며 눈을 번뜩였다. 먹음직스러운 사냥감을 발견했을 때, 그가 짓는 표정이었다. 그런 그의 표정을 보며 테이오드는 오한을 느꼈다.



“좋다. 그럼 일어서라. 지금 당장 전사단의 입단식을 치루 도록 하자.”

“네······?”



테이오드가 기억을 뒤졌다. 전사단의 입단식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떠올리기 위해서. 마침내 그 입단식이 어떤 것인지 떠오른 소년의 입이 떡하고 벌어졌다.



“서, 설마 그 대련의 상대가 무츠오님이십니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전사단의 입단식은 선배 전사와 대련을 하는 것이었고, 이곳에 있는 선배전사라 할 만한 이는 무츠오밖에 없었다.



“그래. 불만이라도 있나?”

“아, 아닙니다!”



그 누가 감히 무츠오에게 불만을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럼 나와라. 얼른 한판 붙자.”



무츠오가 장난을 앞둔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말했다. 테이오드는 절대 그와 싸우고 싶지 않았지만, 그의 말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결국 소년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멍하니 검을 챙겨 그를 따라가야만 했다.



“검 날이 많이 상했군. 더 이상 숫돌에 갈아봤자 소용이 없을 만큼.”



테이오드의 검을 보며 무츠오가 말했다.



“이걸 써라. 그런 무기로 나를 상대하다간 다칠 수가 있다.”



그렇게 말하며 무츠오는 자신이 애용하는 쿠크리를 내밀었다. 전사 오니들이 이 쿠크리라 불리는 구부러진 외날검을 차고 다니는 것은 많이 봤다. 하지만 직접 다루는 것은 처음인지라 손에 잘 익진 않았다.



“쿠크리는 처음인가?”

“네.”

“조언을 하나 하자면 네가 사용하는 검보다 가볍지만, 의외로 살상력이 뛰어나다. 네 무기와는 달리 가볍게 휘둘러도 제법 위력이 나오니 쓸 때 없이 힘주지 말고, 상대와의 거리를 잘 파악하라.”



무츠오가 말을 이었다.



“그럼 나는 이걸로 하지.”



그렇게 말하며 타미르는 마당에 있는 어느 벚나무의 가지를 뜯었다. 좋게 봐도 회초리에 불과한 나뭇가지였지만 무츠오가 들고 있으니 중무장기사의 랜스만큼이나 무시무시하게 느껴졌다.



“준비하라.”



그의 말에 쿠크리를 이리저리 휘두르며 감을 익히던 테이오드가 자세를 잡았다. 분명 그와의 거리가 어른의 걸음으로 열 걸음 정도 떨어져 있었지만, 어째선지 그가 바로 눈앞에 서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선수를 양보하지. 와라.”



무츠오의 말에 테이오드는 고개를 끄덕인 후, 곧장 그와의 거리를 좁히기 시작했다. 무츠오의 빈틈을 찾기 위해 집중했지만 도무지 보이질 않았다.



‘그렇다면······.’



소년은 간혹 상대하기 힘든 마물들을 사냥할 때 자주 썼던 방법을 시도하기로 마음먹었다.

제 자리에 어뚝 선 무츠오와의 거리를 좁히던 도중, 테이오드가 앞발로 힘껏 바닥을 찼다. 땅을 파듯이 바닥을 차자, 발에 걸린 모래와 흙이 하늘로 솟구치며 흙먼지 바람을 일으켰다. 흙먼지가 무츠오의 시야를 가리는 것과 동시에 쿠크리를 휘두르는 테이오드. 그러나 테이오드의 일격을 무츠오는 손쉽게 피해버렸다.



“괜찮은 방법이지만 기감이 뛰어난 무인에겐 먹히지 않는 잔재주일 뿐이다.”



그렇게 말하며 무츠오는 아직 공격 이후 자세를 바로 잡지 못한 소년의 옆구리를 때렸다. ‘짝’하는 소리와 함께 옆구리에 나뭇가지를 맞은 테이오드는 통증을 느끼며 인상을 찌푸렸다. 소년이 다시 한 번 무츠오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이번에도 무츠오는 살짝 고개를 꺾는 것으로 가볍게 피한 후, 소년의 어깨를 가격했다.

살이 찢어지는 고통을 참으며 쉼 없이 공격하는 테이오드와 그런 테이오드의 공격을 여유롭게 피하는 무츠오. 둘 사이의 공방이 이루어진지 오분쯤 지났을 때, 무츠오가 대련을 중지시켰다.



“소년이여, 나는 너의 전력이 보고 싶다. 그러니 전력을 다하라. 나는 네가 실력을 숨겨가며 상대할만한 오니가 아니다.”



무츠오의 말에 테이오드의 찌그러진 인상이 더욱 험악해졌다. 기껏 고통을 참아내며 이를 악물고 혼신을 다하고 있건만······ 그런 자신에게 전력을 다하라니! 자신을 비꼬는 듯한 그의 말에 화를 낼 수밖에 없었다.



“실망스러우시겠지만... 이게 제 전력입니다!”



테이오드의 말에 무츠오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무슨 소린가? 무인이 기를 사용하지 않고 어찌 전력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기라니··· 전 아직 기를 사용하지 못하기에 무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의 말에 테이오드 또한 어이가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소년의 대답에 무츠오가 벙 쪘다. 항상 근엄한 표정의 무츠오가 벙 찐 얼굴을 하자, 멀리서 지켜보던 오도네가 쿡쿡 웃는다. 하지만 서로에게 집중하는 두 남자의 귀엔 들리지 않았다.



‘설마··· 기를 각성하긴 했지만 아직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하긴 간혹 자신도 모르게 기감을 깨우치고선 그것을 모른 채 살아가는 이도 있으니······.’



그렇게 생각하며 무츠오가 입을 열었다.



“소년이여, 너는 의식하지 못하겠지만 이미 네 몸은 기감을 각성하고 기를 다룰 수 있게 되었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테이오드가 물었다. 자신도 모르게 기를 다루게 됬다는 말에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하지만 한 편으론 그가 허언을 할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츠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분명 너는 기를 각성했다. 하지만 아직 이를 의식하지 못하고 있으니, 네가 완전히 깨우칠 수 있게 도와주겠다. 다시 무기를 들어라.”



말을 마침과 동시에 무츠오가 손에 쥐고 있던 나뭇가지를 들어올렸다.



“지금부터 난 기를 사용해서 널 공격하도록 하겠다. 피해도 좋고, 막아도 좋다. 가능하다면 반격을 해도 좋지. 하지만 쉽지 않을 것이다. 절대 한 순간도 긴장을 풀지 말고 살기 위해 집중해라. 잘못하다간 죽을 수도 있을 테니.”



그렇게 말한 뒤, 무츠오는 자신의 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의 단전을 중심으로 용암처럼 붉고 진득한 빛이 연기처럼 뿜어져 나온다. 빠른 속도로 전신을 뒤덮은 붉은 빛은 이윽고 그의 손에 쥐어진 나뭇가지마저 적색으로 도금했다.

무츠오의 마기가 훨씬 강력해졌다. 그동안 그가 내뿜던 마기가 웅크린 맹수 같았다면, 지금 그가 내뿜는 마기는 자신을 날려 버릴 듯이 덮쳐오는 폭풍 같았다. 테이오드는 다리가 풀리려는 것을 애써 참으며 자세를 다잡았다.



“간다.”



그 말과 동시에 무츠오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이어서 소년의 머리를 향해 나뭇가지를 휘둘렀다.


캉!


“으흡!”



간신히 그의 나뭇가지를 막아내는 테이오드.

무츠오가 쥔 나뭇가지에 붙어 있는 벚꽃 잎들이 우수수 떨어져 바람에 휘날린다.

마치 거대한 낙석을 막아낸 듯 한 충격에 테이오드는 손아귀가 찢어지고, 팔이 저렸으며, 피를 토할 뻔 했다. 비록 회초리에 불과한 나뭇가지지만 그의 기를 머금은 후부턴 마치 잘 벼려진 중검처럼 무겁고 날카로웠다.

무츠오가 계속해서 나뭇가지를 휘두른다. 테이오드는 반격은커녕 회피와 방어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둘의 공방, 아니 무츠오의 일방적인 학대가 이어진다. 그 학대가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테이오드의 몸에 생채기가 생겨나기 시작한다. 만약 무츠오가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고, 테이오드의 몸이 오니처럼 변하면서 훨씬 튼튼하고 강해지지 않았더라면 분명 깊은 상처가 생겼으리라.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무츠오는 조금씩 위력을 높이기 시작하자, 테이오드의 상처 또한 더욱 깊어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면 죽을지도 몰라!’



자신의 몸에 새겨지는 상처의 깊이가 어느 정도 선을 넘었을 때, 테이오드는 확신했다. 만에 하나 급소에 공격을 허용하거나, 깊은 검상을 입는다면 출혈과다로 죽을 것이 분명했다.

오랜만에 죽음의 위기에 직면하자 테이오드의 몸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소년의 움직임이 조금씩 조금씩 날쌔졌고, 근육이 강해졌으며, 감각이 발달하는 것과 동시에 두뇌회전이 빨라졌다.

이윽고 어느 순간부터 소년의 단전을 중심으로 희미한 빛이 발광하고 있었다. 태양처럼 화려한 적금색의 붉은 빛이. 하지만 아직까지 그 빛은 너무도 약하고 미약했다. 소년이 의식하기 힘들 만큼.



‘조금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빠르고 강력하게······!’



어느덧 날쌔지고 강해진 소년의 몸이 무츠오의 움직임을 따라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회전이 빨라진 두뇌가 어떻게 반응하면 좋을지 판단하며 무츠오의 공격을 철저히 분석하고 있었다.



캉! 캉! 캉! 캉! 캉!



드디어 테이오드는 무츠오의 공격을 제대로 막아내기 시작했다. 더 이상 소년의 몸엔 상처가 생겨나지 않았고, 적금색의 빛이 기름을 부운 불꽃마냥 빠르게 피어나 소년의 전신을 뒤덮었다. 이윽고 테이오드가 쥐고 있는 쿠크리마저 적금 빛의 빛 무리에 뒤덮였을 때.



‘지금이다!’



소년은 반격의 실마리를 찾았다.

간신히 발견한 무츠오의 실낱같은 허점을 향해 검을 휘두르는 테이오드!



'닿아라... 제발!'



마침내 소년의 혼신의 일격이 무츠오의 옆구리에 닿았다.



카아아아앙-!



분명 옆구리를 쌔게 베었지만, 마치 철판에 부딪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무츠오의 강맹한 기가 옆구리 쪽에 단단하게 뭉쳐 소년의 검을 막아낸 것이다. 비록 무츠오의 몸에 상처를 내진 못했지만, 그의 몸에 닿은 것만으로도 테이오드는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그만.”



무츠오가 다시 한 번 대련을 중지시켰다.



“소년이여, 드디어 완벽히 기를 깨우쳤구나.”



무츠오의 말에 테이오드는 벙 찐 얼굴로 자신의 몸을 살폈다. 자신의 전신에선 놀랍게도 적금색의 빛이 화려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축하한다. 새로운 무(武)의 세계에 한 발짝 내딛은 것을.”



고개를 드니, 무츠오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를 따라 테이오드 또한 활짝 미소를 지었다. 두 남자의 미소는 세상을 비추는 태양처럼 찬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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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Chapter11. 라데시모 전투 17.02.26 595 8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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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Chapter10. 약탈의 밤 17.02.21 709 8 14쪽
27 Chapter10. 약탈의 밤 17.02.20 721 9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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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Chapter9. 하산 17.02.18 683 7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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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Chapter8. 개전 17.02.15 699 9 13쪽
22 Chapter8. 개전 17.02.14 688 12 14쪽
21 Chapter8. 개전 17.02.13 891 1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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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Chapter7. 야수 17.02.12 688 10 13쪽
18 Chapter6. 거인 토벌전 17.02.10 756 10 14쪽
17 Chapter6. 거인 토벌전 17.02.09 766 9 15쪽
16 Chapter6. 거인 토벌전 17.02.07 880 9 11쪽
15 Chapter5. 전사 17.02.06 958 11 15쪽
14 Chapter5. 전사 17.02.05 1,018 10 15쪽
» Chapter4. 오니 17.02.05 958 11 21쪽
12 Chapter4. 오니 17.02.04 957 8 13쪽
11 Chapter4. 오니 17.02.03 1,065 11 14쪽
10 Chapter3. 절체절명 17.02.02 1,112 13 20쪽
9 Chapter3. 절체절명 17.02.01 1,369 12 15쪽
8 Chapter3. 절체절명 17.01.31 1,146 14 15쪽
7 Chapter2. 겨울 17.01.30 1,187 12 15쪽
6 Chapter2. 겨울 +2 17.01.29 1,271 17 13쪽
5 Chapter2. 겨울 17.01.28 1,425 16 18쪽
4 Chapter1. 베론 상사 17.01.27 1,571 12 17쪽
3 Chapter1. 베론 상사 +1 17.01.26 1,770 18 14쪽
2 Chapter1. 베론 상사 17.01.25 2,287 21 15쪽
1 Prologue. 소년의 선택 +2 17.01.25 2,760 23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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