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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J 님의 서재입니다.

태양의 전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MrJ
작품등록일 :
2015.11.02 21:31
최근연재일 :
2017.03.08 20:34
연재수 :
4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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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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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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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2.02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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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쪽

Chapter3. 절체절명

DUMMY

‘그때 그녀석이다!’



테이오드는 한 눈에 그 백호가 과거 자신이 만났던 백호임을 알 수 있었다.

소년은 자신이 그때와 비교하면 제법 강해졌다 자부했지만 여전히 백호는 도저히 상대할 엄두가 나지 않을만큼 강인하 기세를 내뿜고 있었다. 또 다시 백호의 마기에 짓눌려 몸이 굳어버릴 것만 같아 소년이 이를 악물었다.



‘저번과 달라··· 지금 이 녀석의 목표는 분명 나야!’



오랜 야생생활로 얻은 육감이 그리 말해주고 있다. 지금의 백호는 세 눈 박이 토끼정도론 만족하지 못한다고. 테이오드의 예상처럼 백호 또한 폭설로 인해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 했기 때문에 크게 굶주린 상태였다. 그렇기 때문에 토끼보다 훨씬 살점이 풍부한 테이오드를 노리고 있었다.

이윽고 테이오드는 뒤돌아서서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정면으로 맞서 봐야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소년이 갑자기 달아나자 백호 또한 군침을 뚝뚝 흘리며 추격에 나선다.

테이오드가 아무리 빨라도 네 발로 달리는 백호보다 빠를 수는 없다. 그렇기에 소년은 나무가 빽빽이 자라난 숲 속으로 도망쳤다. 백호의 큰 덩치라면 분명 나뭇가지에 걸릴 테니까.

소년의 생각처럼 과연 백호는 나뭇가지를 이리저리 피하면서 달려야 했기에 테이오드를 따라잡지 못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뒤처지진 않았다. 소년과 백호는 일정한 거리를 둔 채, 끊임없이 달리고 또 달렸다. 정신없이 달리는 와중에 테이오드는 자신이 한 번도 와보지 못한 곳까지 발을 디뎠다.

곧 있으면 테이오드의 체력이 한계를 보일 듯 했다. 명상 덕인지 예전보다 힘이 넘쳤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 마물 호랑이보다 체력이 강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테이오드의 체력이 바닥을 보이고, 미지에 대한 불안감이 극에 달하기 시작한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젖먹던 힘까지 달리는 테이오드. 그러나 그는 새로이 보이는 풍경에 발을 멈춰야만 했다. 그가 서 있는 곳이 원뿔형 절벽의 끄트머리였기 때문이었다. 거대한 붉은 나무들의 풍성한 잎사귀들이 소년의 시야를 가린 탓에 자신의 앞에 낭떠러지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지 못했었다.



“하필이면······.”



깊은 탄식을 내뱉으며 뒤돌아선다. 그곳에는 어느새 백호가 멈춰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년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가방에서 토끼의 시신을 꺼내 백호에게 던졌다. 그러나 백호는 작은 토끼엔 흥미가 없다는 듯이 테이오드만을 응시한다.

테이오드는 백호의 마기에 짓눌리지 않기 위해 쉼호흡을 했다. 그리곤 천천히 검을 뽑아들었다.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으니 이제는 맞서 싸워야만 했다.

제 자리에 선 테이오드와 서서히 앞으로 나가는 백호 사이의 대치상황.

그 상황을 먼저 깨고 선제공격을 가한 것은 테이오드였다. 소년은 심장을 옥죄는 듯한 공포에 맞서 발악하듯 검을 휘둘렀지만 쉽사리 백호의 발톱에 막히고 말았다. 그리고 백호는 반대쪽 앞발로 소년의 안면을 후려치려했다.



카앙!



테이오드가 재빨리 검을 회수하며 공격을 막았지만, 백호의 발에 실린 힘에 밀려 뒷걸음질을 쳐야만 했다.

계속해서 백호의 공격이 이어졌다. 백호가 앞발을 휘두르면 테이오드가 검으로 막고, 이빨로 물려하면 아슬아슬하게 피하는 공방이 계속된다. 그리고 백호의 공격을 막을 때마다 소년은 점점 뒤로 밀려난다.


드드득···.


테이오드의 뒤꿈치에 걸린 자갈이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졌다. 더 이상 뒤로 물러났다간 절벽 아래로 추락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소년은 정신이 없어 이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잡힐 듯 말 듯 잡히지 않는 테이오드에게 화가 난 백호의 동작이 조금 커졌다. 지금까지 반격할 엄두를 내지 못하던 테이오드가 알아차릴 만큼. 본능적으로 지금이 마지막 기회임을 깨달은 테이오드가 백호의 목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백호의 발톱보다 테이오드의 검이 먼저 호랑이의 목을 꿰뚫으려는 찰나. 소년의 지치고 갸날픈 다리가 주인의 움직임을 지탱하지 못하고 살짝 삐끗했다. 평소 같았으면 별 문제가 없었겠지만, 지금 소년이 서있는 곳은 꽁꽁 얼어붙은 눈길이다. 결국 살짝 삐끗한 발이 눈길에 미끄러졌다.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짧은 시간동안 수없이 머리를 굴리며 발버둥 쳤지만 별수 없었다.



“으아아악!!!”



테이오드가 비명을 지르며 절벽에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소년의 비명소리가 크림슨 산맥을 쩌렁쩌렁 울리는 동안 백호는 허탈한 눈으로 추락하는 사냥감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하는 테이오드.

그런데 추락하는 테이오드에게 두 번의 기적이 일어났다. 첫 번째 기적은 절벽에 듬성듬성 자라난 묘목들 중 무려 6개의 묘목에 몸을 부딪치며 낙하의 충격을 완화한 것이다. 그리고 뒤이어 일어난 두 번째 기적은 소년이 떨어진 곳이 단단한 지면이 아닌 계곡에 떨어진 것이다.

그 두 개의 기적 덕에 테이오드는 말 그대로 기적처럼 살아남았다. 비록 몇 군데 뼈가 부러지고, 온 몸 구석구석에 상처를 입긴 했지만.

하지만 아직 시련은 끝이 아니었다. 깊은 계곡에 떨어진 덕에 추락사는 면했지만 안타깝게도 테이오드는 수영을 할 줄 몰랐다. 이대로 계속 물속에 있다간 익사 혹은 저체온증에 의해 사망할 것이 분명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소년의 발은 수면 아래에 닿지 않았고, 끊임없이 코와 입으로 물이 들어왔다. 흔히 사람들이 물에 빠졌을 때 그러하듯 테이오드는 패닉 상태에 빠졌다. 이성적인 사고가 정지했다. 마물의 포효보다 더욱 무서운 물소리와 세차게 뛰는 자신의 심장 소리만이 소년의 머릿속을 울린다.

그렇게 패닉에 빠져 허우적대는 동안 계곡의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갔다. 그리고 그때 세 번째 기적이 일어났다. 소년의 몸이 물속에 있던 어느 바위에 부딪치며 육지 쪽으로 상당히 밀려 났던 것이다.

그렇게 밀려 나간 곳은 수심 또한 얕아, 아슬아슬하게나마 지면에 발끝이 닿았다. 본능적으로 발끝에 힘을 주어 걷기 시작했다. 이윽고 소년은 걸어서 계곡 밖으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마침내 계곡 밖으로 빠져나온 테이오드는 쓰러지듯 바닥에 엎어졌다. 온 몸이 무거웠고 통증이 심하게 느껴졌다. 차가운 물에 푹 젖은 몸은 차갑기보단 화상을 입은 것처럼 뜨거웠다. 고통과 피로의 끊임없는 유혹 탓에 이대로 누워서 자고 싶었다. 그러나 이대로 잠들었다간 필시 저체온증으로 죽을 것이 확실했기에 소년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겨우 일어선 테이오드는 뭍으로 나온 순간부터 계속 눈에 뛰던 동굴을 향해 걸어갔다. 동굴에 들어서서 모닥불을 피워 몸을 녹이는 것이 소년의 목표였다.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동굴 속으로 들어선 테이오드는 동굴의 거대한 규모에 놀랐다. 입구는 작았지만 안으로 들어서니 동굴의 내부는 아이아 교의 대 성당들 만큼이나 천장이 높고 거대했다.



‘이 정도 규모라면 분명 출입구도 여러 개고, 서식하는 마물들도 제법 많을 텐데······.’



안전을 위해서라면 동굴을 탐사하고 휴식을 취해야 했겠지만 밀려오는 피로가 그런 시도를 막았다. 소년이 모닥불을 피우기 위해 배낭을 열었다.

그런데 그 순간. 테이오드의 귀에 무언가가 뚝하고 끊기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와 함께 코에서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소년의 시야가 점점 새 하야지고 머릿속이 어지러워졌다.

털썩. 갑자기 테이오드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드디어 소년의 몸에 한계가 찾아온 것일까? 다행히 숨이 끊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이곳에서 온 몸이 젖은 채로 기절한다면 저체온증으로 죽을 것이 확실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테이오드가 입고 있는 젖은 옷이 빠른 속도로 마르기 시작했고, 몸이 따뜻하게 데워지기 시작했다. 정신이 없고, 차가운 물에 들어갔다 나온 탓에 느끼지 못했지만 이 동굴 속 돌들은 하나같이 온기를 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스한 봄볕 같은 온기를 머금은 동굴의 돌들. 우연히 들어선 동굴의 돌들이 온기를 품고 있었다는 기적이 자신에게 일어났지만 기절한 테이오드는 전혀 알지 못했다.

시체처럼 기절한 테이오드의 심장박동이 점차 느려지기 시작한다. 이어서 혈류와 호흡이 진정되어 간다.

그런데 기절한 소년의 몸에서 기이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부러진 뼈가 제 자리를 찾아 다시 붙기 시작했고, 근육이 눈에 뛰게 부풀어 올랐다.

그런데 소년의 몸이 점점 기이해졌다. 거북이의 걸음처럼 변화의 속도는 느긋하기 그지없었지만 확실히 소년의 몸은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온 몸의 피부가 크림슨 산맥의 붉은 나무들처럼 붉게 변색되기 시작했고, 이마에서 작은 뿔 하나가 솟아나기 시작했다.

자신도 모르게 기이한 변화를 겪으며 기절해 있던 소년이 정신을 차린 것은 사흘이 지난 뒤였다. 비록 의식을 찾긴 했지만 그의 몸은 가위에 눌린 것처럼 움직여지질 않았다. 손 끝 하나 까닥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으며 눈조차 뜰 수가 없었다.

의식을 찾자마자 손상된 뼈와 내장에서 격렬한 고통이 느껴졌다. 마치 온 몸이 비명을 지르는 듯한 그 살벌한 고통에 의식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결국 테이오드는 다시 의식을 잃어야만 했다.

그로부터 이틀이 지났다. 처음엔 갑작스런 이방인의 방문을 경계하던 동굴의 작은 동물들이 이제는 테이오드를 향한 경계심을 풀어버렸다. 하루 종일 시체처럼 누워있고, 별다른 해를 끼치지 않아서였다. 동물들은 마치 새로운 바위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듯이 소년의 몸을 거리낌 없이 지나다니기 시작했다.

그런데 작은 쥐 한 마리가 테이오드의 몸을 밝고 지나갈 때, 갑자기 테이오드의 손이 쥐를 붙잡았다.

소년의 손은 점점 자신의 입을 향해 움직였고, 마침내 입가에 다다르자 테이오드는 산채로 쥐를 뜯어 먹기 시작했다.



“찌찍···! 찌지······.”



테이오드에게 산채로 우걱우걱 뜯기던 동굴 쥐는 고통에 몸부림 쳤지만 소년의 마수에서 살아남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이러한 테이오드느의 행동이 모두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마치 몽유병처럼 육체가 무의식적으로 한 행동이었다.

그 뒤로도 작은 동물들이 테이오드의 몸을 지나갈 때마다, 테이오드의 손이 동물들을 낚아챘다. 쥐나 박쥐는 물론이고, 곤충이나 벌레도 가리지 않고 먹었다. 걔중에는 독성이 있는 것도 있었지만 테이오드의 몸엔 아무런 이상도 주지 못했다.

그렇게 동물들을 먹기 시작하자 테이오드의 몸이 더욱 빨리 회복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소년의 몸에 일어나기 시작한 기이한 변화도 탄력을 받아 더욱 빠르게 소년의 몸을 변화시키고 있었다.

의식을 잃은 지 정확히 보름이 되었을 때, 테이오드의 상처는 대부분 나아있었고, 육체는 이전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만큼 괴이해져 있었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근육이 부풀어 오르고, 전신의 피부가 붉은색으로 변한 대다 이마 뿔까지 돋아난 그 모습은 평범한 사람의 시각엔 괴물과 다름없었다.

그런데 그 때, 갑자기 동굴 깊숙한 곳에서 수십의 인영이 나타났다. 횃불로 동굴을 밝히며 테이오드에게 다가온 인영의 주인들은 놀랍게도 변화한 테이오드처럼 생긴 괴인들이었다.

구불어진 외날검을 허리에 차고, 가죽옷을 입고 있는 뿔 달린 붉은 괴인들. 그 괴인들은 저들끼리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더니 소년을 데리고 어디론가 이동하기 시작했다.







유난히도 춥고 눈이 많이 내렸던 겨울이 끝나고 봄이 왔다. 이른 봄인지라 날씨는 여전히 쌀쌀했지만 그래도 새싹이 솟아날 만큼은 따스해져 있었다.

제 2마경대의 소속 병사들은 봄을 환영했다. 겨울 동안 지겹게 쳐들어왔던 마물들의 공격이 현저히 줄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이 계절이 되면 부대에서 축제를 열고 상단들을 부른다.

어느 부대에나 군대와 함께 주둔하는 전쟁상인들이 있다. 하지만 마경주둔부대의 경우 병사들이 월급을 받지 않고 복무하기에 소비자의 구매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전쟁상인들이 전무하다.

그렇기에 겨울이 끝나는 봄에 마물주둔부대는 막대한 돈을 써서 상단을 불러들인다. 물론 병사들에겐 용돈이란 이름의 포상금을 지급해주고 말이다.

단순히 물건을 사고 파는 상인들부터 광대와 극단과 같은 유흥을 파는 상인들, 그리고 성을 파는 매춘부들까지 마물주둔부대로 들어오면 칙칙한 부대에 활기가 생긴다. 병사들은 부대에서 지급 받은 용돈으로 이 기간을 미친 듯이 즐긴다. 만약 이런 식으로 축제를 열지 않는다면 불만으로 가득 찬 군인들은 필시 폭동을 일으킬 것이다.

축제가 벌어진 어느 날 밤. 축제 때마다 늘 그러하듯이 제 2마경대의 군인들은 떠돌이 극단의 연극과 광대들의 재주를 보며 낄낄 거렸고, 음유시인들의 노래를 들으며 맥주를 마셨다. 그리고 야심한 시간이 되면 창녀들을 찾아가 위안을 받았다.

모두가 환호하고 즐기는 그 때에도 베론은 축제를 즐기지 못하고 홀로 자신의 방에서 청승을 떨고 있었다. 여전히 테이오드에 대한 걱정으로 잠을 설치는 베론은 독한 위스키를 마시며 고독에 잠겨 있다. 무성하게 자라난 수염과 수척해진 얼굴이 지금까지 그가 얼마나 마음고생 이 심했는지를 보여준다.

한 잔, 두 잔 술을 마실 다 어느덧 얼큰히 취해 버린 베론이 집 밖으로 나섰다. 베론은 축제가 한창인 요새의 중앙으로 나아갔다. 요새의 중심에는 커다란 모닥불을 중심으로 수많은 군인들이 한 데 어울려 술판을 벌이고 있다.

베론이 나타나자 술판을 벌이던 이들 중 테이오드 소대의 병사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거수경례를 했다.



“충성!”



술에 취해 혀가 꼬부라진 이나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이도 있었지만 최대한 각을 잡고 절도 있게 경례한다. 그 모습을 보며 다른 소대의 병사들과 간부들이 감탄했다. 그만큼 베론이 자기 소대의 병사들이 존경받는 다는 증거였으니까.

베론이 고개를 끄덕이자, 경례를 한 병사들이 손을 내렸다. 하지만 그들은 베론이 사라질 때까지 군기 잡힌 모습을 풀지 않았다.

으슥한 곳에 위치한 천막 안으로 들어섰다. 창녀들이 거주하는 곳이었다.



“어서오십쇼! 손님, 혹시 찾으시는 아가씨가 있습니까?”



험상궂은 외모의 사내가 베론을 맞이했다.



“레나를 만나러 왔소. 그녀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주시오.”

“레나···? 그런 아가씨는 없는데······.”



베론의 말에 곰곰이 생각에 잠긴 사내가 화들짝 놀라며 말을 이었다.



“혹시··· 보스를 찾으시는 겁니까?”

“그렇소.”

“실례지만 어떤 사이이신지?”

“그냥 지인이오. 레나에게 에이런이 왔다는 말씀만 전해주시오.”

“흠, 잠시만 여기 기다리십쇼.”



사내는 미심쩍은 눈으로 베론을 살펴 본 후, 레나를 찾아 갔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제가 지인을 몰라보고··· 얼른 따라 오십시오.”



잠시 후, 한쪽 눈이 시퍼렇게 멍든 채로 돌아온 사내가 극진한 예의를 갖춰 베론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병사와 창녀들의 정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붉은 색 천막들 사이를 누비며 마침내 도착한 곳엔 호화스러운 마차 한 대가 있었다.



“그럼··· 저는 이만······.”



사내가 사라지자, 베론이 마차의 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혹시 에이런이야?”



마차 안에서 들려오는 농염한 목소리에 베론이 대답했다.



“오랜만이야 레나.”



베론이 대답하자마자 마차의 문이 벌컥 열렸다.



“에이런!!”



타이트하고 귀티 나는 드레스를 입은 미녀가 나타나 소리쳤다. 그녀를 보며 베론이 싱긋 미소를 짓자, 여인은 마차에서 그대로 뛰어내리며 베론에게 안겼다.



“보고 싶었어! 자기는 나 안 보고 싶었어?”

“흠흠. 일단 안에 들어가서 얘기하자.”



베론이 얼굴을 붉히며 말하자, 레나는 배시시 웃으며 베론과 함께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외양만큼이나 화려하게 꾸며진 마차 안으로 들어선 두 남녀. 두 남녀는 팔짝을 끼고 자리에 앉았다. 레나가 담배를 입에 물며 말했다.



“당신도 한 대 필래?”

“괜찮아. 내껄 필게.”

“여전히 당신은 그 담배만 피는구나.”



그렇게 말하며 레나는 베론의 담배에 불을 붙여 주었다. 레나의 손에 쥐어진 부싯돌을 향해 베론의 시선이 내려갔다. 그러자 본의 아니게 레나의 풍만한 가슴골이 눈에 보였다. 길이가 짧은 드레스를 입고 매끈한 다리를 꼬고 앉은 그녀는 베론의 심장박동을 빠르게 만들었다.



“크흠. 레나, 내가 부탁한 것은 어떻게 됐어?”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헛기침을 하며 베론이 말했다.



“에이, 재미없게. 시작부터 본론이야? 이럴 땐, 못 본 사이에 예뻐졌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등등 뭐 좀 다른 걸 물어봐야지.”

“미, 미안.”



레나의 말에 베론이 당황했다.



“됐어. 자기가 그런 남자란 걸 알면서도 좋아하는 내 잘못이니까.”



그렇게 말하며 레나가 다리를 반대쪽으로 꼬았다. 그 과정을 보며 베론은 원치 않게 레나가 속옷을 입지 않았단 것을 알 게 되었다.



“여튼 자기 부탁대로 테이오드란 소년의 행방을 찾아봤어. 전국을 뒤졌지만 성과는 없더라. 아마 크림슨 산맥으로 들어간 것 같아.”

“후··· 혹시나 했건만······.”



레나의 말에 눈앞이 깜깜해지는 듯 했다.



“혹시··· 크림스 산맥 안도 조사할 수 있어?”

“아무리 내가 다렌 최고의 정보길드를 가지고 있다지만 마경지역에 요원을 보내는 건 무리야. 마경지역의 정보 따윈 조사해봤자 수지타산에 맞지 않는다구!”



레나의 말에 베론이 고개를 떨군다. 그녀의 말처럼 조사가 힘든 마경지역의 정보를 원하는 고객은 없었기에 마경 지역을 조사해달란 것은 지극히 무리한 부탁이었다.



“뭐··· 그래도 자기를 위해서 특별히 최고의 요원들을 산맥 안으로 보내긴 했어. 그러니 나에게 감사하라구.”

“정말?!”



감격한 베론이 레나를 끌어안았다.



“고마워 레나. 이 은혜는 꼭 갚을게!”



베론이 자신을 끌어안자 레나의 얼굴에 홍조가 뛰었다. 사춘기 소녀처럼 얼굴을 붉히며 레나는 베론의 등을 토닥였다.



“너무 걱정 마. 내가 반드시 우리 에이런의 조카를 찾아줄게.”



베론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레나가 그를 안심 시켜주었다.

사실 레나는 속으로 베론의 조카인 테이오드가 크림슨 산맥에 들어간 이상 살아남을 리 없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저 겉보기완 달리 속이 여린 남자를 위해서 거짓 된 위로라도 해주고 싶었다. 물론 크림슨 산맥에 요원들을 보내긴 했지만, 별 기대는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자기······.”

“응?”

“아무리 우리 사이라도 나를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으면··· 출장비라도 내야지?”

“출장비라니? 그냥 오랜만에 여행하고 싶어서 여기에 온 거 아니었어?”



그의 말에 레나가 한숨을 쉬었다. 평소엔 머리가 기가 막히게 잘 돌아가는 사람이 이런 쪽으론 너무 둔하고 눈치가 없었다.



‘하아··· 이게 다 이런 미련탱이에게 푹 빠진 내 잘못이지 뭐.’



그녀가 말했다.



“어쨌든 난 반드시 출장비를 받을 거야. 자기가 수도를 떠난 이후 외로웠단 말이야!”



말을 마치는 것과 동시에 레나의 입술이 베론의 입술을 덮쳤다. 그리고 힘을 주어 베론을 뒤로 넘어뜨리려 했고, 베론은 못이기는 척 힘을 빼고 뒤로 넘어가 주었다.



‘오랜만에 하려니까 옛 생각이 나네.’



레나는 20년 전,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막 다레니움에 온 시골 청년 에이런과 다레니움 최고급 매춘부였던 자신. 두 남녀의 풋풋했던 만남을 떠올리니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잠시후 2마경대의 하늘에서 폭죽이 터진다. 밤하늘을 수놓는 아름다운 불꽃들의 뜨거운 열기. 그 열기만큼 뜨거운 공기가 마차 안을 가득 채워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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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Chapter9. 하산 17.02.18 683 7 15쪽
24 Chapter8. 개전 17.02.17 692 9 8쪽
23 Chapter8. 개전 17.02.15 699 9 13쪽
22 Chapter8. 개전 17.02.14 688 12 14쪽
21 Chapter8. 개전 17.02.13 891 1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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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Chapter7. 야수 17.02.12 688 10 13쪽
18 Chapter6. 거인 토벌전 17.02.10 756 10 14쪽
17 Chapter6. 거인 토벌전 17.02.09 766 9 15쪽
16 Chapter6. 거인 토벌전 17.02.07 880 9 11쪽
15 Chapter5. 전사 17.02.06 958 11 15쪽
14 Chapter5. 전사 17.02.05 1,018 10 15쪽
13 Chapter4. 오니 17.02.05 957 11 21쪽
12 Chapter4. 오니 17.02.04 957 8 13쪽
11 Chapter4. 오니 17.02.03 1,065 11 14쪽
» Chapter3. 절체절명 17.02.02 1,112 13 20쪽
9 Chapter3. 절체절명 17.02.01 1,369 12 15쪽
8 Chapter3. 절체절명 17.01.31 1,146 14 15쪽
7 Chapter2. 겨울 17.01.30 1,187 12 15쪽
6 Chapter2. 겨울 +2 17.01.29 1,271 17 13쪽
5 Chapter2. 겨울 17.01.28 1,425 16 18쪽
4 Chapter1. 베론 상사 17.01.27 1,571 12 17쪽
3 Chapter1. 베론 상사 +1 17.01.26 1,770 18 14쪽
2 Chapter1. 베론 상사 17.01.25 2,287 21 15쪽
1 Prologue. 소년의 선택 +2 17.01.25 2,760 23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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