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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이 의 서재입니다.

실직한 마왕성 문지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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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이
작품등록일 :
2022.10.26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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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4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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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5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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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167화 사막 그리고 도시

DUMMY

167화 <사막 그리고 도시>



마두크의 도시 쿠사릭쿠 안쪽.

밤하늘 아래의 도시는 잠들어 있었다.

하얀 건물과 모래가 가득한 메마른 거리를 지나면 그들이 있었다.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손님을 받는 카페가 있었다.


“여기. 커피 한잔 만 더 주렴~”


아직 잠들지 않은 사람들이 등에 불을 밝혔다.

무뚝뚝하기 짝이 없는 인상의 바리스타가 커피를 만들고 있었다.

늦은 시간의 카페에는 주인 외에도 네 사람이 더 있었다.


“아, 짜증 나. 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해?”


한 테이블에 앉은 여인이 말했다.

금발과 녹색 눈을 가진 아쿠아였다.

아쿠아는 내용물이 빈 커피잔을 뒤집었다. 달콤한 맛에 중독되어 벌써 다섯 번째 커피를 비웠다.

그러나 아무리 새로운 것이 좋아도 계속 경험하면 질리는 법.

맛 좋은 커피를 음미하는 일도 지쳤다.

지루한 시간을 못 견디겠다는 듯이 테이블 위에 엎드렸다.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지, 별수 있니~ 그러게 왜 함께 가겠다고 고집을 부려~”


엎드린 아쿠아와 핀잔주는 게르드.

그들 옆에 뚱한 표정인 라나도 함께 있었다.

라나의 표정은 뚱하다 못해 입이 댓 발 나왔다. 원인은 질투였다.


“어머. 브레드가 너를 버리고 간 게 그렇게 질투 나니? 하긴. 질투야말로 사랑의 특권이니까~ 아주 풋풋해서 보기 좋다, 야~”


게르드가 라나의 뚱한 표정을 지적하였다.

그러자 라나는 희뜩 눈을 뒤집었다.


“아니거든요? 화 안 났거든요? 절대로 릴리트 언니에게 져서 분한 거 아니거든요?”


놀리자마자 격한 반응을 보인다.

흥분해서 숨소리를 씩씩거린다. 입술과 눈가가 파르르 떨린다.

본인은 아니라고 부정하지만, 어지간히 브레드의 연인 역할을 못 해서 분한 모습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릴리트, 릴리트.’ 이름을 부르며. 초조하게 손톱을 물어뜯을 리가 없었다.


“아저씨가 잡아먹혀··· 차라리 내가 따라갔어야 했는데···!”


대체 무슨 상상을 한 건지 불안한 목소리를 숨기지 않았다.

진심으로 릴리트 대신에 자신이 가야 했다고 하소연하는 말에, 아쿠아는 살짝 고개 들었다.


“솔직히 릴리트가 가는 게 맞잖아.”

“뭐? 성녀 언니, 언니도 내가 릴리트에게 외모로 밀린다고 생각하는 거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너, 릴리트보다 강해?”


라나는 입을 다물었다.

아쿠아의 직설적인 물음에 반박할 말이 없었다.

선행 조의 조건은 놀랄만한 외모와 실력이다.

실력으로도 외모로도 가장 뛰어난 릴리트가 일 순위로 후보에 올랐다.

만만해 보이지만 만만치 않다는 점에서 캣니스도 뽑혔다.

릴리트를 통제하려면 브레드가 필요하기에 동행했다.

가더와 함께 가지 않은 이유가 여기서 비롯됐다.

입장 정원은 세 명. 릴리트의 폭주를 막기 위해서는 브레드의 설득이 반드시 있어야 했다.


“하아. 나도 알아. 내가 가기에는 부족하다는 건···.”


라나는 모든 사실을 인정하면서 한숨 쉬었다.

브레드와 같이 못 간 일이 못내 아쉽다. 그래도 마음 한편으로 결과에 승복하고 하는 아쉬운 소리였다.

릴리트와 브레드는커녕 가장 어린 캣니스와의 승부에서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으니까.

외모로도 실력으로도 릴리트가 가는 게 맞았다. 캣니스에게 밀린 일도 이해하긴 하였다.


“그런데 성녀 언니. 용사 그 아이가 혼자가 되어도 괜찮은 거야?”


문득 소식 없는 통신석을 바라보며 선행 조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그들이 도시를 떠난 이후로 통신석의 위치가 둘로 갈라졌다.

문제는 브레드와 캣니스가 통신석을 나눠 가졌다는 점이다.

릴리트가 브레드를 두고 갈 리 없으니, 사실상 캣니스 혼자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아우. 시끄러워. 머리가 울리니까 그만 좀 말해.”


하지만 아쿠아는 그런 걱정이 없어 보였다.

밤을 새워서 기운 없는 본인만 걱정했다.


“이 언니 좀 봐? 언니는 걱정도 안 돼? 캣니스가 혼자 다니고 있잖아. 무슨 일 생긴 거 아니야?”

“다 생각이 있으니 떨어졌겠지. 괜히 별것도 아닌 일로 기력 쓰지 마.”

“아니. 이게 별거 아닌 일이야? 나는 당연히 해야 할 걱정을···!”

“쉿. 캣니스짱도 다 생각이 있을 거야~ 믿고 기다려 보자고~ 라나짱.”


찡긋.


게르드가 라나를 진정시키며 윙크했다.

그가 뽑히지 않은 이유에는 얕볼 수 없는 외모가 한몫한 게 분명했다,


“성녀 언니. 게르드 아저씨. 두 사람 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내 말은 용사가 혼자서 무슨 일이 생겨도 괜찮냐는 물음이었어. 걔, 저번에도 발작해서 큰일이었잖아. 각혈한 모습도 봤다고.”


라나는 전하고자 했던 말을 다시 전했다.

캣니스가 혼자가 되는 건 문제 되지 않는다. 하지만 현재 몸 상태를 고려하면 문제가 된다.

모순 같지만. 그만큼 의외성이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그 몸 상태로 십강인 사무엘을 이겼으니 괜찮을 거 같기도 한데··· 아우우우! 미치겠네! 평소에 약하든지 강하든지 하나만 보여주든가!”


라나는 고민 끝에 스스로 머리를 헝클였다.

제 주제에 누굴 걱정하는지. 자각하고 하는 행동이었다.


“알아! 나도 안다고! 내가 그 아이를 걱정할 처지가 안된다는 건!”

“그런데 뭐가 문제야?”

“아니. 언니는 걱정도 안 돼? 아픈 여자애 혼자서 위험한 범죄 소굴에 들어갔는데?”

“누구를? 걔를? 내가 왜 걱정해야 해?”

“걱정해야지! 지금 애인도 여기에 있는데!”


라나의 손끝이 바리스타 앞 테이블로 향했다.

그곳에는 달콤한 간식을 나오는 대로 비우는 가더가 있었다.

가더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 돌렸다. 무슨 일이길래 또 언성 높이면서 제 이름이 나오나 눈살 찌푸렸다.

그의 관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카다이프로 만든 간식이 나오자 다시 관심 끊었다.


“아오. 저. 저. 곰탱이 같은 놈.”


제 애인이 위험한 장소에 있는데도 간식이 더 소중하다는 모습을 보여준다.

라나는 고개 저었다.

저런 걸 왜 예뻐하고 챙겨주는 건지. 도저히 캣니스의 의중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하아. 정보상 말대로라면 십이전사가 배후에 있는 거잖아. 만약 용사가 운이 나빠서 십이전사랑 만나기라도 하면 어떡하게?”


라나의 걱정은 태산이었다.

진심 어린 걱정에 눈빛이 흐려졌다.

그 모습에 아쿠아는 눈썹을 추켜세웠다.

눈썹을 추켜 올린 행동은 라나의 불안을 이해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녀의 불안을 이해 못 해서 보인 행동에 가까웠다.


“야, 너.”

“···왜 화가 났어,”

“당연히 화날 만하지. 내가 왜 너희랑 함께 있는지 좀 생각해. 알겠으면 궁상 좀 그만 떨고 통신석이나 계속 확인하고 있어.”


라나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아쿠아가 남는다는 말만큼이나 불안한 말이 없다.

성녀의 명성은 제법 쓸만하지만, 이런 위험한 일에서만큼은 아니다. 오히려 짐 덩이가 된다면 모를까.


“성녀 언니, 언니도 도움 안 되는 건 마찬가지면서···.”

“내가 왜 도움이 안 돼? 너희들 전용 치유 포션인데.”

“그건 용사도 할 수 있잖아.”

“너는··· 아니다. 나 눈 좀 붙일 테니 신호 오면 깨워줘.”


아쿠아는 논쟁을 멈추었다.

한 없이 무거워 보이는 머리를 테이블 위에 두었다.

라나는 무언가 비난받다가 멈춘 찝찝한 여운이 남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였다.


“···이 언니 봐. 이런 상황에서 잠을 잘 자네?”

“호호. 아쿠아는 언제 어디서나 잘 잔단다.”

“그 웃음소리는 또 뭐예요? 진짜 아줌마 같아요.”

“후후. 저쪽 커피 형씨의 말투를 흉내 내 봤어~”

“저 아저씨가 그렇게 웃는다고요? 아저씨만큼이나 괴상한 말투를 가졌네요.”

“어쨌거나 지금은 아쿠아가 자게 두자~ 지금까지 버틴 일도 기특하니까.”


평소에 잠이 많은 아쿠아치고 노력했다.

몸소 커피 다섯 잔을 비운 행동으로 증명해 주었다.


“···이 시간에 깨어 있는 건 사무엘과 있을 때 말고 처음이긴 하네요.”


라나는 아쿠아의 정수리를 빤히 바라보았다.

딱히 그녀의 잠든 모습을 보고 뭐라 하진 않는다. 그저 저런 불편한 자세로 잘도 자는구나, 생각했다.

웬만큼 험한 잠자리를 다 겪어본 모험가의 눈으로도 불편한 자세로 자고 있었다.


“라나짱. 수정구가 빛나고 있는데?”


금방 아쿠아의 잠을 깨울 시간이 다가왔다.

아쿠아가 엎드린 지 십 분도 안 된 시간이었다.


“언니, 일어나. 아저씨에게서 신호 왔어.”


라나가 통신석을 흔들며 말했다.

줄곧 손에 쥐던 통신석에서 빛이 났다.

통신석에서 별다른 대화가 없어도 붉은빛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우으으. 십 분도 못 잤는데···.”


아쿠아는 불평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일어났다.

졸린 눈을 억지로 부릅떴다. 눈에 실핏줄이 드러난 채 삐걱삐걱 움직였다.


“가자. 가더짱~”


게르드가 나갈 준비하고 가더를 불렀다.

다들 무장한 채로 카페를 나갔다.

곧장 거리로 나와서 방향을 확인했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길. 달이 지는 방향이었다.

지체할 시간이 없기에 토굴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굳이 나눠서 들어갔어야 해?”

“한꺼번에 들어갔다가는 내쫓길 테니까~ 그리고 싸움에서 적의 방심을 유도하는 계략은 중요하단다~”

“어차피 깽판 치는 게 목적인데. 다 같이 들어가도 되지 않아요?”

“어머. 라나짱은 무서운 생각 하네~ 아무렇지 않게 주민이고 손님이고 전부 몰살하겠다고 말하는구나?”

“아니. 그걸 왜 또 그렇게 받아들여요?”

“실제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러지~ 라나짱, 작전은 기억하지?”

“당연하지! 날 뭐로 보는 거예요?”


그들의 작전은 단순했다.

먼저 세 사람이 암시장에 들어간다.

그 후에 추가 인력이 들어간다.

선행 조가 경매장이 열리기 전에 고모리를 구조하면 데리고 나온다. 그렇지 못할 경우, 후발 조가 합류하여 움직인다.

이 모든 게 정보상이 해준 경고를 들을 생각이 없는 데서 비롯되었다.

정보상에게서 귀담아들은 정보는 한 가지뿐이었다.

다 함께 들어가는 게 불가능하다는 이야기. 그거 하나만 기억했다.


“다들 속 편하지. 십이전사가 만만한 줄 아는 거냐고···.”

“만만하진 않겠지. 하지만 라나짱, 우리도 만만치 않단다?”


십이전사와 암시장의 밀접한 관계에 대해서도 듣긴 들었지만 중요치 않았다.

그 이야기를 진심으로 신경 쓰는 이는 라나 혼자였다.


“그래서~ 우리는 어디로 가면 되니?”

“신호가 저쪽에서 오고 있어. 다음 골목으로 들어가자.”

“답변 고마워, 라나짱~ 아무래도 저 사람들이 가는 방향인가 본데~”


순식간에 경비병을 쓰러뜨리고 토굴 안으로 들어갔다.

토굴을 지나고 드러난 지하 도시에 입장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암시장이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사람들의 인식 아래에 긴장감이 고조되어 있었다.


“저 사람들 바쁘게 어디로 가는데?”


라나가 손 끝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많은 사람이 험악한 얼굴로 어딘가로 달려간다.

정확한 규모는 파악 못 하지만 대충 봐도 제법 수가 되었다.


“자. 그러면 우리도 따라가 볼까?”


게르드는 험악한 얼굴들을 쫓아갔다.

미스릴 모험가답게 하수처럼 뭣 모르고 따라가는 실책은 벌이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험악한 얼굴의 남성 1’을 납치했다. 당황한 얼굴에 아랑곳하지 않고 골목 안쪽으로 끌고 갔다.

상대의 전력도 줄일 겸, 정보도 얻을 겸, 안내도 받을 겸. 열심히 도움을 청했다.

달리 말하자면 두들겨 팼다.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함께 거리로 나왔다.

골목 밖으로 나왔을 때 끌려간 사람의 인상이 달라졌다.

언제 험악한 얼굴이었냐는 듯 순한 눈이 되었다.


“히헤헤. 어디로 모실까요?”

“입 냄새나니까 닥치고 앞 보고 걸어.”

“네! 왈! 왈!”


순한 눈의 남성은 아쿠아가 정색하자마자 즉각 복종했다.

사람이든 들짐승이든 매가 약이라는 말이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다 비켜, 왈! 왈! 왈! 왈!”


하지만 아무리 교육받았다곤 해도 태도 변화가 극적인 것도 사실이다.

심지어 상당히 안 좋은 방향으로 극적이다.

말 잘 드는 안내원 하나 만들려고 팼더니, 웬 검은 머리 짐승 한 마리가 주인 믿고 까분다.

길 안내는 잘하는데 주둥이가 말썽이다.

찡긋, 나 잘했죠? 윙크하니. 진심으로 저걸 더 패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얘들은 진짜로 두들겨 패기만 하면 뭐든 다 해주는구나···.”


라나는 고개 저으며 안타까운 말을 했다.

일행들 모두 같은 생각이었다.

처음으로 마두크의 관습을 가엾게 여겼다.

마두크 사람은 약자가 강자에게 간이고 쓸개고 빼줄 듯이 행동한다.

본인이 속한 조직의 뒤통수치는 일인데도 망설임이 없다. 오로지 제 살길만 도모하는 안내원을 바라보며 내심 감탄하였다.

이는 불편 속에서 피어난 감탄이다.

험한 나라에서 태어난다면 이 정도는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약자 도태인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이렇게나 뻔뻔해져야 하리라.

그들의 혹독한 삶의 방식을 인정하였다.


“라나짱, 수정구 위치는?”

“브레드 아저씨만 보여요. 우리가 가는 방향이랑 같은 방향이야.”

“그러면 쟤들을 따라서 가는 게 맞는 모양이네~”


성녀 일행은 수정구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달렸다.



*****



“어휴. 얘들이 왜 이렇게 안 와?”


땅굴 밑 지하 도시.

지하 도시에서 가장 높은 건물.

음습한 지하와 안 어울리게 건물 내부는 으리으리했다.

수십 개의 마력석으로 건물 내부는 밝았다.

고급 비단으로 짜인 카펫과 커튼이 빛난다.

선반 위에 놓인 찻잔과 찻주전자는 일류 장인의 고급 도자기다.

벽에 걸린 그림도 그러했다. 관상용 무기도 전부 고급품이다.

지상의 건물이었다면 어느 성공한 부자의 집인 줄 알 터였다.


“움직이지 좀 마. 흔들리잖아.”


하지만 이곳은 지하. 암시장에서 부당하게 부를 쌓은 구제 불능인 인간이 사는 거처이다.

사치스러운 공간 안에는 몇몇 사람이 있었다.

제일 눈에 띄는 사람은 릴리트였다.

릴리트는 엉덩이 밑에 사람을 두었다. 엎드려뻗친 사람 위에서 다리를 꼬고 앉았다.

내부의 사치스러움에도 뒤지지 않는 여왕님 같은 모습이었다.

어깨가 으슬으슬 추운지 손으로 문질렀다. 이러한 점만 빼면 영락없는 지하 도시의 사람으로만 보였다.


“달링~ 뭘 그렇게 보고 있어?”

“갑자기 궁금한 점이 생겨서 말이네.”


여왕님의 일행도 있었다.

브레드는 커다란 유리창 앞에 섰다.

투명한 벽 너머로 보이는 도시 전경을 바라봤다.

땅굴 속인데도 어마어마한 규모의 도시에 놀랐다.

어쩌면 이곳이 쿠사릭쿠의 본모습이 아닐까, 생각도 했다.

지상 사람은 비렁뱅이 같은 옷차림인데 지하 사람이 제대로 옷을 갖춰 입었으니. 아예 뜬금없는 감상은 아니었다.


“드워프 아니면 호빗인가.”

“그 난쟁이들은 왜? 신경 쓰이는 일이라도 있어? 달링.”

“별일 아닐세. 그저 이런 도시를 만들기 위해 얼마만큼의 시간과 인력이 투자되었을까 생각했네.”


그 사막의 백성들이 이곳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믿기지 않는 광경이다.

아무리 손재주가 좋아도 땅굴 속에 도시를 만드는 건 다른 이야기다.

그쪽 방면의 전문가에게 도움받았을 것이다. 그래서 떠올린 종족이 드워프와 호빗이다.

그들은 지하 세계의 구현을 특출나게 잘하는 종족이니까.

다만 그들이 이곳을 만들게 된 이유가 자의인지 타의인지. 구체적인 이유까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누가 만들었든지 상관없어. 아무리 꾸며봤자 땅굴은 땅굴이잖아?”

“그것도 그렇군. 확실히 하늘을 보지 못한다는 점은 안타깝네.”

“맞아맞아. 이런 곳이라면 야외에서도 할 맛이 안 난다니까~”


브레드의 대답에 얼른 화색이 되어 맞장구치는 릴리트였다.


“왔군.”


지하도시에 대한 감상은 여기까지였다.

브레드의 시선이 도시 한곳으로 향했다.

저 아래 골목에서 달려오는 사람들이 여럿. 그중에서 익숙한 모습이 몇몇 있었다.


“지금 온 거야?”

“오고 있네. 불청객이 함께 오니 맞이할 준비를 하지.”


브레드는 움직였다.

지금부터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아직 고모리의 행방을 찾지 못했고, 함께 잠입한 캣니스의 행방도 묘연하다.

금방 고모리를 구출하겠다는 계획과 다르게, 암시장에 거주하는 조직이 여럿 있었다.


“달링. 거의 다 올라왔어.”

“알겠네. 나가도록 하지.”


구출이 늦어지니 계획을 바꾼다.

미리 준비해 둔 계획에서 만약에 대비한 계획을 시행할 때가 되었다.

후위조와 만나고 경매장으로 간다.

다소 소란을 일으키더라도 경매에 나온 고모리를 데려갈 셈이었다.


“앞으로 일 분. 금방 올 거야.”


브레드와 릴리트는 문 앞에 섰다.

나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통신석을 확인했다.

여전히 또 한 명의 동료에게서 연락이 없다. 홀로 불특정 세력의 깊은 곳까지 파고들고 연락이 끊겼다.

마지막으로 헤어질 때의 모습을 떠올리면 불안감도 있었다.

부디 그녀가 무사히 만나기를 믿었다.


“머슬 레볼루션.”


브레드는 문 하나를 두고 몸집을 키웠다.

이내 쾅. 철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저 새끼다, 조···!”


쾅!


철문이 열리는 소리보다 더 큰 소리가 났다.


브레드는 기세등등하게 들어온 남성의 얼굴에 주먹 날렸다.

남성은 얼굴보다 더 큰 주먹에 맞고 날아갔다.

나가떨어진 남성은 꼼짝없이 바닥에 부딪힐 줄 알았는데. 의외로 푹신한 감촉을 느꼈다.


“어머~ 미남 발견~”

“기다리고 있었네, 게르드여.”


기세 좋게 달려들었다가 멈춰 선 사람들.

앞뒤로 상당한 덩치 둘이 서 있었다.

어디로도 도망 못 가게 길이 막혔다. 궁지에 몰린 건 쥐새끼들이 아니라 자신들이었다.

슬슬 상황 파악을 다시 했다.


“힉! 히익! 어떻게 당신이 여기에?!”


사람들의 경계하는 시간이 이어질 즈음이었다.

한 남성이 게르드를 보고 소리쳤다.

남성의 얼굴에는 의문과 공포가 떠올라 있었다.

이는 일전에 게르드 혹은 게르드와 닮은 인물을 봤기에 보일 수 있는 행동이다.


“아무래도 대어를 낚은 거 같군.”

“그럼그럼. 우리 귀염둥이랑 할 이야기가 많겠는걸~”


그런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브레드와 게르드가 미소 지었다.


“시간이 없으니 어서 움직이도록 하지.”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이 먼저 움직였다.

제일 중요한 정보원. 게르드의 얼굴을 알아본 남성부터 기절시켰다.


“으, 으아아악! 맞서 싸워! 맞서 싸우라고!”


순식간에 기세등등하던 사람들의 기세가 꺾였다. 고집과 악에 받쳐 소리를 질러댔다.

인원수가 유리한데도 종잇장처럼 날아다녔다.

필사적으로 반항하는데. 얼굴에 담긴 공포가 긍정적으로 해소되는 일은 없었다.


“뭐야? 그냥 쟤들 선에서 해결되잖아?”

“그러게. 릴리트 언니 말고 내가 왔어도 됐겠다.”


아쿠아와 라나가 가혹한 평가를 말했다.

일행들은 생각보다 별 볼 일 없는 사막 전사들에게 실망한 얼굴이 되었다.

금 등급 모험가 1위와 미스릴 모험가 23위의 무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순식간에 현장을 정리하였다.


“야. 대머리. 캣니스는 어디에 있어?”


가더가 싸움이 끝나고 끼어들었다.

브레드와 함께 들어간 캣니스가 어디에 있는지를 물었다.

물음에 대한 답변은 아직도 잠잠한 통신석을 꺼내어서 대신하였다.


“안타깝게도 아직 연락이 없네.”

“뭐야? 또 찾아야 해?”

“최악의 상황에는 그래야지~ 하지만 걱정하지 말렴. 이번에는 자발적으로 움직였고, 또 우리가 귀여운 안내인을 주웠잖니~”

“은근슬쩍 달라붙지 마. 죽여버린다?”

“어머. 무서워라. 만약 캣니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혼자 가지 말고 알려줘야 한다? 가더짱~”


게르드가 불만 가득한 가더를 진정시켰다.

만약 캣니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가더가 누구보다 빨리 알아채는 걸 알고 도움도 구했다.


“자. 그러면 예쁜 남자를 깨워 볼까?”


게르드는 기절시킨 남성을 바닥에 눕혔다.

죽은 건 아닌지 확인하고 가볍게 뺨 위에 손 올렸다.


“얘, 얘. 일어나렴.”


짜악-


상냥한 말과 다르게 살벌한 따귀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남성의 눈꺼풀이 발작하듯 떨렸다.

게르드는 남성의 얼굴이 부르르 떨리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여전히 일어나지 않자 한 번 더 때리려고 손을 들었다.


“으아아아악! 어, 어머니?!”


남성은 상체를 벌떡 일으키며 소리쳤다.

주변을 휙휙, 고개 돌리며 둘러보았다.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는지, 제정신을 못 차린 눈빛이 멍한 상태였다.


“이 자는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자 아닌가?”

“아니야, 아저씨. 저건 그냥 멍청이인 거야.”

“어머니는 무슨~ 너를 잡으러 온 저승사자란다~”


게르드가 주저하지 않고 뺨을 때렸다.

정신이 번쩍 든 남성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기에게 묻고 싶은 게 아주 많단다~”


게르드가 험상궂은 얼굴을 가까이하여 묻는다.

남성은 어쩌면 정신을 못 차리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바지를 적시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벌벌 떨었다.

여기까지 오는 길목에서 만나 먼저 순해진 남성은, 일련의 사태를 안타까워하며 눈물 흘렸다.


“자기. 나와 같은 얼굴을 본 적 있지?”


뺨 맞은 남성은 거의 울상이 되었다.

살려달라는 말도 제대로 못 뱉고. ‘살. 살.’ 첫음절만 반복했다.


“자기가 알고 있는 정보를 전부 말해줘야겠어~”


게르드는 팔의 소매를 걷었다.

강한 악력으로 어깨를 붙잡았다.

여전히 괴상한 말투에 비해서 사자 같은 얼굴이다.

남성은 과장된 움직임으로 땅에 이마를 박았다.




제 작품이 마음에 들었다면 추천과 좋아요 잊지마세요-!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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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직한 마왕성 문지기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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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 176화 사막 그리고 도시 NEW 17시간 전 2 0 17쪽
208 175화 사막 그리고 도시- 외전 칸나 24.06.22 5 0 19쪽
207 174화 사막 그리고 도시- 외전 칸나 24.06.12 6 0 22쪽
206 173화 사막 그리고 도시 24.06.11 6 0 16쪽
205 172화 사막 그리고 도시 24.06.10 6 0 24쪽
204 171화 사막 그리고 도시 24.06.06 6 0 10쪽
203 170화 사막 그리고 도시 24.06.04 6 0 18쪽
202 169화 사막 그리고 도시 24.06.01 8 0 22쪽
201 168화 사막 그리고 도시 24.05.29 8 0 19쪽
» 167화 사막 그리고 도시 24.05.25 8 0 21쪽
199 166화 사막 그리고 지하 24.05.20 9 0 16쪽
198 165화 사막 그리고 지하 24.05.18 7 0 15쪽
197 164화 사막 그리고 지하 24.05.15 7 0 13쪽
196 163화 사막 그리고 지하 24.05.13 8 0 13쪽
195 162화 사막 그리고 지하 24.05.13 5 0 15쪽
194 161화 사막 그리고 지하 24.05.08 6 0 9쪽
193 160화 사막 그리고 지하 24.05.06 11 0 16쪽
192 159화 전사의 나라 24.05.04 8 0 18쪽
191 158화 전사의 나라 24.05.01 9 0 14쪽
190 157화 전사의 나라 24.04.29 8 0 15쪽
189 156화 전사의 나라 24.04.27 11 0 15쪽
188 155화 전사의 나라 24.04.24 7 0 15쪽
187 154화 전사의 나라 24.04.22 6 0 12쪽
186 153화 변하지 않는 24.04.19 7 0 25쪽
185 152화 변하지 않는 24.04.15 6 0 13쪽
184 151화 사막의 나라 24.04.13 7 0 15쪽
183 150화 사막의 나라 24.04.10 7 0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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