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가리동 님의 서재입니다.

방어력에 올인했더니 반사딜로 다 죽음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가리동
작품등록일 :
2021.09.03 11:42
최근연재일 :
2021.09.23 07:20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204,966
추천수 :
3,725
글자수 :
109,812

작성
21.09.19 07:20
조회
5,806
추천
120
글자
11쪽

운수 좋은 날 (3)

DUMMY

······곳곳에 혈흔이 낭자하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전투에, 소우진을 비롯한 공략대는 궤멸 위기에 처했다.


사상자의 수는 가면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고, 이제 남은 생존자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허억, 헉.”


온몸의 근육들이 비명을 질러댄다.

뼈마디는 연신 삐그덕댔으며, 폐에 물이 가득찬 것처럼 숨쉬기가 벅찼다.


파악!


이제 마지막 개미의 머리통에 검을 내리꽂은 소우진은, 피로한 안색으로 남은 인원을 셋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본인을 포함한 여섯 명만이 최후의 생존자.


“······.”


기나긴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음에도,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입 하나 뻥끗하지 않았다.


이제 곧바로 다음 개미떼들이 몰려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아. 모, 모두··· 전투 준비······.”


불굴이라고 불리던 평화 길드의 기사는 이제 없다. 피곤에 찌든 채로 죽음을 기다리는 망령만이 이곳에 존재할 뿐.


“으··· 으아아아아!”


물밀듯이 몰려오는 개미들을 맞이하며. 몇 만 번째인지 모를 칼부림을 다시 시작한다.


······.


한편, 공략대에서 몰래 빠져나온 금운수는 좁은 길목을 혼자 거닐고 있었다.


-끼이이이이이!


그를 앞뒤로 둘러싼 개미떼가 우글우글하다.

허나 위협적인 울음소리만 낼 뿐, 머뭇거리며 차마 공격은 하지 못한다.


휘익, 탁!


금운수는 손에 쥐고 있던 ‘알’을 살짝 위로 던졌다가 받기를 반복했다.


“거 참 신기하네. 뭔가 반짝이는 게 있어서 주웠더니 이것들이 공격을 안 하네?”


기분 좋은 듯 휘파람을 불며 앞으로 걷자, 모세의 기적처럼 개미들이 알아서 길을 터준다.


어디로 가는지는 본인조차도 모른다.

그저 발길이 닿는 대로 걸어갈 뿐이었다. 무슨 짓을 해도 늘 최고의 결과가 따라왔으니까.


쿠웅, 쿵.


-샤아아아아──.


비록 눈앞에 집채만한 거대 개미가 길을 가로막는다 하더라도.


금운수는 거대 개미를 보고 능청스럽게 웃었다.


“엄마?”



***



개미굴은 생각보다 넓었다.

아니, 생각보다 넓은 게 아니라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넓었다.


정말···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다.

벌써 게이트에 들어온지 하루는 지난 것 같은데, 보이는 거라곤 시체 더미와 천장에 달라붙은 개미알밖에 안 보인다.


더 큰 문제는, 이제 슬슬 개미의 시체뿐만이 아닌 인간의 시체도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


아직은 그렇게 많이 보이진 않지만, 같은 길드원의 시체가 나온 것만으로도 사기가 크게 저하되었다.


개미굴에 적응해 가끔 이야기꽃을 피웠던 자들도 이제는 입을 다물었다.


“잠깐 지도 좀 볼 수 있을까요?”


나는 게이트의 지도를 그리는 담당관의 양해를 구했다.


“······.”


‘미친 개미학살자’라는 별명 탓인지, 그가 말없이 테블릿을 건넨다.


건네 받은 테블릿에는 지나온 길들이 3D 그래픽 로드뷰 방식으로 구현되어 있었다.

나는 화면을 손가락으로 튕겨가며 게이트의 구조를 파악했다.


······보통 이런 미궁과도 같은 게이트에는 숨겨진 통로가 존재했다.


육안으로도 쉽게 발견할 수 없는 미세한 흔적.


가령 벽에 인공적으로 갈라진 틈이라던가, 아니면 1mm의 깊이로 네모반듯하게 패인 바닥이라던가······.


물론 그 숨겨진 통로를 찾지 못한다면 게이트를 공략할 수 없다.

그래서 결국 몬스터의 전투력은 낮으면서 숫자만 넘치는, 이 요상한 게이트의 공략에 실패하는 거고.


결과적으로, 게이트 크래쉬가 일어나서 그 일대가 쑥대밭이 되는 경우도 많다.


아직은 숨겨진 통로가 있다는 사실조차 밝혀내지 못한 지금은 더더욱 그렇고.


나는 틀린그림찾기 게임을 하듯, 이상한 부분을 찾아 샅샅이 뒤졌다.


“뭐하세요? 미친 개미학살자씨?”


조현필이 친근하게 말을 걸어온다.

나는 지도에 시선을 고정한 채,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대답했다.


“아니, 뭐. 이상한 점은 없나 하고······.”

“이상한 점? 그런 건 찾아서 뭐하게? 그냥 보스몹이나 잡으면 되는 거 아니야?”


이 아저씨야, 그런 식으로 안일하게 생각하면 바로 크래쉬가 일어난다고.


“이 게이트는 평범한 게이트하고는 다르니까요. 몬스터가 이렇게 많이 출현하는 게 정상은 아니죠.”


일리가 있다는 듯, 조현필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긴 하지. 난 개미가 이렇게 많은 건 처음봤다야. 가끔씩 이런 게이트가 발생한다고는 들었는데, 거길 내가 들어오게 될 줄이야.”


새삼스러운 감탄과 함께, 연신 입을 쩍 벌리며 하품을 해댄다. 그리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단서를 툭 던진다.


“그러고 보니, 아까 뭔가 이상한 거 본 거 같기도 하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간 조현필을 겪어본 바, 중요한 단서는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


다만, 혹시나 하는 기대감.

나는 여전히 지도에서 눈을 떼지 않고, 그에게 물었다.


“이상한 거요? 뭔데요?”

“방금 전투에서··· 개미들이 나한테 막 달려드는데, 그 뒤에 있는 몇 마리가 옆으로 빠지데? 그러더니 벽에 작게 뚫려있는 구멍으로 하나씩 들어가더라고. 꼭 당구공처럼.”


당구공이라는 표현 덕에 상황이 머릿속에서 한 번에 그려진다.

포켓볼 당구대에 개미들이 퐁퐁퐁 들어가는 역겨운 장면이······.


그의 말대로 뭔가 석연치 않았다.

원래 게이트의 몬스터들은 우선적으로 침입자들을 공격하는데. 이건 그 규칙에 어긋난다.


“그게 언제였는데요?”

“아마 그게··· 저저저저번 전투였을거야.”


······저저저저번 전투면 대략 2시간 전이다. 그 뒤로 꽤나 전진했으니 돌아가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지.


그 전에 나는 지도로 저저저저번 전투가 있었던 장소를 스캔했다.


화면에 로딩이 떠오른다.

곧 100%가 채워지며 해당 장소를 다각도로 볼 수 있게끔 조정되었다.


“음······.”

“뭐가 좀 보여?”


확실히 개미가 드나들었다던 구멍이, 인위적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여타의 울퉁불퉁한 구멍이 아니라 정오각형으로 반듯하게 뚫린 구멍이었으니까.


게다가 그 위로 갈라져서 올라가는 지그재그 모양의 틈새도, 지저분하지 않고 깔끔하다.


이 정도면······ 거의 확실하다.

여타의 게이트보다 단서가 까다롭지 않았다는 게 천운이었다.


“뭘 그렇게 봐? 뭐가 좀 보이냐니까?”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 조현필이 궁금하다는 듯이 계속 묻는다.


나는 즉답 대신, 그에게 귓속말로 말했다.


“저 잠시 혼자 움직일게요.”

“응?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어쩌면 이 게이트 공략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대책 없이 공략대와 합류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을 거구요. 길드장님한테는 아저씨가 잘 전달해주세요.”

“그럼 너는 어쩌겠다는··· 야, 야!”


나는 조현필의 다급한 목소리를 뿌리치고, 왔던 길을 역으로 내달렸다.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모되지는 않았다.


몬스터들과 마주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돌진」의 활용으로, 보다 편리하게 개미들을 손쉽게 처리하면서 도착했을 뿐이지.


온몸이 놈들의 체액으로 찐득찐득한 건 어쩔 수 없지만.


나는 개미들의 체액을 떼어내며 구멍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자, 그럼 이걸 어떻게 여느냐가 관건인데···.”


정오각형 위의 꼭짓점을 기준으로 갈라지는 틈.


나는 나이프를 꺼내 그 꼭짓점에 갖다댔다. 그 상태로 틈 사이에 칼을 들어올리자,


덜컥─.


하고 무언가 걸리는 감각.

나이프가 마치 흐물거리는 슬라임이 된 느낌이다. 지그재그로 꺾이는 지점에서도 부드럽게 스치듯 올라갈 뿐이었다.


눈이 맞닿는 지점까지 칼을 들어올리고 나서야 쩌적, 하고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틈새가 확 벌어진다.


“······.”


이제 이 통로의 끝에 게이트의 공략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 예상이 맞다면 그 녀석도 저기에 있겠지.

운이 좋다 못해 불행이 비켜가는 녀석이니까.


나는 좁다랗게 이어진 통로를 걸었다.

어둠을 밝히고자 랜턴을 꺼내들어 주변부터 둘러보았다.


터벅, 터벅.


발이 온전히 돌바닥에 닿는다.

평소엔 숨을 쉬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었지만, 이 게이트에선 그렇지 않다.


개미 시체는 커녕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안 그래도 좁은 길이, 가면 갈수록 천장이 낮아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허리를 쭉 펴고 걸었다면 지금은 거의 기어서 가는 정도.


그러다가 결국 한참을 포복까지 하고 나서야 그 길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퉤, 퉤!”


입안에 들어간 먼지들을 뱉어냈다.

기어오느라 더러워진 옷을 툭툭 털어내며, 허리를 쭉 폈다.


드러난 공간은 넓은 방 한칸 정도의 크기.

나와 마주치는 벽에 기댄 누군가가 놀랍다는 듯이 탄성을 지른다.


“우와, 어떻게 여기까지 왔지? 이 방은 나밖에 못 찾을 줄 알았는데. 너도 운빨 좀 있구나?”


익숙한 목소리다.

사람을 깔보는, 경쾌함의 이면에 비웃음이 기저에 비산되어 있는······.


“잠깐, 넌···.”


금운수가 처진 눈을 부릅뜨며 날 똑바로 쳐다본다.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정답을 찾았다는 듯이 발작하며 웃는다.


“크하하하하! 오진영, 너도 과거로 돌아왔구나? 역시 나만 돌아온 게 아니었어.”

“······뭐?”


금운수가 나를 알아본다. 그와 처음으로 만나는 건 훨씬 나중의 일 일텐데?


그것보다, 과거로 돌아왔다니.


“너, 설마···.”

“마지막 재앙이 내린 날. 너도 그 때 과거로 돌아온 거 아니야? 나 그 때 거의 죽을 뻔 했었는데. 갑자기 시간이 역행을 하더라고. 꼭 테이프를 거꾸로 돌린 것처럼.”


테이프를 거꾸로 돌린 듯······.

입안에서 굴러가는 어감이 익숙하다. 내가 과거로 돌아오고 느꼈던 감각이랑 똑같잖아!


“그 덕분에 특별한 힘도 얻게 됐고. 나한텐 오히려 잘 된 일이지.”

“그건 또 무슨···.”

“뭐, 그건 네가 직접 겪어보기로 하자. 나도 이 힘을 시험해보고 싶었거든. 단단하니까 오래 버틸 수 있겠지. 넌 쳐맞는 게 일이었으니까!”


말을 끝마치자 마자, 금운수가 엄청난 속도로 나에게 쇄도한다.


뇌에서 몸으로 신호를 보내는 0.1초라는 짧은 시간.

본능적으로 판단했다.


이걸 정통으로 맞으면 위험하다.


나는 가까스로 두 팔을 올려 금운수의 공격을 막았다.


퍼엉─!


크윽. 녀석이 주먹 한 번 내질렀을 뿐인데 고통이 뼈까지 관통한다.

분명 놈에게 전투 능력은 제로일 텐데, 어째서?


“오, 그걸 막네? 작정하고 때린 거였는데. 젊어서 그런지 반응 속도가 나름 괜찮나 봐?”

“······.”

“왜 말이 없어? 너무 아파서 할 말을 잃었나?”

“······네 팔이나 보고 말 해, 이 병신아.”

“뭐라고?”


금운수가 놀란 표정으로 제 오른팔을 내려다본다.


팔이 여러 각도로 기괴하게 꺾여 있다. 통증도 없는지 허리까지 제껴가며 웃어댄다.


“크하하하! 너도 제법 쓸만한 힘을 얻었나 보네? 그럼 본격적으로 시작해보자!”


꺾인 팔이 뚜둑, 소리를 내며 꿈틀거린다.

이윽고 다시 원형으로 복구되기 시작하더니, 금세 상처가 모두 치유되어 팔을 만지작거린다.


“너, 그 힘은···.”

“익숙하지? 익숙하겠지. 네가 처음으로 맞딱뜨린 재앙의 힘이니까!”


인류에 닥친 6번째 재앙, 저오능(猪悟能).


그의 ‘급속 재생’ 능력이 금운수에게 발현되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방어력에 올인했더니 반사딜로 다 죽음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시간 - AM 7:20 21.09.09 471 0 -
공지 제목이 변경되었습니다. +1 21.09.06 7,767 0 -
22 힘(力)을 키우다 (1) +10 21.09.23 3,661 106 11쪽
21 도희원 +8 21.09.22 4,132 108 10쪽
20 운수 좋은 날 (5) +3 21.09.21 4,770 111 11쪽
19 운수 좋은 날 (4) +18 21.09.19 5,785 144 12쪽
» 운수 좋은 날 (3) +14 21.09.19 5,807 120 11쪽
17 운수 좋은 날 (2) +5 21.09.18 6,375 138 12쪽
16 운수 좋은 날 (1) +3 21.09.17 7,087 144 11쪽
15 죽음의 향기 (3) +6 21.09.16 7,620 154 11쪽
14 죽음의 향기 (2) +12 21.09.15 7,952 165 12쪽
13 죽음의 향기 (1) (수정 完) +16 21.09.14 8,679 166 11쪽
12 월척 +12 21.09.13 9,488 151 10쪽
11 대련 (2) +9 21.09.12 10,006 178 12쪽
10 대련 (1) +5 21.09.11 10,219 183 11쪽
9 제 1구역 (2) +6 21.09.10 10,666 179 11쪽
8 제 1구역 (1) +16 21.09.09 11,036 197 10쪽
7 편입 (3) +8 21.09.08 11,915 186 12쪽
6 편입 (2) +22 21.09.07 12,562 207 13쪽
5 편입 (1) +12 21.09.06 12,615 220 10쪽
4 맞아야 산다 (3) +6 21.09.05 12,943 207 12쪽
3 맞아야 산다 (2) +6 21.09.04 13,078 205 12쪽
2 맞아야 산다 (1) +9 21.09.03 13,765 225 12쪽
1 프롤로그 +11 21.09.03 14,736 231 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