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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동 님의 서재입니다.

방어력에 올인했더니 반사딜로 다 죽음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가리동
작품등록일 :
2021.09.03 11:42
최근연재일 :
2021.09.23 07:20
연재수 :
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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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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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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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812

작성
21.09.11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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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대련 (1)

DUMMY

찬 공기가 마룻바닥을 타고, 내 몸을 훑으며 지나간다.


아무리 실내라고는 해도 추위를 완전히 막아줄 수는 없나 보다.

그만큼 날씨가 추워졌다는 거겠지.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은 다목적 강당.

50여 명의 사람들이 각자 무리를 지어 수다를 떨고 있다.


“아, 오늘 겁나 춥네. 가디건이라도 입고 올걸.”

“강당에 모이라고 한 것 보니까 땀 좀 흘릴 거 같은데, 혹시 아이큐가······.”

“얌마, 그럼 그때 벗으면 되지. 꼭 딴지를 걸어요, 이 새끼는."


중앙 쪽이 시끌벅적하다.

특히나 방금 티격태격하며 떠들던 두 녀석의 낯이 익다.


전따 고등학생이었던 나를, 은따 아카데미생으로 전직시켜준 2인조.


하상훈과 하상준.

둘이 묶어서 하둥이.


그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 둘은 일란성 쌍둥이로, 언제나 붙어 다니는 문제아들이었다.


거의 모든 사건사고에 저 쌍둥이가 있을 정도면 말 다 했지.


물론 개성원에 비하면 걸음마도 못 뗀 갓난아기 수준이긴 했지만.


그런데······ 벌써부터 날 은따시키려는 조짐이 보인다.


그렇게 시끄러웠던 강당이 어느 샌가 조용해졌다.


“······.”


하둥이를 중심으로 뭉친 무리에서, 서로 귓속말로 속닥댄다. 그것도 기분 나쁜 눈으로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대충 무슨 얘기가 오가는지는 알고 있다.

아마 내가 특화형 각성자라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겠지.


사실, 생각해보면 이건 전부 다 유은혜의 작품이다.


미래의 유은혜가 고해성사하기를······.

주형범 교수에게 들었던 내용을 학생들과 수다 떨다가 무심코 말해버렸다나 뭐라나.


그렇게 나에 대한 소문이 전부 다 퍼져버렸댔지.


나뿐만이 아니라, 또 다른 특화형 각성자인 도희원에 대해서도.


내 시선이 자연스럽게 창가 쪽을 향한다.


···윤기가 흐르는 검은 머릿결이 유독 차분하다.

그 아래에는 큼지막한 블랙사파이어 두 덩이가 자리를 잡았고, 콧대는 유연하게 미끄러져 아름다운 곡선을 만든다.


거기에는 창밖을 무심히 바라보는 도희원이 있었다. 도회적이면서도 쓸쓸한 분위기가 주변에 넘실거린다.


아닌 척, 그녀를 몰래몰래 훔쳐보는 남자들은 아마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저 초점없는 눈은 대체 무슨 사연을 담고 있는 거지?


─따위의 쓸데없는 걱정, 혹은 동정심과 함께 탭댄스를 추고 있겠지.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도희원이 왜 혼자 떨어져서 창밖이나 바라보고 있는 건지.


겉으로 보기에는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무 생각이 없다.

아니, 아무런 생각을 하기 싫어한다고 하는 게 정확하겠다.


귀차니즘, 무념무상, 무생물 등.


그녀를 대신할 수 있는 단어는 무수히 많았다. 물론 그 대부분 부정적인 의미였지만······.


드르륵─.


미닫이문이 열리며 시끄러운 지방방송들이 한꺼번에 꺼졌다.


끼이익··· 하고 마룻바닥이 비명을 지른다.

강당에 들어온 사람의 정체는 빨간 캡모자를 덮어쓴 30대 남자였다. 밀리터리룩을 입고 있어서 꼭 군인 같다.


남자가 모두를 지나 단상 위에 오른다. 사람들의 모든 관심이 그에게 집중된다.


중저음의 목소리가 강당에 울린다.


“제군들, 모두 모였나.”

“······.”

“···대답 안 하나?”

“네!”


곳곳에서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들린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쭈뼛거리는 녀석도 보인다.


“제군들, 반갑다. 나는 대인격투술 훈련을 맡은 김근묵 교관이라고 한다.”

“교관······?”

“뭐야, 교수님 아니었어?”


교수가 아니라 교관이라는 말에, 웅성거림이 점차 커진다.

그러자 김근묵 교관이 발로 바닥을 쾅! 내려찍는다.


“주목!”

“······.”

“교관은 ‘교수’라는 직함으로 불리는 걸 굉장히 싫어한다. 대인격투술이라는 훈련에 맞게 앞으로는 나를 교관님이라고 부르도록. 교관도 너희들을 이제부터 ‘훈련생’이라고 부르도록 하겠다. 알겠나?”

“······.”

“대답.”

“네!”


나는 군기가 바짝 잡힌 훈련생들을 보며, 가까스로 웃음을 참았다.


김근묵 교관.

그는 알아주는 밀리터리 애호가, 일명 밀덕이었다.

그것도 군인 마인드가 생활화 돼있는 극한의 밀덕.


군대가 없어진 지가 언젠데······.

그런데도 군대의 매력에 푹 빠져버린 게 신기하기만 하다.


삐이이익─!


그는 어느새 호루라기까지 꺼내 불며 모든 훈련생을 주목시켰다.


“한 학기를 시작하는 첫 훈련은······.”


잠시 숨을 고르며 계속 말을 이어나간다.


“대련이다. 지금부터 내가 지목하는 훈련생은 단상 위로 올라오도록.”

“네!”


교관의 손가락이 허공에 맴돈다.

적에게 총을 겨누듯, 그가 지목한 훈련생은 바로!


“너!”

“예. 알겠습니다.”


나는 대답하자마자 재빨리 단상에 올랐다. 그러자 김근묵 교관이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좋아. 기본이 되어 있구만.”

“예, 감사합니다.”


신속하게 움직이되, 절도 있게.

이것이 그가 좋아하는 칼 같은 ‘각’이었다.


물론 의도한 건 아니었다.

김근묵 교관이 날 지목할 거란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고, 빨리 대련하고 싶어서 서두른 것 뿐.


“이름이 뭐지?”

“오진영입니다.”

“그래, 오진영 훈련생이 직접 대련 상대를 지목하도록.”


그 말에, 나는 단상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눈을 마주치는 자, 피하는 자, 노려보는 자.

그리고······ 나에게 엿을 날리며 실실 쪼개는 자들.


하둥이가 총 4개의 엿을 나에게 선사했다. 교관이 잠시 고개를 돌린 찰나의 순간을 이용해서.


“저는 저 훈련생과 겨루고 싶습니다.”


내가 손가락을 가리킨 곳을 향해 고개들이 휙휙 돌아간다.


그리고, 그들의 눈동자에 묘한 기대감이 샘솟는다.


“······.”


지목을 받은 도희원이 예의 그 무표정한 얼굴로 단상 위에 올라온다.


“흐음, 자네는 이름이 뭐지?”

“······원.”

“다시.”

“···도희원이요.”


도희원이 모기만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김근묵 교관의 얼굴이 찌푸려진다.


“······지금부터 룰을 설명하겠다. 우선 당연하게도 무기 사용은 금지다. 급소를 노리는 것도 부정행위로 간주하여 즉시 반칙패 처리하겠다. 그 외에는 박치기를 하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던 상관없다. 대련 시간은 3분. 바닥에 쓰러지거나 패배를 인정하면 대련 종료. 둘 다, 준비됐나?”

“예.”

“······.”

“좋아, 그럼······.”


김근묵 교관이 주머니에서 타이머를 꺼내들었다. 다른 한 손으로는 호루라기를 입에 가져다댐과 동시에─.


삐이이익!


대련이 시작됐다.



***



쾅! 쾅!


“와······ 개쩌는데?”

“그러니까 말이야···. 둘 다 각자 힘이랑 맷집이 끝내준다고 듣긴 했었는데. 미쳤다, 진짜.”


창과 방패가 부딪히는 소리가 강당 내부를 가득 채웠다.


한 명은 일방적으로 맞고, 다른 한 명은 일방적으로 때리고 있는 기묘한 상황.


모두가 입 벌리고 그 광경을 관전하고 있었다.


“쩔긴 뭐가 쩔어. 우리가 상대하면 한 주먹거리도 안 되겠고만.”

“맞아. 저 여자애는 힘 빼고는 보잘 것 없어서 피하고 한 대 빠악! 그리고 저 샌드백 새끼는 3분 내내 뚜들겨 패면 되고.”


하상훈과 하상준이 별거 아니라는 듯, 동시에 어깨를 으쓱인다.


“그럼··· 저 둘 중에서 누가 이길까?”


토끼처럼 앞니가 튀어나온 여자애가 안경을 닦으며 물었다.


“글쎄. 샌드백 놈이 버티면 이기는 거고, 버티지 못하면 지겠지.”

“우리 내기라도 할까? 누가 이기는지?”


하상훈이 음흉하게 웃으며 제안한다. 하상준이 둘의 대련을 유심히 보더니 펄쩍 뛰며 말한다.


“난 저 도희원이라는 애가 이긴다에 한 표!”

“왜?”

“그야, 이쁘니까.”

“니미럴, 내가 고르려고 했는데. 이 새끼는 뭘 하든 날 따라한다니까?”

“빨리 고르던가. 넌 그럼 자동으로 저 샌드백 당첨!”

“······.”


하상훈의 얼굴이 썩어 들어간다.

그러면서 억지로 웃는다. 완성된 썩은 미소를 만면에 띄우며 입을 열었다.


“뭘 걸 건데?”

“오 만원빵. 콜?”

“콜. 샌드백이 이기기만 해봐라, 넌 뒤졌다.”

“그러시던가.”


한편, 도희원은 그들처럼 마냥 속 편한 상황이 아니었다.


‘······귀찮아. 얘 안 쓰러져. 아파.’


힘에 특화된 그녀의 특성상, 맨몸으로 일정 이상의 위력을 내는 것은 무리다.


몸을 보조하는 슈트를 입는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이 힘을 조절하며 때리고 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점점 오진영을 치는 주먹이 부어오른다. 어깨도 살짝 뻐근한 것이, 이제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는다.

그만두는 법을 배우지 않았다. 그것이······ 그녀의 몇 안 되는 장점 중 하나였다.


얼굴을 가린 가드가 탄탄하다.

그의 팔을 내리기 위해 배를 집중공격해도 소용이 없었다.


팔을 잡고 억지로 내리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그러다가 무방비인 그녀의 얼굴을 맞아버리면 져버릴 테니까.


쾅! 쾅! 쾅!


그렇게 배만 때리기를 수차례.

열리지 않을 것만 같던 관문이 드디어 열렸다.


‘······지금.’


도희원은 살짝 열린 가드 틈으로 스트레이트를 꽂아 넣었다. 그녀가 최소한으로 낼 수 있는 힘을 끌어 모아서.


퍼억─!


강렬한 클린 히트.


그녀는 승리를 확신했다.

쓰러지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큰 데미지를 입혔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크읏.”


도희원이 별안간 무릎을 꿇었다.

코피가 흘러 바닥에 뚝뚝 떨어진다. 그녀의 얼굴에 의문이 꽃핀다.


“대련 종료! 승자는 오진영 훈련생으로 결정되었다. 도희원 훈련생은 내려가도록.”

“······네.”


아까와는 반대로, 도희원에게 걸었던 하상준의 얼굴이 썩는다. 옆에서 하상훈이 손을 내밀어 흔들고 있었다.


“도희원이 이긴다며? 크크크. 빨리 오 만원 내놓으시지.”

“아, 시발. 저 샌드백 새끼가 어떻게 이겼지?”


하상준이 오 만원을 건네며 분통을 터트렸다.

그가 보기엔, 샌드백 녀석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럭키 펀치를 날린 것도 아니었고, 정말로 맞다가 끝났다.


“하아. 저 샌드백 새끼, 내 전용 샌드백으로 만들고 만다. 말리지 마라.”

“지랄 좆 까네.”


두 형제가 또다시 티격태격하는 사이, 김근묵 교관이 호루라기를 불었다.


“자, 그럼 지금부터 대련은 로얄 럼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긴 사람이 계속 남아서 질 때까지 싸운다. 이겨도 끝이 아닌 새로운 혈투의 시작. 그것이 이 훈련의 진짜 의의다.”


교관의 설명에 강당이 술렁거린다.


“오진영 훈련생이 이겼으니, 또 다음 상대를 지목하도록.”

“네.”


오진영의 시선을 받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바짝 움츠러들었다.


대련 자체는 두렵지 않았지만, 그에게 지목 당한다는 건 어지간히 얕보였다는 의미였으니까.


다만, 하상준은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덤벼볼 테면 덤벼보라는 듯이 활짝 웃어보였다.


“······결정했습니다.”


오진영도 그를 보며 활짝 웃어주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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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운수 좋은 날 (4) +18 21.09.19 5,785 144 12쪽
18 운수 좋은 날 (3) +14 21.09.19 5,807 120 11쪽
17 운수 좋은 날 (2) +5 21.09.18 6,375 138 12쪽
16 운수 좋은 날 (1) +3 21.09.17 7,087 144 11쪽
15 죽음의 향기 (3) +6 21.09.16 7,620 154 11쪽
14 죽음의 향기 (2) +12 21.09.15 7,952 165 12쪽
13 죽음의 향기 (1) (수정 完) +16 21.09.14 8,679 166 11쪽
12 월척 +12 21.09.13 9,488 151 10쪽
11 대련 (2) +9 21.09.12 10,006 178 12쪽
» 대련 (1) +5 21.09.11 10,220 18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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