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가리동 님의 서재입니다.

방어력에 올인했더니 반사딜로 다 죽음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가리동
작품등록일 :
2021.09.03 11:42
최근연재일 :
2021.09.23 07:20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204,970
추천수 :
3,725
글자수 :
109,812

작성
21.09.12 07:20
조회
10,006
추천
178
글자
12쪽

대련 (2)

DUMMY

내가 상대를 지목하자, 김근묵 교관이 걱정스럽다는 듯 재차 묻는다.


“정말로 괜찮겠나?”

“네. 이 정도는 문제없습니다.”


분위기가 급속도로 싸해진다.

얼굴들이 하나같이 괴이하게 일그러져 있다. 뭐 저딴 싸이코가 다 있어? 라고 외치는 듯한 표정이다.


“······.”


하상준이 어금니를 꽉 깨물며 앞으로 걸어나온다. 길게 찢어진 눈가에서 살기가 풀풀 풍긴다.


금세 단상 위로 올라와서 나를 매섭게 노려본다. 그의 옆에 선 하상훈과 함께.


“너 미쳤냐? 혼자서 우리 둘을 동시에 상대하겠다고?”

“넌 1+1 상품을 하나만 사냐? 당연히 같이 사지.”


내가 이죽거리자 그들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머리도 꼭 밤톨처럼 잘라놔서, 멀리서 보면 방울 토마토 두 개를 가져다 놓은 것 같다.


내 입장에서도 억울하다.

하둥이들이 분열이라도 해서 한 10명이 몰려오더라도 상대할 자신이 있는데.


방금 도희원과의 대련에서 내 방어력 수치가 100 증가했다.


물론 힘조절을 했겠지.

도희원의 힘은 본인마저도 다치게 하는 양날의 검이니까.


그렇다고는 해도······ 파괴력만큼은 훈련생들 중에서 탑이라 할 수 있는 그녀가, 3분 내내 두들겨도 겨우 100.


그에 비하면 하둥이의 공격은 하루종일 맞아도 그것의 절반이나 오를까?


과장을 조금 보태서, 녀석들에게 맞으면서 잠도 잘 수 있을 것만 같다. 그것도 코를 드르렁대며.


내가 자신만만한 미소를 떠올리자 하둥이들의 귀여운 주먹코가 들썩인다.


“너희 둘, 이름은?”

“······하상훈, 하상준입니다.”


하이톤의 목소리가 이번엔 한껏 가라앉아있다. 둘이 상대한다는 게 그만큼 굴욕적인 거겠지.


“자, 양쪽 모두 준비됐나?”

“네.”

“네!”

“그럼······.”


삐이이익!


호루라기가 울리며 대련이 시작됐다.


“······.”


의외였다.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자마자 달려들 줄 알았는데, 스텝을 밟으며 조금씩 거리를 좁힌다.


······보통 파트너와 호흡을 맞출 때, 서로 눈빛을 주고 받거나 미리 짜놓은 사인을 보내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녀석들은 그런 행동을 할 필요가 전혀 없다.


쌍둥이 각성자들이 무서운 점은······.

특별한 신호를 보내지 않아도, 서로 생각이나 느낌을 주고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흔히들 텔레파시라고 하지.


미리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하둥이가 양쪽으로 찢어진다.


나의 시선을 분산시키려는 전략.

아까 내가 도희원을 쓰러뜨린 걸 보고 신중히 접근하려는 건가?


답지 않게 꽤나 주도면밀하다.

뭐, 무슨 짓을 하던 계란으로 바위치기지만.


“하앗!”

“흡!”


오른쪽에서는 주먹으로 머리를.

왼쪽에서는 발차기로 발목을 노리고 들어온다.


도희원과의 대련에서는 방어력 상승을 위해, 마지막에만 「리플렉션」을 ‘1%’로 출력했었다.


하지만 너네한테는 그럴 필요가 없겠지.

심심풀이 땅콩의 반쪽도 안될 테니까.


나는 「리플렉션」의 출력을 10%로 끌어올렸다.


그것만 해도 무려 110에 가까운 데미지. 어디 한 번 버틸 수 있나 보자고.


콰앙!


머리와 발목에서 울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마치 교통사고 현장에 온 것만 같다. 차에 치인 것처럼 하둥이들이 바닥에 쓰러진다.


“으, 으아아아아!”

“아, 아파아아!”


놈들의 비명소리 또한 요란하다.

한 놈은 제 관자놀이를, 다른 한 놈은 발목을 부여잡으며 바닥을 뒹군다.


“······.”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는 그들을 내려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하다.


희열? 성취감? 통쾌함? ···우월감?

모르겠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여러 복잡한 감정들이 가슴에 소용돌이친다.


마냥 좋은 느낌은 아니다.

남이 괴로워 하는 걸 즐기는 게······ 그리 나쁘지 않다고 느끼는 나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사실을 부정하듯,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그와 동시에 뒤에서 호루라기를 부는 소리가 들려온다.


“대련 종료! 대련에서 진 두 사람은 즉시 내려가도록 한다. 실시!”

“흐읍··· 네.”


하상훈이 하상준을 부축하며 단상 아래로 내려간다.


그들이 제자리로 돌아가자, 몇몇이 입을 가리며 옆사람과 중얼거리기 시작한다.


조용한 분위기라 그런지, 작게나마 그 내용들이 귀로 흘러들어온다.


“방금 아예 안 움직이지 않았어? 공격은 커녕, 막지도 않았잖아?!”

“맞아. 조교님이 맷집만 드럽게 좋다고 했었는데, 거짓말이었나봐.”

“사실은 맷집이 아니라 스피드에 특화된 걸지도······. 우리 눈으로도 못 쫓을 정도로 빠르다는 거지.”


그 외에도 도희원에 대한 언급도 이따금씩 들린다.


“쌍둥이들은 순식간에 당했는데, 도희원은 무려 3분이나 버텼어.”

“그러게. 사실 특화형 각성자가 보통 각성자보다 강한건가?”

“에이, 그럴리가······.”


삐익, 삐이이익─!


웅성거림이 점차 커지자, 김근묵 교관이 호루라기를 격렬하게 불어댄다. 목에 불거진 핏대가 선명하다.


“다들, 조용!”


그가 화난 목소리로 고함을 지른다.

또 다시 강당에는 정적이 찾아온다. 소란이 가라 앉자 교관이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오진영 훈련생은 이만 내려가도록 한다.”

“예? 전 아직······.”

“훈련생은 이미 다른 훈련생들과 수준이 다르다. 레벨이 너무 차이나면 훈련의 의미가 퇴색되기 마련. 자, 빨리 내려간다. 실시.”

“······네, 알겠습니다.”


내가 터덜터덜 아래로 내려가고, 지지부진한 대련이 이어진다.


생각이 복잡해진다.

자꾸만 내가··· 저들을 모두 때려눕히는 상상을 하게 돼서.



***



오늘의 수업들이 모두 끝나고, 기숙사로 돌아오자마자 침대 위에 엎어졌다.


그런 감정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

개성원 패거리를 때려 눕혔을 때와는 분명히 다르다. 도대체 뭐가 다른거지?


“······.”


나는 푹신한 베개에 얼굴을 부볐다.

머리가 마구 뒤엉킨다. 그대로 돌아누운 후, 다리를 꼰 채로 깊은 생각에 잠겼다.


똘마니들과 싸웠을 때는 내 손으로 직접 때려눕혔었지. 그 녀석들만큼은 새로운 능력을 빌리고 싶지 않다면서······.


그렇다면 아침에 있었던 대련은?


「리플렉션」이라는 능력을 아낌없이 사용했다.


방어력을 올리기 위해 충분히 빨리 끝낼 수 있는 대련을 질질 끌었고,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손쉽게 승리했다.


······내게 주어진 거라곤 맷집 뿐이었던 과거가 새록새록 떠오른다.


앞에서 어그로나 끄는 고기방패.

내가 칼에 찔리거나, 몬스터에게 먹혀버려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던 암울한 시절.


등 뒤에서 들리는 비아냥이나 욕설들을 이 악물고 무시했으며, 그 와중에도 날 이용해먹으려는 자들 때문에 치를 떨었다.


난 사람이 무서웠다.

내 몸을 할퀴고 씹어대는 몬스터보다, 사람의 내면에 잠재한 악의가 두려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가는 느낌이다.


힘 좀 생겼다고 다른 이를 무시하고 짓밟는······.

그토록 증오하던 자들과 닮아간다. 좆 같아서 구역질이 다 난다.


“시발.”


나는 양손을 들어 얼굴에 따귀를 날렸다.


한 대, 두 대, 세 대······.


당연하게도 전혀 아프지 않다. 알람이 울리며 텍스트가 떠오르는 일? 물론 없다.


「리플렉션」의 출력을 높여봐도 공격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건지, 데미지가 반사되는 일도 없었다.


맞으면서도 타격을 가할 수 있는 유용한 힘.

아니, 나를 잡아먹을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는 간특한 힘.


절대로 잡아먹히지 않을 것이다.

고대종에게 먹혀도 소화되지 않았던 나다. 내 맷집은 무너지지 않는다.


비록 긁히고 상처는 날지 언정.


꼬르륵─.


······그러고보니 오늘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나는 지하식당에서 주린 배를 채우고, 이른 저녁에 잠이 들었다.



***



서울 강동구에 위치한 5층 건물.

입구에는 각종 장비로 무장한 헌터들이 게이트 공략을 위해 모여 있다.


그들의 흉갑에 새겨진, 새가 날개를 펼치는 듯한 문양이 번쩍거린다.


“크흠.”


이번에 처음으로 대장을 맡은 소우진이 헛기침 한 번 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의 이번 목표는 구청 쪽에서 발생한 게이트를 완벽하게 공략하는 것이다! 내 명령만 잘 따라준다면, 안전하고 확실하게 꼭 성공시키겠다고 약속한다. 알겠나!”

“예!”


우렁찬 대답과 함께, 공략대가 출발한다.

그런 그들을 흐뭇하게 내려다보는 이가 한 명 있었으니······.


“잘 키운 A급, 열 B급 안 부럽다더니.”


평화 길드의 대표, 변중섭이 전면 유리 앞에 서서 중얼거렸다.


공략대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그러자 그의 얼굴에서도 미소가 사라지고, 대신 그 자리에 근심이 떠오른다.


변중섭은 고급 가죽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한숨을 내뱉었다.


길드의 힘은 헌터의 급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다.


엘리트 헌터라고도 불리는 S급과 A급.

그들을 많이 보유할수록 길드간의 알력 다툼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평화 길드의 주력은 그들이 아니었다.

대부분이 B급 혹은 C급으로 구성된 중소길드.


그렇기에 변중섭은 지금 답답한 심정이다.

대형 길드로 거듭나기 위해선 엘리트 헌터들의 영입이 필수불가결인데, 그게 좀처럼 쉽지가 않다.


영입을 시도하기도 전에 대형 길드로 흡수되어 버리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금방 공략대를 이끌고 출발한 소우진도 A급 헌터다. 그것도 평화 길드에서 직접 키워낸.


천문학적인 액수를 투자하긴 했지만, 변중섭은 후회하지 않았다. 이에 감동한 소우진이 종신 계약을 약속했으니까.


그래도··· 엘리트 헌터의 절대적인 숫자가 부족한 건 여전히 아쉬웠다.


“갑자기 하늘에서 S급 하나 툭 안 떨어지나? 그랬으면 소원이 없겠네.”


비현실적인 망상이나 하며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누군가가 문을 두들긴다.


똑, 똑.


“어, 들어와.”


대표실 문이 천천히 열린다.

어중간하게 열린 문 틈 사이로 조현필이 장난스럽게 고개를 내민다.


“형님. 저요, 현필이.”

“현필아, 네가 여긴 어쩐 일이냐? 지금 리미테 아카데미 제 1구역에 있어야 할 시간 아니냐?”

“거긴 동현이한테 맡겨 놓고 왔죠. 그것보다, 어제 있었던 일인데······.”


조현필은 어제 있었던 일을 침 튀기며 설명했다. 변중섭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역력하다.


“아니, 거기서 미노타우로스가 왜 나와? 게이트가 발생했을 때에도 고블린밖에 없었는데···.”

“것도 그건데, 것보다 중요한 건, 그 놈을 학생 한 명이 잡았다는 거요.”

“뭐? 미노타우로스를 혼자 잡아? 직접 본거야?”

“그건 아니지만, 애초에 그 던전으로 들어간 사람은 그 학생 한 명 뿐이고.”

“흐음.”


변중섭은 관자놀이를 지긋이 누르며 고민했다.

정확하지도 않은 정보이기는 하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성인이 되면 최소 A급이겠네!”

“제 말이 그 말입니다. 다른 길드가 눈치채기 전에 우리가 먼저 포섭을 해 놓으면? 게임 끝.”


조현필이 손날을 목에 그으며 죽는 시늉을 한다.


“그런데 그 학생 이름은 알고 그러는거야?”


변중섭의 물음에, 그가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뇨. 얼굴밖에 모르는데요?”

“어떻게 찾을라고?”

“음··· 발품 팔아야죠, 뭐.”

“아이고······.”


대책이 없어도 너무 없다.

변중섭은 이마에 손을 올리며 그에게 지시를 내렸다.


“제 1구역 가드장을 임시로 동현이한테 넘겨. 너는 그 학생 찾아다니고.”

“넵, 알겠습니다.”


조현필은 경례를 하며 뒷걸음질로 대표실을 나섰다.


그 모습을 본 변중섭이 낮게 중얼거렸다.


“열심히 뛰어다녀라, 현필아. 그 아이를 붙잡아야 우리가 산다.”


의자를 돌리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싸늘한 바람이, 전선줄에 앉은 비둘기를 베고 지나간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9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방어력에 올인했더니 반사딜로 다 죽음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시간 - AM 7:20 21.09.09 471 0 -
공지 제목이 변경되었습니다. +1 21.09.06 7,767 0 -
22 힘(力)을 키우다 (1) +10 21.09.23 3,661 106 11쪽
21 도희원 +8 21.09.22 4,132 108 10쪽
20 운수 좋은 날 (5) +3 21.09.21 4,770 111 11쪽
19 운수 좋은 날 (4) +18 21.09.19 5,785 144 12쪽
18 운수 좋은 날 (3) +14 21.09.19 5,807 120 11쪽
17 운수 좋은 날 (2) +5 21.09.18 6,375 138 12쪽
16 운수 좋은 날 (1) +3 21.09.17 7,087 144 11쪽
15 죽음의 향기 (3) +6 21.09.16 7,620 154 11쪽
14 죽음의 향기 (2) +12 21.09.15 7,952 165 12쪽
13 죽음의 향기 (1) (수정 完) +16 21.09.14 8,679 166 11쪽
12 월척 +12 21.09.13 9,489 151 10쪽
» 대련 (2) +9 21.09.12 10,007 178 12쪽
10 대련 (1) +5 21.09.11 10,220 183 11쪽
9 제 1구역 (2) +6 21.09.10 10,666 179 11쪽
8 제 1구역 (1) +16 21.09.09 11,036 197 10쪽
7 편입 (3) +8 21.09.08 11,915 186 12쪽
6 편입 (2) +22 21.09.07 12,562 207 13쪽
5 편입 (1) +12 21.09.06 12,615 220 10쪽
4 맞아야 산다 (3) +6 21.09.05 12,944 207 12쪽
3 맞아야 산다 (2) +6 21.09.04 13,078 205 12쪽
2 맞아야 산다 (1) +9 21.09.03 13,765 225 12쪽
1 프롤로그 +11 21.09.03 14,736 231 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