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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동 님의 서재입니다.

방어력에 올인했더니 반사딜로 다 죽음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가리동
작품등록일 :
2021.09.03 11:42
최근연재일 :
2021.09.23 07:20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205,038
추천수 :
3,725
글자수 :
109,812

작성
21.09.06 07:20
조회
12,618
추천
220
글자
10쪽

편입 (1)

DUMMY

아침 조회를 하기 전.

나는 건물 뒷편에 있는 정원을 거닐었다.


정신적으로는 이미 서른이 훌쩍 넘은 나로선, 도저히 교실에 가만히 앉아있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내게 말을 거는 애는 없었다.

이때의 나는 전교에서도 알아주는 왕따, 즉 전따였으니까.


차라리 조용한 곳에 혼자 있는 게 마음이 편하다.


“춥네.”


가을이라 그런지 아침 공기가 제법 쌀쌀하다.

괜히 옆구리가 시리고 자칫 잘못하면 감기몸살이 걸릴 것만 같은······.


이맘때쯤이었던 것 같다.

이선아가 우리 학교를 찾아왔던 게.


아마 지금쯤이면 교무실로 가서 협조 요청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저 시간을 죽이고 있으면 된다.

전교생을 상대로 각성자 색출 작업을 진행할 때까지.


그것보다도 지금 내 관심은 어떻게 하면 그 텍스트들을 다시 볼 수 있냐는 거다.


그 때 내가 본 단편적인 키워드는··· ‘플레이어’와 ‘방어력’.


내가 쳐맞으면 방어력 수치가 올라가는 건 알겠다. 그건 원래도 마찬가지였으니까.

물론 구체적으로 수치화되진 않았었지만.


문제는 각성한 뒤로 얻게 된 새로운 능력.


직접 공격하지 않아도 적에게 데미지를 줄 수 있는 미친 능력!


아마도 조건은 역시 얻어맞는 거겠지.

어제 선빵을 때린 두 똘마니가 되려 데미지를 받았으니까.


대충 무슨 능력인지는 알겠는데··· 그걸로는 부족하다.


나는 내 능력을 완벽하게 통제하길 원한다.


최전방에서 고기방패 노릇이나 하는 건 이제 사양이다.


“후우.”


화단 앞에 있는 벤치에 앉았다. 옅은 심호흡과 함께 눈을 감았다.


죽기 직전, 기억의 끝자락에서 보았던, 내가 천국의 빛이라고 착각했던 ‘그것’.


그 빛의 정체가 뭔지는 나도 잘 모른다.


다만, 한 가지 가능성.

그 빛이 과거로 돌아온 이 상황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이 농후하다.


나는 그것을 떠올리려고 노력했다.


정신을 집중하고······.

생(生)과 사(死)의 갈림길에 섰던 그 때를 복기한다.


피부를 때리는 쓸쓸한 가을바람이 자취를 감췄다.

사라락- 나뭇잎들이 서로 몸을 부비는 소리도 어느덧 침묵을 지킨다.


무중력의 빈 공간에 둥둥 떠다니는 듯한 부유감.


그 무아지경의 끝에서, 따스한 기운이 느껴진다.


심안(心眼)이 눈을 뜨고.

처음으로 내가 마주한 것은 화이트보드만큼 널찍한 무형의 빛 무리였다.


그 위에는 그토록 확인하기를 갈망했던 텍스트들이 보인다.



[ 플레이어가 내면을 들여다봅니다. ]

[ 새로운 스킬, 「심안」을 습득하셨습니다. ]

▶ 「리플렉션 ■□□□□」 - 자신을 공격한 대상에게 방어력의 100%만큼 반사 데미지를 입힙니다.

▶ 「심안」 - 플레이어의 스킬, 방어력 수치 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현재 방어력 – 21.



오오오, 글자들이 꼭 정교하게 만들어진 도형처럼 실체감이 있다.

만지려면 만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나는 손을 뻗어 「리플렉션」이라고 적힌 텍스트를 눌렀다.

그러자 토옹- 튕겨져 나가더니, 금세 「리플렉션」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떠오른다.



▶ 「리플렉션 ■□□□□」 - 자신을 공격한 대상에게 방어력의 100%만큼 반사 데미지를 입힙니다. 방어력이 일정 수준까지 상승하면 「리플렉션」의 다음 레벨이 개방됩니다.



‘다음 레벨이 개방됩니다.’ 라는 마지막 문장을 보니, 절로 입 꼬리가 귀에 걸린다.

마음 같아서는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다.


방어력 수치만큼 데미지를 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데, 레벨업까지 할 수 있다.


맷집만 튼튼했던 반푼이 탱커였던 나에게 어느 무엇보다도 절실했던 능력.


이거라면 좆같았던 미래를 충분히 바꿀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물론 앞으로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리플렉션」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숙지하고 「심안」을 해제했다.


───.


마비됐던 오감이 다시 제 기능을 한다. 붉게 물든 단풍잎이 눈에 들어온다.


“크흠!”


입안이 텁텁한 것이, 물이나 좀 마셔야겠다.


마침 아침 조회 시간이 다 되기도 했고.

교실로 돌아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저 멀리서 누군가가 달려오는 게 보인다.


“오, 오진······!”


땀범벅에 머리가 헝클어져 있었지만, 쭉 찢어진 눈을 보니까 누군지 알겠다.


우리 반 담임인 김윤석이다.


계속 나를 찾아다녔던 건가?

나뭇가지처럼 가는 다리가 후들거리는 게, 보기 안쓰러워질 정도다.


내 앞에 멈춰서 한참 숨을 고르더니 따지듯이 묻는다.


“오진영! 왜 교실에 있지 않고 여기 있는 거야. 한참 찾았잖아!”

“아, 잠깐 바람 좀 쐬느라···.”

“됐고! 나랑 같이 교무실로 좀 가자.”

“네? 교무실은 왜요?”


이선아가 벌써 나를 찾았나?

아냐, 각성자의 대략적인 위치는 알 순 있어도, 정확한 신원까진 파악할 수 없을 텐데? 직접 얼굴을 보지 않는 이상.


“잔말 말고 따라오기나 해. 너 때문에 지금 교장 선생님께서 곤란해 하시니까.”

“······네.”


뭐, 가보면 알겠지.

교장이 왜 곤란한지도 의문이지만.



***



드르륵─.


교무실로 들어가자,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쳐다본다.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들이 부담스럽다. 저 멀리서 수군거리는 게 어렴풋이 들린다.


“쟤가 걔야?”

“얌전해 보이는데, 의외네요.”


아, 상황을 대충 보아하니 무슨 일인지 알겠다.


개성원, 이 개자식이 일을 또 크게 만들었구나.

이럴 줄 알고 바지에 오줌 지리는 걸 찍어놨던 건데.


교무실을 둘러보니, 개성원이 쇼파에 앉아서 히죽 웃고 있었다.


저 또라이 새끼.

내가 이 동영상으로 무슨 짓을 하던 상관이 없다는 거야?


미연의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수단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교장 선생님, 오진영 학생 데려왔습니다.”

“김 선생, 왜 이제야··· 크흠. 아니에요. 잘 했어요. 나중에 다시 이야기합시다.”

“······네, 알겠습니다.”


김윤석의 가녀린 어깨가 축 처진다.

그를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던 교장이 고개를 내 쪽으로 돌렸다.


“오진영 학생?”

“네. 교장 선생님.”

“김성원 학생의 아버님께서 찾아오셨는데, 그게 저······.”

“그 새끼가 오진영이라는 놈입니까?”


묵직한 목소리가 교장과의 대화를 비집고 들어온다.

김성원이 앉아있는 쇼파에서 거대한 몸집을 가진 중년인이 몸을 일으켰다.


터벅, 터벅.


나에게 다가오는 발걸음에서도 무게감이 느껴진다.

올백 머리에 검은 정장. 꼭 조폭을 연상시키는 살벌한 비주얼이다.


“너냐?”

“네?”

“내 아들을 건드린 놈이 너냐고 물었다.”


개성원의 아버지라는 건 진작에 눈치 챘다.

겉보기와는 다르게 아들을 끔찍하게 생각하는 아들 바보인가?


그래서 직접 날 손봐주려고 학교에 행차하신 거고?


뭐가 어찌됐든, 나도 변명할 생각은 없다.

사실이었으니까. 그리고 떳떳하니까. 나도 피해자라고, 이 아저씨야.


“일단은 맞는데요?”


그의 얼굴이 금세 붉으락푸르락해진다.

별 거 아닌 말에 흥분하는 건 유전이었구나.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것도 똑같고.


철─썩!


반동으로 인해 얼굴이 휙 돌아간다.

아프진 않은데 갑자기 시야가 돌아가서 어지럽다. 기분도 더럽고.


그래도 이 아저씨가 뺨을 때려준 덕분에, 「리플렉션」의 효과를 톡톡히 체험할 수 있었다.


“크윽?!”


그가 짐짓 놀란 듯, 뒤로 물러나며 오른쪽 뺨을 살살 어루만진다.


어떠냐, 내 방어력 맛이.

아직 숙성이 덜 되긴 했지만 일반인 정도는 만족시키기에 충분한 맛인데.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어지간히 감동스러운 맛이었나 보다.


“이, 이게 어른한테 감히─!”

“전 가만히 있었는데요. 때린 건 아저씨잖아요?”

“어린놈이 끝까지 어른이 말하는데 꼬박꼬박······.”

“그래야 이 험한 세상에서 알뜰하게 살아남죠.”


푸흡!


우리를 구경하는 군중 속에서 웃음을 참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온다.


하긴 방귀뀐 놈이 성낸다고, 지가 때려놓고 나한테 뭐라고 하는 게 우스워 보였겠지.


교장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신다.

안절부절 못하며 개버지를 진정시키느라 애쓴다.


“아, 아버님 진정하시고. 일단 대화를 나눠보시는 게······.”

“말할 게 뭐 있습니까? 사람이나 패고 다니는 깡패 새끼랑 할 얘기 없습니다.”


깡패는 댁 아들이고요.


“들어보니까, 저 새끼 부모가 사고로 죽었다는데. 가정교육을 못 받으니까 이렇게 버르장머리가 없지.”


이 아저씨가 진짜··· 좋게 넘어가려고 했는데 자꾸 선을 넘는다.

아무리 그래도 패드립까지 치는 건 좀 아니지 않나?


“넌 내 이름 석 자를 걸고 소년원에 보내고 만다. 돈도 없는 거지새끼가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나도 슬슬 참기가 힘들다.

이미 돌아가신 그분들까지 언급하면서 어린 학생과 싸우고 싶을까?


불끈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린다.

지금 당장 저 면상에 주먹을 꽂아버리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지금 사고를 치면 내가 그려놨던 이상적인 미래가 완전히 어그러져버린다.


“······.”


또 이렇게 이를 악물고 버티는 수밖에······.


혼자서 화를 삭이며 고개를 떨구는 순간, 따뜻한 손길이 주먹 위에 포개어진다.

그 손의 주인은 온화한 미소를 짓는 이선아였다.


아, 마음의 안정이 찾아온다.

예나 지금이나 이선아는 나에게 엄마와 같이 포근하다.


“아니요, 그 학생이 소년원에 갈 일은 없을 것 같은데요?”

“뭐? 아까 들어보니까 헌터 협회에서 나왔다더만. 댁은 상관없는 일이니까 빠지쇼.”

“상관이 있다면요?”

“아니, 그 새끼가 헌터라도 된다는 거야 지금?”

“아직은 아니에요. 이제 막 각성했으니 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받아야 하니까요.”

“각성자? 하!”


개버지가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친다.


“각성자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는데? 협회에서 각성자를 구분하는 기계가 있다고는 듣긴 했지만, 댁은 맨몸으로 왔잖아!”


통상적으로는 그렇지.

같은 각성자라도 각성자를 구분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그래서 협회에서 개발한 특수한 기계로 각성의 유무를 판단하는 거고.


하지만 그녀가 ’특화형 각성자’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선아는 ’직감’에 특화된 각성자이기 때문이다.


“저는 알 수 있답니다.”


그녀의 눈이 초승달처럼 휘어진다.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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