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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내가 내리는 녹슨 서고

인공지능과 첫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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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테리즘
작품등록일 :
2018.04.09 14:40
최근연재일 :
2018.05.09 18:14
연재수 :
12 회
조회수 :
1,448
추천수 :
2
글자수 :
51,206

작성
18.05.06 22:56
조회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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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Ch 2. 키스 (3)

DUMMY

난데없이 시작된 생애 첫 키스는 톡 쏘는 소다맛이었다. 거센 폭풍우가 몰아치기라도 하는 듯 요란한 벼락소리가 연이어 귓가를 잠식했다. 소녀의 촉촉한 입술이 그를 이루는 모든 요소들을 미지의 블랙홀처럼 끌어당기고 있었다. 내내 잠들어있던 나른한 영혼이 몸 밖으로 튀어나와 산 채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은 이루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괴상했다. 모든 걸 빼앗긴 텅 빈 육신은 아무런 제지 없이 태초의 본능을 따라 쾌락에 빠져들었다.

그 순간만큼은 아무것도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더없이 강렬하게 소녀의 앵두를 집어삼키고 반투명한 정수를 끊임없이 탐닉하다보니 한껏 무르익은 혀가 입술을 맹렬히 시기하며 잔뜩 부풀어 올랐다. 잠깐의 망설임 끝에 새하얀 협곡과 붉은 지평선을 비집고 모습을 드러낸 혀는 마침내 소녀의 비옥한 토지와 맞닿아 그대로 녹아내렸다. 그리고 마치 처음부터 그렇게 예정되어있던 것처럼 갑작스레 이별의 순간을 고했다.

접촉을 마친 소녀의 얼굴은 그녀가 인공지능이라는 게 쉽사리 믿기지 않을 정도로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덩달아 뺨이 화끈 달아오르는 걸 느낀 유현은 그녀를 정면으로 마주볼 자신이 없어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아직도 달콤한 환상 속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탓인지 소녀의 몸이 마치 반딧불을 연상시키는 은은한 광채를 발산하고 있었다. 현실감각을 되찾기 위해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눈꺼풀을 수차례 깜박인 유현은 실눈을 뜬 채 주위를 살폈다. 여전히 소녀는 그 자리에서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어라?”

“자, 잠깐만! 너, 너 도대체 무슨!”


소녀의 모습을 보고 어리둥절해진 유현은 바로 옆에서 터져 나온 넬리의 떨리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완전히 얼이 빠졌는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그녀는 당혹감이 가득 묻어나오는 목소리로 쉴 새 없이 중얼거렸다.


“이럴 수가... 설마 이런 구조였었다니. 열쇠의 소유권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신체적인 접촉이 필요하단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 트리거가 설마 키, 키, 키스였을 줄이야...”

“저기, 넬리 양? 괜찮은 거 맞지?”


눈에 초점이 맺히지 않은 채 혼잣말에 열중하고 있는 넬리의 상태가 조금 걱정된 유현은 그녀의 눈앞에서 손을 흔들며 조심스레 물었다. 그러자 간신히 제정신을 찾은 넬리는 살짝 얼굴을 붉힌 채 헛기침을 했다.


“크흠! 괜찮아! 신경 쓸 거 없어. 단지 네가 생각지도 못한 행동을 했기 때문에 아주 약간 당황했을 뿐이야. 그나저나 너, 그렇게 안 봤는데 알고 보니 변태였구나? 아무리 겉보기엔 또래 여자애의 외모를 가지고 있다지만 결국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인공생명체에 불과할 뿐인데 그런 걸 대상으로 성욕을 느끼다니... 하여간 남자들이란...”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난 그럴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 가만히 있었는데 쟤가 나한테 입술을...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마! 진짜라니까!”


허둥지둥하며 필사적으로 양손을 가로젓는 유현을 미심쩍게 여긴 넬리는 그의 바람과는 달리 오히려 한층 샐쭉해진 눈매를 동원해 노골적으로 그를 흘겨봤다.


“변명하지 마. 누가 키스를 시도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 설령 쟤가 먼저 달려들었다 하더라도 네 쪽에서 뿌리쳤으면 되는 거 아냐? 아무리 봐도 아주 마음 놓고 즐기던 표정이었는데 말이지.”

“그, 그건!”

“저리 가! 변태! 나한테 그 더러운 기질을 옮길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유현이 앞으로 한 발짝 내딛자 아연실색이 된 넬리는 뒤로 펄쩍 뛰며 그를 향해 경멸의 눈초리를 보냈다. 졸지에 몹쓸 전염병 보균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 유현은 어차피 오늘 보고 말 녀석한테 더 이상 항변해봐야 시간낭비일 뿐이라는 생각에 두 눈을 멀뚱거리는 소녀를 조심스레 눕혀놓고 벌떡 일어났다.


“후... 맘대로 생각하라고. 난 이만 갈 테니까.”

“자, 잠깐! 어디 가는 거야?”

“유리를 찾아봐야지. 지금쯤 혼자 아무런 단서도 없이 헤매고 있을 거 아냐.”

“어... 아마 밖으론 못 나갈걸. 아까 내가 들어온 직후에 문이 폐쇄됐거든.”

“뭐라고?”


그제야 소녀가 자신의 몸속에 침투하기 전에 출입구를 닫아버렸다는 걸 떠올린 유현은 곧장 문으로 달려가 이 지긋지긋한 방에서 탈출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아무리 힘껏 밀거나 세게 두들겨도 문이 열릴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허탈함을 이기지 못하고 털썩 주저앉은 유현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쥔 채 신음소리를 흘렸다.


“어떡하지? 이대로라면 출구를 찾기는커녕 유리와 다시 합류하는 것조차 할 수 없는데... 야, 넬리. 이제 어떻게 할 셈이야? 여기서 나가는 게 불가능하면 결국 원하는 걸 손에 넣었다한들 아무런 의미가 없잖아.”

“응? 너 뭔가 착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내가 언제 여기서 나갈 방법이 없다 그랬어?”


넬리의 말에 눈이 번쩍 뜨인 유현은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넬리는 예상과 달리 싱글싱글 웃음기를 띤 채 그를 지그시 응시하고 있었다.


“무슨 소리야? 저 문 폐쇄됐다면서?”

“그래. 지금 상태로는 나갈 수 없겠지. 하지만 열 수 있는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 하나 정돈 있는 법이라잖아?”

“그럼 알려줘. 어떻게 해야 여길 빠져나갈 수 있어?”

“좋아. 어려울 거 없지. 하지만 그 전에 먼저 네가 꼭 알아둬야 할 게 있어. 군소리 없이 내 얘길 귀담아듣겠다고 약속하면 나가는 방법을 알려줄게.”


극심한 피로에 시달리던 유현은 조금이라도 빨리 지상으로 돌아가고 싶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넬리는 여전히 바닥에 잠자코 누워있는 소녀에게로 천천히 걸어가며 다시 입을 뗐다.


“원래대로라면 지금부터 할 얘기는 네게 있어선 아무 의미도 없는 허수나 다름없는 정보에 불과했겠지만... 잘 들어. 넌 이미 이번 일에 필요 이상으로 지나치게 간섭해버렸어. 그 대가로 넌 비록 네가 그걸 원치 않았더라도 당분간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될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무슨 짓을 했는데?”

“아직도 모르겠어? 그럼 힌트를 줄게. 내가 대체 뭐 때문에 머나먼 타지에서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을 동원해서 이런 음침한 시설을 뒤졌다고 생각해?”


넬리의 질문을 들은 유현은 자연스레 소녀에게로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저 애를 찾기 위해서였겠지.”

“맞아. 근데 말이야. 애초에 내가 쟤를 왜 찾고 있었을 것 같아?”

“음... 아! 조금 전에 네가 저 애에 대해 설명하면서 뭔가 굉장히 강력한 무기를 시동시키기 위한 열쇠라고 얘기했었지. 그렇다면 목적은 하나밖에 없네.”

“정답. 난 그 고대의 병기를 되살리기 위해 이 애를 필요로 했던 거야. 근데 이 열쇠란 존재가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냐. 무기를 시동시키기 위해서 열쇠가 필요한 것부터가 무지 번거롭다 못해 까다로운 구조인데 그 열쇠를 활용하기 위해선 소유권이란 게 또 있어야 된다네? 오직 열쇠의 소유권을 가진 사람만이 열쇠의 봉인을 해제한 채 가지고 돌아다닐 수 있고 무기를 시동하는 것도 소유자만이 가능한 이른바 고유권한이나 마찬가지야. 그럼 여기서 다시 문제. 마침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열쇠를 발견한 지금, 난 가장 먼저 뭘 해야 할까?”

“열쇠의 소유권을 가지는 거겠지.”


유현은 네댓 살 먹은 꼬마들이라도 그 정돈 알겠다고 생각하며 심드렁한 투로 대답했다. 그 모습을 본 넬리는 피식 웃으며 삐져나온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문제가 너무 쉬운 것 같네. 그래. 모든 게 순조롭게 흘러갔다면 난 예정대로 열쇠의 소유권을 무사히 손에 넣을 수 있었을 거야. 근데 안타깝게도 중간에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하게 된 바람에 일이 완전히 틀어져버렸어. 이제 내가 왜 처음에 그런 얘기를 꺼냈는지 알겠지?”

“글쎄... 잘 모르겠는걸.”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은 채 어깨를 으쓱이고 있는 유현의 대답을 듣고 맥이 탁 빠진 넬리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정색했다.


“뭐어? 이렇게까지 얘기했는데도 눈치 채지 못한 거야? 아, 진짜 답답하네.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할게. 내가 왜 이 이야기를 너에게 구구절절이 들려주고 있는지 알아? 그건 말이지... 신유현, 당신이 저 열쇠의 소유자가 됐기 때문이야.”


작가의말

중요한 파트인지라 평소보다 많은 시간을 들였는데도 분량이 생각보다 적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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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Ch 1. 태동 (4) 18.04.18 118 0 12쪽
4 Ch 1. 태동 (3) 18.04.15 141 0 11쪽
3 Ch 1. 태동 (2) 18.04.12 144 0 10쪽
2 Ch 1. 태동 (1) 18.04.11 164 1 9쪽
1 Prologue. 잠자는 숲속의 악마 +1 18.04.09 219 1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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