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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내가 내리는 녹슨 서고

인공지능과 첫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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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테리즘
작품등록일 :
2018.04.09 14:40
최근연재일 :
2018.05.09 18:14
연재수 :
12 회
조회수 :
1,447
추천수 :
2
글자수 :
51,206

작성
18.04.22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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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Ch 1. 태동 (6)

DUMMY

도무지 그 의도를 알 수 없는 소녀의 말에 어안이 벙벙해진 유현은 자신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그녀에게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지 몰라 엉거주춤한 자세 그대로 굳어버렸다. 잠시 동안 유현의 대답을 기다린 소녀는 그의 입술이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자 어깨를 으쓱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아냐. 모르면 됐어. 미안해. 처음 보는 사이인데 본의 아니게 무례를 저지른 것 같네. 근데 너희들은 어떻게 이런 곳까지 오게 된 거야?”

“그건 이쪽이 물어보고 싶은데. 너, 이곳 출신이 아니지?”


여전히 우물쭈물하던 유현을 제치고 앞으로 나선 유리는 허리춤에 손을 올린 뒤 두 눈을 치켜뜨며 소녀에게 마치 취조하는 양 날카로운 어조로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그녀는 미세하게 얼굴근육을 굳힌 뒤 눈에 띄게 차가워진 목소리로 대꾸했다.


“용케 알아챘네. 어떻게 안 거야?”

“그야 네 머리카락도 이 근방에서 본 적 없는 색깔이고, 피부색도 다르고. 무엇보다 그런 수상한 망토를 두르고 다니는 건 나 스파이니까 잡아가달라고 광고하는 수준이잖아.”

“음... 염색을 해야 하나. 근데 피부색으로 따지자면 너도 여기 사람들이랑 다른 것 같은데?”


소녀의 말마따나 유리는 반의 다른 아이들과 다소 차이가 있는 옅은 구릿빛 피부를 지니고 있었다. 유현 역시 그녀의 면전에서 직접적으로 피부색을 언급한 적은 없지만 그에 대한 궁금증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어 쫑긋 귀를 기울였다.


“난 여기서 굉장히 멀리 떨어진 국경 부근의 마을 출신이거든. 그쪽 사람들은 전부 이런 피부색을 지니고 있다고.”

“흐응... 그래? 뭐, 그렇다는 걸로 해둘까.”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은 소녀가 한쪽 입가를 끌어올리며 웃자 유리는 자신이 그녀에게 무시를 당했다고 느낀 건지 평소답지 않게 버럭 화를 냈다.


“그 반응은 뭐야? 내가 지금 거짓말이라도 하고 있는 걸로 보여?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너야말로 남의 나라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정체를 밝히는 게 좋을 거야. 우린 지금 중대한 작전을 수행하는 중이라 살상무기를 휴대하고 있는 데다 별도의 허가 없이 무력을 행사할 수도 있거든.”


유리는 소녀를 노려보면서 오른손을 서서히 허벅지 쪽으로 옮겼다. 그녀의 손끝에 시선을 고정시킨 소녀는 흠칫 놀라 서둘러 양손을 하늘 높이 든 뒤 다급하게 외쳤다.


“자, 잠깐! 무섭게 왜 그러는 거야? 우리 이러지 말고 말로 해결하자. 난 분명히 이 나라 사람이 아니지만 너흴 해칠 생각은 전혀 없다고. 그러니 제발 무기는 쓰지 말아줘. 응?”

“그 얘길 어떻게 믿지? 네가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는 보장이 없잖아?”

“그건... 아, 알았어! 다 말할게! 내 이름이랑 내가 여기 온 이유까지 전부!”


소녀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던 유리는 그녀가 의외로 순순히 자신의 말을 따르자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굽힌 허리를 슬며시 펴고 팔짱을 꼈다. 당면한 위협이 사라지자 그제야 천천히 숨을 고른 소녀는 잠시 후 한결 차분해진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했다.


“난 넬리라고 해. 나이는 올해로 열다섯이야. 그리고 출신지는... 미안하지만 더 이상은 얘기해줄 수 없어.”

“하아? 너 말이야. 지금 네가 어떤 처지에 놓인 건지 아직 깨닫지 못한 거야?”

“그래도 안 돼. 내게서 억지로 원하는 정보를 캐낼 셈이었다면 이대로 포기하는 게 좋을 거야. 지금 당장 목이 달아난다 해도 가족이나 동료에게 해가 될 만한 얘기는 절대 하지 않을 거니까. 무엇보다 애초에... 그렇게 위험한 것 같지도 않은걸?”

“뭐라고? 너 무슨 짓을...”


넬리는 얘기를 끝마치자마자 뒤로 도약하며 공중제비를 돌았다. 유리는 넬리가 순간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자 즉시 허벅지에 찬 나이프를 뽑으려 했지만 그녀가 뛰어오른 위치에서 날카로운 무언가가 날아오자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유리가 서 있었던 자리엔 빳빳하게 곤두선 깃털 대여섯 개가 마치 두부 위에 칼을 꽂은 듯 바닥에 사선으로 깊게 박혀있었다. 아슬아슬하게 깃털 세례를 피한 유리는 곧바로 응전하기 위해 나이프 자루를 꽉 움켜쥐었지만 이내 뽑아드는 걸 포기했다. 이미 넬리가 그녀의 목덜미에 어디서 나타났는지조차 알 수 없는 길쭉한 검은 창을 바짝 들이밀고 있던 탓이었다.


“어머나, 이걸 어쩌나? 처지가 역전돼버렸네.”

“유리야!”


한 발짝 뒤에서 두 소녀가 아웅다웅하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유현은 파트너의 목숨이 위험해지자 퍼뜩 정신을 차렸지만 섣불리 움직이면 그녀의 목이 날아갈지도 모르는 아찔한 상황에 압도되어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유리는 더 이상 저항할 의도가 없다는 걸 나타내기 위해 나이프 자루에서 손을 뗀 후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너 도대체 뭐하는 애야?”

“좀 전에 네가 했던 얘기 그대로 돌려줄게. 지금 네가 어떤 처지에 놓인 건지 아직 깨닫지 못한 거야?”

“큭...”

“걱정 마. 너희들이 가만히 있어주기만 한다면 정말로 위해를 가할 생각은 없으니까. 이미 이렇게 창을 겨누고 있는 상황이 되어버렸으니 설득력이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네가 먼저 날 위협한 데에 대한 정당방위니 이 정돈 이해해주길 바라. 어차피 내 말을 믿는 건 너희의 자유니까 여기서 무사히 나가고 싶다면 허튼짓 말고 신중하게 생각하는 게 좋을 거야.”


넬리는 생글생글 미소를 지으며 발랄한 목소리로 더 이상 싸우고 싶지 않다는 의지를 표출했지만 그녀의 눈매는 여전히 차갑게 가라앉은 채 강렬한 위압감을 발산하고 있었다. 유현은 본능적으로 그녀가 지금껏 수많은 자들과 대적해온 한 마리의 노련한 맹수라는 걸 깨닫고 유리를 살리기 위해 서둘러 양팔을 들어 올려 항복의 뜻을 전했다. 유리는 이대로 수상하기 짝이 없는 넬리에게 굴복한다는 게 영 꺼림칙했지만 별다른 방도가 보이지 않아 결국 유현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후우... 알았어. 가만히 있겠다고 약속할게.”

“좋아. 잘 생각했어. 하지만 조금이라도 수상한 짓을 한다면 그 순간 이 창이 네 목을 꿰뚫게 될 거야. 그 점은 명심해둬.”

“그럴 생각 없어. 나도 여기서 허무하게 생을 마감하고 싶진 않거든. 자, 이제 우릴 어떻게 할 생각이야? 원하는 게 뭐지?”

“어떻게 할 생각 같은 건 없다니까. 그런 식으로 얘기하면 마치 내가 포로나 노예를 잡은 것처럼 보이잖아. 날 도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유리는 검은 창을 거둬들인 넬리가 처음으로 눈에 띄게 당황한 모습을 보이자 그녀를 좀 더 흔들어놓기 위해 아무런 미사여구 없이 솔직하게 대꾸했다.


“글쎄... 수상한 외국인 여자?”

“그런 거 아냐! 아니,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아, 몰라! 그냥 잠자코 내 얘길 들어!”


유리의 조롱을 듣고 분한 걸 애써 참고 있는지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작은 발로 애꿎은 돌부리만 건드린 넬리는 두어 차례 크게 심호흡을 한 뒤에야 침착함을 되찾을 수 있었다.


“내가 원하는 건 딱 하나뿐이야. 내 부탁을 들어줬으면 해. 목적만 이룬다면 바로 너흴 풀어주고 나가는 길도 알려줄게. 어때? 구미가 당기지 않아?”

“네 말대로라면 거절할 이유는 전혀 없겠지만 말이야. 지나치게 수지가 안 맞는 거 아닌가? 이쪽이 너무 유리한 조건이니까 도리어 의심되는데.”

“아니, 난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이쪽도 굉장히 막막한 처지인지라 너희의 도움이 절실하거든. 이 정도는 걸어야 너희들도 자기 일처럼 날 열심히 돕지 않겠어? 거기다 어차피 너희도 여기서 나가는 길을 찾고 있었던 모양이니 결국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잖아?”


유리는 여전히 넬리의 제안이 수상하다고 느끼고 있는지 마뜩찮은 기색을 지우지 못한 채 유현을 돌아봤다. 유현 역시 여러 모로 신경이 쓰이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어차피 넬리에 반기를 들 게 아닌 이상 그녀의 얘기를 거절할 순 없다고 생각해 고개를 끄덕였다. 넬리는 그들이 눈짓으로 합의를 이끌어낸 걸 보고 그 나이 또래의 소녀들처럼 해맑게 웃으며 손에 쥔 창을 몇 바퀴 회전시킨 뒤 옆으로 툭 던졌다. 그녀의 손을 벗어난 창은 잠시 허공을 가르며 기울어지다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넬리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상식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현상을 목도한 대가로 혼란을 겪고 있는 두 사람을 잠시 지켜보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푸흡... 아, 미안해. 여하튼 내가 생각한 게 옳다면 너희들,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여겨도 무방할 것 같네.”

“그래. 네 예상대로 우리가 필요로 하는 건 이 회랑을 빠져나가는 방법뿐이야. 네가 제대로 된 경로를 알려준다면 우리 입장에서도 딱히 손해랄 건 없겠지. 자, 이제 얘기해줘. 네가 말한 그 부탁이라는 건 도대체 뭐야?”

“난 지금 여기 어딘가에 숨겨진 어떤 방을 찾고 있어. 그 방이 어떻게 생겼는지, 또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는 알고 있지만 어디에 위치해있는지에 대해선 전혀 모르거든. 너희들은 내가 그 방을 찾는 걸 같이 도와줬으면 해. 그리고 가능하다면 내부에 있는 어떤 물건을 찾아내 입수하는 것까지 말이야.”


넬리의 이야기를 듣던 유리는 공화국 출신도 아닌 그녀가 어떻게 이런 미지의 구조물에 대해 손바닥 뒤집듯 속속들이 알고 있을 수 있는지 궁금해졌다.


“잠깐. 방금 숨겨진 방이라고 했지? 넌 여기가 어떤 곳인지 알고 있는 거야?”

“물론이지. 하지만 아직 자세한 건 알려줄 수 없어. 내게도 사정이 있거든. 물건을 손에 넣고 나면 그때 얘기해줄게.”

“그럼 네가 찾는 그 물건이란 게 뭔지 정도는 알려줄 수 있겠지?”

“미안. 그것도 무리. 매정하다 생각하진 말아줘. 어차피 그 방에 도달하면 그게 무엇인지는 바로 깨닫게 될 테니까. 아, 이런. 시간이 너무 지체됐네. 너희들도 빨리 여기서 나가고 싶지? 지금부터 너희들이 수색해야하는 구역을 나눠서 알려줄 테니 각자 흩어져서 서둘러 숨겨진 방을 찾도록 하자.”


작가의말

드디어 다음 편에 ‘그 인공지능’이 출연합니다. 기대해주세요.

정보) 유현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누군가에게 주먹 한 번 휘둘러본 적 없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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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h 1. 태동 (2) 18.04.12 144 0 10쪽
2 Ch 1. 태동 (1) 18.04.11 164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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