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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내가 내리는 녹슨 서고

인공지능과 첫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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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테리즘
작품등록일 :
2018.04.09 14:40
최근연재일 :
2018.05.09 18:14
연재수 :
1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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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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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28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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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 1. 태동 (完)

DUMMY

망토 속에 손을 집어넣은 넬리는 곧 누렇게 바랜 지도를 꺼내 바닥에 펼쳤다. 거대한 지하시설의 구조를 간략하게나마 구현시킨 조잡한 평면도 위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휘갈긴 글씨체가 빼곡히 메우고 있었다. 넬리는 손가락으로 지도 위에 큼지막한 원 3개를 그렸다.


“이렇게 세 군데로 나눌게. 이쪽은 내가 맡겠어. 남쪽은... 아, 그러고 보니 너희들의 이름은 아직 듣지 못했네. 이것도 나름 인연인데 알려주지 않을래?”

“유리야. 조유리.”


유리는 협조를 바란 주제에 자신의 목적조차 제대로 드러내지 않는 수상한 녀석에게 이름을 밝히는 게 영 석연치 않아 팔짱을 낀 채 냉담한 어투로 일관했다. 그 모습이 마치 먹이를 빼앗겨 잔뜩 토라진 다람쥐 같다고 느낀 넬리는 씩 웃으며 능글맞게 대처했다.


“유리라. 무슨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굉장히 예쁜 이름이네. 너는?”

“응? 아아, 난 신유현이라고 해.”

“가르쳐줘서 고마워. 어디 보자... 그럼 유현이가 남쪽, 유리가 북서쪽을 맡아줘. 수색이 모두 끝나면 이 자리에 모이도록 하자. 혹시라도 방의 입구나 숨겨진 문 같은 걸 찾으면 뭐든 좋으니 신호를 보내도록 해. 어차피 우리 말곤 아무도 없는 곳이니까 크게 소리를 질러도 전혀 문제없을 거야.”


말을 끝마친 넬리는 지도를 챙기곤 곧장 발을 돌려 아까 왔던 길로 빠르게 되돌아갔다. 얼마 있지 않아 모퉁이를 돈 그녀가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소리 없이 분통을 터뜨린 유리는 한쪽 발을 바닥에 세게 내리찍었다.


“아으, 얄미워! 저런 건방진 꼬맹이한테 치욕을 느끼게 되다니... 너도 문제야. 파트너가 적에게 협박을 당하고 있으면 말이야, 명색이 남자앤데 옆에서 도와주진 못할망정 뜯어말리거나 하다못해 주의라도 끌어야지. 그냥 멀뚱멀뚱 서 있으면 누가 도와줄 것 같아?”


유리의 원망 섞인 눈초리를 듬뿍 받은 유현은 괜한 불똥이 튀지 않도록 서둘러 사과했다.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그치만 내가 그때 넬리의 심기를 거스르는 행동이라도 했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모르는 거잖아. 아무리 봐도 평범한 여자애는 결코 아니었으니까.”

“하아... 그래그래. 잘 참았어. 그냥 해본 말이야. 나도 네가 걔를 상대로 뭔가 할 수 있었을 거란 생각은 전혀 안 해. 근데 이제 어쩔 거야? 정말로 넬리의 요구를 받아들일 거야?”

“별 수 없잖아. 어차피 우리도 여기서 나가려면 넬리의 도움이 필요한 건 사실이고...”

“잠깐만. 걔가 얘기한 그 방을 찾는 게 사실은 엄청나게 위험할 지도 모르는 일이란 건 생각 안 해봤어? 여긴 고대인들이 만든 곳이라고. 타국 사람이 눈독을 들일 만큼 중요한 무언가가 존재하는 방이라면 사람 목숨 하나둘쯤은 손쉽게 빼앗을 수 있는 무지막지한 트랩이 설치되어있을지도 모르잖아.”

“어차피 가능성은 반반이야. 정 위험할 것 같으면 그땐 잽싸게 도망치자고. 에제키엘 안에 숨어있으면 적어도 죽진 않을 테니까 말이야.”


유리는 잠시 턱을 괸 채 곰곰이 생각하다 이윽고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네 판단에 따를게. 어차피 우린 방의 위치를 찾기만 하면 될 뿐이고 굳이 그 방에 따라 들어갈 필요는 전혀 없는 거니까. 그래도 중간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여차하면 바로 에제키엘 쪽으로 뛰도록 해. 목숨만 붙어있으면 분명 길이 열리겠지.”

“그래, 명심할게. 그럼 이따 보자.”


갈림길에서 유리와 헤어진 유현은 넬리가 지시한 방향대로 천천히 회랑을 나아가며 주위를 꼼꼼히 살폈다. 하지만 최대한 빨리 방을 찾고 이 살풍경한 곳을 벗어나고픈 그의 소망과는 달리 삭막하기 짝이 없는 무채색의 복도는 그 끝이 어딘지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길게 이어져있었다. 유현은 오늘 밤엔 출구가 보이지 않는 기나긴 회랑 안에서 끝없이 헤매는 끔찍한 악몽을 꾸게 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을 지우지 못한 채 푹푹 한숨을 내쉬며 점점 아파오는 다리를 억지로 옮겼다.

얼마나 걸었을까, 기약 없는 수색에 지쳐 문을 찾는 걸 반쯤 포기한 채 터덜터덜 걷던 유현은 어느 순간 일체의 행동을 멈췄다. 뭐라고 확실하게 정의하기 힘든 조그마한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고 있었다. 유현은 혹시 근처에 유리나 넬리가 아닌 또 다른 누군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긴장 섞인 조바심에 최대한 발소리를 죽인 채 한쪽 벽에 몸을 밀착시켰다. 벽에 귀를 가까이 가져다댄 그는 예의 소리에 주의를 기울였지만 그것은 열 걸음 이상 이동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커지거나 작아지지 않고 일정한 간격으로 들려왔다.

숨을 죽인 채 한참 동안 그것이 무슨 소리인지 파악하려 애쓰던 유현은 이윽고 두 가지의 특기할 만한 사항을 알아낼 수 있었다. 하나는 그 소리가 분명히 누군가의 목소리라는 점,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것이 아무런 매질도 거치지 않은 채 그의 머릿속에 직접 울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자신이 생각해낸 다소 믿기 힘든 추론을 입증할 요소가 필요하다 생각한 유현은 일말의 두려움과 오늘 하루 잔뜩 쌓인 고단한 피로를 무릅쓰고 수색을 재개했다.

한참 동안 별다른 변화가 없던 그 목소리는 다음 모퉁이를 돌자마자 무슨 의미인지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급격히 커졌다. 유현은 단번에 그것이 누군가가 보내는 구조신호라는 걸 알아채고 한껏 속도를 올렸다. 놀랍게도 그 소리는 그가 양쪽 귀를 단단히 막아도 변함없이 또렷하게 들렸다. 어젯밤에 반 아이들이 휴게실에서 나눴던 섬뜩한 괴담들이 하나둘 떠올라 등골이 서늘해진 유현은 그 목소리가 고대인의 원혼이 인간을 잡아먹기 위해 유인하는 수단일지도 모른다는 괴이한 상상에 사로잡혀 잔뜩 어깨를 움츠렸다.

거의 달음박질치다시피 빠르게 발걸음을 옮기던 유현은 이 모든 것이 꿈이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목소리가 정말로 구조를 요청하는 신호일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해 수색하는 걸 그만두진 않았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점점 더 커진 목소리는 급기야 누군가가 귓가에 대고 속삭이는 느낌이 들 정도로 증폭됐다. 덩달아 다급해진 유현은 목소리에 온 신경을 집중하느라 지나쳐온 회랑이 점차 좁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제법 오랫동안 잔뜩 긴장한 상태로 걷고 뛰기를 반복하느라 눈앞이 노랗게 물든 유현은 눈앞의 모퉁이를 돌자마자 벽을 짚은 채 거칠게 헐떡거리며 숨을 들이마셨다. 지하 특유의 시원하면서도 축축한 공기가 폐를 가득 메우자 돌연 눈앞이 핑 돌면서 어지럼증이 느껴졌다. 이마를 부여잡은 채 머리가 맑게 갤 때까지 숨을 고른 그는 갑자기 뇌리를 스친 위화감에 고개를 홱 돌려 주위를 둘러봤다.

중앙에서 양손을 한껏 뻗으면 벽 근처에 닿을 정도로 회랑의 폭이 좁아졌다는 걸 뒤늦게 알아챈 유현은 금방이라도 창백한 복도 전체가 자신을 서서히 조일 것 같은 답답함을 느꼈다. 이런 데서 오래 있으면 없던 폐쇄공포증도 생길 것 같다는 불안한 마음을 애써 추스르며 주변을 살피던 그는 문득 좀 전에 든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모퉁이를 돌기 전까지만 해도 애타게 그를 부르던 의문의 목소리가 어느 순간 신기루처럼 사라져 그 이후로 전혀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본능적으로 이 근처에 넬리가 언급했던 그 방이 있을 거라 확신한 유현은 서둘러 두 손으로 벽면을 꼼꼼히 훑으며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는 입구를 찾았다. 그렇게 한참 동안 손으로 짚고 다녀도 결국 입구를 찾지 못하자 기운이 빠진 그는 허탈감을 이기지 못하고 털썩 주저앉았다. 바닥에 그득히 쌓여있던 오래된 먼지가 천장까지 치솟아 서서히 비산했다. 졸지에 먼지를 들이마신 탓에 폐가 얼얼할 정도로 한바탕 기침을 한 유현은 좀 전까지는 의식하지 못했던 어느 한 장소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자로 잰 듯 일정한 거리마다 배치되어있던 전등이 그곳에만 달려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 벽의 명도 또한 다른 곳과는 달리 살짝 어두웠다. 별달리 의식하지 않고 지나쳤다면 발견하지 못하는 게 당연할 정도로 미세한 차이였지만 자세히 보면 그야말로 무언가 숨겨져 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수상한 곳이었다. 유현은 당장이라도 벌러덩 누워 편히 쉬고 싶은 마음을 애써 억누른 뒤 서서히 몸을 일으켜 그 벽으로 다가갔다.

정황상 문이 위치해있을게 당연한 곳이었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문짝은커녕 문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게 여긴 유현은 이곳저곳을 쓰다듬듯 어루만지다가 문득 바닥과 맞닿은 어느 한 지점에서 손 하나쯤은 그 위에 거뜬히 올릴 수 있을 정도로 볼록 튀어나온 반구형 물체를 발견했다. 마치 물이 위에서 아래로 향하듯 자연스럽게 그 위에 손바닥을 가져다댄 유현은 갑자기 어디선가 들려온 덜컹거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런 틈새도 보이지 않았던 벽이 서서히 좌우로 벌어졌다. 저절로 열리기 시작한 문은 한참 동안 굉음을 내며 앞으로 밀려나오다 이윽고 잠잠해졌다. 사람 하나 겨우 들어갈 정도의 좁은 틈이 생긴 걸 확인한 유현은 그 안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밝고 선명한 빛이 새어나오자 고민할 새도 없이 무의식적으로 이끌려 들어갔다.

가장 먼저 유현의 눈에 띈 건 그 방의 정중앙에 위치한 거대한 관이었다. 구석구석을 환히 비추는 눈부신 에메랄드빛 광채 역시 그 관에서 비롯되고 있었다. 그 주위를 난생 처음 보는 기계들과 조그마한 도구들이 듬성듬성 메우고 있었다. 방에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한 유현은 조심스레 관을 향해 다가갔다. 좀 전까지만 해도 넬리에 대해 품고 있던 일말의 의심은 이미 머릿속에서 지워진지 오래였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서슴없이 관에 다가선 유현이 두 눈을 사정없이 어지럽히는 빛을 향해 손을 뻗은 순간 그 안에서 투박한 기계음이 울렸다.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가운데서도 미리 행동양식을 입력해둔 것처럼 기계적으로 뒷걸음질한 그는 덕분에 천장에 닿을 정도로 커다란 관이 아무런 조작도 없이 저절로 열리는 진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관 안에는 유현과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한 소녀가 눈을 감은 채 조용히 잠들어있었다. 그녀는 희고 부드러운 맨살이 그대로 드러난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그 위로 족히 허리까지 닿을 법한 아쿠아마린과 닮은 신비로운 빛깔을 머금은 탐스런 머리카락이 쏟아지듯 흘러내려 가볍게 찰랑이고 있었다. 그 너머에서 뻗어 나오는 인공적인 빛 속에 잠긴 소녀의 조그마한 입술은 그 고유의 색깔이 죽기는커녕 한층 부각되어 윤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숨이 턱 막혔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한 유현은 오로지 소녀에게만 시선을 고정시킨 채 멍하니 서있었다. 도저히 살아 움직이는 인간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한 소녀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그는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조차 잊어버릴 정도로 오랫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아니, 서 있었을 거라고 스스로 짐작했다. 정확히 언제인지 몰라도 어느 순간 눈을 뜬 그녀가 그를 마주볼 때까지는 눈썹 하나 깜박이지 않아 두 눈이 굉장히 쓰라렸다는 기억이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당신이... 절 깨운 건가요?”


작가의말

그동안 컨디션이 썩 좋지 못했던 데다가 사정이 생겨서 연재하지 못했습니다.

앞으로는 다시 정상적으로 꾸준히 연재하겠습니다.

덧) 이번 화가 1장의 마지막 편입니다. 다음 챕터의 제목은 바로 ‘키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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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h 1. 태동 (2) 18.04.12 144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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