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1화 존재이유10
김혁은 어떻게 해야 될까 생각했다. 민하진은 여전히 투덜거리다가 말했다.
“어떡하죠? 떠중이가 정말 실망할 거예요.”
민하진은 이제 진심으로 떠중이를 걱정하고 있었다.
“이들이 가겠다고 해도 그곳은 너무 먼 곳이야. 우리도 한참 날아왔는데 차로 가면 더 멀겠지. 좀비가 돌아다닐지 모를 어두운 곳으로 사람들을 끌고 가는 건 사실 좀 걸리긴 해.”
“그럼 떠중이네 부모님한테 전화해서 알리는 건 어때요?”
“이 사실을 알면 뛰쳐나와서 찾아가려고 할 거야. 하지만 그것도 너무 위험해.”
민하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혁은 두 경찰을 잠시 바라보았다. 정상적인 세상이라면 저들의 잘못이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나치게 비효율적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건 사실이고 이상한 일이지만.
“우리가 하자.”
“네? 뭐를요?”
“민중의 지팡이. 그거. 우리가 못 할게 뭐 있어?”
“어떻게 하시게요?”
김혁은 두 경찰의 뒷덜미를 가볍게 꾹 눌렀다 놓았다. 그들은 곧바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내부 CCTV는 의자에 걸쳐져 있는 쉰내 나는 수건을 들어 가렸다. 이제 모습을 드러낸 두 사람은 경찰서 내부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하진이 넌 컴퓨터로 한조 집이 어딘지 알아낼 수 있나 한 번 봐봐.”
“아무 정보도 모르는데 어떻게요?”
“실종자 명단 같은 거 찾아보면...”
“아, 네.”
민하진이 자판을 따닥거리며 진지하게 컴퓨터 여기저기를 뒤적여대기 시작했다. 그동안에 김혁은 두 경찰들의 제복을 벗겨냈다. 차 키도 챙겼다.
“와 찾았어요. 실종 년도로는 장한조란 이름이 한명 뿐이에요. 전화번호도 있어요. 근데 이건 10년 전 건데 아직 그대롤까요?”
“원래 실종자 가족들은 가족이 돌아올까 봐 이사도 못가고 연락처도 잘 변경 안 하지. 그들은 항상 기다리거든.”
뽑혀져 있던 전화선을 꼽자 전화벨이 갑작스레 울려대서 민하진이 움찔 놀라며 재빨리 전화기를 들었다 놓았다.
“아 깜짝이야.”
그러나 곧이어 또 다시 전화벨이 울려 다시 한 번 수화기를 올렸다 재빨리 놓는 동작을 하더니 곧 수화기를 들어 바닥에 내려놓았다.
“휴. 그래도 아직 사람들은 경찰을 찾나봐요.”
“기댈 곳이 없으니까.”
“근데 전화해서 뭐라고 하죠? 한조를 찾았지만 좀비 처리하듯 처리한다고 말 하면 믿을까요?”
부모라면 그것만으론 만족하지 않으리라. 다 썩어버린 시신이라도 보겠다고 달려올 게 분명했다. 그렇게 되면 또 다른 위험에 빠뜨리는 꼴이다. 자기 때문에 부모가 좀비에게라도 물리게 된다면 떠중이는 더 견디지 못할 게 분명했다.
“찾으러 오게 해선 안 돼. 우선 지금은 연락처가 유효한지만 확인해.”
“네.”
민하진은 흠흠 목을 가다듬고 알아낸 전화번호를 꼭꼭 눌렀다. 상대 쪽에서 재깍 전화를 받았는지 어른 목소리를 흉내내는 민하진의 목소리가 곧바로 시작됐다.
“여긴 xx 경찰섭니다. 장한조씨 부모님 되세요? ...아아 그렇군요. 네. 그런 건 아니고 혹시 여기 있는 주소지가 아직 유효하신가 해서 연락드렸어요. .... 아 네. .... 오래된 연락처들에 변경 사항이 있는지 전부 확인중이라서요. 요즘 많은 실종자들이 유전자 검사로 신원이 밝혀지고 있는데 연락처가 불명이라 연락을 못 하는 경우가 많아서요. .. 그쵸. 네. 오래된 거긴 한데 전수 조사중이라서요. 혹시 연락처가 변경되거나 하면 바로 연락주시고요.”
인사를 하고 끊을 타이밍에 민하진이 갑자기 소리쳤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내지른 ‘잠시만요,’는 민하진의 원래 목소리가 나와버렸다. 본인도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변조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가족분들은 모두 건강하시지요? 네. 네. 다행이에요. 경찰서 찾아오실 생각하지 마시고 부디 두 분 다 좀비 조심하시고요. 네. 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은 민하진은 눈물이 글썽거리는 눈으로 말했다.
“떠중이 엄마가 막 울어요. 혹시나 한조를 찾았냐고. 경찰한테 연락 받은 건 처음이라고. 잊지 않아줘서 너무 너무 고맙다고요.”
민하진은 말을 끝내고는 마침내 눈물을 툭툭 떨구어댔다. 그동안 김혁은 메모지에 주소와 전화번호를 메모했다.
“두 분 다 살아계시다니 그게 한조한테는 가장 큰 희소식이잖아. 그만 울고 가자.”
민하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닦아냈다.
벗겨낸 경찰복과 차 키를 가지고 김혁이 먼저 경찰서를 나가고 민하진이 문을 잠근 다음 투명하게 빠져나왔다. 좀비가 올지도 모르니 총은 그대로 두었고 핸드폰은 민하진이 아까 슬쩍 비밀번호를 누르는 걸 본 경찰의 핸드폰을 들고 나왔다.
그들은 경찰차를 들고 하늘을 날아 떠중이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떠중이는 폐가의 지붕에 오도카니 앉아 있었다. 경찰 대신 경찰차를 들고 나타난 두 사람을 발견하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몸을 일으켰다.
“이건 왜요? 경찰들은요?”
“그들은 못 와.”
“안전한 경찰서 안에 뻗어 계시지. 털 뽑힌 닭 꼴을 하고.”
민하진이 말을 끝내곤 킥킥거렸다. 떠중이는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민하진이 재빠르게 소식을 전했다.
“한 가지 좋은 소식은 있어.”
“뭔데?”
“너희 부모님은 두 분 다 무사하시대.”
“뭐?”
“내가 통화했거든.”
“진짜?”
떠중이가 화들짝 놀라며 눈을 반짝였다.
“뭐라고, 뭐라고 했는데?”
이젠 목소리까지 떨려나오기 시작했다.
“전화번호를... 우리 집에 ...”
떠중이는 다시 확인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민하진이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는 말했다.
“전화번호도 주소도 그대로더라고. 내가 경찰인 척 하고 전화했는데 아직 널 발견했다고는 안 하고 그냥 연락처 확인 차 전화했다고 했어. 너무 고맙다고 그러셨어. 두 분 다 무사하시대.”
떠중이의 눈가가 붉어지더니 금새 눈물이 고였다.
“그랬구나...”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는 떠중이에게 민하진이 말했다.
“선배님 생각엔 널 찾았다고 하면 여기까지 달려오시다가 큰일 당할지도 모르니까 우리가 수습하는 게 낫다고. 그래서 너희 부모님껜 유품이랑 영상을 보내주자는 거지.”
떠중이는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었고 민하진은 이제 경찰 제복을 들어 이리저리 살펴보며 말했다.
“이 옷은 나한텐 좀 많이 헐렁하겠는데?”
잠자코 있던 떠중이가 말했다.
“줘, 내가 입을게.”
민하진이 떠중이를 바라봤다.
“응? 너가? 이거 다 영상 찍을 거라니까. 그래서 핸드폰도 갖고 왔어. 네가 찍어야 잘 나오지. 너희 부모님이 볼 거니까.”
“됐어. 딱 봐도 그건 엄청 크겠는데. 내 얼굴 안 나오게 뒷모습 찍어. 선배님 얼굴도 안 나오게 조심하고.”
“응.”
민하진은 김혁을 한 번 바라보곤 경찰복을 떠중이에게 넘겨줬다.
폐가 안에서 경찰복으로 갈아 입고 나온 김혁과 떠중이를 보곤 민하진이 탄성을 질렀다.
“와, 은근 멋져요. 둘 다 너무 너무 잘 어울린다. 자 그럼 찍어볼까? 너무 퍽퍽 퍼내지 말고 진짜 경찰들처럼 하는 거예요? 이제부턴 찍을 거니까 목소리 내지 말고. 하이 큐.
민하진이 제법 연출가처럼 소리치곤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김혁과 떠중이는 삽으로 땅을 파내기 시작했다. 손전등과 삽은 날아오는 길에 민하진이 어느 집 허름한 창고에서 슬쩍해온 거였다. 정말 인간처럼 한 삽 한 삽 정성들여 파느라 땅 파는데 시간은 좀 걸렸지만 그리 깊이 묻어두지 않았기에 금새 떠중이의 몸이 드러났다.
어느 순간 김혁은 삽 끝에 걸리는 뼈를 느끼고 삽 대신 손으로 흙을 제껴가며 파내기 시작했다. 몸의 일부가 드러난 이후로는 떠중이는 거의 삽질도 멈췄고 손도 못 대고 있었다. 자기 무덤을 파는 저승사자는 아마 떠중이가 최초이지 않을까?
떠중이의 반쯤 썩은 몸이 온전히 드러나자 떠중이의 눈물이 그 위로 툭툭 떨어졌다.
“민순경, 여기 좀 잘 찍으라고.”
경찰 연기를 하는 김혁의 변조된 목소리에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민하진이 시체를 꼼꼼히 훑어 찍었다. 오므린 손을 펼쳐서 그 안의 단추도 같이 찍었다.
떠중이의 몸을 땅속에서 들어내고나서야 영상 찍기는 멈췄다.
“끝. 자 이제 말 해도 돼요.”
민하진이 영상을 다시 재생시켜 보는 사이 김혁과 떠중이는 잠시 바닥에 놓인 떠중이의 몸을 바라보았다. 낯설고 음습한 곳에서 홀로 조용히 10년 동안 썩어가던 가엾은 몸뚱이를.
어디선가 꽃내음을 실은 바람이 불어와 썩은 흙내와 부패한 살의 냄새를 날려가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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