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직업, 특히 소설을 쓰고 싶다는 분들에게 자주 듣는 질문 중 하나가 바로 작법서를 추천해달라는 것입니다.
작법서.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저는 작법서 무용론을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가끔 보면 작법서 예찬론을 넘어서 작법서를 절대 진리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물론 작법서가 아주 무가치한 것은 아닙니다. 읽어두면 분명히 '어느 정도' 도움은 됩니다. 딱 거기까지입니다.
제가 후배들에게 즐겨 쓰는 말이, 산 정상에서 외치는 소리는 산 아래의 군중들이 외치는 소리보다 멀리 간다, 입니다.
작법서의 저자는 대부분 베스트셀러 작가들입니다.
즉, 그들의 이름을 빌린 작법서는 대단히 유혹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죠.
하지만 개인의 경험, 축적된 지식은 단지 책을 읽는다고 해서 내 것으로 할 수 있는 영역은 결코 아닙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점은 많은 사람들이 소설 쓰기/글쓰기를 단지 지식의 영역으로만 치부한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지식은 보고 읽는 것만으로도 터득할 수 있습니다. <앎>이라는 것이 그렇죠.
그러나 소설 쓰기, 글 쓰기는 엄연히 <문예>입니다. 예술의 한 분야입니다.
조소를, 회화를, 작곡을, 기악을 단지 개론서만 읽고 터득하고 그 분야에서 일가를 이룰 수 있을까요?
사실 작법서는 출판사의 상술에서 탄생한 <기획 상품>입니다.
실제로 많은 작가들이 출판사로부터 작법서 제안을 받으면 난색을 표합니다.
왜냐, 대부분의 작가들은 자신의 작법 스타일을 정의내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저는 어떤 분에게 소설을 구상할 때 어떤 식으로 하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덧붙이길 세세한 플롯을 짜는지, 즉흥적으로 써내려가는지를 묻더군요.
그런데 소설 쓰기라는 게 어떤 정형이 있는 게 아니라서 그때마다 쓰는 방식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작품은 정말로 강렬한 영감이 뇌리를 때려서 신열을 앓듯 무의식중에 써내려가기도 하고,
또 어떤 작품은 오랫동안 도면을 설계하듯 치밀한 구성을 한 다음에 차근차근 쓰기도 합니다.
문제는 작법서라는 게, 글 쓰기를 정형화시키고 어떤 형식으로 규정하는 방식을 채용하다는 겁니다.
사실 그걸 쓰는 저자 역시 그 방식대로 글을 쓰지 않음에도 말입니다.
저는 그래서 정말로 이 일을 시작하는 각오라면 작법서를 멀리하라고 권합니다.
작법서는 약이 되기보다는 독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자기 것을 만드는 과정은 스스로 체득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작법서를 읽고 감을 잡는 건 나쁘지 않겠지만 거기에 의존하는 건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글쓰기란 100인 100색, 만인 만색, 저마다 자기 만의 방식을 찾는 게 정답입니다.
001. 렌아스틴
12.12.30 00:10
그렇군요. 작법서를 보려고 했는데... 또 고민에 빠져듭니다.ㄷㄷㄷ
002. 강춘봉
12.12.30 12:42
서점가서 찾아보고 아 이거 사볼까 고민했는데. 니르바나님의 말씀을 들으니 고민해봐야 할 문제 같네요!
003. 니르바나
12.12.30 13:21
아니요, 한번쯤 읽어보는 건 괜찮습니다.
다만 맹신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004. Lv.21 v마늘오리v
13.06.12 23:55
좋은 글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