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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유니버스

두억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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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작품등록일 :
2012.10.08 21:24
최근연재일 :
2017.03.14 08:26
연재수 :
19 회
조회수 :
15,667
추천수 :
256
글자수 :
97,337

작성
16.12.23 02:35
조회
790
추천
15
글자
14쪽

Target. 01: 도화선 (5)

DUMMY

“이봐, 누구한테 얼마를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그거에 두 배, 아니 세 배를 주겠어. 그것도 빳빳한 현찰로 챙겨줄게. 나, 돈 많아. 어때? 이 정도면 너한테도 나쁘지 않은 조건이잖아. 당장 은행 가서 돈을 뽑아다준다니까.”

표적은 놀라울 정도로 침착한 목소리로 태일에게 흥정했다. 반성을 모르는 부류들이 자주 보여주는 모습이다. 돈이면 뭐든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대단한 착각. 태일은 표적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때, 괜찮은 조건이잖아, 응?”

표적은 전기코드에 묶인 두 손을 가볍게 들며 자기 제안을 수락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똑바로 서지 못하고 구부정한 자세로 있는 건 칼에 찔린 오른발 때문이다. 핏자국을 남기지 않으려고 오른발에 비닐봉지를 씌어놨더니 들썩거릴 때마다 부스럭 소리가 났다. 표적은 아픈 발로 용케도 군소리 없이 1층까지 내려왔다. 물론 토가레프 덕분이었다. 내려올 때는 골반 바로 위에 총구를 박아줬고 지금은 배를 겨누고 있다. 이대로 방아쇠를 당기면 총탄이 살과 뼈를 헤집고 들어가 간을 박살낼 것이다.

태일이 계속 침묵으로 일관하자 초조해졌는지 표적이 입술을 핥았다.

“뭐야, 그걸로 부족해? 원하면 더 줄게. 가격을 말해봐. 얼마면 만족하겠어? 어이, 서로 좋은 게 좋은 거잖아. 그러지 말고 가격을 불러봐.”

표적이 계속 채근했지만 태일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바라만 보았다. 자신만만하게 태일의 얼굴을 쳐다보던 표적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졌다. 비로소 흥정이 통하지 않는 상대라는 것을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태일은 에쿠스 짐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라고 턱짓을 했다.

표적은 잠시 주저하다가 자신을 향하고 있는 총구를 의식했는지 짐칸 안으로 순순히 들어갔다.

“나는 이 일을 할 때마다 ‘너희들’에게 세 가지를 기대해. 첫째, 절대로 나를 두려워해라, 둘째, 절대로 희망을 품지 마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셋째, 절대로 반성하지 마라. 그래야 나도 기쁜 마음으로 이 일을 마무리할 수 있으니까.”

표적은 태일의 서슬 퍼른 기운에 눌려 말문이 막혀버렸다.

태일은 박스테이프로 표적의 입을 단단히 틀어막고 나서 짐칸 문을 닫았다. 그러고는 주변을 살피면서 운전석에 올라탔다.

다행히 목격자는 없었다.

태일은 서둘러 시동을 걸고 에쿠스를 몰아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날은 여전히 어두웠다. 동이 트려면 아직도 한두 시간은 더 있어야한다.

태일은 내비게이션을 켜고 큰길로 바로 빠져나가는 경로를 찾았다. 공사가 한창인 아파트 재건축 현장을 가로질러 외곽으로 빠지는 도로로 진입했다.

통행하는 차량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버스는 아직 첫차가 다니기엔 이른 시간이고, 손님을 찾는 빈 택시들만 간혹 보였다.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속도를 높였다. 미리 위치를 숙지해둔 단속카메라가 가까워지면 브레이크를 밟아 잠시 속도를 줄였다가 사각으로 들어가면 지체 없이 속도를 올렸다. 그렇다고 캄캄한 밤에 일일이 눈으로 카메라 위치를 확인하는 건 몹시 피곤한 일이다. 카메라와 카메라 사이의 간격을 알고 있으면 언제 브레이크를 밟고 언제 속도를 올리면 되는지 가늠할 수 있다. 눈으로 확인해야하는 것은 단속카메라가 아니라 속도계다. 관건은 리듬이다.

태일은 단조롭고 일정한 리듬을 유지하면서 페달들을 번갈아 밟았다 떼기를 반복했다. 이윽고 서울을 빠져나와 교외로 접어들자, 도로 위를 달리는 차량은 에쿠스가 유일했다.

태일은 정적이 거슬렸는지 오디오를 켰다.

FM라디오는 교통방송 주파수에 맞춰져 있었다.

디제이의 선곡이 마음에 들지 않아 라디오를 끄고 CD플레이어를 켰다. 익숙한 전주곡에 이어 루이 암스트롱이 <What a Wonderful World>를 부른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고 태일은 자기도 모르게 실소를 터뜨렸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이라니. 표적의 고상한 음악 취향이 태일을 웃게 만들었다. 너란 쓰레기는, 참 아름다운 세상에서 살았던 모양이군. 하지만, 이제 곧 진짜 아름다운 세상을 만끽하게 될 테니 기대하고 있어.

트랙이 한 차례 돌아갈 때쯤, 목적지에 거의 도착했다. 휴대전화를 꺼내 단축번호 44를 눌렀다. 단축번호 44는 매번 주인이 바뀐다. 신호음이 두어 번 울리고 나서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거의 다 왔습니다. 몇 분 후면 도착할 겁니다.”

태일이 용건만 간단히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대답을 들을 필요는 없었다. 단축번호 44번은, 태일에게 일을 맡긴 의뢰인의 연락처다.

30미터 전방에 표지판이 보였다. 태일이 가려는 목적지다. 핸들을 꺾어 표지판이 가리키는 샛길로 빠졌다. 포장도로는 금세 사라지고 좌우로 울창한 숲에 둘러싸인 한적한 오솔길이 나타났다. 조금 더 들어가자 통나무로 지은 2층 건물이 숲 한가운데 외따로 있었다.

태일은 도착했다는 신호로 경적을 두 번 울렸다.

건물 안에서 호리호리한 청년이 휠체어를 밀고 나왔다. 휠체어엔 뼈만 앙상하게 남은 초로의 노인이 타고 있었다.

태일은 그들 앞에 에쿠스를 세웠다.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려 두 사람에게 가볍게 목례를 했다. 두 사람도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찾는 덴 어렵지 않으셨나요?”

청년이 물었다.

태일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짐칸을 열고 표적을 끌어냈다.

표적은 다친 오른발 때문에 제대로 서질 못하고 휘청거리며 주저앉았다. 그대로 두면 파상풍에 걸릴 지도 모를 일이지만 어차피 그에겐 남아있는 시간이 별로 없다. 표적은 고개를 들고 두리번거리다가 두 사람을 발견하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두 사람을 알아보는 눈치였다. 이제야 상황파악이 되는 모양이었다.

“윤형필, 이 개자식!”

청년이 분을 참지 못하고 표적에게 달려들어 가슴팍을 걷어찼다. 표적은 두 손을 결박당하고 발까지 불편해서 미처 피하지도 못하고 뒤로 나자빠졌다. 태일은 조용히 뒤로 물러서서 관망했다. 태일이 맡은 의뢰는 여기까지였다.

청년이 표적에게 미친 듯이 발길질을 하는 동안, 태일은 눈을 돌려 휠체어에 앉아있는 노인을 바라보았다.

노인은 초점 없는 눈으로 청년과 표적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입술을 바르르 떨며 뭔가를 말하려는 것 같았다. 팍삭 늙어버린 외모와는 달리 이 남자의 나이는 겨우 쉰한 살이었다. 표적에게 모든 것을 빼앗겨 이렇게 정기가 모두 고갈된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소령의 설명에 따르면 그는 꽤 탄탄한 중소기업체를 경영하던 사장이었다.

중국 진출 기회를 잡고 사업 확장을 모색하다가 경기 침체로 은행권 대출이 어려워지면서 새로이 자금줄을 찾던 그에게 표적이 접근했다.

그런데 기회라고 생각했던 중국 진출은 사실 표적이 교묘하게 꾸민 덫이었다. 존재하지도 않는 페이퍼 컴퍼니를 꾸며놓고 사채까지 빌려 무리하게 투자를 하게 만든 것이다.

의뢰인이 투자한 돈을 몽땅 챙긴 표적과 공범은 계약 체결을 일주일 앞두고 페이퍼 컴퍼니를 없애버렸다.

그리고 표적은 대출금을 갚으라고 의뢰인을 압박했고, 결국에는 그의 모든 재산을 갈취했다. 뒤늦게 표적의 교묘한 덫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의뢰인은 그 충격으로 중풍에 걸려 쓰러져버렸다. 경찰에 신고를 해봤지만 표적의 짓이라는 걸 입증할 증거가 없었다. 설상가상,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식당에서 일을 하던 의뢰인의 아내는 퇴근길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의뢰인과 아들이 ‘스틱스(styx)’를 통해 일을 의뢰한 것은 지난주 월요일이었다. 그들은 아들의 학비로 쓰려고 차명계좌에 몰래 숨겨둔 재산을 사례비로 내걸었다. 복수만 할 수 있다면 그까짓 돈은 필요 없다고 했다. 의뢰를 받고 소령은 곧바로 표적의 정보 파악에 나섰다. 그리고 먼저 공범이었던 사기 전과8범의 홍진수부터 찾아냈다.

소령이 알아낸 바로는 홍진수는 중국 심천에 아파트를 구입하여 현지처까지 두고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잠잠해질 때까지 중국에서 지낼 요량이었을 것이다. 소령은 예의 그 불가사의한 정보수집 능력을 발휘하여 어렵지 않게 홍진수의 아파트를 찾아냈다. 무려 한화로 16억에 달하는 초호화 아파트였다. 뒤가 꽤나 구렸던지 홍진수는 현지 건달들을 경호원으로 고용해서 집단속을 단단히 했다. 다행이라면 삼합회 같은 조직원이 아니라 그냥 동네 건달들을 고용한 덕분에 후유증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지난주 목요일, 태일은 심천으로 가서 홍진수의 미간에 9밀리 탄환을 박아주고 왔다. 그리고 그의 최후를 사진으로 담아 의뢰인에게 확인시켰다. 쪼잔하게도 겨우 돈 몇 푼 안기려고 안일한 선택을 한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표적, 윤형필이었다.

홍진수와 마찬가지로 거금을 챙긴 표적은 일부러 한국을 떠나지 않았다. 갑자기 출국하려고 부산을 떨면 자신에게 큰돈을 들어왔다는 걸 떠벌이는 셈이기 때문이었다. 표적에겐 생각보다 적이 많았다. 그래서 당분간은 몸을 사리다가 기회를 엿봐서 일본으로 떠날 계획이었다.

태일은 표적이 축구광이라는 것에 착안해서 중계가 잡힌 날을 디데이로 잡고 그 계획을 의뢰인에게 알려주었다.

그런데 의뢰인의 아들이 자기 손으로 직접 표적을 처리하고 싶다고 했다. 아마추어에게 처리를 맡기는 건 현명한 일이라고 할 수 없지만 이번만큼은 예외적으로 의뢰인의 생각을 존중해주기로 했다. 대신에 태일이 마지막까지 남아서 뒤처리를 돕는 걸로 합의를 보았다.

태일은 말없이 청년의 복수를 지켜보았다.

의뢰인의 아들은 자기 생각해낼 수 있는 가장 고통스러운 방법을 선택했다. 청년은 태일이 도착하기 전에 미리 파둔 깊은 구덩이에 표적을 밀어뜨렸다. 어림잡아서 깊이가 대략 2미터는 될 것 같았다. 건물로 들어간 청년은 안에서 뭔가가 꿈틀대고 있는 포대자루를 짊어지고 나왔다. 그걸 보고 표적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미친 듯이 몸부림쳤다.

청년은 무표정한 얼굴로 포대자루를 열어 안에 있는 것을 모조리 구덩이에 쏟아 부었다. 길고 시커먼 끔찍한 것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뱀들이었다.

그것도 하나같이 맹독을 품고 있는 독사. 표적이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을 치다가 독사 한 마리를 밟았다. 그러자 약이 바짝 오른 독사가 머리를 쳐들더니 표적의 다리를 물었다. 그것을 신호로 다른 독사들도 표적에게 달려들었다.

테이프로 입을 봉했기 때문에 표적은 비명을 지르지도 못하고 눈을 까뒤집으며 경련했다.

가만히 지켜보던 청년은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그냥 종이가 아니라 의뢰인이 표적에 돈을 빌리면서 작성한 차용증 사본이었다. 청년은 불붙은 종이를 구덩이에 떨어뜨렸다. 그

때 신음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의뢰인이 구덩이로 손을 뻗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한 시간 후, 의뢰인의 아들이 구덩이를 메웠다. 이 별장과 부지는 원래 의뢰인의 소유였다. 지금은 표적의 명의이긴 하지만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기 때문에 누군가가 이곳에 일부러 찾아올 일은 거의 없다. 거기다가 삼림보호지역이라 수십 년간 그린벨트로 묶여있었고, 앞으로도 해제될 일은 요연하다.

의뢰인의 아들이 태일에게 허리를 숙였다. 의뢰인도 몸을 힘겹게 가누며 태일에게 인사했다. 이제 헤어질 때다.

그리고 서로 만날 일은 없을 것이다.

태일은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는 먼저 차에 올라탔다. 돌아가면 에쿠스는 소령을 통해 ‘업자’에게 넘길 것이다. 이런 차량을 전문적으로 해결하는 업자에게.

어느덧 동이 트고 있었다.

CD플레이어를 켰다.

스피커에선, 다시 루이 암스트롱이 예의 걸쭉한 목소리로 부르는 <What a Wonderful World>가 흘러나온다.

태일이 다소 실소했다.

아름다운 세상?

그런 건 이상주의자들의 바람일 뿐이다.

세상은 정글이다.

약육강식.

경쟁 사회라는 건, 결국 먹고 먹히는 관계라는 이야기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살아남기 위해선 누군가를 이기거나 짓밟아야한다. 윤리, 도덕적 가치, 사회적 규범, 무엇으로 포장을 한다고 해도 그 단순한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구도 함부로 가벼이 입에 올리지 않는다.

그리고 때로는 자기 잇속을 채우려고 최소한의 ‘선’을 넘는 것조차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 쓰레기들이 있다.

많다, 그것도 아주 많이.

양심의 가책?

그런 놈들에겐 돈이나 자기 욕심보다 우선하는 가치는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 하이에나 같은 놈들에게 갈취당하고 있다.

재산, 생명, 인권. 놈들은 취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 가리지 않는다. 놈들에게 모든 걸 빼앗긴 사람들은 누구나 복수를 꿈꾼다. 어떤 사람은 법에 호소할 테고, 또 어떤 사람은 신을 찾는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사형(私刑)을 생각하기도 한다. 당한 만큼 갚아준다. 아니, 그 이상으로. 빼앗겨 본 사람이라면 그 심정을 잘 안다.

최고의 복수는 용서라는 말이 있다.

다, 개소리다.

세상엔, 용서받지 못하는 쓰레기가 너무 많다.

심장이 짓이기진 사람에겐 복수만이 유일한 치료다.

그러나 힘없는 사람은 그것마저 꿈꾸기 어렵다.

안타깝게도 그 쓰레기들은 악랄하고 거리낌 없이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그러기에 태일 같은 존재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태일도 역시 한때 복수를 꿈꿨었고 그것을 이루었다.

천태일, 그는 복수 대행자다.

두억시니라고 불리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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