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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유니버스

두억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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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작품등록일 :
2012.10.08 21:24
최근연재일 :
2017.03.14 08:26
연재수 :
19 회
조회수 :
15,620
추천수 :
256
글자수 :
97,337

작성
16.12.23 02:12
조회
827
추천
14
글자
12쪽

Target. 01: 도화선 (4)

DUMMY

유흥가를 밝히던 화려한 네온이 하나둘 꺼지기 시작한다. 그러자 잠시 밀려나있던 어둠이 다시금 일어나 거리를 야금야금 집어삼켰다.

해가 짧아진 탓에 동이 트기까진 아직 시간이 남았다.

마지막까지 남은 변두리 유흥업소의 간판도 마침내 불을 껐다. 거리는 이내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적막이 감도는 컴컴한 어둠속에서, 길고양이 한 마리가 폭이 한 뼘도 채 되지 않는 비좁은 옥상 난간 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유유히 걸어간다.

흰색과 밤색, 그리고 검정색이 거의 균등한 비율로 얼룩무늬를 이루고 있는 고양이였다.

꼬리를 꼿꼿이 세우고 우아한 몸짓으로 걸음을 옮기던 고양이는 갑자기 우뚝 멈추더니 눈을 가늘게 뜨며 나직이 울음을 토했다.

고양이의 시선이 닿는 곳. 4, 5미터 전방.

달랑 트렁크 팬티 한 장만 걸친 헐벗은 오석태가 두 손을 등 뒤로 묶인 채 상반신을 난간에 걸치고 있었다.

조금만 앞으로 쏠려도 자기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십 수 미터 아래로 곤두박질칠 것처럼 위태롭게 보였다. 단단한 콘크리트 바닥 위로 떨어지면 머리가 수박처럼 박살나거나 운이 좋아도 최소한 어디 한 군데는 부러질 것이다.

잔뜩 겁에 질린 오석태는 입에 재갈을 물고 있어 비명을 지르지 못하고 끙끙거리기만 했다.

그때 어둠속에서 빨간 불빛이 나타나 위아래로 천천히 움직였다.

담뱃불이었다.

이윽고 훅, 하고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누군가가 오석태 곁으로 다가왔다.

그는 오석태 입에서 재갈을 풀어주고 대신에 담배를 물렸다.

거기까지 구경하던 고양이는 어떤 위협이라도 느꼈는지 날렵하게 난간에서 내려와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어때, 시원한 새벽공기를 마시니까 정신이 맑아지지?”

영준이었다. 피식 웃고는 난간에 엎어져 있는 오석태에게 다가가 엉덩이를 툭 건드렸다. 그것만으로도 오석태는 깜짝 놀라 몸을 움찔거렸다.

“그래, 생각이 좀 바뀌었나.”

오석태는 현재 지명수배를 받고 있는 조직폭력배다.

스무 살 무렵에 육촌관계인 조직폭력배 오정태를 따라다니면서 건달 세계에 처음으로 발을 들였다.

그러다가 십여 전에 오정태가 세력다툼에서 밀린 뒤로 조직을 옮겨 현재 마포 공덕동 일대에서 암약하고 있는 폭력조직 일명 ‘마포21세기파’의 행동대장을 하고 있다.

천성이 포악한 그는 아파트 분양사업의 이권을 독차지하려고 건설회사 사장을 납치감금하고 협박과 폭력을 휘두른 혐의를 받고 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영준이 그를 찾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정말로 아는 게 없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모른다고요. 믿어주십시오.”

두 손도 묶여있고 허둥대며 말하느라 입에 물고 있던 담배가 아래로 추락했다. 담배는 시커먼 어둠속에서 한참이나 떨어지더니 바닥에 부딪히자마자 빨간 불똥이 사방으로 튀었다가 이내 사라졌다.

오석태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조금만 방심해도 자신도 똑같은 처치가 된다는 걸 새삼 깨달은 모양이었다.

“아는 게 없다고······.”

영준은 곤란하다는 듯 머리를 벅벅 긁으며 중얼거렸다. 바지주머니에 손을 넣어 뒤적이다가 지포라이터를 꺼내들었다.

“진짜로 모르냐? 허어, 이거 큰일이네. 아는 게 있어야 하는데 어쩌나.”

딸칵딸칵. 지포라이터 뚜껑을 열었다 닿기를 몇 차례 반복하더니 이내 불을 켜서 그 상태로 난간에 내려놓았다.

노란 불꽃이 바람에 흔들렸지만 꺼지진 않았다.

영준은 라이터를 슬쩍 밀어 오석태의 옆구리로 바짝 붙였다. 뜨거운 열기가 전해지자 오석태는 몸을 움찔거렸다가 하마터면 중심을 잃고 난간 아래로 떨어질 뻔했다. 화들짝 놀란 그의 입에서 새된 소리가 새어나왔다.

“흐익! 살려주십시오, 형사님. 저는 정말 아무것도 모릅니다. 진짭니다. 제발, 제발 살려주십시오.”

“야야, 진정해. 누가 널 죽인다고 했냐. 그냥 궁금한 게 있으니까 알려달라는 거잖아. 그게 뭐 어렵다고 그래. 너 진짜로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잖아.”

그렇게 말하며 영준은 지포라이터를 조금 더 밀었다. 활활 타오르는 노란 불꽃이 옷을 태울 수 있을 만큼 가까워졌다.

“그건······.”

오석태는 입술을 꽉 깨물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영준을 바라보았다.

“백창화, 그 새끼 지금 어디에 있냐? 말해봐, 넌 알고 있잖아.”

“그걸 말하면 저는 죽습니다.”

오석태가 꺼져가는 목소리로 애원했다.

영준이 피식 웃었다.

“말 안하면 지금 죽을지도 몰라.”

“형사님, 제발······.”

오석태가 울먹이며 애원했다.

영준은 혀를 차더니 이번에는 지포라이터를 다시 옆구리에 확 들이밀었다. 불꽃에 닿은 옷이 순식간에 까맣게 그슬렸다.

“씨발 새끼야, 똑똑히 말해. 내가 무서워, 아니면 그 되놈이 무섭냐?”

살이 타는 냄새가 났다. 하지만 달아날 공간이 없었다. 버둥거리다간 십 수 미터 아래로 떨어지고 만다. 더는 버티는 건 무리였다. 애초에 의리 같은 건 없었다. 포기는 빠를수록 좋다는 걸 오석태는 잘 알고 있었다. 이제 백기를 들 때가 왔다.

“말, 하겠습니다.”

오석태는 거의 울 것 같은 얼굴로 대답했다.

영준은 흡족하고 웃으면서 지포라이터 뚜껑을 덮었다. 그러고는 라이터를 다시 주머니에 넣고 나서 손가락으로 오석태의 관자놀이를 콕콕 찔렀다.

“머리가 아주 나쁘진 않구나. 진작 이렇게 나왔으면 서로 얼굴 붉히지도 않고, 너도 얼굴에 멍들 일도 없었잖아. 안 그래? 사람은 말이야, 서로 대화를 해야지. 꼭 몽둥이로 때려야 말을 들으면 되겠냐. 좋아, 이제 아는 걸 말해봐.”

영준은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오석태를 난간에서 내려주진 않았다. 아직 칼자루를 쥐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주지시키기 위해서였다. 오석태도 수긍하고 있는지 내려오겠다거나 내려달란 소리를 하지 않았다.

“저도 직접 얼굴을 본 건 아닙니다. 최만기라고 부천에서 하우스랑 냄비 장사하는 놈이 있는데, 항상 그 자식을 통해서 백창화와 연락을 주고받았습니다.”

“최만기라고? 연락처는?”

“휴대폰에 있습니다. 머리가 나빠서 번호를 외우진 못합니다. 단축번호는 18번이고요.”

“그래? 최만기랑 백창화는 무슨 관계야? 단순한 얼굴마담은 아닐 거 같은데.”

영준이 다시 물었다.

“그게, 최만기가 북쪽 출신입니다.”

“북쪽? 그럼 북한?”

수첩을 꺼내 받아 적던 영준은 고개를 갸웃하며 오석태를 쳐다보았다. 장시간 고개를 숙이고 있느라 피가 몰려서 오석태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호흡도 거칠었다. 영준은 난간에서 오석태를 끌어내렸다.

“감사합니다.”

오석태가 넙죽 고개를 숙였다.

“됐고. 방금 최만기가 북쪽 출신이라고 했지? 그럼 탈북자라는 건가?”

“예, 최만기는 탈북잡니다. 2004년도에 밀항선을 탔고 들어왔는데, 그때 중국에서 도움을 준 사람이 백창화라고 들었습니다. 저도 정확히는 모르는데 최만기가 무슨 8군인가 뭔가 하는 특수부대 출신이랍니다.”

“흠, 북한8군단을 말하는 모양이군. 흑사회 향주랑 특수부대 출신의 탈북자라, 재미있는 조합이인걸.”

영준은 흥미롭다는 듯 중얼거리며 듬성듬성 자란 턱수염을 매만졌다.

“예, 저도 잘은 모르지만. 암튼 그게 구라는 아닌 거 같았습니다. 작년 봄엔가, 그놈 하우스에서 기술자 몇 놈이 장난을 치다가 걸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새끼들이 만일을 대비해서 칼잽이를 데리고 있었는데 ‘목포 버마제비’라고 이 바닥에선 제법 알려진 놈이었습니다.”

오석태는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또 언제 난간에 매달리게 될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버마제비(사마귀의 다른 말)라니, 무슨 무협지도 아니고 별명 한 번 화려하군.”

영준이 쓰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독고다이로 뛰는 놈인데 손이 진짜 빨라서 아차 하는 순간에 손모가지고 발목이 그냥 나가버립니다. 그래서 큰 조직 식구도 어지간하면 그놈하고는 시비를 붙지 않습니다. 그 새끼한테 당해서 병원신세 진 놈이 한둘이 아니거든요. 솜씨도 솜씨지만 성깔이 아주 막장이라서 수틀린다 싶으면 칼부터 뽑고 보는 새낍니다. 근데 그 무시무시한 놈이 칼도 뽑아보지 못하고 최만기에게 당했습니다. 저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요. 진짜 번갯불 같았습니다. 최만기 손발이 휙휙 움직이니까 그냥 맥없이 고꾸라지더라고요.”

오석태는 갑자기 신이 나서 떠들어댔다.

“그래서 최만기랑 백창화가 대체 어떤 관계라는 거야?”

자꾸 이야기가 옆으로 새자, 영준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다그쳤다.

“예, 그게 그러니까 백창화가 밀항만 도와준 게 아니라 여기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자금을 대준 모양입니다. 잘은 모르겠는데 둘이서 무슨 형제인지 뭔지 맺었다고 들었습니다.”

“최만기도 흑사회에 가입했다는 건가?”

영준은 수첩에 적다말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럼 최만기를 만나려면 어디로 가면 되냐? 하우스도 하고 다른 장사도 한다면서. 어디로 가야 빨리 만날 수 있냐?”

“보통은 하우스에서 시간을 보내는 걸로 압니다.”

“그놈 하우스는 어딘데?”

“부천 소사동에 있는데, 경매로 산 단독주택을 개조해서 하우스로 쓰는 걸로 압니다. 거기 주소는······.”

영준은 오석태가 불러주는 주소를 받아 적은 다음, 수첩을 재킷 안쪽 주머니에 넣고 난간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좋아,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똑똑히 들어라.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자양분 같은 말씀이니까 잘 새겨들어. 너도 눈치 깠겠지만 내가 찾는 건 백창화야. 그 새끼가 어떤 놈인지는 나보다 니가 더 잘 알거야, 그치? 그리고 내가 그 새끼를 잡는 데 네 도움을 받았다는 걸 알면 그 새끼나 그 새끼 꼬봉들이 널 가만두지 않겠지? 그러니 어떻게 하면 되겠어? 백날 잠수를 타봐야 그 새끼들이 널 찾아내고 말 거야.”

오석태가 겁먹은 얼굴로 영준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날 밝으면 경찰서로 찾아가 자수해라. 그게 최선이야. 옛말에도 있잖아. 자수해서 광명 찾는다고. 슬슬 베이커리(*빵집, 감방을 뜻하는 은어)에 가줄 때도 되지 않았냐. 원하면 내가 손을 써줄게, 독방에서 지낼 수 있도록. 거기라면 널 건드리지 못할 거야. 이건 따지고 보면 나라에서 널 지켜주는 거야. 감사해야해.”

거기까지 말하고 나서 영준은 칼을 꺼내 오석태의 두 손을 결박한 끈을 잘라주었다.

오석태는 겨우 피가 통하기 시작한 두 손을 번갈아 주무르며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럼 또 보자. 나중에 면회 한 번 가주마. 따듯한 속옷도 넣어줄게.”

영준은 오석태의 어깨를 토닥여주고는 옥상 출입문으로 걸어갔다. 출입문 아래쪽에, 달아난 줄로만 알았던 얼룩무늬 고양이가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고양이는 눈을 가늘게 뜨며 영준을 올려다보았다. 영준도 문을 열다 말고 무심한 얼굴로 고양이를 쳐다보았다. 잠시 영준과 눈싸움을 벌인 고양이는 이내 흥미를 잃었다는 듯 나른하게 하품을 하고는 어슬렁어슬렁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쳇, 무시하는 거냐.”

영준은 가볍게 혀를 차고는 문간을 넘어갔다.

잠시 후. 홀로 남은 오석태가 어깨를 들썩이며 서럽게 흐느끼기 시작했다. 이제 배신한 게 알려지면 십중팔구 백창화가 사신을 보낼 것이다. 울음을 멈춘 오석태가 심호흡을 몇 차례 하더니 다시 난간 위로 올라섰다.

그러고는 눈을 질끈 감고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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