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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유니버스

두억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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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작품등록일 :
2012.10.08 21:24
최근연재일 :
2017.03.14 08:26
연재수 :
19 회
조회수 :
15,586
추천수 :
256
글자수 :
97,337

작성
17.03.13 03:49
조회
453
추천
9
글자
12쪽

Target. 01: 도화선 (15)

DUMMY

차분하게 상황을 설명하는 소령의 목소리나 말투는 평소와 다를 게 없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분노가 서려있었다.

“역시 그렇습니까?”

소령은 의뢰인 한성호가 살해당했다고 말했다. 자세한 내용은 메일로 자료를 보내주겠다고 하고는 각별히 조심하라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태일은 갑자기 타는 듯한 갈증을 느끼고 냉장고에서 생수병을 가져왔다. 책상 앞에 앉아서 뚜껑을 따고 생수를 벌컥벌컥 마셨다. 거의 한 병을 다 비웠는데도 갈증이 가시지 않았다. 태일도 알고 있다. 이 갈증을 해소하는 방법은 따로 있음을.

생수 한 병을 더 가져와 다 비울 때까지도 소령은 메일은 보내지 않았다. 그래봐야 불과 몇 분이었지만 오늘따라 유독 길게 느껴졌다. 제아무리 마법 같은 해킹 능력을 지닌 소령이라고 하더라도 자료를 긁어모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그걸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태일은 평소랑 다르게 조바심을 느꼈다. 의뢰인이 살해당했다는 건 그만큼 심각한 문제였다. 결국 의자에 앉아있지 못하고 일어나 책상 앞을 서성이고 있는데 모니터 한 귀퉁이에 새로운 메일이 도착했다는 알림 메시지가 떴다. 당연히 발신자는 소령이다.

태일은 급히 의자에 엉덩이를 걸치고 메일함을 열었다. 늘 그렇듯 본문에는 ‘건투를’이라는 달랑 한 줄짜리 메시지만 있고 방대한 분량의 파일이 첨부되어 있었다.

태일은 첨부된 파일을 열어보았다. 참혹하기 이를 데 없는 의뢰인의 최후를 담은 이미지 파일이 제일 먼저 열렸다. 몹시 훼손되었는데 부검의의 소견에 따르면 살아있을 때 심한 고문을 당한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세 번째 사진에는 안구가 모두 적출된 모습을 담았는데 이것 역시 숨이 붙어있을 때 부검의는 행해진 것으로 판단했다. 물론 다른 장기들도 마찬가지였다. 의뢰인 한성호는 숨이 끊어지기 직전까지 극심한 고통을 느꼈을 것이다. 태일의 뱃속 깊은 곳에서 뭔가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태일은 무심히 파일을 넘기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시신 발견 장소가 부산이 아니라 인천이었다. 의뢰인 한성호는 부산 사람이고 태일이 기억하기로 수도권에는 아무런 연고가 없다. 경위서를 보면 담당 형사는 피해자가 납치된 후에 인천에서 살해당했거나 혹은 범인이 부산에서 살해하고 시신을 인천까지 옮겨진 것으로 추측하고 있었다.

두 번째 폴더에는 이번 일의 용의자로 예상되는 인물들을 추려서 각각의 데이터를 모아놓았다. 전부 다섯 명이었는데 그중에서도 소령은 유독 한 인물에 집중하고 있었다. 태일은 마우스를 움직여 해당 인물의 폴더를 열었다.

“최만기.”

태일은 소령이 지목한 가장 유력한 용의자의 이름을 나직이 되뇌었다.

시신의 발견 장소, 범행 스타일, 장기밀매 브로커, 중국 조직과의 커넥션 등을 고려했을 때, 최만기라는 인물이 우선적으로 꼽힌다는 견해를 밝혔고 그와 그의 조직에 대한 정보도 친절하게 첨부해주었다.

최만기는 탈북자 출신으로 흑사회하고도 깊은 연관을 맺고 있었다. 인천 지역에서 주로 활동하며 밀수와 인신매매, 장기 밀매를 주력 사업으로 삼았고, 특히 8군단 장교 출신이라는 점에서 마치 표인범의 어두운 버전을 보는 기분마저 들었다. 오래 전부터 검경의 주시를 받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뚜렷한 물증이 없어서 국내 전과기록은 고작해야 폭행 두 건이 전부였다. 그만큼 용의주도하다는 이야기다.

태일은 최만기와 관련된 정보를 모두 확인하고 나서야 왜 소령이 각별히 조심하라는 당부를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굳이 한성호의 시신을 노출시킨 이유가 무엇인지도 알아차렸다.

그것은 경고였고 선전포고였다. 통상적으로 장기 밀매업자들은 강제로 장기를 적출하고 나면 시신은 은밀히 처리한다. 법망을 피해 시신을 감쪽같이 사라지게 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시신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기록 자체를 지우는 것도 어렵지 않다.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돈에 눈이 먼 관공서 공무원에게 몇 푼 쥐어주고 구워삶으면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최만기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일부러 하지 않았다. 목적은 뚜렷하다. 배후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최만기는 한성호의 시신을 미끼로 삼아 태일을 낚으려고 하고 있다.

초대장을 받았으면 파티에 참석해주 게 예의겠지. 아마도 성대한 파티가 될 거야. 태일의 입가에 섬뜩한 미소가 걸렸다.

“조형? 나, 천인데 지금 괜찮으면 시간 좀 내줄 수 있을까. 급히 가볼 데가 있어서. 얼마나 걸릴까? 그러면 금방이네. 알았어. 그래, 기다릴게. 도착하면 전화 줘. 아, 부탁인데 저번처럼 경적은 울리지 마.”

태일은 영배와 통화를 마치고 거실 수납장에서 보스턴백을 꺼내 침실 옆방으로 들어갔다. 한쪽 벽을 꽉 메운 붙박이장에는 이불이나 옷가지 말고도 다른 ‘것’들이 들어있었다.

태일이 보스턴백을 내려놓고 가운데 문을 열자, 내부에 장착한 LED등이 환하게 불을 밝혔다. 본래 옷이 걸려있어야 할 맨 상단에는 다양한 소총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문 안쪽에 달린 거치대는 탄약과 탄창들로 채워졌다. 중간 높이의 맨 위 서랍에는 권총들이, 두 번째와 세 번째 서랍에는 용도에 따른 다양한 날붙이와 야시경과 같은 특수 장비들이, 그리고 맨 아래 서랍에는 어떤 의미에선 가장 위험한 폭발물과 독극물들이 얌전하게 태일의 간택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머릿속에 목록을 정해둔 태일은 차근차근 가방을 채워갔다. 금세 붙박이장에 빈공간이 늘어났고 그에 홀쭉했던 보스턴백은 막 식사를 마친 구렁이의 배처럼 불룩해졌다. 혼자서 전쟁을 치를 수 있을 정도로 상당한 양이었다.

태일은 문을 닫고 다른 붙박이장을 열었다. 질서정연하게 정돈된 의복들 가운데 활동하기 편한 검정색 상하의를 꺼내 갈아입고 그 위에 방탄과 방검이 모두 가능한 택틱컬 조끼를 걸쳤다. 그리고 다시 검정색 바람막이를 입고 묵직해진 보스턴백을 챙겨 방에서 나오자 밖에서 경적 소리가 울렸다. 영배가 도착했다는 신호였다. 그렇게 경적은 울리지 말라고 당부를 했건만. 태일은 쓰게 웃으며 가방을 어깨에 메고 집을 나섰다. 빨리 나오라는 듯 경적 소리가 요란하게 계속 이어졌다.

태일이 서둘러 밖으로 나오니 은색 SM5가 기다리고 있었다. 영배가 차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더니 싱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한손으로는 여전히 경적을 울려댔다.

“여어, 천형. 요새 자주 보네? 이러다가 정들겠어. 빨리 타.”

태일이 짐짓 엄한 표정을 지으며 경적을 그만 울리라고 검지를 흔들었다. 영배는 알았다는 듯 익살스럽게 웃더니 마지막으로 연달아 두 번을 더 누르고 나서 이제 됐냐며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태일은 자기가 졌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택시에 올라탔다. 방금 전까지 젊은 여자 손님을 태웠는지 차 안에 짙은 향수가 배어있었다. 태일은 보스턴백을 옆에 내려놓고 고개를 들어 영배를 쳐다봤다.

“어디로 모실까?”

영배가 룸미러로 흘끗 쳐다보며 물었다.

“이 주소로. 내비로 찍으면 갈 수 있겠지?”

태일이 스마트폰 화면을 보여주었다. 화면에 출력된 메모장에는 최만기가 작업장으로 쓰는 은밀한 장소의 주소가 적혀있었다. 영배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메모에 적힌 주소를 내비게이터에 입력했다. 곧 모니터에 예상경로가 떠올랐다.

“오케이. 예상 시간이 한 시간이라네. 이 시간에는 조금 더 걸릴 수도 있어. 도착할 때까지 눈 좀 붙여. 근데 저녁은 먹은 거야?”

영배가 쾌활하게 웃으며 물었다. 태일은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혼자 살수록 식사를 잘해야지. 하여간에······.”

영배는 무심코 묵직해 보이는 보스턴백에 눈길을 주고는 말끝을 흐렸다. 그 가방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굳이 열어보지 않아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영배는 차를 출발시키며 곁눈질로 눈을 감은 채 생각에 잠겨있는 태일을 조심스레 살폈다.

“괜찮은 거야?”

질문의 의도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지만 태일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영배는 뭔가 말을 더 하려다가 생각을 고치고 운전에 집중했다.

“음악이나 좀 틀어.”


태일이 말했다.

“아, 그래.”

영배가 고개를 끄덕이고 CD플레이어를 켰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스피커에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다.

“좋네. 근데 이거 누가 작곡한 곡인지는 알아?”

태일이 묻자 영배는 어깨를 으쓱였다.

“몰라. 베토벤? 아니면 뭐 모짜르트?”

“솔직히 말해봐. 클래식 음악가는 그 둘밖에 모르지?”

“이런 들켰네. 내 밑천 다 드러났구나. 그래, 맞아. 뭐 아무렴 어때. 듣기 좋으면 그만인 거 아냐? 꼭 작곡가가 누구인 것까지 알아가면서 들어야 해?”

“하긴 틀린 말도 아니네.”

영배의 반박에 태일이 조용히 웃었다. 태일이 저렇게 웃는 모습은 처음 봤다. 순간 영배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둘의 대화는 거기서 중단되었다. 태일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눈을 붙였고, 영배는 묵묵히 차를 몰았다.

한 시간쯤 지나서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네비게이터의 안내 멘트가 흘러나왔다. 영배가 차를 세우고 뒤를 돌아봤다. 태일은 이미 눈을 뜨고 내릴 채비를 갖추고 있었다. 영배는 잠시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천형.”

“응?”

태일이 문을 열다가말고 영배를 쳐다봤다.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을 테니까 일 마치면 연락해. 다시 모셔다 줄게.”

영배가 말했다.

“그럴 필요 없어. 꽤 오래 걸릴 거야. 기다리지 말고 영업이나 뛰어.”

태일이 그렇게 말하고 영배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러고는 가방을 들고 택시에서 내렸다. 영배는 미련이 남았는지 태일을 따라 내렸다.

“정말 괜찮겠어?”

영배가 넌지시 말을 건네며 슬쩍 옆을 쳐다봤다가 오한을 느끼고 가볍게 어깨를 떨었다. 어둠 속에서 검은 실루엣으로만 보이는 병원 건물은 유독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계속 되는 경영 부진으로 빚만 가득 떠안고 오래 전에 문을 닫은 종합병원이었다. 몇 년 사이에 건물주가 서너 번 바뀌었는데 지금은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돌아 무주공산이나 다름없었다. 정문에는 외부인의 출입을 막기 위해 사슬을 두르고 큼직한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낙서로 가득한 담벼락도 을씨년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괜찮으니까 어서 가 봐. 돈 많이 벌어야 승희 등록금도 내고 시집도 보내지. 안 그래?”

태일이 영배의 딸을 언급했다. 영배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딸 바보였다. 태일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도 실종된 딸을 찾아다닐 때였다. 그때 영배는 태일의 도움을 받았고 마음속으로 평생 갚아도 모자랄 정도로 큰 빚을 지고 있다고 여겼다. 정작 당사자인 태일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영배의 생각은 달랐다.

“조형이 여기 있어봐야 도움이 안 돼. 이건 부탁이 아니라 충고야.”

“알았어. 하지만 나중에라도 생각이 바뀌면 연락해. 바람처럼 달려올 테니까.”

“그래.”

태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영배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마지못해 운전석으로 돌아가 시동을 걸었다. 태일은 영배가 떠날 때까지 말없이 지켜봤다.

잠시 후, 은색 SM5가 저편으로 사라졌다.

태일은 고개를 돌려 고성처럼 버티고 있는 병원건물을 쳐다봤다. 소령이 보낸 스파이위성에 찍힌 사진을 보면 세 시간 전에 승합차 두 대가 건물 안으로 들어갔고 이후로 다시 나온 장면은 잡히지 않았다. 출입이 제한된 건물 안을 아무나 드나들진 못한다. 최만기나 그와 관련된 인물들이 이 건물 어딘가에 있다. 태일은 분명히 최만기도 같이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소령이 보내준 자료를 보면 최만기는 남을 결코 신뢰하지 않아서 어떤 일이든 경과를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인물이다. 절대로 남에게 일을 맡겨놓고 뒷전에 물러서서 관망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태일은 보스턴백 옆 지퍼를 열어 만능열쇠를 꺼내 아주 능숙하게 사슬에 채워진 자물쇠를 열었다. 그러고는 정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안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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