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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유니버스

두억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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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작품등록일 :
2012.10.08 21:24
최근연재일 :
2017.03.14 08:26
연재수 :
19 회
조회수 :
15,587
추천수 :
256
글자수 :
97,337

작성
16.12.24 01:57
조회
804
추천
15
글자
10쪽

Target. 01: 도화선 (13)

DUMMY

태일은 열한 시쯤 소령의 집을 나섰다.

표인범이 대문까지 태일을 배웅했다.

문을 닫기 전, 표인범은 태일을 조용히 응시하며 무언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것은 소령에게 두 번 다시 무례하게 굴지 말라는 메시지였다.

태일은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

표인범이 이렇게까지 소령에게 헌신하는 이유를 태일은 잘 알고 있었다. 제주도에서 살고 있는 여동생이 오년 전에 불치병에 걸려서 현재 모 대학병원에서 요양 중인데 매년 들어가는 막대한 병원비를 소령이 지원해주고 있다.

한때 그와 동료였던 시절이 있기에 태일은 표인범의 여동생에 대해서 조금은 알고 있었다. 한마디로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여자라고 해야 할까.

그녀는 십 년도 더 전에 오빠인 표인범이 외국으로 장기 출장을 나간 사이에 친구의 꾐에 빠져 유흥업소 일을 한 적이 있다.

그때 의정부의 조직폭력배인 박두언에게 잘못 걸려 폭행을 당하고 빈사 상태에 이르렀다. 그러자 후환을 두려워한 박두언은 다른 조직의 도움을 받아 그녀를 장기밀매업자에게 넘겨버렸다. 다행히 그녀는 기적적으로 목숨을 구했고, 이후에는 제주도로 내려가 농장을 하는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다.

하지만 그녀의 불운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결혼하고 두 해 만에 남편을 교통사고로 잃었다. 아마도 그녀가 불치병에 걸린 것도 심한 상실감으로 심신이 허약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표인범은 하나뿐인 여동생을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아마도 그런 일은 세상이 멸망한다고 해도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표인범은 자신의 의사를 충분히 전달했다고 판단했는지 시선을 거두더니 늘 그랬던 것처럼 정중히 고개를 숙이고 대문을 닫았다.

아침에 겪었던 일을 상기하고 돌아갈 때는 택시를 이용하기로 했다. 태일은 생각을 정리하며 택시정류장까지 걸어갔다.

의뢰인이 사라졌다. 어쩌면 소령의 예상대로 이미 목숨을 잃었는지도 모른다. 지금껏 한 번도 없었던 일이라 태일도 소령도 적잖이 당황하고 있다. 이건 결코 일어나선 안 될 일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항상 염려했던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늘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태일이나 소령은 무엇보다도 의뢰인의 안전을 우선으로 했고 그만큼 보안을 철저히 해왔다. 아무리 돈을 밝히는 소령도 그것만큼은 철저히 지켜왔고 지금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적어도 오늘 아침까지는.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의뢰인을 납치한 것이 표적의 지인이 아니라 제3의 인물이라는 데 있다. 자책감이 발걸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전당군.

이상하게도 그 이름을 듣는 순간 태일의 머릿속 어딘가에서 원인모를 강렬한 화학 반응이 일어났다. 그것은 전에 느껴보지 못한 너무나 생경한 감각이었다.

태일은 재킷 주머니에 손을 넣어 소령에게서 받은 대용량 USB메모리를 꺼냈다.

전당군에 관한 정보와 사라진 의뢰인의 데이터가 담겨있다. 64기가바이트를 꽉 채운 방대한 정보를 소령은 불과 몇 시간 만에 긁어모았다.

태일은 소령의 무시무시함을 새삼 느꼈다.

정보수집에 있어 소령의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소령은 표인범과 마찬가지로 과거에 국정원의 외부 계약직 사원으로 일한 이력이 있다.

그의 해킹 실력과 정보수집 능력은 가히 전설적인 수준으로 열다섯 살에 이미 순전히 재미삼아 미국의 모 정보기관 기밀문서를 열람했던 천재적인 해커였다. 그것을 계기로 그는 처벌을 받는 대신에 모종의 비밀거래를 하고 그때부터 프리랜서로 기관의 일을 하게 됐다. 물론 지금은 현재 모든 기관과 연을 끊은 상태다.

태일은 USB메모리를 다시 재킷 주머니에 넣고 걸음을 재촉했다. 시간이 많지 않았다. 만에 하나라도 한성호 씨가 생존해 있다면 어떻게든 구출해내야 한다. 1분 1초가 아깝다.

태일은 택시정류장에서 모범택시를 잡아타고 곧장 북아현동 안가로 돌아왔다.

먼저 불편한 정장을 벗고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러고 나서 주방으로 갔다.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았기 때문에 간단히 요깃거리를 할 만한 것이 있는지 냉장고를 열었다.

최근에는 장을 보질 않아 유통기한이 며칠 남지 않은 우유와 냉동시킨 수제소시지 몇 개, 그리고 플라스틱 밀폐용기에 담긴 방울토마토가 전부였다. 아쉬운 대로 허기를 달랠 수는 있었다. 어차피 과식은 몸에 부담만 줄뿐이다.

태일은 우유와 수제소시지, 방울토마토로 간단히 끼니를 때우고 나서 식탁을 정리하고 노트북이 있는 서재로 갔다.

노트북을 켜고 윈도우를 실행시킨 후, 소령에게서 받은 USB메모리를 꽂았다. 데이터는 열다섯 개의 폴더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중 두 개의 폴더엔 동영상과 이미지 파일로 채워져 있었고 다른 열두 개의 폴더에는 전당군에 관한 세세한 정보가, 나머지 한 개의 폴더엔 사라진 의뢰인의 정보를 담고 있었다.

태일은 가장 용량이 큰 ‘chA-1’라는 이름의 폴더부터 열었다. 그 안에는 각각 3분 이내의 짧은 동영상 파일 세 개와 다량의 사진들이 있었다. 동영상들을 차례로 클릭했다. 셋 다 원거리에서 스파이 샷으로 촬영한 동영상이었는데 촬영 장소는 제각각이지만 전부 동일한 인물을 담고 있었다.

전당군은 30대 후반의 남성으로, 가무잡잡한 피부에 유난히 날카로운 눈매의 소유자였다. 키는 태일과 비슷해보였고 약간 마른 체격이었지만 유약하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첫 번째 동영상은 경호원들을 대동하고 카지노에서 나오는 것을 촬영했고, 두 번째 동영상은 호텔 라운지로 보이는 장소에서 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그리고 세 번째 동영상은 어떤 사무실에서 서류를 검토하고 있는 모습을 맞은편 건물에서 찍은 것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우연인지 몰라도 세 개의 파일 모두 하나같이 그가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순간에 동영상이 끝났다.

특히 마지막 동영상은 적어도 수십 미터 밖에서 촬영했을 터인데 마치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그는 정확하게 카메라 위치를 찾아냈다. 갑자기 화면이 위아래로 크게 흔들렸는데, 아마도 촬영자가 당황하여 다급하게 자리를 피했던 것 같다.

태일은 ‘2002911’이라는 폴더를 열어 그의 상세한 프로필을 담은 문서 파일을 찾았다.

소령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그의 이름은 적위(狄威), 75년생이고 마카오 출신이다. 무역회사의 대표였던 부친 덕분에 성장기 대부분을 미국에서 보냈다.

부친이 암으로 사망한 1994년에 홍콩으로 돌아와 사업체를 물려받은 그는 현재 대형 물류업체와 무역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1996년에는 일명 ‘독안룡(獨眼龍)’이라고 불리는 삼합회 보스 위화소(魏和邵)와 의형제를 맺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때부터 그의 사업규모가 비약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홍콩 관계당국이나 인터폴에선 그가 위화소의 마약 사업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고 보고 계속 주시했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2004년부터 2007년에 걸쳐서 무려 5건의 살인과 14건의 청부폭력, 11건의 마약밀매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그때마다 번번이 증인의 진술번복과 증거불충분으로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특히 태일의 흥미를 끄는 부분은 그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던 공안이 2008년 4월에 뺑소니 사고로 사망했고 사고를 낸 범인도 며칠 후에 변사체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계획된 살인이 분명하다고 태일은 추측했다.

태일이 다시 세 번째 동영상 파일을 클릭했다. 그가 카메라를 발견하고 응시하는 장면에서 일시정지 시켰다. 태일은 눈싸움을 하듯 그의 눈빛을 유심히 보았다. 정지화면 속의 그도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2퍼센트 이론.

과거에 태일을 가르친 교관 ‘손인철’이 입버릇처럼 자주 했던 말이다.

손인철의 말을 빌리면 태어나면서부터 킬러의 자질을 타고난 사람이 있는데, 그들은 대부분 군인, 경찰, 경호원과 같이 그 본능을 유무형으로 발산할 수 있는 일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 비율이 전체 인류의 2퍼센트 정도라고 한다.

그리고 그 2퍼센트의 2퍼센트만이 진짜 킬러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자신이나 태일이 그 2퍼센트에 해당한다고 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반신반의했지만 이제는 딱히 부정하지 않는다. 깨달았다는 표현을 써도 무방할 것 같다. 태일도, 교관도 그 ‘2퍼센트’의 범주에 들어간다. 그리고 정지화면 속에서 태일을 노려보고 있는 이 남자도 마찬가지다.

태일은 계속해서 다른 폴더들도 열어보았다.

무려 64기라는 방대한 정보를 머릿속에 담는 과정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태일은 필요한 정보를 하나하나 숙지해갔다.

그러는 사이에 많은 기간이 흘렀다.

문득 방안이 어둡다 싶어 불을 켜고 벽시계를 확인했더니 벌써 저녁이었다.

태일은 장시간 모니터를 보느라 피로해진 눈을 가볍게 누르고 마사지하면서 이 시간 이후의 일정을 생각했다.

가장 급선무는 사라진 의뢰인의 소재를 파악하는 것이다.

이제 한성호의 파일을 확인할 차례였다. 마우스를 움직여 폴더를 열려고 하는데 갑자기 휴대폰이 울렸다.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

발신자는 역시나 소령이었다. 하루에 두 번의 통화. 이것 역시 이전에는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무슨 일입니까?”

태일이 조용히 물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소령이 숨소리가 몹시 거칠었다. 무슨 일이냐고 몇 번을 물어도 소령은 선뜻 대답을 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했다. 소령의 침묵이 태일을 더욱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결국 기다리다가 지친 태일이 다시 물어보려고 하자, 마침내 소령이 한숨 섞인 목소리로 나직이 말했다.

사라진 의뢰인의 시신이 발견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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