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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유니버스

두억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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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작품등록일 :
2012.10.08 21:24
최근연재일 :
2017.03.14 08:26
연재수 :
19 회
조회수 :
15,591
추천수 :
256
글자수 :
97,337

작성
17.03.13 03:48
조회
433
추천
8
글자
8쪽

Target. 01: 도화선 (14)

DUMMY

미행이 붙었다.

라면집을 나와 이십 여분쯤 지났을 때다.

영준은 명함을 꺼내 주소를 한 번 더 확인하고 나서 무심코 눈앞에 세워진 승용차의 차창에 눈길을 줬다. 후줄근한 회색 점퍼 차림의 사내가 십여 미터 뒤에서 따라오다가 우뚝 걸음을 멈추는 모습이 차창에 비쳤다.

영준은 짙게 선탠을 한 차창을 거울삼아 머리를 손질하는 척 하며 사내를 면밀히 살폈다. 피부가 까무잡잡하고 성마른 인상에 많아봐야 스물대여섯으로 보였다. 다림질을 하지 않아 잔뜩 구겨진 짙은 남색 바지에, 어울리지도 않게 하얀 운동화룰 신고 있다. 이 번화가의 화려함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그가 지방에서 갓 올라왔거나 아니면 더 먼 곳에서 찾아온 이방인이라고 추측했다.

영준이 좀체 움직이지 않자 사내는 초조한 기색을 내비치며 어딘가로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거는 시늉을 했다. 티를 팍팍 내는 아마추어. 미행이 분명했다.

영준은 일부러 차창 앞에서 떠나지 않고 늦장을 부렸다. 사내는 미행에 익숙하지 않은 게 분명했다. 이만큼이나 시간이 지났으면 일단 자리를 피했다가 다시 따라붙어야하는데 미련하게도 자리를 고수하며 계속 누군가와 통화하는 척을 하고 있다. 상대가 연인이라도 저렇게 오랫동안 전화를 붙들고 있진 않을 것이다.

영준은 옷매무새를 고치고 나서 다시 걸음을 떼었다. 아니나 다를까, 사내도 기다렸다는 듯이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영준을 따라나섰다. 확실히 미행에는 서툰 사내다. 영준은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나저나 언제부터 따라붙은 것일까. 아니, 그보다 누가 보냈을까. 그새 봉식이 황 사장에 연락을 한 건가? 아니다. 그놈은 덩치에 비해 간덩이가 콩알만 해서 그런 대범한 짓을 벌이지 못한다. 그렇다면 백창화 쪽인가. 하기야 오석태도 자살했고, 그렇게 들쑤시고 다녔으니 그들의 귀에 들어갔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 만일 백창화 쪽이라면 차라리 잘 된 일이다. 찾아다니는 수고를 덜하게 되었으니.

‘새 친구 좀 사겨볼까.’

영준은 주위를 흘끗 살피다가 고개를 뒤로 돌렸다. 뒤따라오던 사내가 흠칫하며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영준은 그런 사내에게 히죽 웃어 보이고 나서 갑자기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당황한 사내가 다시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며 부리나케 영준을 쫓았다. 영준은 편의점 건물을 지나자마자 모퉁이에서 홱 꺾어 비좁은 골목으로 사내를 유인했다. 한순간에 영준을 시야에서 놓친 사내가 나직이 분통을 터뜨리며 다급히 골목으로 뛰어들었다.

“나, 찾아?”

영준은 몸을 숨기고 있다가 사내가 골목으로 들어서자마자 달려들어 주먹을 날렸다. 하지만 기대했던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다. 완벽한 기습이었는데 영준의 주먹은 정타를 먹이지 못하고 고작 사내의 턱을 스치는 데 그쳤다. 사내는 무술을 익혔거나 맨손 격투에 이골이 났는지 그 짧은 찰나에 기민하게 반응하여 몸을 뒤로 뺐다. 곧바로 사내의 반격이 이어졌다. 영준은 정강이에 통증을 느끼고 미간을 찌푸리며 무릎을 굽혔다. 사내가 전광석화처럼 구둣발로 걷어찬 것이다. 몸을 추스를 새도 없이 영준은 연거푸 안면을 세 대나 얻어맞았다. 사내의 주먹은 왜소한 체구와 달리 빠르고 묵직했다. 쇳덩이로 맞은 것처럼 얼얼하고 눈도 제대로 떠지지 않았다. 한동안 운동을 게을리 하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일방적으로 샌드백 신세로 몰린 적은 처음이었다.

“젠장······.”

영준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나 중심을 잡으려고 벽을 짚었다. 하지만 사내는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순간 시야가 캄캄해지면서 영준은 모래성처럼 허물어졌다. 찌르르 하는 통증이 시간을 두고 뒷목에 전해졌다. 영준은 차디찬 아스팔트에 얼굴을 대고 길게 누웠다. 분한 마음에 욕설을 내뱉고 싶었지만 혀가 마비된 것처럼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의식이 점점 아득해지는 가운데 발소리가 들렸다. 여러 명이었다. 회복이 안 된 흐릿한 시야에 거뭇한 형체들이 보였다. 사내의 동료들 같았는데 중국어로 대화를 해서 무슨 내용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사내와 동료들이 무거운 발소리를 내며 영준에게 다가갔다.

영준은 정신을 차려보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해봤지만 불가항력이었다. 침몰하는 배처럼 서서히 의식이 꺼져갔다. 그리고 곧 퓨즈가 끊어진 것처럼 의식을 잃어버렸다.

코를 찌르는 암모니아 냄새에 정신을 차렸을 때는 어느 허름한 창고 같은 곳에 감금된 상태였다. 얼마 동안 정신을 잃었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마치 숙취에 시달릴 때처럼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팠다.

영준은 입술을 꽉 깨물며 주위를 살폈다. 창고에는 아무도 없었다. 손과 발을 테이프로 칭칭 감아놨으니 도주할 염려가 없다고 판단하고 그대로 방치해둔 것이다. 영준은 낑낑거리며 굼벵이처럼 기어가 간신히 상반신을 일으켜 벽에 기대고 앉았다. 방심한 탓도 있겠지만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다니 짜증이 일었다. 뒷머리로 벽을 때리며 자책하고 있는데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곧이어 철문이 열리고 검은 그림자들이 창고 안으로 들어왔다. 영준을 미행했던 사내도 보였다.

“어이, 당신들 큰 실수를 하고 있는 거야. 나······.”

영준은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창고로 들어온 무리 중에 선두로 선 남자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본능이 맹렬하게 적색경보를 울렸다.

“알고 있소. 경찰 양반 아니오.”

그렇게 말한 남자가 접이식 의자를 가져와 영준의 앞에 펼치고 엉덩이를 걸쳤다. 눈매가 날카롭고 일신에 폭력적인 기질이 자연스럽게 배어있는 남자였다. 몸에 걸친 싸구려양복의 소매부분에 갈색으로 변색된 혈흔도 보였다. 그걸 보자 영준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영준 경감, 맞소?”

남자가 깍지를 낀 두 손에 턱을 괴고 지그시 영준을 응시했다. 영준은 무의식중에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아나? 우린 오늘 처음 보는 거 같은데?”

영준은 애써 침착한 척하며 남자에게 물었다. 하지만 긴장한 탓인지 목소리가 갈라졌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기세 싸움에서 밀리고 있었다. 수년간 형사 생활하면서 온갖 흉악범들을 상대해봤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영준은 굴욕을 느끼고 입술을 깨물었다.

“질문은 내가 하오.”

남자의 눈이 천장에 매달린 전구의 불빛을 반사하며 유리알처럼 반짝였다. 영준은 이런 눈빛을 이전에도 숱하게 봐왔다. 살인자의 눈빛. 어쩌면 여기서 뼈를 묻어야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

“나한테 원하는 게 뭐야?”

남자가 잔인한 미소를 띠며 고개를 저었다.

“머리가 나쁘오? 질문은 내가 한다 하지 않았소.”

그것은 경고였다. 더는 관용은 없다. 나를 거스르지 마라. 여기서 너를 죽일 수도 있다. 영준은 입을 다물었다.

“하나만 묻겠소. 오석태는 왜 죽였소?”

오석태를 안다? 이 남자는 대체 누구지. 영준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고 남자를 쳐다봤다. 남자가 무심한 눈으로 영준을 쳐다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럼 달리 묻겠소. 백창화는 왜 찾소?”

영준의 심장이 무섭게 고동쳤다. 이제야 이 남자가 누구인지 알아차린 것이다. 영준은 바짝 말라버린 입술을 달싹이며 쥐어짜는 목소리를 냈다.

“당신이 최만기?”

남자가 피식 웃었다.

“머리가 나쁘지는 않구만. 맞소, 내가 최만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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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Target. 01: 도화선 (3) 16.12.23 1,137 19 15쪽
2 Target. 01: 도화선 (2) 16.12.23 1,546 2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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