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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보이맨 님의 서재입니다.

눈 떠보니 최초의 소드 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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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보이맨
작품등록일 :
2024.03.16 04:35
최근연재일 :
2024.05.10 13:37
연재수 :
13 회
조회수 :
992
추천수 :
29
글자수 :
69,292

작성
24.03.20 21:01
조회
150
추천
4
글자
13쪽

깨지 않는 꿈

DUMMY

거대한 화마에 휩싸인 펠라이드를 반긴 건 공허라는 말이 이보다 잘 어울릴 수 없을 수 없겠다 싶을 정도의 짙은 암흑이었고.


펠라이드는 당황스러움을 숨길 수 없었다.


'여, 여기는 어디인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갑자기 나타나 자신을 둘러싼 짙은 어둠도 그렇지만 육신이 사라져 오감이 차단된 듯한 이런 이질적인 감각이라니!


'설마 내가 죽은 건가?"


나름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근래 천수의 끝이 다가왔다는 것을 자신도 어렴풋이 느끼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죽은 것을 억지로 납득한다 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여전히 존재했다.


'그건 대체 뭐였지?'


아무리 나이 들어 노쇠한 몸이라지만 소드 익스퍼트의 끝자락의 경지에 있는 자신이 반응할 수조차 없다니?


아니, 솔직히 말해 소드 마스터인 베르난 조차 반응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영문을 알 수 없으니.. 음?'


자신의 머리로는 이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기에 답답함을 느끼던 펠라이드의 시야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점점 밝아지기 시작하더니.


- 삐---!


'...!?'


순간 강렬한 이명과 함께 엄청난 고통이 펠라이드를 엄습해왔다.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이 화상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누가 그랬는지 몰라도 그 말을 내뱉은 자는 지금 자신이 겪고 있는 이 고통을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으리라.


'끄으윽..'


이제는 아흔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의 삶을 통틀어 이만한 고통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아찔한 통증에 억눌린 신음을 내뱉던 펠라이드가 기어코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아악!!'


하지만 머릿속을 후비는 듯한 이명은 점점 더 밝아지는 빛과 함께 그 크기를 키우기 시작했고.


미칠듯한 고통이 더욱 강렬해지자 펠라이드가 가까스로 잡고 있던 정신의 끈을 놓았다.


&


펠라이드가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자신의 머릿속을 헤집던 강렬한 이명과 정신을 놓을 정도로 버티기 힘들었던 고통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고.


'.. 여긴 또 어디지?'


오감이 돌아온 듯 축축한 땅의 온기가 느껴짐과 동시에 여러 사람들이 외치는 듯한 소리 역시 들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흐릿하던 시야에 초점이 들어오자 누운 자리에서 상체를 일으킨 펠라이드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영문 모를 목소리와 함께 불길에 덮쳐지긴 했지만 분명 자신은 흔들의자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웬걸 수 많은 병사들의 생과 사가 오고 가는 전쟁터의 한복판이었다.


"어이! 거기, 너!"


혼란스러움에 넋을 놓고 있던 펠라이드가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퇴각 명령을 듣지 못했어?! 운 좋게 살았으면 얼른 일어나!"


"..?!"


한 방향으로 달리고 있는 다른 병사들과는 반대로 제자리에 선 채 자신을 향해 외치는 듯한 병사의 모습에 펠라이드의 눈이 놀라움으로 인해 순간 그 크기를 키웠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언어를 왜 자신이 이해한단 말인가?


하지만 놀라움과는 별개로 펠라이드의 손가락이 천천히 올라가더니 자신을 가리켰다.


"지금 나에게 한 소리인.. 아니!?"


말을 내뱉던 것을 멈춘 펠라이드가 경악 어린 표정을 지은 채 멍하니 있자 고함을 치던 병사가 답답하다는 듯 더욱 크게 외쳤다.


"그래, 너! 얼빠진 표정 짓지 말고 죽기 싫으면 얼른 정신 차리고 잽싸게 뛰란 말이야!"


이제는 악을 쓴다 느껴질 정도였지만 펠라이드는 그런 병사의 외침은 안중에도 없었다.


"내 손이..?!"


자글자글하던 손등의 주름은 온데간데없이 젖살이 빠지지 않은 아이의 손으로 변해있었고.


"그, 그러고 보니 내 목소리가 아니다?"


듣기 좋다는 말을 종종 들어 왔었기에 나름 자부심이 있었던 중후한 저음의 목소리는 아직 변성기가 오기 전의 앳된 아이의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 꿈인가."


그래, 꿈인게 분명했다.


꿈이 아니라면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


"살고 싶다면 뛰란 말이.. 젠장, 죽든 말든 이 정도면 나는 할 도리는 다 했어!"


같은 말을 수차례 반복하던 병사가 이제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는 듯 펠라이드를 뒤로한 채 다시 뛰기 시작했다.


이에 떠난 병사가 있던 자리를 무심하게 바라보던 펠라이드가 주먹을 쥐었다 피며 중얼거렸다.


"헌데 꿈치곤.. 지나치게 현실적이.."


- 덥썩.


"음?"


옷깃이 딸려 올라가는 감각에 펠라이드가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조금 전까지 고래고래 외치다 모습을 감췄던 병사가 썩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말 좀 들어라! 이 망할 꼬맹아!"


아무리 꿈이라지만 일개 병사로 보이는 자가 공국의 2인자였던 자신에게 이런 언행이라니!


싸늘하게 표정을 굳힌 펠라이드가 입을 열었다.


"무엄하구나! 감히 내게 이 무슨 짓.. 으억!"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펠라이드의 몸이 병사의 손에 움켜쥐어져 있는 옷깃과 함께 허공으로 딸려 올라갔다.


"젠장, 정신이 나간 건가!?"


"뭐, 뭐라? 정신이 나가? 이것부터 내려놓지 못할까!"


펠라이드가 짧아진 팔 다리를 휘둘렀지만 의미없는 발버둥일 뿐이었고.


"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났다고.. 미쳤지만 그렇게라도 살아가는 것이 너도 죽는 것보단 나을 거야."


펠라이드가 훼까닥 했다는 것을 확신하는 듯 말을 내뱉은 병사의 표정이 버려진 강아지를 보듯 측은하게 바뀌더니.


"나중에 조금 아플 수도 있어."


"그게 무슨 소리.."


- 퍽.


병사가 들고 있던 검의 손잡이로 펠라이드의 뒷덜미를 가격하자 펠라이드의 몸이 축 늘어졌다.


"미쳐가지고 나중에 감사의 인사는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


기절한 펠라이드를 옆구리에 낀채 중얼거리던 병사가 이내 아군이 퇴각하고 있는 방향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


금빛의 노을이 모습을 감춘지 얼마 되지 않은 이른 저녁.


"군사, 전황은 어떻습니까?"


아직은 소년의 티를 벗지 못한 듯 얼굴에 앳됨이 묻어 나오는 청년의 말에 앞에 앉아있던 사내들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예상대로 썩 좋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좋은 소식은 병력들의 수준은 우리 쪽이 조금 더 나아 보인다는 점입니다."


"평소에 아버지께서 훈련을 중요하게 생각하셨던 게 여기서 빛을 발하는군, 그럼 나쁜 소식은 뭡니까?"


".. 나쁜 소식은 병력의 수준이 상관이 없어질 정도로 그 수가 저쪽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군사의 말에 의자에 앉아 있던 몸을 앞으로 기울인 청년이 미간을 좁혔다.


"그럴 수가 있습니까? 개인 사병을 일정 수 이상으로 두는 것은 법으로 금지돼 있을 텐데요?"


귀족이 가질 수 있는 사병의 수는 법으로 정해져 있었고 그 수는 계급마다 상이했다.


하지만 남작과 자작에게 허락된 개인 사병의 수의 차이는 거의 없었기에 저쪽 병력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건 사실상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버지 역시 그 사실을 아시기에 병사 하나하나의 전투력을중요하게 생각하신 것 아닌가?


"아무래도 테르나르 자작이 속해있는 파벌에서 이번 영지전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는 듯합니다."


".. 다른 가문에서 병력을 지원했다는 말입니까?"


"지금으로써는 그것 말고는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군사의 말을 들은 청년이 이를 빠득 갈았다.


변방의 작은 남작가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이전까지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사교 파티의 초대장이 영지 인근에서 철광산이 발견되자마자 날아왔다.


아버지께서는 처음엔 좋게 거절을 하셨지만 반복해서 날아오는 초대장을 더 이상 거부할 수 없으셨던 건지 나중에는 결국 초대에 응하셨다.


그렇게 함께 가게 된 파티장에서 그 사건이 생겼다.


'그때 무슨 일이 있어도 참았어야 했다.'


자신이 이성의 끈을 놓지 않았다면.


그래서 그 놈에게 주먹을 휘두르지 않았다면 말이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사실 그 사건이 이런 대대적인 영지전으로 번질만큼 큰 사건이었는지도 의문이었지만 어찌 됐든 자신의 실수로 인해 발생한 영지전이었다.


과거에 했던 행동을 후회한다 한들 바꿀 수는 없었고 그렇기에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럼 군사의 생각으로는 이 영지전을 승리로 이끌려면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청년의 물음에 군사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일기토만이 답입니다."


"일기토?"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든 군사의 표정에서 비장함이 맴돌기 시작했다.


"네, 이곳 같은 평지에서는 전반적인 병력의 수준이 조금 앞서는 것만으로는 압도적인 적의 머릿수를 상대로 승리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병력을 충원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없는 지금 병력의 수와는 관계없는 일기토를 하자는 말이지요?"


"네, 더 이상의 불필요한 병력 손실을 막고 상대에게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은 제 생각에는 이것 하나뿐입니다."


군사의 말을 곰곰히 곱씹던 청년이 이 자리에서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듯한 기사를 바라봤다.


"적의 기사들과 직접 검을 맞대본 경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군사에 말에 동의하십니까?"


이에 입을 닫은 채 묵묵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던 노기사가 형형한 눈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도련님, 명령만 내려주신다면 놈들의 머리를 베어다 승리의 전리품으로 올리겠습니다."


"다른 분들 의견도 같으십니까?"


청년의 말을 들은 나머지 기사들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자신감 넘치는 기사들의 면면을 훑어보던 청년이 생각에 빠진 듯 입을 다문 채 고개를 숙이더니 기사들이 둘러싼 원탁의 중심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군사의 말이 맞다.'


오늘 치러진 한 번의 전투에서도 이미 여러 희생자들이 나오지 않았던가?


불필요한 희생을 줄이기 위해서라면 일기토가 답이었다.


'하지만..'


이 영지전을 일기토 없이 이어갔을 때 큰 변수가 있지 않는 한 승리할 것은 상대일 게 뻔했다.


그리고 그것을 상대 또한 모를리 없었기에.


고개 숙여 원탁을 바라보던 청년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저쪽에서 일기토를 수락 하겠습니까?"


"그것이.. 가장 큰 문제이긴 합니다. 굳이 일기토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상대가 더 잘 알고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해서 시도조차 하지 않을 수는 없지요."


청년이 말을 끝맺음과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자 자리에 앉아 있던 모두가 함께 일어났다.


"이번 영지전의 책임자이자 엘레무어 가의 장남인 알렌 엘레무어의 이름으로 명하겠습니다."


알렌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과 하나하나 시선을 맞추더니 끝으로 노기사를 보며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상대에게 일기토의 수락을 받아오십시오. 다들 이번 영지전을 승리로 이끌어 주시기 바랍니다."


"충!"


기사들이 일사불란하게 고개를 숙이며 답하는 모습에 묘한 전율을 느낀 알렌이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


부상자들의 앑는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리는 허름한 야전 막사에서 눈을 뜬 펠라이드는 여전히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끄응.. 꿈이.. 아닌 건 확실한 거 같군."


부상자들에게서 나는 피비린내와 서늘한 땅의 감촉 그리고 뻐근한 목덜미는 이제는 이것이 꿈이 아니란 것을 인정하게 했다.


"하데른의 강을 넘는다면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는 들었지만 이것은.."


다시 태어난 것도 아닌 이미 주인이 있는 몸이지 않은가?


그리고 애초에 이것이 꿈이 아니라면 자신은 죽은 것이 확실한 것인가?


머릿속으로 드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확산되려 할 때 펠라이드의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파고 들었다.


"어? 꼬맹이, 일어났구나?"


".. 네놈은?"


".. 목숨을 구해준 사람에게 고맙다고 인사는 못할망정 네놈..? 아니야. 나도 참, 정신이 나간 애한테 뭘 바라는 거야?"


목소리의 주인이 가까이 다가오자 어둠에 가려져 실루엣만 비치던 얼굴이 자세하게 보이기 시작했고.


이윽고 덩치에 맞지 않게 앳된 얼굴을 한 갈색 머리의 청년이 측은한 눈빛을 띤 채 펠라이드의 앞에 섰다.


"훼까닥 한 건.. 안타깝게 됐지만 그래도 무사해서 다행이다. 그러게 이런 험한 전쟁에는 왜 나와서.."


"네가 내 목숨을 구한 것이냐?"


"그래, 나 아니었으면 너는 거기서 죽었을 거야. 근데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이전부터 말투가.. 생전에 할아버지와 대화하는 것 같네."


눈 앞의 청년이 어떻게 생각하든 중요한 건 그것이 아니었다.


중요한 건 이것은 꿈이 아닌 현실일 지도 모른다는 것과 정말 현실이라면 눈앞의 청년이 허망하게 죽을 뻔한 내 목숨을 구했다는 것이었다.


"너는 이름이 무엇이냐?"


"허.. 나는 같은 병사라 상관없지만 직책이 높은 분들께 반말은 절대 하면 안 돼. 아, 못 알아 들으려나..?"


"나는 미치지 않았다. 네 말은 잘 알아 들었으니 이름을 말해보거라."


정신 나간 꼬마치고는 뱉는 말이 꽤 정돈돼 있었기에 펠라이드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본 청년이 입을 열었다.


"나는 하르온이라고 부르면 돼. 그런 너는 이름이 뭐야?"


순박해 보이는 청년의 생김새와 꼭 잘 들어맞는 이름이라 생각한 펠라이드가 입을 열었다.


"나는 펠라이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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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왼팔과 오른팔 24.05.10 21 0 13쪽
12 그리워진 시체쟁이들 24.05.09 27 0 12쪽
11 왕가의 핏줄 24.05.07 41 0 13쪽
10 일기토 24.05.05 56 2 12쪽
9 고개 숙인 푸른 핏줄 24.05.04 55 2 12쪽
8 작은 괴물과 두 가문 24.05.02 55 2 12쪽
7 증명과 검증 24.04.25 60 3 12쪽
6 소년병 24.04.19 64 2 12쪽
5 마나가 무엇인지 아느냐? 24.04.12 78 3 12쪽
4 오러? 그게 뭐지? 24.04.02 100 3 13쪽
3 새로운 세계 24.03.26 122 4 12쪽
» 깨지 않는 꿈 24.03.20 151 4 13쪽
1 프롤로그. 24.03.17 163 4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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