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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oon 님의 서재입니다.

곤봉 기자, 홍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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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oon
작품등록일 :
2023.12.02 20:18
최근연재일 :
2024.01.09 19:05
연재수 :
4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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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8
추천수 :
53
글자수 :
243,767

작성
23.12.07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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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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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9. 재벌의 개들

만년 편집부 기자가 사회부 기자가 되었다. 마침 투명인간이 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전수받았다. 그리고 참교육을 위한 '곤봉'을 마련했다.




DUMMY

눈에 불길이 확 치솟는 걸 느꼈다. 그러면 그렇지, 남의 회사 게시판 내용을 어떻게 속속들이 알 수 있겠는가? 내부의 쥐새끼 같은 놈들이 없다면 말이다.


박차장한테 감정 가질 일은 아니었다. 나름 좋은 대학 나와서 회장 측근에서 일하고 있는 엘리트일 것이다.


차갑게 식은 커피를 마저 마시고 헤어졌다.


홍정의는 다음날 일찍 일어났다. 서울 종로구 집에서 출발하면 서울 한복판을 가로질러 가야 해서 곤지암까지 아무리 아침 시간이라도 한 시간 반은 걸릴 것 같았다.


똥차를 몰고 골프장에 도착하니 7시 40분이었다.


생전처음 와 보는 골프장이라 모든 게 낯설었지만 남들이 자신을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크게 위축되지는 않았다. 국장과 경제부장을 찾아 나섰다.


여러 대의 카트가 순서를 기다리며 줄지어 서있는 클럽하우스 앞 마당. 골프장 직원들인지 경호원인지 모르지만 건장한 양복차림의 남자들이 여럿이 서성거리는 게 보였다.


그들을 뚫고 지나가자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보도국장, 경제부장, 비서실장, 그리고 박민준 차장이었다.


그룹의 실세, 회장 비서실장이 뜨니 골프장에 비상이 걸린 모양이었다.


보도국장과 경제부장은 비서실장 앞에서 매우 겸손해 보였다.


KMS의 젊은 기자들 앞에서 호령하는 대기자(大記者)들이 아니었다. 힘센 실력자 앞에 납작 엎드린 초라한 월급쟁이들에 불과했다.


배알이 꼴린 홍정의의 눈에는 고깃덩어리라도 한 점 집어던져주길 간절히 바라는 개들로 보였다.


홍정의는 첫 번째 홀로 이동하는 일행의 카트를 간격을 두고 따라갔다. 비서실장이 앞자리에 앉고 보도국장, 경제부장, 박차장 셋이 뒷자리에 앉았다.


첫 번째 홀 아너(동반자 중에서 제일 먼저 티샷을 하는 사람)는 보도국장과 경제부장의 강권을 받은 비서실장이었다.


티박스에 오른 비서실장이 연습 스윙을 몇 차례 휘두르더니 티샷 자세를 취했다. 몸이 덜 풀렸나... 비서실장의 티샷이 타핑이 나면서 오른쪽으로 깔려가더니 오비구역으로 굴러들어갔다.


보도국장과 경제부장이 기다렸다는 듯 ‘멀리건!’을 합창했다.


멀리건을 받아 다시 휘두른 두 번째 공은 이번엔 하늘을 찔렀다. 비거리는 150미터 남짓, 그러나 동반자들과 캐디는 ‘굿샷’을 연발했다.


‘저게 굿샷이라고? 겨우 150미터 날아갔는데?’


아양을 떠는 보도국장과 경제부장의 상판때기가 쳐다봐졌다. 어색한 미소와 함께 애써 ‘굿샷’을 외치는 저 인간들이 과연 보도국의 간부인가?


첫 번째 홀만 따라가보기로 했다.


구력이 있어서인지 비서실장은 파4홀에서 3온은 했다. 그러나 홀과 너무 떨어져 있었다.


첫 퍼팅을 한 것이 홀에서 2미터 정도 못 미쳐서 멈추었다. 나름대로 잘 친 것이었다.


그러나 보도국장은 컨시드를 줘도 좋을만큼 정말로 잘 친 거라고 생각한 것이 분명했다. ‘오케이’를 외치며 재빨리 달려가더니 공을 집어 공손하게 비서실장의 손에 얹어주었다.


가관은 홀아웃을 했을 때였다. 네 사람이 모두 카트에 타자 비서실장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자, 첫홀은 다 파 한 걸로 하고... 다음 홀부터 우리 빡세게 내기 합니다. 그리고 오늘 두 분 오신다고 해서 특별히 신경써서 씨드머니를 준비했어요.”


비서실장은 그러면서 보도국장과 경제부장에게 봉투 하나씩을 돌렸다. 보도국장과 경제부장은 상체를 깊숙이 숙이며 봉투를 받았다.


“아, 실장님, 고맙습니다. 오늘 최선을 다해 멋있는 경기로 보답하겠습니다.”


정말 이건 영상으로 찍어놓고 싶었다. 미처 핸드폰을 준비 안 하고 있어서 그냥 지나쳤지만 해도 너무한다고 생각했다.


홍정의는 기분이 확 상했다. 더 이상 이들이 노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 터벅터벅 클럽하우스 쪽으로 걸어돌아갔다.


주차되어 있는 자신의 승용차로 돌아갔다. 가면서 보니 자기같은 국산 소형차는 눈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다들 어떻게 해서 돈들을 버는지...


사실 홍정의는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돈을 만들 수는 있었다. 아버지의 엄명만 없었다면 아무 은행에나 들어가서 돈다발을 그냥 가지고 나올 수도 있었다.


아니, 법을 어기지 않고도 돈을 만들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굳이 돈을 만들 이유가 없을 뿐이었다.


기분이 다운되어서인지 갑자기 아버지는 안녕한지 궁금했다.


도력(道力)을 보충하기 위해 전국 명산을 유람하며 수도에 정진하고 있을 아버지가 갑자기 보고 싶었다.


차 안에서 이 생각 저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다 깜빡 잠이 들었나 보다. 깜짝 놀라 시계를 보니 12시가 다 되어 있었다.


8시에 티오프를 했으니 한 시간 정도 뒤면 클럽하우스에서 점심을 먹을 것이다. 홍정의는 클럽하우스로 갔다. 혼자 점심을 먹으려는 심산이었지만 가만 보니 혼자서 먹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할 수 없이 차를 몰고 골프장 근처 허름한 식당으로 가 소머리 국밥을 한그릇 시켜 얼른 먹고 다시 골프장으로 돌아와 투명모드로 변환했다.


클럽하우스 별실은 이미 왁자지껄했다.


서빙하는 직원들의 뒤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경제부장의 독무대였다. 회사에서는 그렇게 근엄하던 사람이 어떻게 이런 애교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지... 홍정의는 아연실색했다.


폭탄주를 만들고 야한 건배사를 하고 비서실장에게 칭송을 바치는 일련의 솜씨가 좌중을 들었다 놨다 했다. 타고난 재주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아, 오늘 정말 즐겁습니다. 국장님은 이런 부장을 두셨으니 매일 즐겁겠습니다. 우리 비서실 직원들은 다 하나같이 뚱한데 말이죠.”


애꿎은 화살이 박차장에게로 향했으나 박차장은 여전히 굳은 얼굴을 풀지 않았다. 아니 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박민준 차장은 골프장에서든 식당에서든 한 순간도 웃음기 있는 표정을 짓지 않았다. 비서실의 분위기가 사람을 그렇게 만든 것 같았다.


어지간히 술배, 밥배가 채워졌는지 잠시 좌중에 정적이 감돌았다. 비서실장이 헛기침을 하면서 정적을 깼다.


할 말이 있는 듯했다.


“아, 그리고 이번일은 정말 고맙습니다. 우리 회장님이 참 올곧게 좋은 일도 많이 하시고 일밖에 모르고 사시는데 참, 어떻게 하다보니 그런 일이 생긴 것 같습니다. 어쨌든 누를 끼쳐서 미안하게 생각하고 계십니다.”


보도국장이 얼른 화답을 했다.


“실장님,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우리가 오히려 죄송할 따름입니다. 우리도 기자들이 많다 보니 천지사방 구분 못하고 눈치 없이 엉뚱한 걸 취재하는 놈들이 있습니다. 제가 이번에 단단히 교육을 시켰습니다. 염려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홍정의는 어이가 없었다. 보도국장이 웬 죄송?


“우리 국장님이 사회부 친구들 달래고 설득하느라 사실 애를 좀 많이 썼습니다. 가진 게 없는 놈들이어서 그런지 사회부 놈들은 우리와 기사를 대하는 태도가 많이 다릅니다. 지놈들은 그래야 기자답다고 생각하거든요. 헤헤헤.”


비서실장이 근엄한 자세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김준성 부장 밑에 있는 기자라 그런지... 아무래도 부장의 영향을 받겠지요?”

“뭐... 김준성이 나나 우리 경제부장처럼 적극적으로 방어를 하진 않겠죠. 애들 핑계 대면서 될대로 되라는 심정일 수도 있을 겁니다.”


홍정의는 김준성 부장과 삼현 측이 뭔진 모르지만 악연이 있었던 것 같다고 짐작했다.


“참 올곧은 건 좋은데 너무 융통성이 없으니 그런 사람 대하기 참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두 분이 고생한 데 대해 보답을 준비했습니다. 회장님의 뜻으로 말이죠.”


보도국장과 경제부장이 침을 꼴깍 삼키며 기대에 찬 눈길을 보냈다.


“다름이 아니라 이번 우리 백화점에서 푸드코트 확장 공사를 하고 있는데...”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보도국장과 경제부장은 눈을 맞추며 희색이 만면했다.


“두 분이 관심이 있으면 분양을 받을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를 하셨습니다. 자세한 건 추후에 우리 박차장이 안내 드리겠습니다.”


홍정의가 화들짝 놀랐다. 비서실장의 말에 놀란 게 아니라 보도국장과 경제부장이 동시에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놀랐던 것이다.


“아이고, 실장님, 이건 정말 뜻밖에 과분한 선물입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회장님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몸을 바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실장님, 저는 오늘 아침 골프장에 오면서 우리 실장님과 라운딩하는 것만 해도 아무나 못 누리는 큰 영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큰 선물까지 안겨주시니 너무 감격스럽습니다. 뭐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보도국장과 경제부장이 동시에 상체를 숙이고 한동안 그대로 있었다. 정말 못 볼 걸 본 것이었다.


홍정의는 식당 직원이 디저트를 서빙하러 들어오는 틈을 이용해 방을 나갔다. 도저히 그 꼴들을 계속 보고 있을 수 없었다.


왠지 서글펐다. 자기의 앞날이 저런 모습인가?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였다.


다들 재벌 앞에서는 저렇게 몸을 숙이는지 의문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건 너무 하는 것 아닌가?


차라리 재벌회장이라도 됐으면 이해의 여지가 조금 있을 것 같았다. 재벌 회장의 마름이라고 할 비서실장한테 저 정도로 몸을 낮추면 정작 재벌회장을 만나서는 땅바닥을 기어야할 것 아닌가?


소문을 들어서 알고는 있었다. 유명 백화점의 푸드코트의 코너 하나면 온 집안이 벌떡 일어설 수 있는 이권이라는 말은 들은 적이 있었다.


백화점 회장의 며느리가 백화점의 아이스크림 코너를 가지고 있었다는 둥 집권 여당대표의 장모가 냉면 코너를 분양받아 떵떵거리고 살았다는 둥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은 바 있었다.


그런데... 저들이 저런 엄청난 선물을 받은 게... 근원을 따지자면 다 홍정의 때문 아닌가?


재주는 홍정의가 넘고 돈은 국장과 경제부장이 챙긴 꼴 아닌가 말이다. 그러고 보니 두 사람이 더 괘씸하고 용서할 수 없었다.


똥차를 몰고 서울로 돌아오며 클럽하우스의 모습이 자꾸 생각나 하마터면 앞차를 추돌할 뻔하기도 했다.


김준성 부장에게라도 오늘 보고 들은 걸 고자질하고 싶었다. 그래야 속이 조금이라도 풀릴 것 같았다.


그러나 어떻게 그런 걸 보고 들었냐고 물으면 할말이 없을 것 같아 끝내 전화를 하지 못했다.


당장 회사 인트라넷 게시판을 이용한 전쟁을 벌이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도 아직 푸드 코트 분양이 안 된 상황에서 들이밀기에는 섣부른 것 같았다.


푸드코트 분양은 못 받게 할 수 있겠지만 그들의 범행을 미수에 그치게 할 우려가 있었다.


넉넉잡고 한달 정도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때쯤이면 국장과 경제부장이 푸드코트 주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회사에서는 인트라넷 게시판에 ‘저스티스 홍’ 이름으로 올린 게시물을 삭제해버렸다.


아무리 회사라 해도 익명 게시판을 맘대로 손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마도 사장이나 본부장의 지시로 전산실에서 긴급 작업을 했을 것이다.


다시 돌아온 월요일.


세상은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잘 돌아갔다. 보도국도 ‘저스티스 홍 파동’은 처음부터 없었던 일인 것처럼 누구도 언급하는 일 없이 일상을 반복하고 있었다.


홍정의는 재벌기업에서 제안한 미국 연수 2년은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사실 조금 궁금했다. 욕심이 나서가 아니라 자기들이 뱉어놓은 약속을 어떻게 처리하나 그냥 궁금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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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2. 펭귄? 돼지? 23.12.09 68 2 12쪽
11 11. 재벌의 돈질 23.12.08 69 2 11쪽
10 10. 비열한 보도국장 23.12.07 75 2 11쪽
» 9. 재벌의 개들 23.12.07 78 2 12쪽
8 8. 금고를 훔친 재벌 아들 23.12.06 77 3 12쪽
7 7. 다급한 재벌 회장 23.12.06 80 3 12쪽
6 6. 믿고 의지할 사람 23.12.05 86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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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 포르쉐 한 대 23.12.03 97 2 12쪽
1 1. 지잡대 문과 출신 23.12.02 131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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