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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홍기석입니다.

사희곡 (捨姬曲 : 버린 여인의 노래)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홍기석
작품등록일 :
2019.05.13 19:38
최근연재일 :
2021.02.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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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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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곰이 피는 나무 6

DUMMY

6


보우 제약.


「경찰, 충무로 변사체 사건 용의자 체포」


각 언론사의 방송은 긴급 속보로 편성되어 있었다. 사람들의 귀갓길을 불안하게 만든 용의자가 드디어 붙잡혔다. 속보를 다루는 족족 시청률이 치솟았다.


시민들은 몹시 놀라워했다. 용의자는 무려 오귀로 추정되는 존재가 아니었나. 이렇게 조용하고 신속히 체포할 줄이야. 어디서도 오귀와의 전투로 인해 큰 소란을 겪었다는 소문이 없었다.


가끔씩 한강 공원에서 오귀로 추정되는 두 남자가 큰 싸움을 벌였다는 증언이 댓글에 올라왔다.


설명하는 내용이 꽤 구체적이었다. 한쪽은 한강으로 입수하는 즉시 사라졌고, 나머지 하나는 왼손에 부상을 입고 뒤늦게 합류한 동료와 떠났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것이 이번 사건과 중대한 관계가 있다고 추측했다. 그래서 속절없이 사람의 손에 잡혔다는 주장이었다.


「검경, 충무로 사건 용의자 체포 경위 함구」


검찰과 경찰은 해당 사건에 대해서 최대한 언급을 아꼈다. 경솔하게 정보를 노출하는 실수는 하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용의자로 오귀가 지목된 상황이었다. 정치적 화제로 번질 가능성이 큰 만큼 신중하려는 듯했다.


이번에는 현장을 본 목격자가 많지 않았다. 특공대가 주변을 통제한 탓에 영상 자료도 부족한 상태였다. 순전히 근처를 지나가던 목격자들의 증언에 의존해야 했다.


[잘 모르지만··· 위험한 사람처럼 보였어요. 특공대원 수십 명이 둘러쌌으니까.]

[하도 말을 안 들어서 그런지, 몇 번 고성이 오갔어요.]


생생한 증언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지엽은 좀처럼 진정하지 못했다. 방송을 시청하는 내내 손발까지 떨었다. 용의자는 틀림없이 곤지암 시설에서 탈출한 사형수였다. 끝내 추가로 생긴 희생조차 막지 못한 것이었다.


나머지는 어디에 있을까. 보안팀장의 청을 받은 오귀가 진즉에 처리했을까.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그 결과에 대해서 모르는 지금, 지엽의 속은 계속 타들어 갔다.


“하하, 이거야 원··· 난장판이네요.”


하지만 재호는 태연했다. 타인의 이야기를 듣듯이 여유롭게 관전했다. 그러한 태도가 더욱 꺼림칙했다. 시설 운영에 직접적으로 관여한 이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충무로 사건이 아니라도, 많은 연구원들이 곤지암에서 생을 마감했다. 일말의 통감은 느껴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오귀보다 더욱 차가운 종족이 바로 옆자리에 있는 듯했다.


“우리 때문일지 몰라요.”


잠자코 그 모습을 바라보던 지엽은 기어이 직설적으로 언급했다. 특별한 뜻은 없었다. 단지 상대가 진지한 자세로 있기를 바랐을 뿐이었다. 일련의 사건들을 보고도 깨달은 바가 없다면, 지금이라도 제대로 느끼기를.


“네?”

“지금껏 조용히 잘 지내던 오귀들이 갑자기 일반 시민을 공격할 리가 없잖아요. 게다가 하필 이런 시국에···.”

“음··· 아무래도 그렇죠?”


그의 머리라면 답은 유추하기 쉬울 터였다. 그런데 낯빛이 전혀 변하지 않고 멀쩡했다. 불편한 답을 탐색하기 께름칙했나, 아니면 알고서도 무시하나. 상대라면 어느 쪽이든 가능할 것 같아서 지엽은 상당히 찜찜했다.


“분명히 곤지암에서 탈출한 놈들일 거예요. 결국··· 일반 시민까지 공격했다고요.”


말하면서 속이 쓰렸다. 어디부터 돌이켜야 작금의 사태가 없었을까. 이제 부질없다는 사실을 알지만, 버릇처럼 과거를 돌이키게 되었다. 미래가 달라졌을 선택들이 자꾸만 머리를 스쳤다.


신중히 실험을 했다면 괜찮았을까, 빼앗긴 연구소를 탐내지 않았다면, 애초에 경준이 무참히 빼앗지 않았다면, 자신은 생물의약 분야에서 지금껏 활약했을 터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잠시나마 잠잠해진 울분이 다시 솟구쳤다.


그러나 인명이 희생되었다. 당장은 누구를 원망할 자격조차 없었다. 때문에 어리석은 감정을 단단히 내리눌렀다. 아무리 경준의 판단에 의해 억울한 일을 당했어도 자신이 저지른 행위는 쉽사리 용서받을 수 없었다.


“제가 어떻게 하기를 바라세요?”

“네?”


오히려 더 차갑게 돌아오는 대답에 지엽은 당황했다. 재호의 표정이 재회했을 때보다 냉정해져 있었다. 직전의 이야기에 적잖이 기분이 상한 모양이었다. 그동안 외면했던 양심을 건드렸기 때문일까. 항상 의연하게 받아치는 상대였기에 적응이 잘 안 되었다.


“정 힘드시면 자수하세요. 인연이 안 되서 아쉽지만, 말리지 않겠습니다.”


'자수'라는 말에 심장이 내려앉았다. 곤지암 사태에 책임을 느끼고 모든 진실을 밝힌다.


말이야 간단했다. 하지만 그러면 지금까지 저지른 죗값을 달게 받을 각오가 필요했다. 간단한 죄목만 따져도 상당했다. 오귀와의 약속을 어기고 생명을 경시했다. 국가적인 자원을 외부로 유출했고 그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비싼 변호사를 쓰더라도, 장기수 생활은 면하지 못할 것이었다.


“하아··· 이러면서 왜 깨끗한 척을 하실까.”


지엽은 반론하지 못했다. 재호의 이야기가 맞았다. 진정으로 반성하고 있다면 애당초 이곳에 오지 않았겠다. 곤지암에서 일어난 행태를 명백하게 밝히고, 모두에게 사죄를 구해야 죽은 넋들이 정말 위로받을 터였다.


“개인적으로 느끼시는 죄의식은 뭐··· 굳이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사람은 본래 모순된 동물이니까. 하지만··· 저에게도 강요하지 마세요.”


여기로 도피한 이유가 무엇인가. 처음부터 대가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살길이 급급해 다시 갱생의 기회를 저버리고 말았다. 가족에게 안부조차 전하지 못하면서.


그런 자신이 어떻게 감히 도덕과 인간성을 논하는가. 한없이 모순적인 모습에 상대는 참으로 기막힐 노릇이겠다.


“저를 다시 찾으셨을 때부터, 박사님께서는 이미 선택하신 거예요.”


차라리 그처럼 일관된 사람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주위가 어떻게 평가하든 솔직한 자신을 바깥으로 내보이니까. 겉으로 갖은 위선을 부리면서 정작 행하지 않는 자신이 가장 최악이었다.


지엽은 고개를 숙였다. 텔레비전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이 다음마저 문제였다. 상대와 당당하게 마주할 때까지, 어지간한 시간이 소요될 듯했다. 이제까지 되풀이한 자신의 행동이 그만큼 창피해진 탓이었다.


[경찰은 빠른 시일 내에 수사 결과를······.]


접견실에 어색한 정적만이 흘렀다. 속보를 전하는 기자의 목소리만 울렸다. 분위기가 무겁지만 재호는 통 격려하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언제까지 타이르는 식으로 공기를 추스르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대신에 주제를 교체했다. 이야기에 방해될 텔레비전의 음량은 잔뜩 줄이고서.


“연구는 어떠세요? 저희가 제공한 자료들이 얼마 안 되기는 하는데.”


사실 속보보다 궁금한 쪽은 바로 연구였다. 엇비슷한 환경을 제공한 지 아직 며칠밖에 지나지 않았다. 성과를 요구하기는 당연히 이른 단계였다.


하지만 진척이 궁금했다. 태도를 보아서는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지엽이 방향성을 확실히 하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죄송합니다. 아직은 무엇을 먼저 시작해야 할지 얼떨떨해서··· 새로운 장소도 적응이 안 되고······.”

“음······.”


아무도 없는 밀실에 혼자 있어서는 묘안을 떠올리기 어려웠다. 자꾸만 앞선 실수들이 생각나서 두려웠고, 언제는 괜히 우울했다.


물론 시기가 민감해서 당장 인원을 늘리지 못한다는 현실은 이해했다. 섣불리 사람을 들였다가는, 괜한 정의감이 일을 그르치는 사태가 벌어졌다. 정국이 안정되고 서서히 실행해야 안전했다. 그리고 일찍이 계획한 목표에 따라 적당한 인재를 등용해야 했다.


그런데 목표를 세우기가 어려웠다. 지엽의 꿈은 지독한 암을 치료할 신약 개발이었다. 그래서 천적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이루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해당 연구는 거기서 답보 상태였다. 관련한 자료들은 귀의학 연구 센터 화재로 소실되고 말았다. 성남에 위치한 기관으로 옮기기 전이었다. 보수 작업이 마무리되지 않은 탓이었다.


몸부터 지키고자 들른 경준의 자택에서 그 소식을 접했을 때 참으로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이 피어올랐다.


결국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막 다루기 시작한 오귀의 혈액을 이용해서. 얼마나 걸릴까. 경준이 주도하는 실험으로 찾은 두 인자에서 회복과 관련한 유기물을 특정하는 데도 긴 시간이 소요될 것이었다. 물론 발견하는 즉시 후대에 엄청난 찬사를 받겠다.


그러나 마음이 시원하지 않았다. 아직까지 허탈했다. 자신이 바라는 미래가 무엇인지, 가볍게 상상하지 못할 정도였다.


“역시나, 방향을 잡지 못하셨네요.”

“방향··· 이요?”


재호는 지엽의 약점을 진즉에 알고 있었다. 연구를 이끌기에 충분한 인재지만,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데 다소 어려움이 따랐다. 그 부분이 경준과 결정적으로 달랐다.


단순히 우유부단한 성격이 아니었다. 때가 찾아왔을 때 감히 결정할 담력이 부족했다. 그렇게 소심한 성향 때문에 일련의 사태를 이토록 걱정하겠다. 그래서 그것이 연거푸 모순적인 행동을 만들었다.


해결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지 못하니, 이쪽이 친절하게 만들어 주겠다. 이후로는 알아서 일정과 방법론을 구상할 것이었다. 재호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머릿속에 품고 있던 계획을 내뱉었다.


“보통··· 어떤 제품을 구상하셨죠?”

“그야··· 불치병을 치료하는 약이 제일···.”

“흐음, 이만한 혈액을 가지고서······.”


지엽은 고개를 갸웃했다. 일반적인 질환을 해결하기 위해서 협력하지 않았나. 당연히 궁극적인 목표는 그 약으로 경제적 이득을 취하는 것이겠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면 대체 어떤 종류의 신약을 개발하겠다는 말인가. 문득 국방부 대변인 신분으로 만났을 때 상대가 말하던 내용이 떠올랐다.


“설마 아직도 특수 부대를···!!”

“아하, 걱정 붙들어 매세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뻔했던 지엽은 겨우 진정하고 엉덩이를 의자에 붙였다. 재호의 신속한 부정 덕분이었다. 소스라치게 놀란 상대가 재미있었는지, 재호는 잠시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휴전 중인 땅에서 다시 전쟁 일으킬 일 있어요? 자칫 잘못하면 미국과도 등져요. 지금도 그쪽에 해명하느라 정신이 없을걸요.”


군대는 순전히 정부를 움직이게 하기 위한 도구였다. 세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아직 핵을 포기하지 못하는 북이었다. 맞서려면 어떤 무기가 가장 탁월하겠는가.


미국의 군수 업체에서 무기를 사는 것보다 오귀의 혈액을 이용하는 방법이 더 괜찮지 않겠나. 잠재력이 강한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그 마음들만 살짝 긁었을 뿐이었다. 물론 그렇게 간단히 넘어올 줄은 몰랐지만.


하지만 아직 욕심이 남았어도 지금 시국에 진행하기는 위험했다. 당장 미국과 동맹이 흔들릴 지경이었다. 겉으로는 한국의 인권 의식을 지적하고 있지만, 문제의 실험으로 부대까지 양성하려고 한 정황에 큰 우려를 느꼈을 터였다.


미국만이 아니었다. 사태가 발각된 이후로 동아시아에 긴장이 감돌고 있었다. 일본은 미국에 동조했고 중국 또한 불편한 기색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실험을 하다가 걸리는 날에는 정부 차원에서 적극 처벌할 터였다.


“투 트랙으로 진행하죠.”

“투 트랙이라면 어떻게···.”

“방송용과 비방용이라고 말하면 쉽겠네요.”


지엽의 얼굴에 불안이 감돌았다. 벌써부터 수상했다. 현재도 바깥에서 모르게 연구를 계속하지 않는가.


그런데 더 비밀스러운 연구 목적이 있다니. 한눈에 보아도 옳지 않은 방식이나 결과일 것이었다.


“또··· 무슨 일을 꾸미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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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 곰이 피는 나무 2 20.02.11 43 0 11쪽
170 곰이 피는 나무 1 20.02.07 45 0 11쪽
169 천리마의 고삐 11 20.02.07 48 0 11쪽
168 천리마의 고삐 10 20.02.04 46 1 12쪽
167 천리마의 고삐 9 20.02.04 51 1 12쪽
166 천리마의 고삐 8 20.01.31 53 1 12쪽
165 천리마의 고삐 7 20.01.31 56 1 13쪽
164 천리마의 고삐 6 20.01.28 49 1 11쪽
163 천리마의 고삐 5 20.01.28 49 1 11쪽
162 천리마의 고삐 4 20.01.24 49 1 13쪽
161 천리마의 고삐 3 20.01.24 50 1 13쪽
160 천리마의 고삐 2 20.01.21 52 1 12쪽
159 천리마의 고삐 1 20.01.21 55 1 13쪽
158 앞으로 잡는 도둑 9 20.01.17 48 1 11쪽
157 앞으로 잡는 도둑 8 20.01.17 48 1 11쪽
156 앞으로 잡는 도둑 7 20.01.14 46 1 11쪽
155 앞으로 잡는 도둑 6 20.01.14 49 1 14쪽
154 앞으로 잡는 도둑 5 20.01.10 49 1 14쪽
153 앞으로 잡는 도둑 4 20.01.10 48 2 15쪽
152 앞으로 잡는 도둑 3 20.01.07 48 1 13쪽
151 앞으로 잡는 도둑 2 20.01.07 56 1 11쪽
150 앞으로 잡는 도둑 1 20.01.03 52 1 12쪽
149 양 가문 한 집 4 20.01.03 52 1 17쪽
148 양 가문 한 집 3 19.12.31 51 1 11쪽
147 양 가문 한 집 2 19.12.31 53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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