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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홍기석입니다.

사희곡 (捨姬曲 : 버린 여인의 노래)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홍기석
작품등록일 :
2019.05.13 19:38
최근연재일 :
2021.02.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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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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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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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천리마의 고삐 9

DUMMY

9


용산구 한남동.


고작 며칠이었다. 어머니의 당부였으나 늘 마음속에 불안감이 자리했다. 그래서 감시 카메라의 시야까지 동원한 것이었다.


그래도 걱정되었다. 저택의 방문이 뜸해진 틈을 타 곧바로 우려한 사태가 발생한다면, 명백히 운명의 장난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하필 오늘 그 특이점이 감지되었다.


중요한 회의까지 미루고, 저택으로 향했다. 출퇴근 시간이 아닌 만큼 도로가 한산했다. 덕분에 평소보다 이동이 빨랐다.


규정 속도도 지키지 않고 달리는 중이었다. 어머니의 생명이 달린 사안이었다. 딱지를 떼더라도, 그녀의 목숨값에 비하지 못했다. 그것을 잘 알기에 석수도 유난히 과격하게 운전했다. 재수가 나빴다면 중간에 싸움이 붙어서 발목을 잡혔을지 몰랐다.


“어머니···!”


도착하기 무섭게 계단을 올랐다. 뒤따르는 석수의 얼굴은 점점 심각한 빛으로 변했다. 저택에는 이미 강렬한 피 냄새가 감돌았다. 절대 작은 생채기로 채울 수준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호억은 알아채지 못했다. 귀왕의 안위를 확인하기에 급급한 나머지, 감각이 무디어진 탓이었다. 그리고 기어이 문제의 광경을 맞닥뜨리고 말았다.


“허······.”


말문이 막혔다. 충돌하기 직전인 화물차를 눈앞에 두고도 굳어 버린 비련한 인물처럼, 인생 최대의 충격과 마주한 호억도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라 그래도 멈추어 버렸다.


그녀는 위중한 상태로 수호의 품에 있었다. 바닥을 물들인 혈액의 양만 보아도 상처가 짐작되었다. 여태 무엇을 하려던 수작일까. 행여나 역모가 드러날까, 시신이라도 몰래 매장할 셈이었나.


분위기가 이상하자, 수호는 조용히 그녀를 내려놓았다. 힘없이 소파에 기대는 모습이 보였다. 동시에 그녀를 가로지른 상흔마저 선명해졌다. 예리한 칼이 단숨에 스쳤는지, 대각선의 형태였다. 칼잡이가 아니면 쉽게 만들기 어려운 자국이었다.


이어서 주인과 떨어져 있는 환도가 보였다. 그제야 상황이 파악되었다. 지금의 사태를 초래한 명백한 원인이었다. 칼날에 그녀의 것으로 추정되는 피가 흥건히 묻어 있었다.


“강수호!!!!”


호억은 범인에게 돌진했다. 그저 반사적인 반응이었다. 주먹이나 발을 사용할 생각도 못했다. 그냥 온몸으로 들이받을 뿐이었다. 최대한 멀리 떨어뜨려야, 그녀가 안전했다.


“큭!”


미처 피하지 못한 수호는 양팔로 고스란히 충격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대로 버티지 못했다. 가뜩이나 체격이 작아서 속절없이 책장으로 밀려났다.


우당탕탕!


충격을 견디지 못해 책장 바깥으로 튕겨진 책들이 우수수 수호의 머리 위에 쏟아졌다.


별안간 달라진 형국에 당황한 동호는 슬쩍 뒷걸음질쳤다. 한눈에 보아도 오해가 빚은 불상사였다. 서둘러 친절히 설명해야 할까. 하지만 상대의 상태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침착하게 경청하지 못할 듯했다.


정작 호억은 청년에게 관심을 두지 못했다. 의식이 성하지 않은 귀왕의 앞으로 기어가 차마 만지지도 못하고 안달복달했다. 마음 같아서는 지혈이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조치하기 무서웠다. 어디든 함부로 손을 댔다가는 상태가 더욱 위태로워질 것 같았다.


“어, 어머니··· 어떻게···.”

“아직 숨이 붙어 계십니다. 당장 병원으로 옮기면 괜찮아지실 거예요.”


재빨리 귀왕의 상태를 살핀 석수는 차분히 혈주에게 설명했다. 사실 상당히 위독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몰라도, 계속되는 출혈에 환자의 기력이 많이 쇠한 상태였다. 어떻게든 의식을 유지해 보려는 노력 또한 부족했다. 결국 시간을 다투는 싸움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안심시키지 않으면, 호억의 성격상 진정하지 못할 것이었다. 엄밀하게 따지면 거짓이 아니었다. 희망적인 부분만 강조했을 뿐이었다.


“너는 얼른 어머니를 모셔.”

“사, 사장님!”


그러나 희망으로는 이미 한참 전에 이성이 나간 혈주를 만류하지 못했다.


호억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책들을 헤치고 청년에게 뛰어가는 수호가 보였다. 참으로 괘씸했다. 오랫동안 함께한 주군이 사경을 헤매는 앞이었다. 와중에 달라진 주인부터 지키려고 달리는 모습이 심히 보기 싫었다.


“그 자식이야? 그래서··· 그래서 이딴···!!”


혜연의 점괘가 빠짐없이 들어맞았다. 낯선 청년의 꾀에 빠져서 결국 주군을 배신하지 않았는가. 공원에서 헤어진 이후로 심경의 변화가 생겼겠다. 그것을 청년이 교묘하게 이용했을지 몰랐다.


수호는 천천히 창문 앞으로 동호를 몰았다. 이성적인 대화가 불가능한 때였다. 어떻게 해명해도 호억의 귓가에 닿는 데는 시간이 소요될 것이었다. 이쯤에서 아이의 존재는 방해 요소로 작용할 뿐이었다.


잘못하면 목숨도 위험했다. 환도마저 손에 없는 상황이었다. 온전히 상대가 가능할지 몰라도 우선 아이부터 멀리 내보내야 했다. 이후의 상황은 밑에서 눈치를 살피고 있을 상명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


“일단은 상황부터 설명해야···.”

“가능한 한, 멀리 도망쳐.”

“네? 으앗!”


깨장창!


난데없이 창문이 박살났다. 그리고 동호의 몸이 기울었다. 굉장히 끔찍한 경험이었다. 점점 뒤로 넘어가는데 받치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중력은 청년이 대처할 여유를 주지 않았다. 동호는 즉시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덕분에 외마디 비명을 끝으로 청년은 둘의 시야에서 완벽히 사라졌다.


“어딜 도망치려고!”


어머니의 시해를 사주한 배후였다. 이대로 도망치게 두지 않겠다.


호억은 다시 수호에게 달려들었다. 승산을 느껴서가 아니었다. 상대가 빈손인 사실도 눈치채지 못한 상태였다. 어머니의 변고에 관련된 인물인 이상 누구도 놓치지 않겠다. 머릿속이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수호는 호억을 붙들었다. 어떻게든 상황을 정확하게 설명하고 싶었다. 여기서 놓치면 오해가 더 심각한 갈등으로 번지고 말았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면, 어차피 환도는 무용했다. 이번에는 침묵하지 않고 제대로 해명할 작정이었다.


“진정해! 오해야!”

“닥쳐!”

“으악!”


역시나 매정하게 뿌리쳤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극심한 고통에 수호는 자신의 쇄골을 더듬었다. 언저리의 옷감이 새까맣게 타서 너덜거렸고, 피부는 벌겋게 달아오르다 못해 벌써 물집이 잡혔다.


호억의 주변이 이미 통제하기 어려울 만큼 뜨거워지고 있었다. 이대로 두면 저택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되었다.


“흡!”


호억은 정원으로 뛰어내렸다. 그의 손길에 그을린 잔디와 꽃들이 덧없이 타들어 갔다.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얼른 주변을 살폈다.


수호는 신원이 보장된 몸이었다. 이곳에서 무사히 도망쳐도, 언젠가는 동기들의 눈에 들어서 처형될 운명이었다.


그러나 도주한 청년은 별개였다. 살해당한 혜연 외에는 아무도 그의 생김새를 몰랐다. 자신조차 흥분한 탓에 정확히 보지 못했다. 그러니 더더욱 놓치면 곤란했다. 작정하고 숨으면 찾기가 어려웠다.


“젠장···!”


수호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칼을 찾았다. 말로는 도저히 해결이 불가능했다. 여기서 더 지체하면 겨우 내뺀 아이가 따라잡혔다. 도움닫기가 익숙하지 않은 상태니까. 다소 폭력적인 사태가 벌어져도 어쩔 수 없었다. 당장 청년의 호위인 자신이 무리해야 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환도가 엉뚱한 이의 손에 들어가 있었다.


“안 됩니다. 못 돌려드립니다.”


석수는 힘껏 환도를 움켜쥐었다. 칼자루를 처음 잡았기 때문일까. 예상보다 무거웠다. 이런 것을 아무렇지 않게 휘두르는 상대가 새삼 대단해 보였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로 건네주면 안 되었다. 상대가 환도를 가지고 밖으로 나가는 순간, 용마 공원에서 보았던 것처럼 주인은 한낱 장난감으로 전락할 터였다. 게다가 오늘은 경우가 달랐다. 누군가가 목숨이 끊어지기 전까지는 끝나지 않을 싸움이었다.


“살고 싶으면··· 당장 내놔.”

“싫습니다. 절대로 그렇게 못합니다.”

“급한 일이 따로 있을 텐데.”


수호는 일부러 환자를 쳐다보았다. 상대는 석수였다. 차분히 설명하면 통할지 몰랐다. 하지만 제일 흥분한 호억이 동호를 뒤쫓는 중이었다. 아쉽게도 그만한 여유가 없었다.


그렇다면 한눈이라도 팔게 만들겠다. 여태 귀왕의 외모로 둔갑하고 있는 연희를 잠시 이용해야 했다. 의식이 어지러운 와중에도 본체가 드러나지 않았다. 정말이지 대단한 정신력이었다. 그만큼 목표를 이 저택에서 내몰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석수는 잠시 망설였다. 혈주의 명령이었다. 원래는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어머니를 광혜대학교 병원으로 모셔야 옳았다.


그러면 칼잡이를 방관하게 되었다. 곧바로 혈주를 뒤쫓을 것이었다. 위험한 무기라도 소지하지 못하게 막겠다. 주인이 어머니를 사랑하는 마음처럼, 자신도 혈주를 소중히 생각했다. 귀왕의 안위를 헤아리는 까닭도 순전히 그것이었다.


“저에게 사장님보다 우선은 없습니다.”


작전이 먹히지 않았다. 의도대로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귀왕만큼 호억과 석수의 유대도 끈끈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얄팍한 수작에 금세 흔들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방법이 없었다. 조금은 거칠어도 무력으로 빼앗아야 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헉!”


수호는 눈 깜짝할 사이에 석수를 제압했다.


* * *


용산구 이촌동.


호억은 무작정 달리는 중이었다. 멀찌감치 보이는 둘의 뒷모습을 따라서였다. 엉뚱한 사람을 착각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아무리 다급해도 건물 옥상을 자유로이 뛰어넘지 못할 테니까.


서재에서는 분명히 한 명이었는데, 갑자기 인원이 늘어났다. 사전에 준비한 대처일까. 혜연의 점괘를 바탕으로, 비상시에 무사히 탈출을 도울 인원까지 미리 배치해 놓았나. 그렇다면 이 만행은 꽤나 치밀하게 준비한 작전이라는 말이 되었다.


아무튼 한 명이라도 반드시 생포해야 했다. 팔다리를 잘라서라도 잡고 말겠다. 그래야 사건의 구체적인 전말을 파악할 수 있었다.


“절대··· 가만 안 둬. 빌어먹을!”


호억은 끊임없이 화염을 만들었다. 불꽃은 생성되는 즉시 두 도망자를 향해 날아갔다. 어디에 불씨가 떨어지든 상관없었다. 그의 목표는 오직 도망치는 둘이었다. 하나라도 맞아서 누군가의 발목을 잡는다면, 거리는 급격히 줄어들 것이었다.


“어디를···!!”


계속되는 공격에 위험을 느꼈는지, 그들은 급격히 방향을 선회했다. 행여나 놓칠세라 호억도 따라서 발목을 틀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까맣게 그을리는 바닥과 달리 정작 도주하고 있는 이들은 깨끗했다. 화염이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듯했다. 조준이 어긋나지 않았다. 정확하게 어깨와 등을 노렸건만, 그들은 순조롭게 전진하고 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장벽이 그들을 보호하는 느낌이었다. 만약 영력을 사용하고 있다면 난감했다. 이렇게 추적만 해서는 유의미한 피해를 입히기가 어려웠다.


곧이어 한강 공원이 펼쳐졌다. 직장인들이 퇴근하기 전이라 인파는 적었지만, 휴식을 즐기는 사람들이 자리했다. 의도는 뻔했다. 지켜보는 시선들이 많으면, 영력을 이용한 공격이 조심스러울 테니까.


하지만 그런 작전이라면 실패였다. 그에게 귀왕보다 우선되는 점은 없었다. 목격자가 생겨도 상관없었다. 때문에 오귀의 인상이 나빠지면, 나중에 흔쾌히 대가를 치르겠다.


단, 눈앞의 도망자들을 묵사발로 만들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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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천리마의 고삐 2 20.01.21 52 1 12쪽
159 천리마의 고삐 1 20.01.21 56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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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앞으로 잡는 도둑 4 20.01.10 48 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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