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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홍기석입니다.

사희곡 (捨姬曲 : 버린 여인의 노래)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홍기석
작품등록일 :
2019.05.13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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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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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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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곰이 피는 나무 4

DUMMY

4


찬용이 말한 대로 곤지암 시설에서 탈출한 사형수일 소지가 있었다. 그래서 숨겼겠다. 이것이 그대로 전국에 알려지면, 가뜩이나 살얼음판을 달리는 정국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테니까.


대통령의 지지율은 뻔했다. 위법한 행위를 허락하고 종용하는 바람에, 국민의 안전이 위협당하지 않았는가. 오귀의 책임을 크게 부각시킨 여당도 그 운명과 함께할 터였다.


“하하······.”


도현은 이마를 문질렀다. 벌써부터 골치가 아팠다. 사건을 담당하는 모두가 자신만이 아닌 전 국민까지 농락하고 있는 셈이었다.


이 공공연한 비밀이 어디까지 퍼져 있을까. 현장의 판단만으로 절대 이럴 수는 없었다. 형사나 수사관 등이 무슨 이유로 변사자의 신원을 숨기겠는가. 그 윗선의 이해관계에 휘둘려서 지침만 이행할 뿐이었다.


“아는 사람이야?”

“정말 제대로 작당을 했구나.”


눈으로 정황까지 확인했다. 이제는 모르는 채로 가만히 방관하지 못했다. 순응하거나 말거나, 선택지는 오로지 두 가지뿐이었다. 하지만 조용히 넘어갈 성미였다면, 애당초 이만한 수고조차 들이지 않았겠다.


벌써 가시밭길이 보였다. 이제껏 평탄하게 넘어갔지만 이번 건은 피할래야 피할 수가 없었다. 검찰과 경찰이 완전히 뒤집어지든, 그 안으로 편승하지 못한 자신이 튕겨지든, 어느 쪽은 분명히 끝장을 보는 선택이었다.


뚜벅. 뚜벅.


복잡한 마음에 허우적댈 쯤이었다. 밖에서 누군가가 접근하는 소리가 들렸다. 찬용은 시계를 확인했다. 아직 점심시간이 끝나기 전이었다.


다행히 여럿의 발소리는 아니었다. 이상한 낌새를 감지한 탓이 아닌 주기적인 순찰로 보였다.


“으아, 벌써?!”

“보안부서가 괜히 있겠니. 일단 서두르자.”


도현은 서둘러 정신을 다잡았다. 망연하게 있을 시점이 아니었다. 변사체를 바깥으로 반출시킬 수 없으니 가능한 물증은 모조리 확보해야 했다.


우선 찬용에게 핸드폰부터 받았다. 유전자 감식이 가능한 조직 샘플을 확보해도 딱히 의미가 없었다. 장기적으로 보관할 환경이 마땅하지 않아서, 실험한 결과의 신뢰도만 떨어뜨릴 것이었다.


찰칵. 찰칵.


시신의 얼굴부터 기록까지 함께 사진 안에 담았다. 다른 변사체로 기만한다는 반박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곧바로 시신의 얼굴을 공개하면 싹 사라질 주장이지만, 어디까지 뻔뻔한 태도로 응수할지 모르는 만큼 미리 철저하게 준비해야 했다.


탁재현은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초동 수사가 잘못되는 바람에 결국 공개 수배로 전환한 사건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한창 떠들썩했던 이후로 아직 삼 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형사부를 떠난 자신도 기억하는데, 치안에 예민한 일반 시민들이 설마 잊을까.


뚜벅. 뚜벅.


그 와중에 부검실로 다가오는 소리가 더욱 또렷해졌다. 출입문이 곧 열린다는 신호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도현은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했다. 빼먹은 부분이 있을까 걱정되었다. 그래서 카메라를 바로 거두지 못하고 계속 주변만 두리번댔다. 급기야 빠르고 안전한 탈출이 특기인 찬용마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빨리··· 나가야 할 것 같은데?”

“잠깐만 기다려.”


서둘러 시신의 손가락을 펼쳤다. 소견서에 분명히 사체의 손이 훼손된 상태라고 적혀 있었다. 그래서 신원을 확인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보고대로 손의 지문이 엉망이었다. 격렬한 반항으로 생긴 상처가 아니었다. 변사자의 신원이 밝혀지면 곤란한 누가 칼로 일부러 도려낸 형태였다. 행여나 남은 자국으로도 조회되지 않도록 완벽하게 지웠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그 흔적들을 여러 장 촬영했다.


“빨리···!”


찬용이 재촉하자, 그녀는 한계를 직감하고 물러섰다. 아무리 신속한 이동이 가능해도, 사라지기 전에 들키면 이 작전이 무용했다.


허둥거린 느낌이 당장은 찝찝해도, 도리가 없었다. 다음을 기약하거나 확보한 증거로 어떻게든 돌파해야 했다. 피해자의 정체를 깨달은 이상 잠자코 침묵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마음이 급한 찬용은 황급히 손부터 들었다. 그러자 도현이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그의 등짝을 내리쳤다.


“시신··· 원래대로 되돌려야지···!”

“으아···!”


경악한 나머지 찬용은 스스로 입을 막았다. 하마터면 흔적을 온전히 남긴 채로 자리만 떠날 뻔했다.


이쪽의 의도를 노출하는 행위였다. 머잖아 비상이 걸리고, 연구원 내부에서는 범인을 탐색할 것이었다. 그러면 가까스로 확보한 증거를 도현이 적절하게 이용할 수 없었다.


발걸음 소리가 멈추었다. 정말로 출입문이 열리는 단계만 남았다. 냉장고로 뛰어가서 수습할 시간조차 없다는 의미였다.


“내가··· 어떻게든 할게.”


찬용은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자 바깥으로 나와 있던 시신이 냉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철컥, 동시에 잠금장치마저 본래의 위치로 배치되었다.


이윽고 경비가 들어왔다. 부검실은 아무도 없었다. 소곤거리는 음성이 잠시 스쳤지만 이내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경비는 고개를 들어서 카메라의 상태만 확인했다. 역시나 평상시와 다르지 않았다. 어떠한 이물질도 없이 렌즈 앞이 말끔했다.


* * *


서울중앙지방 검찰청.


“으웩!”

“으아아··· 아아아···.”


부장 검사실에 무사히 당도한 둘은 각자의 방식으로 한숨을 돌렸다.


찬용은 숨을 깊게 마셨다가 땅이 꺼지도록 내쉬었다. 이렇게 아슬아슬한 경험은 정말 간만이었다. 어떻게 보면 이번이 처음이나 다름없었다. 범죄 현장을 몰래 지켜보다가 도망치는 임무와 차원이 다르니까.


게다가 위험을 싫어했다. 그래서 웬만하면 도전하지 않았다. 불사의 육체를 가졌지만 때마다 수명이 감소하는 느낌이었다.


다급하게 정리한 냉장실이 문제였다. 언뜻 간단해 보이지만, 그의 영력으로는 굉장히 난해한 작업이었다. 목표의 구성을 단번에 옮기는 일이었다. 조금만 아귀가 다르거나 시점이 정확히 맞지 않으면 곧바로 깨지고 말았다.


도현에게 차마 이야기하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미친 짓을 했다면서 흥분할 테니까.


“괜찮아?”


그리고 도현의 상태를 확인했다. 부검실에 도착했을 때처럼 안색이 나빴다. 아무래도 평범한 인간이 감당하기 무리인 듯 보였다. 이번이야 상황이 어쩔 수 없었지만 앞으로 그녀에게 사용하지 말아야 하겠다.


“신경 쓰지 말라니까.”

“어떻게 신경을 안 써···.”

“하아······.”


정작 도현의 속을 어지럽게 만드는 요소는 기상천외한 이동이 아니었다. 오래 몸담은 조직에 대한 갖은 실망이 밀려오고 있었다.


늘 최상의 상태를 유지한 조직은 아니었다. 이 땅으로 단단히 박힌 부조리들은 소수의 사연이 아니었다. 자신이 아니라도 모두가 잘 아는 진실이었다.


그러니 부지런히 기소해도, 정작 형량들이 그만한 수준 아니겠는가. 관련한 문제들을 보완하는 법안이 무슨 소용인가. 국회조차 통과하지 못하는데.


그래도 최소한의 염치는 있겠지, 순진하게 방심했다. 법이야 어차피 귀걸이가 아니면 코걸이였다. 얼마나 유능하고 인맥이 넓은 변호사는 만나는지, 판사의 마음을 어떻게 회유하는지. 물론 사회적인 파장이 상당한 사건들은 전 국민의 주의가 집중되는 만큼, 판사의 권리라도 멋대로 판결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토록 망가졌을 줄이야. 변사체를 훼손한 정황도 모자라, 그것으로 진실까지 왜곡하고 있었다. 졸지에 휘말린 당사자가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지는 고민이 없었다. 그저 자신들의 허물을 다른 쪽으로 치우는 데만 혈안이었다. 와중에 누구도 진실하게 보고하지 않았다니, 더욱 배신감이 들었다.


혹시나 말단들은 모르지 않았을까. 상부의 지시를 받은 개인이 저지른 만행은 아닐까. 다양한 가능성을 생각해도, 어째 희박하게 느껴졌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

“뭘 어떻게 해. 일단은 상부와 논의해야지.”

“헙, 그렇게 정공법으로?”


그러나 설령 그렇다고 해도 상부와의 논의 자체를 거르기는 무엇했다. 자신이 오해한 뒷이야기가 있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조직 전체가 소수에게 홀리는 중일 수도 있었다.


속단해서 혼자 마음대로 행동하면, 도리어 상대에게 빌미만 제공하게 되었다. 얼마나 단단한 바위를 치는지 모르는 만큼 만만히 보아서는 위험했다.


찬용은 걱정되었다. 초임 시절부터 그녀가 일한 분위기나 모습만 보아도 상황은 얼추 짐작되었다. 조직의 위에서 권세를 누리는 그들이 얼마나 깨끗하겠나. 그랬다면 이런 불미한 상황조차 없었을 터였다.


보고는 곧 선전포고였다. 상대에게 대비할 시간과 기회를 선사하는 행위였다. 당연히 그녀가 불리해졌다. 진실이 드러나기 전에 먼저 공격하거나 필시 인사 문제로 압박할 것이었다.


개인이 조직과 싸워서 이기는 방법은 오직 기습밖에 없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는 시점에 사안을 터뜨려서 전 국민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와야 승산이 있었다.


“사진은 어떻게 설명하려고?”


찬용이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묻자, 도현은 침묵했다. 유일한 증거인 시신을 발견하고 차마 그냥 떠나기 무엇해서 이렇게 했지만, 특별한 대책 없이 바로 노출하면 곤란했다.


자칫 잘못하면, 관계자도 모르게 부검실을 침입한 사실이 들통났다. 처음부터 대화가 통한다면 이런 걱정도 필요 없겠지만 끝내 사용해야 한다면, 공익 제보자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그 출처는 은폐할 수밖에 없었다.


“공익 제보자가 있다고 말해야지.”


하지만 그마저도 시원하지 않았다. 그러면 정보의 신빙성이 의심을 받았다. 사람들은 은근히 안정적인 분위기를 원했다. 아무리 올바른 일이라도, 조직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인 만큼 유리처럼 투명한 증거만 원했다.


“흐음······.”


그런데 정보 제공자가 불투명하면, 순순히 그녀에게 귀를 기울일까. 전망이 유리하지 않았다. 찬용은 미약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왜.”


도현은 눈썹을 움찔했다. 그다운 자신감이 없었다. 자신보다 오래 살았기에 벌써부터 부정적인 앞날이 훤하게 보이나. 그렇다면 좀처럼 순응하지 못하고 어려운 길만 가는 상대가 어지간히 답답해 보이겠다.


개인적인 감상이니, 굳이 상관하지 않았다. 하지만 중대한 사안인 만큼 나름의 대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숨긴다면, 아주 조금은 불쾌할 것이었다.


“뭐가 마음에···.”

“힘들 거야.”


진지한 목소리에 말문이 막혔다.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었구나. 웬만한 사태에는 눈도 깜짝하지 않는 그라서 더 적응이 힘들었다.


찬용의 말에는 늘 얄팍한 장난기가 서렸다. 사건의 경중을 떠나서 언제나 그런 식으로 반응하는 통에 힘들 때 의지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이제는 근심이 잔뜩 어린 시선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머잖아 맞닥뜨릴 사태가 차원이 다를 만큼 위험한 탓이겠다. 그래서 그조차 이런 반응을 보이게 되었다.


도현은 최대한 단순하게 생각했다. 현재의 자리까지 포기하는 대가를 치를 수 있었다. 오랜 시간 열렬하게 공부한 보상이 그대로 날아가 버린다고 상상하니, 시작부터 속이 쓰라렸다.


“응. 그런데··· 이대로 어떻게 넘어가.”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그녀는 어깨를 폈다. 습관적으로 어두운 미래만 생각하면, 과감히 내린 결단마저 뒤로 무르고 말았다.


일그러진 조직을 바로잡고 싶었다. 자신이 나서지 않으면, 언젠가는 후배들이 똑같은 피해를 입었다.


게다가 자신만큼 적임자도 없었다. 모두가 부러워할 정도로 집안이 풍족했다. 수입을 지출할 시간조차 없었던 탓에 당장 어떻게 되더라도 굶주리지 않았다.


“어디까지 연결되어 있는지··· 확인할 거야. 다음에 움직여도 늦지 않아. 일단은 절차를 지켜야 나도 보호받을 수 있어.”


누가 얼마나 중대한 비밀을 숨기고 있는지, 그것에 따라서 형세가 달라졌다. 머릿속에 끊임없이 떠오르는 걱정대로, 그들이 먼저 자신을 음해할 가능성도 농후했다.


털어서 먼지가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저지른 어떤 실수나 사소한 말싸움으로 걸고 넘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과 관련된 어떤 사안도 그들이 전 국민에게 감추는 규모와는 감히 맞먹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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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앞으로 잡는 도둑 4 20.01.10 48 2 15쪽
152 앞으로 잡는 도둑 3 20.01.07 48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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