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헤이젠 님의 서재입니다.

새로이 핀 꽃은, 금세 시들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대체역사

헤이젠
작품등록일 :
2019.04.01 16:08
최근연재일 :
2019.07.01 02:13
연재수 :
39 회
조회수 :
2,986
추천수 :
0
글자수 :
177,366

작성
19.04.08 16:12
조회
76
추천
0
글자
9쪽

개척이라는 단어가 주는 환상[3] - 현실에서 눈을 돌리는 것[1]

DUMMY

“때 맞춰 만났네. 내가 준비해놓은 스테이지에 부디 깨우쳤으면 좋겠군.”


현대 마술사 복장의 남자가 과장스럽게 팔을 이리저리 흔들며 주저리 떠들었다. 세리에나 오르텐리아도 못 알아볼 정도로 얼굴을 하얗게 칠하고 삐에로 코까지 다는 메이크업은 감히 칭찬한다. 하지만 내가 못 알아보는 일은 없었다.


“아라쉬······.”


오르텐이라도 그제야 목소리를 눈치 챘는지 표정이 구겨지고 먹던 솜사탕도 멀리 던져버렸다. 전신에 오른 성력의 아지랑이가 그녀를 감싸고 즉시 전투준비태세에 돌입하는 반전을 보여주었다. 그때와는 다르게, 소리치는 나나 솜사탕을 입에 문 채 갑주를 발현해 장착한 세리에를 말리는 행동을 일절 하지 않았다.


어안이 벙벙한 아랑이는 내가 왼팔로 감싸 안아 아라쉬 쪽을 보지 못하게 돌려 가만히 있도록 달래주었다. 아라쉬는 무언가 준비를 해놨는지 주위엔 아까 전부터 뛰어놀던 아이들조차 자취를 감춘 지 오래전 이였다.


“자! 치욕스러웠던 과거를 떠올려라. 여기사! 자신이 맹목적으로 맹신하던 신에게 빌어보던가, 이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저주를 퍼부어라. 네가, 그토록, 믿던! 영웅이라는 자가 내다 버린 인형은 그저 시키는 대로 사는 것뿐이다!”


과연··· 저 또라이 같이 튀어나오는 성격 탓에 세리에도 알아본 건가. 그래서 말도 없이 죽이려고 덤벼든 거라면 이제 이해했다. 아르바이트 술집에 와서 맥주나 마시며 나눈 대화의 모습과는 확실히 갭이 컸다. 비록 나에게는 귀뜸을 하긴 했지만, 어디까지가 진심인지는 당사자만 알 뿐, 듣는 이는 모르는 게 당연하다.


“네놈은 내가 목을 베니라······. 그래, 그때의 치욕을 나는 잊지 않았어. 여기로 왔을 때 나는 죽은 거나 다름없었다. 현재에 순응하고 얌전히 살고자 케이와 약속했다. 그러나!! 이건 신이 주신 마지막 기회야. 네놈을 처죽이고, 위업을 달성하겠다!!”


“세리에!!! 날뛰면······.


안돼라고 끝까지 말했어야 하는데, 순간 발생한 엄청난 굉압에 공기가 진동에 억눌려 소리가 나아가질 못했다. 단지 일격이였다. 오르텐리아처럼 전신이 하얀색 아지랑이가 가득 풍겨지는 세리에가 일순간 하늘로 뛰어올라 내려친 검이, 중앙광장에서 광장 끝자락의 거리까지 대리석 발판 전부를 바닥에 흐르는 진동만으로 깨트려버렸다. 풍압이 서있기를 방해하고 아랑이는 긴 머리카락이 흩날리며 내 시야를 가렸다.


설마 이 정도까지 강할 줄은 상상도 못해봤다. 그럼 그 피아트럭스라는 기사단의 사람들은 다 이정도급의 강함을 지녔고, 세리에는 3등. 그런 세리에를 ‘몰래’ 접근해 마법을 실현한 궁정 마법사 아라쉬는 얼마나 실력자라는 건지 양 팔에 소름이 돋아서 저렸다.


“현대에 와서도 전혀 약해지지 않았구나. 오히려 강해졌어! 너희 기사단의 신념이 이 시대에서 빛을 발하는구나.”


“시끄러. 곧 떨어질 목이 말이 많다고······.”


세리에가 매섭게 휘두르는 검은 하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한 궤적을 그려내며 아라쉬를 위협했다. 하지만, 위협에 그쳤다. 예견이라는 현재 시점의 기준, 그 앞을 내다보는 직감을 아라쉬는 농밀하게 사용하는 걸 느꼈다. 기사로서 적을 죽이려드는 세리에는 결코 헛된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아라쉬는 잔 상처하나 얻지 않는 기연을 한껏 뽐낸다.


이미 거기서부터 세리에는 육체적으로 아라쉬를 이기는 게 힘들어졌다.


“하여간 신이라는 놈들은 알다가도 모르겠구나. 저 둘의 미래가 검은 장막에 가려저 안 보여. 계시가 읽히지가 않아. 저 놈이 당대 최고의 기사단을 농락할 수준의 체력과 움직임을 구사하는 것 역시 놀랍구나.”


아차 하는 사이 중앙공원에 세워둔 상징물이 깔끔히 네 조각으로 잘려나갔다. 검격 한 번이 4개의 검풍을 생성해 공간을 압박해도 아라쉬는 반격은커녕 집중적으로 눈알을 굴려가며 빈틈을 모색해 공격을 피해갔다.


“하하하. 재미있는데? 이렇게 약하면 내가 굳이 나설 필요도 없었어. 자, 피아트럭스. 너는 복수에 눈이 먼 기사냐? 아니면 ‘백성을 지키는 기사’ 냐.”


아라쉬의 첫 번째 함정이 시작한 듯 했다. 이곳은 중앙공원. 솜사탕 아저씨가 계셨던 외각은 차도와 인도가 접선하는 곳이라면 중앙공원은 말 그대로 광장을 이루는 중심이고, 만약에라도 음주운전이 차도에서 올라와 나무와 온갖 장애물을 통과해 온다고 치자. 그 자체가 마법에 가까운 일이다!!


“오르텐리아!! 피해!”


하마터면 가만히 서있다 치일 뻔 했다. 아랑이가 품에서 흠칫하고 세리에를 걱정하던 차에 감각이 돌아와서 후방에서 근접하는 기묘함을 느꼈다. 나는 아랑이를 꼭 끌어안은 채 좌측으로 뛰었고, 오르텐리아는 나와는 반대로 점프해 거리를 크게 벌렸다.


“으으! 관련도 없는 사람에겐 손대지 말아!!”


세리에의 감정이 극도로 격양되기 시작하지만, 아라쉬는 계획대로 노림수인 듯 하다. 씩 웃는 얼굴이 나와 마주쳤다.


‘아직, 아직 끝난 게 아니야.’ 이건 나의 위험예지가 속삭이는 말 이였다. 그리고 내 좌측면에서 고속버스 한 대가 갑자기 내 키보다 높은 곳에서 출현해 달려들었다. 맨 앞에서 탑승객들을 이끄는 버스기사의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얼굴과 마주치고, 나는 왼쪽으로 몸을 틀어 몇 걸음 걸어가 곧장 등을 맞대고 누웠다. 아랑이를 데리고 있어서 엎드리는 건 무리.


어차피 버스는 떨어지는 높이와 각도 탓에 나에겐 피해를 주는데 실패다. 그야말로 계산 실패다. 세리에의 과격해지는 맹공에 철저한 계산식이 구현될 리는 부족한 실력인건가. 버스는 그대로 앞면부터 바닥을 찍었다. 창문이 깨지는 소리가 만연하고 몇 초 안 지나서 혈흔이 새어나왔다.


“집주인! 괜찮은 거야? 안 다쳤어?”


멀리 떨어진 오르텐리아도 버스까지 떨어뜨리니 걱정이 되어 와줬다. 다친데 하나 없이 몸은 멀쩡했지만, 저 버스 안에는 많은 승객들이 타고 있었을 것이고 심지어 버스기사는 박살나 뒤죽박죽인 대리석으로 충돌해버렸다. 안 다치고 멀쩡하겠어?


“아라쉬!! 정도껏 해라. 무고한 사람들이 다치고 있어.”


아무래도 발목을 삔 거 같다. 일어나려 하지만 몸의 균형이 오른쪽 발목에만 힘이 들어가고 왼쪽은 통증만 냅다 준다. 아랑이가 품에서 벗어나 오르텐리아와 나를 부축해 일어나주었다.


“나? 내가 대체 뭘 했다고 하는 거야~. 이 참담한 현장의 원흉은 여기사가 한 짓 아니였나?”


그때, 저 녀석은 우리가 오기 전부터 모든 준비를 마쳤다는 걸 깨달았다. 아라쉬 뒤로 들뜬 듯이 달려오는 6명의 꼬마들이 모여서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한참 뒤에는 부모들이 시끌벅적 떠들며 오는데, 이거 설마······. 아라쉬가 저런 괴상망측한 복장을 입은 것 자체가.


“저 자식······.”


세리에를 위험분자로 광고하려고 꾸민 배경이었다. 아이들이 광대에게로 가까이 붙었다. 풍선 더 불어주세요. 라든지, 온갖 걸 부탁하는데 감정이 격양했던 세리에는 거친 숨을 내쉬면서 어쩔 줄 몰라 한다. 당연하다. 아라쉬는 세리에의 저런 반응을 원했던 거다.


아라쉬가 슬금슬금 뒷걸음을 쳐서 아이들이 세리에의 앞으로 모이게끔 구도를 변경하고 이윽고 근처에 다다른 부모 중 한명이 세리에가 든 검을 보고 단말의 비명을 질렀다. 한 사람의 비명은 다른 이의 비명까지 낚아 끌어내 집중 조명을 받는다. 북적거리는 사거리가 아니라 다행이지만, 아직 공원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자세히 주위를 인식하니 멀리서 거리를 두고 스마트 폰 뒷면을 이쪽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몇몇 보였다.


아아 이래서는.


“살인자다!!!”


기어이 부모들이 선동의 주문을 날렸다. 광대는 아이들을 데리고 부모들한테 데려가 어서 피하라고 한다. 완전히 착한 척 다하는 녀석은 부모들을 안심시키며 경찰을 부르라고 소리친다. 세리에는 아무것도 못한 채 멀뚱히 서있고, 나와 오르텐리아는 그저 지켜만 봐야했다. 여기서, 움직여 세리에를 감싸기라도 하면 우리까지 싸그리 ‘악’ 으로 명찰을 달아버린다.


사실은 저 광대가 악이란 말이다. 그래봤자 들릴 일은 없다.


살짝 얼굴 옆면을 노출하며 씨익 웃는 광대의 살인미소에 그저 감탄한다.


“가버렸네~. 귀여운 꼬마들이였는데. 여기사님이 검을 뽑아서 위협하니까 그렇자나. 아? 전부 베어버렸으면 나도 즉사했을 텐데 그러지 못했지. 관련도 없는 사람을 지키려는 그 나약함이 아무리 강한 기사라도 발목을 잡는 거야. 알겠어? 날 이길 일은 없을 거야.”


“웃기지 마라! 너 따위, 악당들을 수없이 베어왔어. 너라는 거······.”


“주제를 알라고 여기사! 과거의 시대가 아니야. 현대라고! 거기서 미래라고! 새로운 세상을 개척하고자 하는 헛된 이상은 집어치워. 새로운 대륙을 발견해 기뻤던가? 더 강한 적수를 마주해 싸워 이기고 술잔이라도 나눴나? 그런 ‘환상’ 따위 이 세계는 종말한지 오래야. 선도, 악도, 어느 것도 없는 세계라고.”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새로이 핀 꽃은, 금세 시들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세계관 - 소개념 (2) - 인리신록人理新錄 19.04.11 125 0 -
공지 세계관 - 소개념 (1) - 인영재령人影災靈 19.04.10 128 0 -
공지 연재에 대한 공지사항 19.04.01 123 0 -
39 자! 시작할 일이 무엇인가[4] 19.07.01 58 0 10쪽
38 자! 시작할 일이 무엇인가![3] 19.06.23 58 0 8쪽
37 자! 시작할 일이 무엇인가[2] - 속마음부터 정리하자. 19.06.16 72 0 9쪽
36 자! 시작할 일이 무엇인가![1] 19.06.10 64 0 8쪽
35 생전, 우리는 스스로 선택하는 길을 외면하고 있었다. [1장 끝] 19.04.30 64 0 14쪽
34 얼음은 더우면 녹는다고[5] - 알겠지만 당연한 일은 만들어진다. 19.04.27 54 0 9쪽
33 얼음은 더우면 녹는다고[4] 19.04.26 69 0 9쪽
32 얼음은 더우면 녹는다고[3] - 너와 내가 다른 점은[2] 19.04.25 61 0 9쪽
31 얼음은 더우면 녹는다고[2] - 너와 내가 다른 점은[1] 19.04.24 65 0 12쪽
30 얼음은 더우면 녹는다고[1] 19.04.23 55 0 9쪽
29 그 밤에 인간성[4] 19.04.22 63 0 10쪽
28 그 밤에 인간성[3] - 내 손에 피를 묻혔다. 19.04.20 71 0 11쪽
27 그 밤의 인간성[2] - 격양한다. ㅁㅁㅁ...[1] 19.04.19 61 0 10쪽
26 그 밤에 인간성[1] 19.04.18 95 0 11쪽
25 재미있게 사는 법[4] - 새로운 만남, 고생길인가 19.04.17 118 0 10쪽
24 재미있게 사는 법[3] - 날 찾아온 그녀?! 19.04.16 57 0 9쪽
23 재미있게 사는 법[2] - 여행을 해볼까, 쇼핑을 하자[2] 19.04.15 55 0 11쪽
22 재미있게 사는 법[1] - 여행을 해볼까[1] 19.04.14 45 0 7쪽
21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5] - 때론 인생이 선택을 쥐어준다 19.04.13 67 0 9쪽
20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4] - 우리들의 첫 만남. 19.04.13 38 0 8쪽
19 과거와 미래, 현재에 대해[3] 19.04.12 60 0 11쪽
18 과거와 미래, 현재에 대해[2] - 이게 옳은 것인지? 19.04.11 51 0 13쪽
17 과거와 미래, 현재에 대해[1] -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하자[1] 19.04.10 50 0 8쪽
16 개척이라는 단어가 주는 환상[5] - 현실을 직시해라 19.04.09 40 0 9쪽
15 개척이라는 단어가 주는 환상[4] 19.04.09 55 0 11쪽
» 개척이라는 단어가 주는 환상[3] - 현실에서 눈을 돌리는 것[1] 19.04.08 77 0 9쪽
13 개척이라는 단어가 주는 환상[2] - 행복, 그 저편엔 절망도 있다. 19.04.07 60 0 1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