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penniless 님의 서재입니다.

현실적 의인화법을 손에 넣었습니다

웹소설 > 자유연재 > 라이트노벨, 현대판타지

penniless
작품등록일 :
2022.05.11 12:03
최근연재일 :
2022.06.11 21:00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856
추천수 :
35
글자수 :
158,588

작성
22.05.11 12:08
조회
93
추천
5
글자
11쪽

1부 1화

DUMMY

오늘은 월요일이다. 학교를 가야 하는 날이다. 하지만 가지 않았다. 학교를 재끼고, 침대 위에서 이불에 휘감긴 상태로, 눈을 감고 잠들기 위해 노력하던 중이었다.


“야 찌질이.”


그때 어떤 목소리가 들렸다. 어린 여자아이의 목소리처럼 높고 쨍한 목소리였다.


날 부르는 말은 아닐 거다. 난 찌질이도 아니고, 여긴 나 혼자 사는 집이니까. 집 안에는 나 말고 아무도 없다.


“야 머저리.”


아마 아래층에서 하는 소리가 열린 베란다를 통해 들리는 거일 거다. 위층에 사는 부부가 싸우는 일이 많았는데, 아마 또 싸우는 게 아닐까.


“야 귀머거리.”


빨리 다시 잠들기 위해 이불로 온몸을 감쌌다.


“자는 모습도 잘생긴 오빠.”


혹시 날 불렀나.


반사적으로 눈을 떴는데,


“양심은 있는 거냐?!”


무언가 내 오른쪽 눈을 찔러왔다.


“끄아아악!”


“심각한 줄은 알았다만 이 정도라니.”


고통을 감내하며 날 찌른 녀석의 정체를 파악했다.


“어···?”


근데 정말로 내가 모르는 사람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내 집에 들어와 있었다.


“안녕.”


“어 어···?”


근데 심지어 그건 사람도 아니었다. 여자 사람처럼 생겼지만 키가 손바닥만 했다. 피규어에 크기에 가까운 난쟁이였고 공중에 둥둥 날아다녔다.


“아, 아, 으아아악···!”


흡사 요정처럼 생겨먹은 그 생명체는 작은 몸에도 아름다운 이목구비와 희고 긴 다리, 매혹적인 가슴 곡선까지 가질 건 다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예뻐도 저런 초자연적인 모습을 하고 나타나면 무서울 수밖에 없다.


요정(?)이 부드러운 금발 머리를 어깨 너머로 쓸어 넘기며 말했다.


“니 한심한 인생을 고쳐주러 왔다.”


“뭐, 뭐요?”


“너 오늘 학교도 안 갔지?”


“안갔는데.”


요정은 초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거침없는 잔소리를 늘어놨다.


“학교도 안 가고 이불속에서 밍기적거리기나 하다니. 부모님께 받은 한 번뿐인 생명이 아깝지 않아?”


난 차분하게 대답했다.


“안아까운데.”


“······”


“누군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나? 그냥 눈 뜨고 보니 여기였던 거지.”


요정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흠. 갱생보다는 폐기가 적합하겠네.”


요정이 한 손을 들며 둥근 마법진을 만들어냈다. 붉은빛이 감돌며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뭔진 몰라도 위험한 느낌이 들어 곧바로 요정을 제지했다.


“잠깐만! 넌 뭔데 갑자기!”


요정은 그게 고정 대사라도 되는 마냥 외쳤다.


“니 한심한 인생을 고쳐주러 왔다.”


이게 무슨 상황일까. 스트레스성 환각인가. 아님 이미 죽어서 구천이 아니라 저세상··· 말하자면 천국에 와버린 건가?! 미소녀 요정이 잠자리 앞에서 나타날 정도면 천국이 맞을지도 모르겠는데?!


···실없는 생각 말고 진지하게 임해야겠다.


“너가··· 내 인생을? 왜?”


“이유가 중요한 게 아닐 텐데. 너 꼬라지를 봐라.”


“나? 왜?”


“그 썩어빠진 정신 상태!”


“······”


“학교는 맨날 안 가고, 검정고시 준비를 하는 것도 아니고, 잠만 10시간도 넘게 퍼자고. 친구도 거의 없고. 연락이란 걸 하긴 하냐? 말하는 법도 까먹은 거 아냐?”


“초면에 팩폭이 너무한데.”


“진실을 들이대 제압당해도 싸다 넌. 빨리 내 도움을 받고 갱생되도록.”


도움이라. 이 요정이 내게 도움을 주겠다고 한다. 나도 내가 문제 많은 건 안다. 요정이 정말로 날 도와준다면 그보다 좋을 게 없지. 근데 무슨 수로 날 돕는다는 말인가.


“어떤 도움?”


“음···”


요정은 고민에 잠긴 기색으로 내 주변을 둥둥 맴돌았다. 뭐야··· 거창하게 도와준다더니 인제 와서 방법을 고민하는 거야? 신뢰도가 떨어진다.


몇 초가 더 지나 요정이 결단을 내렸다.


“아, 너한테 초능력을 하나 줄게!”


“어?!”


초능력? 갑자기? 스케일이 너무 크다.


“손 내밀어. 왼손으로.”


“난 오른손잡이인데.”


“아니까 왼손 내밀어.”


고개를 기웃거리며 왼손을 내밀었다. 요정이 내 손바닥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곤 자신의 양손을 그곳에 얹어놨다.


“얍.”


요정이 내 손바닥을 양손으로 툭 밀었다. 요정이 말했다.


“끝났어.”


“뭐가?”


“너 손에 초능력이 부여됐어.”


내 손을 앞뒤로 살펴봤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그냥 늘 그렇듯 평범한 내 손바닥이었다.


“아무것도 안 달라졌는데?”


“너가 아직 주문을 몰라서 그래. 주문은 ‘사람 사람 사람’ 이야.”


주문이니 뭐니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설명이 불친절한 요정인 거 같다.


“그게 뭔데.”


“아무 사물이나 왼손으로 붙잡고 ‘사람 사람 사람’ 이라고 말해봐. 그럼 그 사물이 인간화될 거야.”


설명을 들어도 말뜻을 못알아 먹겠다.


“다 이해했지? 혹시 문제 생기면 ‘요정님 도와주세요’ 라고 해. 그럼 다시 나타날게. 그럼 이만.”


“어?”


아직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다. 하지만 요정은 내가 무슨 말을 꺼낼 틈도 주지 않았다. 살며시 눈을 감더니 하얀 후광이 요정을 감쌌다. 그러자 요정이 그 속으로 팟 하고 사라졌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방에 나 홀로 남았다.


‘뭐지···?’


긴가민가했다. 방금까지 꿈을 꾼 건가. 아님 진짜로 무슨 능력이 생겼나.


침대에서 일어나 왼손을 슥슥 흔들어봤다. 아무 느낌 없었다. 이리저리 걸어 다니다 책상 위에 있는 수학 문제집이 보였다.


별생각 없이.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뒷일은 생각도 안 하고 문제집에 왼손을 올렸다.


그리고 요정이 말해준 주문을 읊조려보았다.


“사람 사람 사람.”


그러자 기적이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어?”


어떤 여자애가 나타났다.


내 또래쯤 되보이는 키에 귀여운 목소리. 어깨에 살짝 닿는 길이의 단발머리엔 약간의 펌이 들어가 있었다. 기분 좋은 미소와 생글생글한 눈빛을 보내왔다.


얇으면서 빳빳해 보이는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표면에 ‘수학 참고서 판매량 1위’ 와 ‘3개년 기출문제 종합’ 같은 홍보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녀를 이리저리 살펴봤다. 원피스 무늬는 문제집 표지 디자인을 그대로 따갔다. 변태 같지만 냄새도 맡아봤다. 책에서 나는 특유의 코팅지 냄새가 났다.


문제집이 사람이 된 것이다. 말 그대로.



/ / / / /



문제집이 사람이 된 것이다. 말 그대로.


문제집은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내 책상 위에 서 있었다. 시원시원한 미소를 지으며 날 내려다봤다. 난 뭐라 대꾸도 못 할 만큼 놀라서,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며 얼어 있었다.


놀란 가슴을 겨우 진정시키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어보았다.


“···아래로 내려와 볼래.”


“네!”


인간이 된 문제집이 책상 위에서 폴짝 내려왔다.


“지금 공부를 시작하실 건가요.”


문제집이 원피스의 배 부분, 나풀거리는 부분을 살짝 들어내 보았다. 놀랍게도 그 안에는 수학 문제들이 적혀있었다. 한번 들어낼 때마다 페이지가 달라졌다.


“으하하. 으하하학.”


실없는 웃음소리가 나왔다.


요정이 말한 ‘사물을 인간으로 바꾸는 능력’ 그게 뭔지 비로소 이해되었다. 말 그대로 사물을 인간화 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아까 요정이 어떤 녀석인지는 모르겠다만, 정말 내 인생을 바꿀 엄청난 능력을 주고 갔다. 아직 어떻게 써먹어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 이걸로 뭔가를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떼돈을 벌 수 있을 거다. 못해도 억만장자다. 그럼 요정 말대로 내 인생을 갱생시킬 수 있다.


내가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앉아있자 문제집이 내게 물었다.


“왜 그러세요?”


“응?”


“문제 풀기 편하시게 책상에 누울까요.”


‘문제 풀기 편하게’라니. 생각하는 것도 문제집 컨셉에 맞춰져 있는 건가. 어쨌든 이젠 초능력을 활용할 방도를 고민해야 한다. 진지한 고민을 위해 조용한 안방으로 들어가 치밀한 미래 계획을 세워나갈 생각이었다.


“나 잠깐만 안방 좀 갔다 올게.”


“네? 왜요?”


“잠깐 생각 좀 하려고.”


어떻게 해야 떼돈을 벌 수 있을까. 당장은 떠오르지 않지만 열심히 생각하다 보면 분명 답이 있을 거다. 이번만큼은 머리를 굴려보자. 정말 일생일대의 중요한 사안이잖아.


하지만 으레 그렇듯 내 인생이 그렇게 쉽게 풀릴 리가 없다. 난 몸을 돌려 내 방을 나서려 했지만, 문제집이 한 손을 뻗어 내 손목을 붙들었다.


“···잠시만요.”


“응?”


문제집의 눈빛이 번뜩였다.


“또··· 도망치시는 건가요?”


“뭐라고?”


문제집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또 저를 버리고 가는 거예요?!”


“엥?”


문제집이 갑자기 내게 몸을 던졌다.


“제발! 제발 저를 써주세요!”


“우악!”


문제집의 몸이 나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난 충격을 못 이기고 넘어졌다. 난 방바닥에 눕혀졌고, 문제집의 엉덩이가 내 상체를 깔고 앉은 모양새가 되었다.


문제집은 한 맺힌 목소리로 날 갈궜다.


“또 미뤄버릴 생각이잖아요! 저번처럼요!”


“저, 저번?”


“맨날 공부하겠다고 펼쳐놓고는 핸드폰만 하셨잖아요!”


뜨끔했다. 옛날 기억도 다 가지고 있는 거였냐.


“그래 놓고 시험 전날 가면 벼락치기하고!”


기억하고 있구나. 나 공부 잘 안 했었지. 치부가 드러나는 느낌이라 괴롭다.


“야한 잡지랑 겹쳐놓고 학교에서 몰래몰래 보신 적도 있죠?!”


잠깐. 그런 적은 없는데.


“심지어 여자 삽화에 입을 맞추고 할딱거린 적도···”


“야 야, 내가 언제?! 내가 그 정도는 아니야!”


요즘은 미디어가 잘 발달한 시대다. 검색 몇 번으로 동서양을 아우르는 미녀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고작 문제집 삽화에 열을 낼 이유가 없잖아. 할딱거린다니. 그건 또 어디서 튀어나온 말이야.


추측하건대 책 위에 침을 흘리면서 잤던 걸 입을 맞췄다고 착각한 걸지도 모른다.


“어쨌든 절 당장 써주세요!”


문제집이 내 목을 붙잡고 흔들었다. 그래도 난 지금 수학 공부할 생각은 없다. 지금은 초능력 활용법을 고민해야 한단 말이다. 그쪽이 훨씬 더 중요하다.


하지만 문제집은 진정할 생각을 안했다. 내 목을 움켜쥐고 앞뒤로 흔들었다. 안 그래도 날 누르고 앉아서 답답한데 흔들기까지 하니 점점 숨이 옅어졌다. 호흡이 멎어간다.


“야, 야, 숨···”


“공부해 주세요. 공부해 주세요 공부해 주세요 공부해 주세요!”


“숨···”


숨이 안쉬어졌다. 머리가 띵해지고 시야가 핑핑 돌았다. 그때 요정이 해준 말이 떠올랐다.


‘혹시 문제 생기면 ‘요정님 도와주세요’ 라고 해. 그럼 다시 나타날게.’ 분명 그렇게 말했다. 하는 수 없이 요정 찬스를 썼다.


난 입안에 마지막 남은 공기로 최대한 크게 외쳤다.


“요저어엉! 도와줘!”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현실적 의인화법을 손에 넣었습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2 2부 21화 + 여담 + 3부 프롤로그 22.06.11 13 0 13쪽
31 2부 20화 22.06.10 15 0 10쪽
30 2부 19화 22.06.09 16 0 15쪽
29 2부 18화 22.06.08 15 0 12쪽
28 2부 17화 22.06.07 16 0 10쪽
27 2부 16화 22.06.06 17 0 9쪽
26 2부 15화 22.06.05 24 0 11쪽
25 2부 14화 22.06.04 18 0 13쪽
24 2부 13화 22.06.03 17 0 10쪽
23 2부 12화 22.06.02 19 0 9쪽
22 2부 11화 22.06.01 22 0 12쪽
21 2부 10화 22.05.31 19 0 10쪽
20 2부 9화 22.05.30 20 0 12쪽
19 2부 8화 22.05.29 23 0 12쪽
18 2부 7화 22.05.28 22 0 12쪽
17 2부 6화 22.05.27 22 0 9쪽
16 2부 5화 22.05.26 22 0 11쪽
15 2부 4화 22.05.25 25 0 10쪽
14 2부 3화 +1 22.05.24 25 1 10쪽
13 2부 2화 +1 22.05.23 25 1 9쪽
12 2부 1화 +1 22.05.22 27 2 14쪽
11 1부 11화 22.05.21 27 1 9쪽
10 1부 10화 +1 22.05.20 25 2 12쪽
9 1부 9화 22.05.19 28 1 12쪽
8 1부 8화 22.05.18 29 2 11쪽
7 1부 7화 22.05.17 28 1 10쪽
6 1부 6화 22.05.16 30 1 13쪽
5 1부 5화 22.05.15 35 3 13쪽
4 1부 4화 22.05.14 40 4 11쪽
3 1부 3화 +1 22.05.13 46 5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