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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niless 님의 서재입니다.

현실적 의인화법을 손에 넣었습니다

웹소설 > 자유연재 > 라이트노벨, 현대판타지

penniless
작품등록일 :
2022.05.11 12:03
최근연재일 :
2022.06.11 21:00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848
추천수 :
35
글자수 :
158,588

작성
22.05.13 21:30
조회
44
추천
5
글자
9쪽

1부 3화

DUMMY

혜진의 경멸하는 눈빛이 또렷하게 보였다. 그 눈으로 나와 안경을 번갈아 바라보곤 물었다.


“거짓말이지?”


“예 거짓말입니다.”


“후···”



/ / / / /



혜진이 현기증을 느끼며 이마를 짚었다.


“학교를 안 온 이유가 고작 여자친구랑 희희덕 대려고야?”


“여자친구 아닙니다.”


“···그럼 바람피고 있던 거야?”


“절대 아니야!”


혜진이 날 지나쳐 거실 한가운데까지 들어왔다. 거실 소파에 사뿐히 앉았다.


의외로 화가 나지 않은 건지, 혜진이 바로 화제를 돌렸다.


“학교 가야지.”


“아.”


혜진은 날 데리러 온 거였다. 날 학교에 끌고 갈 속셈으로 보인다. 난 거의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싫어.”


난 뒷걸음질 쳤다. 안경도 따라 움직였다.


“왜 싫어. 여자친구랑 한참 달아오르던 참이었어?”


“여자친구 아니라고.”


“여자친구랑 부잉부잉 하는 거라면 저녁에도 할 수 있어. 대부분 그 시간에 하고.”


“···부잉부잉은 또 뭐야.”


“아, 보통 붕가붕가라고 하던가.”


“너까지 그런 표현 쓰지 마! 이상해!”


“왜? 붕가붕가가 뭔데?”


···말재주로는 절대 혜진을 이길 수 없다. 그래도 난 단호하게 말했다.


“그래도 학교는 안갈거야.”


“그럼 힘으로 끌고 가야지.”


혜진이 몸을 풀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어깨를 돌려주며 나에게 다가왔다.


“날 왜 끌고 가?! 내가 학교 가든 말든 너랑 무슨 상관이야!”


“상관있어.”


“무슨 상관.”


“담임이 외출증 안해줄려고 하길래 ‘외출증만 주시면 2시간 안에 놈을 잡아 오겠습니다.’ 라고 했거든.”


“외출증에 날 팔았어?!”


“어쨌든 데리러 왔잖아.”


혜진이 내 손을 잡았다.


“솔직히 학교 가고 싶지?”


“아뇨.”


“가고 싶잖아. 그니까 교복 입고 있는 거 아니야.”


난 회색 교복 바지에 셔츠까지 입은 상태였다. 사실 아침엔 등교해 볼 생각으로 입었다. 이래봬도 학생인지라 학교에 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는건 아니라서, 매일 이렇게 등교 준비를 하곤 한다. 결국 학교에는 못갔지만.


혜진이 날 맹렬히 잡아당겼다.


“가자고! 가자니까?!”


“나 넥타이 안했···!”


“괜찮아. 그딴거 아무도 신경 안 써. 가기나 해.”


혜진의 힘은 만만치 않았다. 내 발이 미끄러지며 현관 바로 앞까지 끌려갔다.


안경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뭐 하고 있는 거야? 도와줄까?”


난 안경을 붙들고 외쳤다.


“어! 도와줘!”


“알았어.”


근데 안경은 날 당겨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현관 쪽으로 밀어갔다. 내가 아니라 혜진을 도와준다는 거였다.


안경의 힘까지 더해져 난 현관 바로 앞까지 끌려갔다. 혜진이 한 손을 뻗어 문을 열었다. 대낮의 햇살이 쏟아졌다.


“잠깐, 잠깐만, 나 진짜···”


햇살, 문턱, 문턱 너머로 보이는 아파트 복도, 복도 끝의 난간. 난간 너머 도로에서 들리는 자동차 소리. 한 번에 그 모든 게 왈칵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곳으로 끌려나간다는 과정을 떠올리자 몸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읍. 우욱.”


내 온 몸이 붉게 물들고 땀이 흘러 떨어졌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기세로 울렸다. 시야가 검게 물들고 독한 수면제라도 입에 털어넣은 것처럼 온몸의 감각이 무뎌졌다.


어 어. 속이 울렁거린다. 자동으로 몸에 힘이 풀리고 중심을 잃었다. 심각한 현기증을 느끼며 쓰러졌다.


“힉.”


혜진이 황급히 날 부축했다.


“······”


잠시 모든 생각이 정지됐다. 세상은 까만색이다. 가위 눌린 상황 마냥 생각이 멈추고 오감이 마비되었다.


“소준?!”


혜진이 내 이름을 부르며 몸을 흔들었다.


“어··· 어.”


눈이 떠지고 뿌옇지만 시야가 돌아왔다.


아주 잠시 몇초정도 기절했던 것 같다. 의식이 끊겼다 시작되는 느낌이 뚜렷했다.


“괜찮아?! 요즘도 이래?!”


“······”


혜진이 축축하게 젖은 식은땀을 닦았다. 내가 이런 적은 이미 한두번이 아니다. 넋이 나간 나는 눈도 제대로 못 떴다.


혜진이 내 뒷목을 받히며 천천히 바닥에 내려놨다. 차 멀미를 한 것같이 몰아치던 어지러움은 점점 누그러들었다. 손끝의 촉감도 돌아왔다. 하지만 여전히 일어나긴 무리다.


잠시 우리는 말이 없어졌다. 혜진은 굳은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하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난 드러누운 상태로 숨을 골랐다.


날 지켜보던 혜진이 물었다.


“아직도 많이 힘들어···?”


“······”


“약은 계속 먹어?”


얼얼해진 입술로 힘겹게 말했다.


“···저번 주부터 안 먹었어.”


“왜 안먹어.”


“의사가 약은 끊어도 될 거 같다고 했는데.”


“전혀 아닌 거 같은데?”


안경은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내 쪽을 기웃거렸다.


“왜 그래? 왜 넘어졌어?”


혜진이 낑낑거리며 날 집 안으로 끌어당겼다. 내 몸은 거실로 돌아갔다. 열렸던 현관문도 다시 닫겼다. 아직 내 몸에는 약간의 떨림이 남아 있었다.


혜진이 한 손으로 내 목을 지지하며 날 눕혔다. 그러자 내 뒤통수가 푹신하게 완충되었다.


바닥에 눕힌 거라면 푹신할 리가 없는데. 그 푹신한 게 뭔가 해서 힘겹게 손을 뻗었다. 머리를 받치고 있는 푹신한걸 더듬어 보았다.


“내 허벅지야.”


“아.”


혜진은 내게 무릎 베게 해준 것이었다.


“실수라고 생각하지만, 더듬지 마.”


“네.”


바로 손을 뗐다.


완전히 돌아온 시야에서 혜진은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도 혜진을 올려다봤다. 혜진의 가슴에 얼굴이 가려져 반쪽밖에 보이지 않았다.


혜진 의외로··· 많이 컸구나.


그렇게 눕혀진 상태로 몇 분 동안 안정을 취했다. 아무 말도 안하기 무안했는지 혜진이 한마디를 툭 뱉었다.


“···미안.”


“왜···?”


“강제로 끌고 나가려고 해서.”


혜진의 양 볼이 붉어졌다. 계속 눈을 맞추기 힘들었는지 혜진이 눈을 피했다. 나도 부끄러워서 옆으로 돌아누웠다.


“···괜찮아. 나 갱생시키려고 그랬던 거 아냐.”


“······”


우리는 그대로 한참을 누워있었다. 옆에서 안경은 흥미롭다는 듯 우릴 관찰했다. 해가 저물 때까지 우린 별말 없이 멍때리다가, TV 좀 보다가, 놈 늦었다 싶었는지 혜진이 소파에서 일어나,


“이제 가볼게.”


“응.”


“내일 봐.”


그렇게만 말하고 떠났다.



/ / / / /



혜진은 내 유일한 지인이었다. 혜진을 제외하면 친구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이 세상에 내 존재를 아는 사람이 없을 지경이다. 혜진이 아녔으면 정말 말하는 방법을 까먹었을지도 모른다.


다음날도 학교를 재꼈다. 이른 아침. 출근과 등교가 끝난 바깥 풍경은 고요하기 그지없다. 난 제벌 3세 CEO라도 되는 양 커피 한잔을 끌이고 배란다 통창 앞에 서서 길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직 안경을 인간화 한 지 24시간이 안됬다. 그래서 안경은 사물로 돌아가지 못했다. 지금은 소파 내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딩-동


초인종이 울렸다. 혜진이겠지. 문 너머로 재촉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소준아··· 빨리 열어.”


천천히 현관문을 열었다.


“안녕.”


혜진이 차갑게 인사했다. 어제와 같은 교복 차림을 하고 있었다.


혜진은 이번에도 내 뒤에 서 있는 안경을 발견했다. 혜진이 고개를 내저었다.


“하아··· 저 년은 아직도 있네.”


“······”


“밤새 같이 있었다는 거구나.”


틀린 말은 아니니 뭐라 못하겠다.


“소준아. 집에 여자를 함부로 들여두면 안 돼.”


“···알아.”


“아기가 생길 수 있거든.”


“그건 너무 갔어.”


안경은 생긴 거만 인간이고 실제로는 사물이다. 아마도 아기는 안생길거다. ···아마도.


“소준이는 전혀 믿을만한 애가 아니니까, 너도 빨리 떠나는 게 좋을 거야.”


그건 인간화된 안경에게 하는 말이었다. 내가 기가 차서 혜진에게 물었다.


“그렇게 못 미더우면서 넌 왜 맨날 내 집에 오냐.”


“그, 그건···”


갑자기 혜진이 말을 더듬었다.


“나, 나는 너 같은 게 덮쳐도 한주먹에 격퇴할 자신이 있으니까.”


“내가 아무리 약골이어도 그렇지. 너랑은 체급 차이가 있는데.”


“기술이 아니라 몸집으로 승부한다니. 아직도 원시적인 발상을 벗어나지 못했구나. 본능만 남은 원숭이 같아.”


마음 같아서는 진짜 이길 수 있는지 싸워보고 싶다. 하지만 그랬다간 경찰이 올 테니 참아야 한다.


혜진이 물었다.


“맨날 집에 있으면 뭐 하냐?”


거의 애엄마 잔소리 말투였다.


“그냥··· 쉬는 거지.”


“에휴.”


한심해하는 한숨이다.


거실까지 들어온 혜진이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중간중간에 나와 눈을 마주쳤다.


근데··· 뭔가 분위기가 다른데.


“어··· 어?!”


너무 놀라서 탄성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블랙홀 속으로 빨려들어가듯 시선이 혜진의 머리카락에 고정되었다. 평소와 같은 혜진의 얼굴이면서도, 그 강렬한 이질감에 완전히 사로잡혔다. 너무 놀라 입도 잘 떨어지지 않았다.


혜진의 머리가 짧아져 있었다. 단발머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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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2부 11화 22.06.01 21 0 12쪽
21 2부 10화 22.05.31 19 0 10쪽
20 2부 9화 22.05.30 2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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