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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niless 님의 서재입니다.

현실적 의인화법을 손에 넣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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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niless
작품등록일 :
2022.05.11 12:03
최근연재일 :
2022.06.11 21:00
연재수 :
3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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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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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글자수 :
158,588

작성
22.06.0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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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부 11화

DUMMY

아니 진심으로 여기서 자겠다는거야? 진짜로···?


그때까지만 해도 반신반의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 덜컥 남에 집에 와서 사는 건 좀 아닌 거 같은데 말이다. 그냥 홧김이나 장난으로 그러는 건가도 싶었다.



/ / / / /



하지만 혜진은 순도 100% 진심이었다.


그 상태로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나 씻을래.”


“······”


잠에서 일어난 혜진은 오랜만에 본다. 평소와는 달리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고 화장도 전혀 하지 않은 수수한 모습이었다.


침대 위 이불 더미를 해치며 천천히 일어났다. 화장이 없으니 혜진의 눈망울이 정말 크다는 사실과 턱선이 날카롭다는 사실이 더욱 와닿았다. 나도 혜진처럼 상위 1% 외모로 한 달만이라도 살아보고 싶다.


“씻을 거면 씻어.”


“······”


혜진이 우리 집에 자주 오기는 했지만 여기서 씻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혜진은 그 상황이 살짝 부끄러웠는지 얼굴을 붉혔다. 그다음에는 진심 어린 목소리로 경고했다.


“씻는 중에 들어오지 마. 죽여버릴 거야.”


“어우. 당연하죠.”


혜진이 갈아입을 옷을 한가득 들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딱히 보고 싶은 건 아니지만, 속옷은 겉옷 사이에 철저하게 숨겼는지 제대로 보지 못했다.


잠시 후 물줄기 쏟아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샤워가 시작됐나 보다.


“뭘 그렇게 보고 계세요.”


난 그런 화장실 문짝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보고 싶나요.”


“뭐, 뭐가.”


“혜진 님의 맨몸이요.”


재빨리 초콜릿을 이끌고 내 방으로 들어갔다. 이 녀석이 아무렇게나 뱉는 말이 화장실 안에 들렸다가는 난 살아남을 수 없다.


여자애들이 다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혜진의 샤워 시간은 상당히 길었다. 잠시 후 화장실 문이 열리고, 희뿌연 수증기 속에서 혜진이 총총총 걸어 나왔다.


아직 말리지 않은 머리카락을 하얀 수건으로 머리카락을 문지르면서였다. 난 옆에서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뭘 봐.”


혜진의 모습에 잠시 시선을 빼앗겼다. 이제 막 샤워를 마친 혜진의 피부는 수분을 머금은 피부에 광택이 도는 게, 평소의 수수하면서도 아름다운 미모와 어우러져 더 후광이 비쳐 보인다.


그렇다고 혜진이 옷을 허술하게 입은 부분은 전혀 없었다. 미리 싸들고 들어간 평상복으로 완벽하게 갈아입은 뒤였다.


“아쉬우신가요?”


“조용히 해.”


혜진이 안방에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렸다. 드라이기가 작동하며 머리카락이 가볍게 흩날렸다. 여자애가 씻고 나와서 머리 말리는 장면이라. 살면서 거의 본 적 없던지라 별거 아닌 장면인데도 진중하게 관람하게 된다.


혜진은 내 시선을 의식했는지 내 쪽을 흘끔거리며 중간중간 나와 눈을 마주쳤다. 너무 노골적으로 쳐다보지는 말아야겠다.


머리를 다 말린 혜진이 얼굴에 간단히 로션을 바르고 거실로 나왔다. 왜 화장을 다 지운 상태가 더 예쁜 거 같냐. 미치겠네. 그 상태에서 소파 내 옆자리에 앉아있는 초콜릿을 돌아봤다. ···초콜릿도 만만치 않다.


혜진은 씻고 나오니 얼굴에서 광이 났지만, 초콜릿은 씻지 안았는데도 광이 났다. 머리도 자고 일어난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단정했고 피부도 깨끗했다.


초콜릿을 보고 뭔가 이상함을 느낀 혜진은 초콜릿을 쏘아보며 물었다.


“그리고 보니 넌 안씻냐?”


당연히 초콜릿이 샤워 같은 걸 할 리가 없었다.


“네, 저는 안씻···”


하지만 그걸 솔직하게 말하면은 안된다. 난 초콜릿의 말을 잘랐다.


“얘는 너 자고 있는 동안 씻었어.”


“아 그래?”


혜진이 내 말의 진위를 파악하려는 듯, 자신의 코를 초콜릿에 근처로 가져갔다. 머릿결을 타고 내려오며 초콜릿의 체취를 맡았다.


“음··· 무슨 샴푸를 쓴 거야?”


“네?”


“머리에서 달달한 향기가 나는데?”


히익.


위기를 감지한 내가 바로 화제를 돌렸다.


“우, 우리 아침 뭐 먹지?”


이목을 교란하려는 내 시도는 먹혀들었다. 혜진이 초콜릿에게서 코를 때고 내 쪽을 돌아봤다.


“넌 할 줄 아는 요리 없냐.”


“요리?”


사실상 없다고 할 수 있다.


“소고기 구울 줄 알지.”


“그건 소고기가 잘한 거지. 너가 잘 구워서 맛있는 게 아니야.”


정곡을 맞았다.


“어떻게 혼자 산 지가 몇 년인데 할 줄 아는 음식이 없냐.”


“그, 글쎄요.”


“요리 좀 배우지 그래. 맨날 배달 음식만 먹으면 몸 안좋아져. 나중에 너 살 피둥피둥 찌면 나도 너 싫어할 거야.”


“···넵. 주의하겠습니다.”


생각해보니 아침밥으로 먹을 것도 딱히 없었다. 또 배달을 시켜야겠다.


핸드폰을 켜고 배달앱을 훑어보려고 했다. 그때 초콜릿이 내 옆으로 다가와 내 옆구리를 휘감으며 말했다.


“소준님? 아까 하던 거 마저 할까요?”


“아까 하던 거···?”


혜진도 나도 무슨 소리인가 싶어 초콜릿 쪽을 바라봤다. 그러자 초콜릿이 대답했다.


“아까 마사지 해주던 거요.”


“마사지?”


그 말을 들은 혜진이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너네 서로 마사지도 해주냐···?”


좀 이상한 말로 들렸으려나.


“아니 그냥, 아까 초콜릿이 나 주물러줬는데 엄청 기분 좋았었어.”


“···또 여자애가 꾹꾹 만져주니까 헤벌쭉하게 즐기셨구만.”


“그런 거 아니거든. 야, 혜진이도 한번 주물러줘 봐.”


“음?”


내 말에 초콜릿이 혜진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혜진은 거실 소파에 앉아있었는데, 초콜릿이 그 옆으로 걸어가 앉았다.


“뭐, 뭐 하는···!”


초콜릿이 혜진의 몸을 살짝 들려 등이 보이게 했다. 그리고 부드러운 손길로 혜진의 어깨를 감싸 쥐었다.


“이리로 와보세요.”


초콜릿이 손끝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경계심에 소스라치던 혜진이었다. 하지만 금방 얌전해졌다.


혜진의 몸에 힘이 풀리며 자연스럽게 초콜릿 쪽으로 눕혀졌다. 눈이 스르륵 감기고 혜진도 초콜릿의 기술에 몸을 맡겨버렸다.


“으음··· 음···”


얕은 신음을 뱉는 걸 보니 상당히 만족하는 것 같았다. 충분히 그럴 만하다. 나도 저거 받았을 때 진짜 좋았었다. 그나저나 혜진 몸을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만질 수 있다니. 초콜릿이 살짝 부러워지려고 한다.


초콜릿이 손놀림을 멈추고 물었다.


“어때요? 시원하죠?”


방금까지 초콜릿의 손을 눈감고 음미하던 혜진이 두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누워있는 채로 시선 앞에 있는 초콜릿을 바라봤다.


“뭐. 시원하긴 하네.”


“더 해드릴까요?”


“···필요 없어.”


더 받고 싶어 하는 눈치였는데 혜진은 딱 잘라 거절했다. 여전히 혜진은 초콜릿이 마음에 안드는 건가.


혜진의 거절 의사에 초콜릿은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다음 내 방으로 총총총 걸어가고는 내 침대에 걸터앉아 말했다.


“그럼 마사지 마저 해드릴까요?”


내게 하는 말이었다. 이쪽으로 와달라는 눈치로 손을 뻗었다.


“아···”


혜진이 보는 앞에서 그런 거 받는 건 좀 눈치 보이는데.


하지만 받고 싶었다. 아까 초콜릿의 손끝이 내 어깨 주변을 꾹꾹 누르며 지나갈 때 느껴진 그 개운함과 시원함은 잊을 수가 없었다.


난 혜진 눈치를 살짝 봤다. 혜진은 내 쪽에 관심 없다는 듯 TV와 핸드폰을 번갈아 가며 가지고 놀았다.


이런 분위기면 괜찮다 싶었던 나는 초콜릿의 말에 따라 침대로 향했다. 혜진에게 보이지 않게 문을 살짝 닫아주고 침대 위에 몸을 눕혔다.


“시작할게요.”


다시 한번 초콜릿의 손길이 내 어깨를 타고 넘어왔다. 뭉쳐있는 곳을 정확히 누르고 풀어주었다. 긴장이 풀리고 몸이 나른해져 간다.


어으. 이거 진짜 좋긴 좋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초콜릿의 손길을 음미했다. 어느새 눈이 스르륵 감기고 고른 숨소리를 내며 안정을 취했다.


아직 깬 지 얼마 지나지도 않은 오전 시간이었는데, 그 편안함에 완전히 취해버린 나는 서서히 잠에 빠져들었다. 어어···잠든다··· 잠든··· 다···



/ / / / /



“소준님, 소준님.”


잠결의 어떤 목소리가 들렸다. 혜진의 목소리와도 닮았지만 말투를 보니 초콜릿이었다.


이걸 잠결이라고 해야 할지, 아님 꿈속이라고 해야 할지. 여튼 방금까지도 자고 있던 나는 지금도 맨정신이 아니었고, 때문에 부정확한 발음으로 대꾸했다.


“으음··· 왜에에···”


“이걸 잡아 보세요.”


왼손에 무언가 차갑고 단단한 게 얹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 다음 ‘사람 사람 사람’ 이라고 말해 보세요.”


별생각이 없었다. 정신은 반쯤 자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논리적인 사고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난 초콜릿에 말에 고문고문 따랐다. 마찬가지로 난 꿈결 같은 무의식 속에서 입을 웅얼거렸다.


“사람 사람 사라암···”


펑-


“음?”


부스스 눈이 떠졌다.


“안녕?”


“······”


난 여전히 초콜릿의 무릎 베게 위에 몸을 눕히고 있었다.


인사말이 들렸던 방향을 향해 고개를 옆으로 돌려보았다. 초콜릿 말고 한 명이 더 있었다.


핸드폰이 인간화되었다.


검은색에 가까운 진한 남색 면티를 입고 있었는데 길이가 짧은 배꼽티였다. 얇게 들어간 복근 라인이 밑으로 보였다. 등짝에는 한입 베어 문 사과 로고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바지는 윗옷과 같은 색상에, 춤추는 사람들이 입을 것만치 헐렁한 핏이다가 발목 쪽에서 다시 조여들었다.


길게 내려오는 검은 생머리는 검은 물감처럼 짙고 농염했다. ···얼굴을 자세히 보니 양쪽 눈의 눈동자 크기와 색이 티 나게 달랐다. 이런 걸 오드아이라고 하던가.


“양쪽 눈동자가··· 다른데?”


“한쪽은 기본 렌즈고 다른 한쪽은 광각 렌즈거든요”


눈동자가 카메라였던 거냐. 내 폰의 듀얼 카메라 구성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었다.


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몸을 벌떡 일으켰다.


평소 같아서는 딱히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지금까지 인간화 시킨 사물들은 수없이 만나봤다. 하지만 지금은 집에 혜진이 있다. 혜진의 입장에서는 방금 전까지 없던 여자애가 갑자기 생겨난 수순이었다.


내 머리를 양손으로 움켜쥐었다. 다행히 혜진은 내 방에 없었다. 핸드폰이 인간화되는 장면을 혜진이 직접 목격하지는 않았을 거다.


그렇지만 좀 있으면 혜진이, 집에 여자가 한 명 늘었다는 사실을 인지할 거다. 혜진이 인간 핸드폰을 보면 이 상황을 도대체 어떻게 설명한다는 말이냐.


곧바로 내 불안은 현실이 되었다.


“소준? 뭐해?”


내 방문 밖에서 혜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가도 돼?”


혜진이 문고리를 잡았다.


“잠깐만!”


난 방문을 향해 몸을 던졌다. 그리고 온몸으로 문을 억누르며 잠금장치를 걸었다.


“소준? 괜찮아?”


“괘, 괜찮아.”


“···왜 그래?”


내 떨이는 발성에서 혜진이 뭔가 잘못되었음을 눈치채었다. 난 문을 막고 선 상태로 핸드폰과 초콜릿을 바라봤다. 둘은 얌전하게 침대 위에 앉아있었다.


어쩌지. 핸드폰을 숨겨야 하나. 근데 무슨 수로 숨겨. 내 방이 한 50평쯤 되는 것도 아니고. 한눈에 오른쪽 벽부터 왼쪽 벽까지 다 들어오는 이 쥐꼬리만 한 방에 사람을 숨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어거지로 숨기다가 만약에 들키면, 혜진에게 더 큰 오해를 사게 될 가능성도 있었다.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혜진이 말했다.


“왜 안열어주는 거야.”


“음··· 그게···”


“너 뭐 사고쳤냐?”


맞습니다.


“아, 아니야. 그냥 좀···”


“아 씨, 뭐라고 안할 테니까 비켜봐.”


혜진이 다시 한번 문고리를 돌렸다. 그때 나는 안심하고 있었다. 문을 잠갔으니 혜진은 들어오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문을 그리 쎄게 누르고 있지 않았다.


달칵-


하지만 문고리는 너무나도 쉽게 돌아갔고,


끼익-


당연하다는 듯이 문이 열렸다.


아차, 우리 집 문고리는 고장 났었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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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부 15화 22.06.05 24 0 11쪽
25 2부 14화 22.06.04 18 0 13쪽
24 2부 13화 22.06.03 17 0 10쪽
23 2부 12화 22.06.02 19 0 9쪽
» 2부 11화 22.06.01 21 0 12쪽
21 2부 10화 22.05.31 19 0 10쪽
20 2부 9화 22.05.30 2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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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2부 7화 22.05.28 22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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