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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속 다람쥐가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종이땡땡
작품등록일 :
2022.05.11 18:27
최근연재일 :
2022.06.11 22:49
연재수 :
2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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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8
추천수 :
121
글자수 :
146,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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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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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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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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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흔적(3)

DUMMY

여섯마리의 다람쥐가 나를 포위한다.

기다리며, 이 상황의 전말을 추측해봤다.

동족도 서슴없이 잡아먹는 것들이 뭉쳤다는 건 구심점이 있다는 뜻일 터.

문득 나무에 새겨진 발자국이 떠올랐다.


‘응축을 배운 다람쥐. 아마 녀석이 우두머리겠지.’


내 소식이 거기까지 들어가면 안된다. 이 갈색 털은 너무나 눈에 띈다.

찍히면 벗어나지 못한다.


‘도망쳐?’


아니. 서로 활동 영역이 겹치는 지금.

보금자리를 버리지 않는 한 언젠간 녀석과 마주칠 터다.

또한, 응축을 얻기 위해선 녀석을 잡아야했다.

싸운다.


“찍.”

“찌익.”


원형의 포위망이 완성됐다. 그들의 시선이 교차했다.

눈을 좁혔다.


‘패를 아낄 때가 아니야.'


스탯을 전부 근력에 투자했다.

신체에 큰 부담을 주는 응축의 특성상 장기전으로 갈 것 같진 않았다.

맷집을 키워 묵직한 일격을 버텨야한다.


[레벨 2]

[근력 0.82->1.02 체력 0.997 지능 9]

[보너스 포인트 0]


여기서 최소 둘은 잡고 간다. 적들이 서서히 다가온다.

어느 정도 거리가 가까워졌을 무렵. 다리에 힘을 싣고, 튀어나갔다.

목표가 된 다람쥐의 동공이 순간 커진다.


“찌-“


순살(瞬殺).

손톱으로 목덜미를 잡아 뜯고, 넘어트렸다.

다람쥐들의 동공이 커졌다. 누구도 저 공격에 반응하지 못했다.

자신의 적수가 아니다. 그렇담 택해야 할 수단은 하나 뿐이었다.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도망치는 다람쥐들. 질주했다. 사방팔방으로 흩어진 녀석들.

어딜 골라도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가까운 놈을 노린다.


나무에 달라붙었다. 시야가 옆으로 기울어졌다.

토실토실한 엉덩이. 엉덩이. 엉덩이!

덮쳤다. 굴러 떨어졌다.


“찍, 찌아악!”


허겁지겁 먹어치우고 시선을 돌렸다. 남은 한 마리는 이미 시야에서 사라졌다.

우두머리에게 정보가 들어가기까지 얼마나걸릴까.

10분? 1시간?


‘템포를 올려야겠어.’


극단적으로 투자한 근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부족한 체력은 뱀의 독으로 매꾸고.'


오늘 밤. 하얗게 불태우고 푹 자야겠다.

처음 사냥한 다람쥐도 먹은 뒤 자리를 떴다.


***


갓 사냥한 뱀의 뒷목을 헤집었다. 물컹하면서도 딱딱한 물체가 걸린다.

손톱을 깊게 박았다. 질척하게 젖은 손이 따끔거렸다.

독과 유사 후추. 당장 바를 수 있는 건 다 발라놨다.


핥짝.


혀가 시큼했다. 확실한 독이다.


‘다람쥐는 언제 오는거야?’


이 독이 마르기 전에는 와야 할텐데.

마지막으로 점검했다.


[레벨2]

[근력 1.058 체력 1.008 지능 9]


이게 레벨 3이 안되냐.

제동이 제대로 걸렸다.

포식을 통한 성장도 레벨업도 상당히 더뎌졌다.

고블린과 나는 7배의 격차가 그리 단순하지 만은 않은 모양이다.


‘금방 넘을 줄 알았는데.’


다람쥐치고는 상당한 무력을 가지고 있으나, 단지 그 뿐.

지금의 난 미물에 불과하다.


'무작정 양만 늘려선 안돼.'


급성장을 위해선 먹잇감의 질을 향상시켜야한다.

응축은 그걸 위한 포석이다.


'뱀도 더 잡자.'


아무리 날렵해도 눈이 따라주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킁.

"...!"


잡념을 끊는 알싸한 향기가 흘러들어왔다.

냄새가 가까워진다. 벌레? 아니, 다람쥐다.

내가 쓰는 방식은 저들도 쓸 수 있었다. 서로 눈이 마주쳤다.

다섯 마리. 우두머리까지 대동한 모양이다.


"찌아악!!"

"찌륵!"


무려 다섯 마리의 다람쥐가 한번에 울부짖는다.


'뭐라는거야.'


그래도 분노했다는 건 알겠다. 나무에 등을 엉덩이를 붙이고 손가락을 까딱였다.

알아듣지도 못할 대화에 어울릴 마음은 없었다.

차분히 그들의 동태를 살피던 중, 비정상적으로 다리가 굵은 놈을 발견했다.


'저놈이다.'


가장 경계해야 할 우두머리.

짧은 외침과 함께 적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눈에 닿으면 안된다. 하나씩 확실하게 처리한다.

선두에 선 우두머리가 우뚝 멈춰선다. 불길한 감각. 점프를 뛰었다.


쉭!


손톱이 지면을 스치고 지나간다. 노출된 빈틈. 섣불리 행동하지 않았다. 또 무슨 공격이 날아올지 모른다.

뒤로 빠졌–


빠악!


그 순간 둔탁한 통증이 턱에서 올라왔다. 찰나 의식이 아득해졌다.

···하늘? 일순, 좌측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양발로 나무 끝을 붙잡고, 몸을 돌렸다.

붉은 손바닥이 재차 시야를 가렸다.


‘씹.'


옆으로 튀어올랐다. 떠있던 다람쥐의 몸체를 긁는 건 덤이었다.

퀴퀴했던 공기가 맑아졌다.

나무를 타며 시선을 내렸다. 다람쥐들이 득달같이 쫓아왔다.

뇌가 혼잡하다. 어떻게 움직여야하지?


"찍··· 찍."


호흡이 가빠진다. 울렁거리는 시야가 희뿌얘졌다가 돌아왔다.

누가 우두머리고, 어디서 어떤 식으로 반격이 날아올지 예상이 가지 않았다.

방금의 과정은 공포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그래도 멈춰있어선 안된다.


"퉤!"


피 섞인 침을 뱉으며 측면으로 뛰었다. 한 녀석에게 독을 발라놨다. 내성이 없다면 금방 반응이 올 것이다.


"찌."


역시나. 한 녀석이 피를 흘리며 고꾸라졌다. 서서히 호흡이 돌아온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 묘하게 뒤쳐지는 놈이 하나 있다. 아마 우두머리일거다.


응축의 남은 횟수는, 아마 두번 정도.

그것도 위협적이다. 전면전은 무리. 급습해서 죽여야한다.

이미 들켰는데 무슨 급습이냐 싶을수도 있지만, 방법은 있다.


곡선으로 꺾이는 길을 치달렸다. 다람쥐들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어서 위편의 나뭇가지에 착 달라붙었다.

그대로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찌른다.


내 밑을 지나가는 다람쥐. 눈이 마주쳤다.

녀석이 멈춰선다.

갑자기 시간이 느려진 듯한 착각이 들었다. 본능이 경종을 울린다. 하늘로 번쩍 튀어올랐다.


후웅!


꼬리가 턱 끝에 닿았다. 후열에 있던 우두머리가 선두까지 치달은 것이다.

저쪽도 내 노림수를 예측한 모양.

하지만 보기좋게 빗나갔다.

조소를 흘리며 얼굴에 달라붙었다. 그대로 물어뜯고, 목에 손톱을 박아넣었다.

의외로 근육이 약했다.


투둑.


추락. 파르르 떨던 우두머리가 쓰러졌다. 꼬리로 다리를 내려찍어 망가트렸다.

비명은 없다. 그럴 기력조차 없는 듯 하다.


"찌이익!"


남은 세 다람쥐는 투지를 잃지 않았다. 오히려 저돌적이다.

우두머리에 대한 존경심은 있었던걸까.


기세는 좋았다.

기세만 좋았다.

평범한 다람쥐는 그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공격을 꼬리로 쳐내고, 손톱으로 긁어내고. 튀어나가고. 가르고.


귀신같은 움직임으로 남은 다람쥐를 잽싸게 처리했다.

이곳저곳 긁힌 상처가 따갑긴 했지만, 하룻밤 자고 나면 나을거다.


"찌익!"


아, 저것도 있었지.

중독되어 몸을 가누는 것도 힘들어하는 다람쥐까지 처리했다.


[레벨업]


알림을 끝으로 전투는 조용히 막을 내렸다.

시체를 먹으며 아까의 전투를 복기했다.

뭐가 문제였을까.


약간의 자만도 섞여 있었다. 다람쥐따위야 간단하다고. 최소한 반응은 될거라 판단했다.

급했고, 응축의 성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쓸데없는 고민도 길었고.'


우두머리의 공격을 피한 직후의 얘기다.

곧장 반격할지. 잠시 빠질지. 짧은 고민이었지만, 그 시간조차 전투에선 사치였다.


'아예 쭉 빠졌다면 안 맞았을거야.'


만약 정신을 차리는 게 조금이라도 느렸더라면, 고통에 몸부림치다 사망했을테지.

근데. 솔직히 어쩔 수 없었다.

우두머리만 잡으면 전투가 쉽게 풀렸을테니까. 심지어 빈틈까지 보였잖은가.

그건, 못 참는다.


‘어휴.’


야생에 떨어진지 하루밖에 되지 않았다.

경험도 판단도 미숙했다. 이건 차차 쌓아가는 방법 밖엔 없었다.

정말, 혹독하다.


익숙한 적을 잡자니 성장이 느리고.

강적을 잡자니 목숨을 걸어야하고.

여기서 응축을 얻지 못하면 어떻게 될지, 막막하다.


'제발.'


간절한 마음으로 우두머리를 먹었다.


[응축을 습득했습니다.]


푸후. 쾌재를 부르고 싶었지만 그럴 힘도 없었다.

다람쥐 두 마리를 들고 설렁설렁 보금자리로 돌아왔다.


'자기 전에.'

[응축을 사용합니다]


팔과 다리가 검게 물들었다. 몸이 로켓처럼 튀어올랐다.

근육이 찌릿하다.


'이건 비장의 한발 정도로 써야겠다.'


카운터를 친다던가 하는 식으로.

보금자리 안으로 들어가 피를 갈고, 입구도 막은 뒤 누웠다. 금방 잠에 든 시준은 꿈을 꿨다.

작은 굴이 눈에 들어온다.


"찌힉···찍···"

"찌핵···"


그곳에 네 다람쥐가 우르르 들어왔다.

일제히 쓰러진 그들의 눈은 뒤집어졌으며 입에선 침이 줄줄 흘렀다.

탈진한 것이다.


"찍?"


통로의 끝에 누워있던 다람쥐. 정확히는, 꿈속의 내가 움직였다.

녀석의 감정과 호흡. 후끈거리는 다리의 감각까지 생생하게 느껴졌다

나는 쓰러진 다람쥐들을 흔들었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한 녀석이 입을 열었다.


"찌익. 찍.”


갈색 털. 강한 다람쥐.

두서없는 말을 내뱉은 녀석은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찌르륵."


머리가 차갑게 식는다.

상황이 대강 이해가 갔다. 아무래도, 나같은 생태계 교란종이 나타난 듯 하다.


'...잡아야한다.'


힘겹게 이룬 무리다.

도망친 녀석도, 배신을 한 녀석도 대다수. 회유할 때 다소 과격한 방법을 사용했으니 어쩔 수 없긴 했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결속을 이뤄냈다.


"찍!"


그런데!

그런 동료를 감히 죽이다니!

무려 둘이나 잃었다. 여섯 중 무려 둘이나!

속이 뒤틀렸다.


자신이 조금만 강했다면. 응축의 반동을 제대로 견딜 수만 있었다면!

이곳에서 편히 요양하다 동료를 잃을 일은 없었을거다.


마음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뛰어나가고 싶었다.

하나 그러기엔 지도자의 책임이 너무나 막중했다.

자신이 죽으면 이들은 누가 책임진단 말인가.

함께 싸운다.


"찌아아악!"


표효했다. 목이 터져라 표효했다.

그 지독한 감정 탓일까.


“헥!”


잠에서 번쩍 깨어났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꿈을 꿨던 것 같은데, 무슨 내용인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주륵.

'어째서 눈물이?'


나는 금방 그 이유를 깨달았다.

이건 다람쥐를 먹자마자 응축에 대해 깨우친 것과도 연관이 있었다.


'마기에 담긴 사념을 흡수한 탓이겠지.'


왜 마기를 받아들인 생명체는 미쳐버리는가?

그건, 마기가 잠식한 생명체의 기억을 저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고스란히 섭취한 적에게 옮겨간다.

이 순환의 반복으로 포식자는 자신을 혼동하고, 종국엔···


'자아를 잃어버린다.'


자신이 무엇이고 누구였는지.

모든 걸 잊은 채 강렬하고, 원초적인 본능만 남은 껍데기가 되는거다.


'지금이야 꿈의 형태로만 나타난다지만.'


후에는 현실에도 영향을 미치리라.

물론 확고한 신념과, 정체성이 있으면 어느정도 극복이 가능하긴 하다.

스스로에게 이름을 붙인다던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박시준.'


내 소중한 이름을 몇번이나 되새기고는, 밖으로 빠져나왔다.

아침이 밝았다.

왼쪽으로 꺾인 곰의 발자국이 반짝거렸다.

슬쩍 보금자리를 쳐다봤다.


'돌아왔을때도 멀쩡하려나.'


이런 최적의 보금자리를 잃어버리고 싶진 않았다.

묵직한 다람쥐의 시체로 입구를 막고, 당겨봤다. 슬슬 밀린다.

이 정도면 임시 방편은 될거다.


그래도 안심해선 안된다. 다람쥐 몇 마리가 달라붙으면 빼낼 수도 있으니까.

깔끔하게 가리려면···


'카멜레온을 잡아볼까?'


녀석의 피부는 유용할 듯 하다. 마침 강적을 잡는다는 내 목표와도 부합하겠다.

곰도 추적하는 겸 맛만보자.


"케룩···"


발자국을 추적하고 있는데 고블린의 소리가 들려왔다.

사냥하는 건 아닌 듯 하고, 휴식이라도 취하는 것 같았다.

쳐다봤다. 두 녹색 고블린이 여우를 두고 침울하게 앉아 있었다.


'소재로 쓰려고 사냥한건가?'


창과 뼈갑옷. 다소 원시적인 형태긴 했지만, 고블린은 도구를 다뤘다.

그 재료의 대부분은 사냥으로 습득할 터다.


고블린을 뒤로하고 여우에 시선을 고정했다.

너덜너덜한 가죽과 부러진듯한 뼈. 어디하나 성치 않은 모습이다.

영 상태가 좋지 않다. 숨을 몰아쉬는 고블린을 보아, 흥분해서 막 내지른 듯 했다.


"케에···"


한숨을 쉰 고블린이 여우를 어깨에 짊어졌다.

뼈냐. 돌이냐. 어떤 소재가 더 나을까. 뼈가 더 단단할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그래도 일단 껀덕지가 있으면 털어가는 게 예의 아닐까?


은밀히 따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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