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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tline

가챠 게임의 폭군으로 살겠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게임

연청.
그림/삽화
ai
작품등록일 :
2024.02.20 10:33
최근연재일 :
2024.02.22 17:05
연재수 :
6 회
조회수 :
94
추천수 :
7
글자수 :
33,447

작성
24.02.20 18:05
조회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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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3쪽

1. 가챠 게임에서 살아남는 법 (1)

DUMMY

기다란 백발에 창백한 피부, 푸르고 커다란 눈 그리고 화려한 장식이 달린 브로치와 그 외의 크고 작은 장신구들은 전부 내가 갖고 있던 게임 캐릭터인 오라베스크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읊었다.


“오라베스크?”


“오셨군요.”


그녀의 입밖으로 생전 처음 듣는 언어가 나왔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걸 전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보다 중요한 건 지금 이게 뭔 상황이냐는 거겠지.


주변은 온통 새카맣다. 꼭 내가 우주의 한 공간에 떠있는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킬만큼 칠흑같은 어둠이었다. 그 때문에 그 가운데 빛을 내고 있는 오라베스크가 더욱 신비롭게 느껴졌다.


그녀는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설명을 시작했다.


“당신의 세계는 멸망했습니다. 이곳은 당신이 알고있는 [인페르노 히어로]의 세상입니다.”


지금 그 말을 나더러 믿으라고?

근데 안 믿는다고 뭐 달라질 건 없겠다 싶었다. 이게 꿈이라면 깨면 그만이고 그녀의 말마따나 세상이 멸망함에 따라 죽어버렸다면 여기가 사후세계인 거겠지.


우선 그녀의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계속 해봐.”


내 의연한 대처에 짐짓 놀랐는지 오라베스크의 표정에 아주 작은 미동이 있었다. 죽어있는 눈빛이 살아나면서 그녀의 눈빛에 광채가 살아나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당신은 성공적인 시즌을 보내 랭킹 1등이라는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따라서 보상을 고를 수 있는 우선권을 드립니다.”


나는 팔짱을 끼면서 말했다.


“무슨 보상이 있는데?”


“당신은 4가지 보상 중에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선택한 보상은 다음 사람이 선택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1등에게 우선권을 준다는 얘기다. 애초에 시즌1부터 지금까지 보상을 주는 시스템이 이거였다. 게임 내용이 가챠인데 보상만큼은 선택권을 주는 것 같아서 무척 마음에 드는 시스템이었다.


오라베스크는 자신의 양손 사이에서 4장의 카드를 만들어냈다. 그리곤 내가 잘 볼 수 있게 그것들을 일렬로 펼쳐서 보여줬다.


“보상을 고르시면 당신은 다시 태어나게 될 겁니다. 지금부터 보여드리는 보상은 당신의 ‘혈통’입니다.”


혈통이라 함은 DNA를 뜻하는 걸까. 만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혈계, 즉 피를 통해 유전되는 능력같은 걸 말하는 듯했다.


첫 번째 카드는 [드래곤 테이머].


줄여서 ‘드테’라고 부르는 클래스로 주로 용인족을 마스터 클래스까지 키우면 선택할 수 있는 경지였다. 애초에 용인족이 가챠로 떨어진다는 보장도 없는데다가 육성방법이 하드코어 해서 많은 유저들의 빈축을 사는 직업이기도 했다.


아무튼 굉장히 유니크하고 전설적인 직업이어서 나 역시 드래곤 테이머 직업의 캐릭터는 가져본 적이 없다. 누군가 하나를 키우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적은 있지만.


두 번째는 [갓 슬레이어].


시발······. 이번엔 ‘갓슬’이라니. 이것도 역시 전설로만 전해져 오는, 말 그대로 어떻게 달성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는 직업이다. NPC들 사이에 내려오는 전설에 따르면 ‘갓 슬레이어’는 실제로 데미갓이나 소위 성좌라고 불리는 초월체들과 맞서 싸운 존재라고 한다.

그 누구와도 함께 할 수 없는 고독한 안티 히어로 정도로 해석하면 될 것 같다.


세 번째는 [인페르노 히어로].


게임의 이름과도 같은 이름에 나는 반가우면서도 움찔한 마음이 들었다.


이 게임에서 ‘인페르노’라 함은 정말 지옥을 뜻하는 게 아니다.


대륙을 통일시킨 왕이 있었으나 그 왕이 죽은 뒤, 왕권이 시들해짐에 따라 각각의 영주들이 스스로 왕을 자처하게 된다. 그 여파로 대륙은 무려 수백, 아니 수천 개의 나라로 쪼개지면서 대혼란이 찾아온다. 이것이 [인페르노 히어로]의 게임설정이다.

인페르노 히어로는 각각의 나라를 통치하고 그 나라의 권속을 부릴 수 있는 국왕. 즉, 플레이어를 뜻했다.


마지막으로 [아크 메이지].


게임의 스토리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아크 메이지]가 얼마나 대단한 클래스인지 알 수 있다.

마법사들은 대체로 육성이 까다롭다. 신체조건이 허약하기 짝이 없고 성격도 괴팍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미 완성된 마법사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리고 그걸 훌쩍 넘어서서 아크 메이지라고? 물론 그 아크 메이지의 혈육이라는 얘기겠지만 이것만으로도 큰 메리트가 있다.

굳이 현대로 따지면 일반 마법사는 탱크, 대마법사는 제트기, 아크 메이지는 핵폭탄급의 위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 국가에서 얼마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후원을 받으면서 자라겠는가? 말이 따로 필요없다.


사실 이 네 가지 선택지에는 다소 이상한 점이 섞여 있다. 만약 [드래곤 테이머]로서 성공한다면 ‘드래곤 군단’을 창설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굳이 이 지옥같은 난세에서 누군가의 밑에서 봉신할 필요가 없다는 소리다. 스스로 [인페르노 마스터]가 되면 그만인 거다.


[갓 슬레이어]도 마찬가지. 혼자서 신을 대적할 정도의 힘을 얻게 되면 아무리 외로운 싸움을 자청한다한들 주변에 사람이 모일 수밖에 없다. 또한 1인 군단급 힘을 선보인다면 그냥 혼자서 한 나라를 세워버리면 그만.


이와 같은 논리는 [아크 메이지]에게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다.


나는 생각했다. 오라베스크가 말한 ‘혈통’이 이 선택지의 함정이라고.


‘아버지 직업을 뭘로 스타트하겠냐, 이런 건데.’


네 가지 금수저 중에 조금 더 좋은 환경에서 시작할 수 있는 걸 선택해야 한다. 흔히 RPG 게임을 하면 느낄 수 있는 거지만, 본캐 키울 때보다 부케 키울 때가 훨씬 성장이 빠른 법이다.


따라서 돈, 무조건 돈 많은 직업이 최고다.


또 누가 뭐라해도 현시점 나는 이 게임의 엄연한 랭킹 1등이니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은 하나밖에 없다.


“나는 [인페르노 히어로]를 선택하겠다.”


내가 고르지 않으면 누가 고를 수 있겠는가. 내가 1등인데. 내가 제일 게임 잘하는 뜻인데. 이 게임 타이틀을 내가 가져가야지 그럼 누가 가져가?


오라베스크는 내 선택에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눈가에 촉촉하게 눈물이 맺혔다.


‘이게 게임의 NPC?’


전혀 그렇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어떤 물리엔진으로도 저런 감정의 북받침을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 평안하시길.”


“어, 잠깐.”


이렇게까지 급작스럽게 작별 할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쉬운 마음에 손을 앞으로 뻗자 그 손에는 오라베스크 대신 [인페르노 히어로] 카드가 잡혔다. 그 직후 주변에 있던 검은 기운이 내쪽으로 빨려들어오듯 하더니 이내 모든 것이 새하얗게 변했다. 그때 오라베스크의 마지막 말을 얼핏 들은 것 같기도 했다. “전하.”라고.


<<SYSTEM>>

[드래곤 테이머]가 당신의 존재를 알게 됐습니다.

[갓 슬레이어]가 당신의 존재를 알게 됐습니다.

[아크 메이지]가 당신의 존재를 알게 됐습니다.


*


눈을 뜬 곳은 침대 위, 허나 매일 똑같이 반복되던 일상과는 사뭇 다른 공간이었다.


개운하게 뜨이는 눈을 통해 바라본 새로운 세상.


나는 이곳이 이상하게 익숙했다. 게임에 접속하면 제일 먼저 보이는 광경이었으니까. 물론 그래픽으로 보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은 큰 차이가 있었으나 나는 그저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 방 한 가운데에 위치한 ‘마나핵’ 때문이었다. 허공에 떠있는 커다란 황금색 링 사이에 위치한 이 ‘마나핵’은 캐릭터나 장비 갓챠에 사용할 수도 있고 적이 쳐들어왔을 때 광역기를 쓸 수 있게 만들어준다.


‘진짜네.’


손에 잡히는 마나핵의 질감도 그렇고 이질감없이 움직이는 내 신체도 그렇고. 이건 결코 꿈이나 가상현실 따위가 아니었다. 현실이었다.


‘근데 나는 누구일까?’


일단 이 몸은 내 몸이 아니다. 피부는 창백할 정도로 하얗다. 눈높이도 이전보다 훨씬 높게 느껴진다. 근육질인 편은 아니지만 5년 간 회사생활을 하면서 늘어난 군살이 다 사라지고 빼빼 마른 몸만 남아 있었다.

그렇다는 건 내가 누군가의 몸에 빙의했다는 얘기가 아닐까.


거울. 거울을 찾아야했다.


게임에서는 플레이어를 제외하고도 NPC가 [인페르노 히어로]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다년간 열심히 플레이했기 때문에 플레이어들이 직접 키운 캐릭터가 아니라 웬만한 NPC는 얼굴만 보면 다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거울을 발견했고.


절규할 수밖에 없었다.


“으아아아아악!!!!!!!!!”


그 하고 많은 NPC 중에 왜 하필 이 녀석이란 말인가!


방탕한 칸다바르.


이 캐릭터는 NPC 중에서도 호구 중의 호구로 불리는 캐릭터로 플레이어들에게 반면교사 취급 당하는 우유부단형 캐릭터였다. 선왕이 죽고 왕위에 즉위한 나이가 고작 열넷. 어렸을 때부터 권력의 맛을 알아버렸는지 수 많은 부인 그리고 궁녀들과 놀아나기만 했다는 방탕한 칸다바르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 녀석은 곧 죽는다.


‘챕터 2에서 자기 부하 장수에게 죽임을 당한 걸로 알고 있는데 여즉 목숨이 붙어있는 걸로 보니 아직 챕터 2가 되기 전인가.’


차라리 죽었으면 내가 이 몸에 들어갈 일도 없었을 것 아닌가. 다소 실망적인 부분이었다.

내가 그렇게 신세 한탄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벌컥 소리를 내며 문을 열었다.


“전하!!!!!”


“응?”


나도 모르게 대답을 하고 말았다. 아무래도 내 본능이 이미 이 게임 속에서 살기를 선택한 모양이다.

그나저나 저 수염 난 대머리 노인네는 뭐하는 양반일까. 대체 뭐하는 캐릭터길래 감히 왕의 방을 노크도 없이 함부로 열어댄단 말인가.


“밖을 보십시오!”


그가 창문을 가리키길래 가서 열어봤다. 왕이 거주하고 있는 이 방은 꼭대기에 위치해서 내가 다스리는 성의 내부뿐만 아니라 바깥 영토까지 훤히 잘 보이는 곳이었다.

그런데 창문 밖의 광경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칸다바르의 성은 내부 성벽을 기점으로 두 가지 섹터로 나뉘어 있다. 내부 성벽의 안쪽에는 지금 내가 있는 이 마나탑 그리고 귀족들이 지내는 거주지역과 그에 따른 초호화 유흥 시설들이 위치해 있다. 반면에 성벽 바깥에는 칙칙한 서민층의 주거지역.

그런데 그 성벽 바깥에 수십 명이 모여들어 바글바글 거리는데다가 성문을 공성추로 때려부수고 있었다.


쾅! 쾅!


나는 그 무지막지한 소리에 질겁할 수밖에 없었다.


“적의 침공인가?”


“아닙니다, 마스터. 저들은 반란군입니다.”


시발! 눈 뜨자마자 무슨 놈의 반란이 일어나고 있어?


“불만을 품은 병사들이 시민과 합세하여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럼 마나탑의 광역기로 쏴버리면 그만 아니야? 왜 그걸 못하고 있는 건데?”


“저길 보십시오. 저 붉은 허리띠를 찬 자가 이번 반란의 핵심 인물인 헥터이고 그 옆에 있는 고깔 모자를 쓴 여자가 마법사인데 마나쉴드를 펼쳐서 마나탑의 공격을 손쉽게 막아내고 있습니다.”


마법사, 앞서 말했듯이 마법사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위협이 된다.


헥터라는 자가 대체 무슨 수를 써서 마법사를 고용했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나 지금 당장 급한 건 빠르게 저 마법사를 제거하고 마나탑을 이용해서 마법사를 진압해야 한다는 거다.


공략은 알겠다. 공략은 알겠는데, 이 공략이 지금 가능한 일이냔 말이지.


“가용할 병력은?”


“성문 앞에 배치된 이들이 전부입니다.”


“뭐...?”


성문에 달라붙어있는 열 명의 병사. 그리고 뒤쪽에서 그들을 지휘하고 있는 붉은 머리의 여전사만이 보일 뿐이었다. 나는 그 여인의 머리 위에서 별 하나를 찾아볼 수 있었다.


(★)


1성짜리 캐릭터라는 뜻인가. 그럼 성 밖에 있는 헥터라는 놈은? 다행히 헥터의 머리에도 별이 하나만 떠 있었다. 그런데 그 옆에 있는 마법사는 별이 무려 세 개가 붙어있었다.


최악이다.


이 상황만큼 최악인 상황도 없을 것이다. 3성짜리 마법사를 무슨 수로 잡으란 말이지?

혹여 암살자를 보낸다하더라도 주변에 있는 반란군이 가로막아 3성 마법사가 대처할 시간을 벌어줄 게 뻔했다.


“우리 장수들은 다 어딨단 말이냐?”


제아무리 좆같은 군주라 할지라도 한 나라에는 수뇌부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수비대 대장이라던가 총사령관같은 이들은 다 어디로 사라지고 없단 말인가.


예의를 밥 말아먹은 노인네는 안타깝다는 듯이 한숨을 쉬더니 대답 대신 나를 어디론가 데려다줬다.

나는 얼떨떨한 마음으로 그와 함께 내 방 아래에 위치한 전투회의실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대여섯 명의 노인들이 탁자를 두고 앉아있었다.

얼굴에는 검버섯들이 핀데다가 주름이 자글자글했고 허리가 굽어서 거동이 불편해 보이기까지 했으니. 아무리 봐도 전투에 쓸만한 자원들이 아니었다. 심지어 지휘하려고 명령을 내리려다가 쇼크사로 죽을 것처럼 지긋한 노인들이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 노인네도 그렇고 저 노인네들도 그렇고 전부 내 얼굴만 빤히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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