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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달대게 님의 서재입니다.

알바생이 연출을 너무 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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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새글

박달대게
작품등록일 :
2024.05.08 11:32
최근연재일 :
2024.07.02 10:50
연재수 :
5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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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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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79,003

작성
24.05.28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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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글자
12쪽

24화. 시작

DUMMY

콜록콜록-.

새벽 네 시. 엄마의 기침 소리에 깼다.

푹 자야지 피로가 사르르 풀릴 텐데, 저렇게 자주 뒤척이면 어떡해.


‘아픈가?’


이마에 손을 짚어봤더니 열이 느껴지진 않는다. 안심되어 벽에 기대앉았다.

엄마에게 ‘빚도 다 갚았으니 일을 좀 줄이면 안 될까?’ 걱정스레 물으면 하루라도 더 젊을 때 벌어야 한단다.


‘몸도 약한 사람이....’


용케 버티고 산다.

한 달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프레젠테이션 날 ‘날밤 영화사’가 나를 선택하면서, 시나리오 공모전의 일정이 마무리됐다.

짜릿했지.

이후 ‘날밤 영화사’는 하루도 쉬지 않고 나를 불렀다. 시나리오 회의, 캐스팅을 위한 미팅, 시나리오 공모전 입상자로서의 홍보 활동 등 할 게 너무 많았다. 정신없이 지낸다고 집안일에 소홀했는데, 그래서 설마?

제발 아니길···!

조심히 일어나 엄마가 누워있는 곳으로 갔다. 옷장 뒤편 벽을 휴대폰 불빛으로 비춰 봤더니···. 젠장!

곰팡이가 가득하다. 이 새끼들이 고새를 못 참고 퍼졌네.


“엄마, 나랑 자리 바꾸자.”

“.... 으.... 응?”

“이쪽으로 와요.”


잠든 엄마를 이불째 안아서 옆으로 옮겼다.


‘빨리 이 집에서 벗어나야 해.’


얼마 전, 병원에 갔더니 엄마의 기관지에 염증이 생겼다고 했다. 치료받으면 일시적으로 낫겠지만, 환경을 바꿔주지 않으면 재발할 거란다. 천식이나 다른 질병으로 번지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말에 신경이 곤두섰다.


‘돈 벌어서 남향집으로 가자. 햇볕이 들면 집이 살균되겠지.’


그러기 위해서는 보증금을 모아야 한다.

‘날밤 영화사’는 다음 달부터 월급을 준다고 했다. 신애리가 말한 오백만 원보다는 적지만, 입봉 감독치고는 괜찮게 계약됐다. <칙칙폭폭>이 개봉하면 관객 수만큼 성과급도 나온단다.


‘대박 내서 투 룸 가는 거야!’


돈 때문이 아니더라도 <칙칙폭폭>을 제대로 터트리고 싶다. 영화 현장에서 만난 스태프처럼 ‘영화를 통해 자신의 예술적 가치를 드러낸다거나 사회에 던질 메시지를 담겠다’라는 등의 멋진 포부는 없지만.

영화를 전공하지 않은 나에게, 학력이나 나이를 따지지 않고 ‘너는 할 수 있을 거야’라고 믿어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을 보답하고 싶달까.

‘인마, 내가 뭐라고 그랬어? 너는 된다고 했지? 내 말 듣기 잘했지?’ 잔뜩 생색내며 좋아할 그들의 표정이 보고 싶다. 두식이 형이 가장 요란하겠지?

징- 문자다. 새벽 네시에 누구지?


[신애리: 일한아- 자냐-]


글자에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신애리는 미국에서 돌아온 후로 쉬지 못하고 일하느라 밤낮이 바뀌었다. 퇴근길일까, 출근길일까?


[신애리: 너 잡지 촬영했더라? <씨네 24>보다가 놀랐잖아. ‘날밤 영화사’가 선택한 작품 <칙칙폭폭>을 주목하라! 멋지던데?]


말하려고 했는데, 먼저 봐버렸네?

시나리오 공모전 주최측은, 수상작이 제작에 들어가면 ‘개봉할 때까지’ 잡지사를 통해서 작품을 홍보한다. 팍팍 밀어줄 테니 공모전의 위상을 높이라는 거겠지? 촬영 날, 전문가를 붙여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멋지게 꾸며줬다.


[유일한: 화장도 했었어요. 엄마가 평생 보관할 거라며 뜯어서 코팅하는 바람에 한 권 더 샀답니다.]

[신애리: 뭐야? 깨어 있었어?]


바로 전화가 왔다.

이를 어째, 우리 집은 공간이 분리되지 않은 원룸이라서 숨어서 통화할 곳이 없는데.


[유일한: 엄마 깨요. 통화 금지!]

[신애리: 나와.]

[유일한: 지금요?]

[신애리: 얼굴 못 본 지 보름 지났어. 할 말 쌓였음.]

[유일한: 속상한 일이 있었구나?]

[신애리: 광고 미팅을 했는데.... 그 자식을 아주 그냥!]

[유일한: 어떤 자식인지 몰라도 걔가 무조건 잘못했네. 나빴네.]

[신애리: 그치?]

[유일한: 당연하죠.]


신애리는 또래 친구가 없다.

고민이나 힘든 일이 생기면 가족에게 말해왔는데, 언젠가부터 그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 툭, 털어내려고 가볍게 한 말이었는데. 가족은 무겁게 받아들이고 심각해지더라.


그러니까 ‘네가 내 말벗이 되어라’ 잡는데, 잡혔다. 호칭도 누나가 됐다.


[신애리: 마침 근처야. 들릴까, 말까?]

[유일한: 와요.]

[신애리: 이십 분 후에 너희 집 뒤쪽 놀이터에서 보자.]


저야 좋죠.

엄마가 깨지 않도록 조심조심 겉옷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가을바람이 차다. 아무도 없는 컴컴한 놀이터에 들어가 그네에 앉았다.

하.....!

입김을 뱉다 웃음이 났다. 이게 얼마 만에 여유야?

어둠에 마음이 차분해질 때, 멀리서 자동차 불빛이 다가왔다. 차에서 내린 신애리가 내 쪽을 보고 긴가민가 기웃거렸다.


“유..... 일한?”

“네, 저예요.”

“우와, 유일한이다!”


신애리가 두 손을 번쩍 들고 흔들거리며 다가왔다.


“우리 일한이!”

“쉿쉿쉿!”

“목소리 안 커. 이 정도로는 아무도 안 깨.”

“누가 알아볼까 봐 그렇죠.”

“알아보라지? 나 지금 숍에서 오는 길이라 예뻐서 당당하거든!”


신애리는 새침하게 웃으며 그네에 앉았다.

흔들- 흔들.


“밤공기 시원하네-.”

“몇 시간 전까지 촬영하지 않았어요? 바로 또 일하러 가는 거예요?”

“이거 찍고 끝이야 끝. 한 달 휴식 들어갈 거야.”

“우와. 드디어!”


짝짝짝짝짝-.

박수를 치자, 신애리가 박자에 맞춰 어깨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너 고등학교 자퇴했더라?”


잡지사에서 <칙칙폭폭> 작품 소개 글과 함께 감독의 이력을 보내 달라고 했다. 학력을 쓰는 칸이 있어서 솔직하게 적었더니 그대로 실렸다. 엄마는 잡지를 보고서 못 배운 건 자랑이 아니라며 다음부터는 빼달라고 하란다.

뭐 어때요.

나 같은 사람이 나를 보고 희망을 품으면 좋잖아.

그래서 일부러 더 자세히 적었다.


“경제적인 이유였다며? 이 동네에 산다는 건, 그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건가?”

“그렇죠.”

“여전히 힘들구나?”


대답 대신 웃어보였다.


“<칙칙폭폭> 대박 내자.”


두 주먹을 불끈 쥐는 신애리를 보고, 푸핫- 웃음이 터졌다.


“주먹 펴요! 누나가 뭔가에 꽂히면 무서운 거 알아요? 거침없이 밀고 가잖아요.”

“능력이 좋다는 말로 알아들을게.”

“계약했으니까, 영화사와 힘내서 잘해볼게요.”

“거긴 힘이 부족해. 내 덕에 <칙칙폭폭> 시나리오가 나왔으니까, 나는 참견해도 되는 거잖아.”

“담당 피디가 불편해하면요?”

“쿼카 엔터테인먼트 대표가 <칙칙폭폭>에 관심을 가진다고 하면 좋아할걸? 내가 자리를 마련해 봐도 될까?”




***




마련한다는 자리가, 마을 잔치였어요?

우리 집은 마을버스 종점에서 내린 후 가파른 골목을 올라가야 한다. 그 길목에 낯선 플래카드가 붙었다.


[이 동네의 귀염둥이 ‘유일한’이 시나리오 공모전에 입상했어요. 영화감독을 준비합니다. 축하해 주세요!]


저게 뭐야?

바람에 펄럭거릴 때, 내 심장도 벌렁댔다.


‘무슨 꿍꿍이지?’


그 아래에 붙은 플래카드가 더 놀랍다.


[친구들이 쏩니다, 고기 드시러 오세요!]


잔치 일정이 적혀있다. 사흘 후다.

이건 꿈일 거야, 현실일 리 없어. 고개를 흔들며 부정해 봤지만 진짜다. 신애리와 박두식이 손잡고 꾸민 일이었다.

이 사람들이!!!!

과하다며 펄쩍 뛰는 나와 달리 엄마는 귀까지 빨개지며 기뻐했다. 아들의 잘됨을 함께 좋아해 주는 친구가 있다니. 복덩이들이라며 따로 밥을 사겠단다.

엄마가 행복해하니까, 이대로 흘러가게 둬야 하나... 혼란스럽다.


“누나! 이거 진짜 할 거예요?”

- 아주 재미있을 거야.


휴대폰 너머 신애리의 목소리가 들떴다.


- 매우 기대돼.


콧노래 소리까지 들린다.


- 일한아, 잔치에 ‘날밤 영화사’ 사람을 초대해 줘.

“담당 피디요?”

- 대표 포함해서 다 불러 줘. 프레젠테이션에서 일으키지 못한 치맛바람을 제대로 보여줄 테니까.


뭘···. 어쩌려고요?


- 날밤 영화사가 생각하는 <칙칙폭폭>의 방향성을 들어야겠어. 그래야 내가 도울 부분을 찾지.

“사업 관련 미팅은 영화사에 전화하면 바로잡을 수 있어요. 마을 잔치를 열지 않아도 돼요.”

- 잔치는 시나리오 공모전 입상 선물이야.

“너무 과해요.”

- 미국에서 <칙칙폭폭>이 프레젠테이션에 통과했다고 듣는데, 칸 영화제 수상하던 때랑 버금가는 희열이 오더라. 한참을 웃었어. 그 정도의 기쁨을 줬으면 이 정도 선물을 받아도 돼.

“그럼 잔치 말고 다른 선물을 주세요.”

- 너는 그곳을 떠나게 될 거야.


네?


- 마지막 식사 대접이라 생각하자. 놀이터에서 네가 그랬잖아. 동네 어르신에게 감사한 게 많다고.


여긴 엄마와 내가 벼랑 끝에 몰렸을 때 이사 온 곳이다.

엄마와 살던 첫 번째 집에서 쫓겨났었다.

길바닥에 내몰렸었지. 그런 우리를 가엽게 여긴 낯선 아저씨가 지금 이 동네를 알려줬다. 인심 좋은 동네라 돌아다니다 보면 받아 줄 곳이 있을 거라고 했다.

엄마는 거절당하더라도 부딪혀보자며 어린 나를 데리고 이곳에 왔다. 마주친 사람들은 눈물 범벅이 된 엄마와 삐쩍 마른 나를 모른척하지 않았다. 이웃집 문을 두들겨가며 빈방을 찾아줬지. 덕분에 이전 집보다 깨끗한 곳에 더 저렴하게 들어왔다.


- 일한아, 그 감사함은 갚고 나와야지. 잔치 열자.


그날이 오늘이다.

어젯밤부터 정말 잔치가 열리냐며 물으러 오는 어르신이 많다. 소풍 전날 어린아이처럼 들뜨신 모습이 보기 좋다.

야외 농구장에 판이 벌어졌다.

‘여기서 결혼식을 하나 봐.’ 오해할 만큼 화려한 꽃들로 장내가 꾸며졌고, 편하게 식사할 수 있도록 파라솔 달린 테이블과 의자가 놓였다.


‘신애리는 대충 하는 게 없구나.’


고급 출장 뷔페가 세팅되고 그 자리에서 고기가 구워졌다.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가며 냄새가 멀리 퍼진다.

컹컹컹컹컹-

왈왈왈왈왈-

동네 개들이 한 입만 달라고 짖고 난리다.


“이럴 때 음악이 빠지면 섭섭하죠.”


누구보다 들뜬 두식이 형이, 허리춤에 블루투스 스피커를 달고 나타났다.


“오늘은 내가 사회자!”

“형, 여기서 사회가 왜 필요해요. 맛있게 먹고....?”

“아버님-, 어머님-. 저 보이시죠?”


두식이 형이 의자 위에 올라갔다.


“여러분의 웃음을 책임질, 박두식 인사드립니다. 박수!”


짝짝짝짝짝!

두식이 형이 어르신들의 시선을 끌어당겼다.


“흥을 돋우기 위해서 다양한 음악을 준비해 왔습니다. 쥬크 박스 시동 겁니다. 부릉부릉 부르릉-. 신청곡이 있으면 망설이지 말고 저를 불러주세욧! 그럼 첫 번째 곡으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자, 두식이 형의 몸에 달린 스피커에서 국민 트로트 ‘오빠는 너뿐이야’가 나왔다. 짜라라라란 짠짠!


“오우워! 오우워! 오오오오오빠는 순희를 쏴랑해-”


어찌나 찰지게 부르는지, 어르신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덩실덩실 몸에 리듬이 흐른다.


“오우워! 오우워! 나나나나나는 오빠를 싸뢍해-.”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두식이 형이 숟가락을 마이크처럼 사용하며 어르신들에게 건네면 합창이 터졌다.


“아따 좋구먼!”

“일한이 저거 키운다고 엄마가 고생 많이 했지.”

“엄마만 고생했나? 애는 또 어떻고.”

“복은 꼬리를 물고 따라온다던데, 일한이 덕에 우리한테도 좋은 일이 생겼으면 좋겠네.”


아랫동네 사람까지 몰려들었다.

웃음 가득한 풍경을 보고 있는데, 쿼카 엔터테인먼트 실장이 나를 불렀다.


“다 모였어. 가자.”

“네.”


따라서 들어간 우리 집에 신애리, 강철수 피디, 날밤 영화사 대표가 앉아있다.


“감독님 왔습니다. 본격적으로 회의를 시작해 볼까요?”


강철수 피디의 말에 다들 끄덕였다.

대박 터트려봅시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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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22화. 지상 최대 시나리오 공모전 (7) 24.05.25 1,290 40 12쪽
21 21화. 지상 최대 시나리오 공모전 (6) +1 24.05.24 1,315 41 12쪽
20 20화. 지상 최대 시나리오 공모전 (5) 24.05.23 1,350 37 12쪽
19 19화. 지상 최대 시나리오 공모전 (4) +3 24.05.22 1,359 47 12쪽
18 18화. 지상 최대 시나리오 공모전 (3) +1 24.05.21 1,380 37 12쪽
17 17화. 지상 최대 시나리오 공모전 (2) 24.05.20 1,405 41 12쪽
16 16화. 지상 최대 시나리오 공모전 (1) +4 24.05.18 1,485 43 12쪽
15 15화. 연출부 (4) +2 24.05.17 1,440 40 12쪽
14 14화. 연출부 (3) +1 24.05.16 1,474 41 12쪽
13 13화. 연출부 (2) 24.05.15 1,487 37 12쪽
12 12화. 연출부 (1) +1 24.05.14 1,523 36 13쪽
11 11화. 연출부 대타 (10) +1 24.05.14 1,543 43 12쪽
10 10화. 연출부 대타 (9) 24.05.13 1,547 41 12쪽
9 9화. 연출부 대타 (8) +4 24.05.12 1,604 42 11쪽
8 8화. 연출부 대타 (7) +1 24.05.11 1,648 41 12쪽
7 7화. 연출부 대타 (6) +2 24.05.10 1,701 42 12쪽
6 6화. 연출부 대타 (5) +3 24.05.09 1,786 48 12쪽
5 5화. 연출부 대타 (4) +1 24.05.08 1,818 44 12쪽
4 4화. 연출부 대타 (3) +2 24.05.08 1,851 51 13쪽
3 3화. 연출부 대타 (2) +1 24.05.08 1,903 48 12쪽
2 2화. 연출부 대타 (1) +2 24.05.08 2,014 52 12쪽
1 1화. 천재 +1 24.05.08 2,469 5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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