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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달대게 님의 서재입니다.

알바생이 연출을 너무 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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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박달대게
작품등록일 :
2024.05.08 11:32
최근연재일 :
2024.06.27 10:50
연재수 :
4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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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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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62,578

작성
24.05.0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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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6
추천
46
글자
12쪽

3화. 연출부 대타 (2)

DUMMY

새벽 여섯 시에 도착한 남양주 세트장은 수산시장처럼 활기차다. 사무실에 없던 기술팀이 합세해 사십여 명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일한 씨, 물품 받아 가요!”


제작부 형이 묵직한 상자를 바닥에 내려놨다. 문구용품이 가득하다. 여기서 뭐를 꺼내야 하는 거지?


“촬영 처음이라고 했죠?”

“네.”

“그럼 내가 챙겨줄게. 가방 줘봐요.”


잘 됐다.

촬영 현장에서 사용하라며, 석중이 형이 빌려준 검정 크로스백을 잽싸게 건넸다. 제작부 형은 망설임 없이 가방과 끈을 분리했다. 그러고는 색이 각각 다른 마스킹 테이프 네 개를 가방끈에 두루마리 휴지처럼 달았다.

오-. 저러니까 제법 스태프가 쓰는 가방 같다. 안에 커터 칼, 가위, 네임펜, 형광펜, 볼펜 등을 넣더니 내게 줬다.


“더 필요한 거 있으면 나를 찾아요.”

“네.”

“수고!”


...... 형도 수고!

라고 멋지게 답하고 싶었는데 어색해서 말을 뻐끔 삼켰다. 둘러보니 다들 몸에 뭔가를 주렁주렁 달고 바쁘게 뛰어다닌다. 그들이 만들어낸 먼지가 창가에서 들어오는 빛을 받아 반짝인다.

멋지네.

감상도 잠시-.


“일한아, 이쪽!”


두식이 형이 나를 불렀다. 드디어 나도 저들 속에 섞여 들어가는 건가?


“네! 갑니다.”


묘하게 들뜬 기분이 숨겨지지 않는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그대로 가지고 감독님 자리에 갔다.


“형, 불렀어요?”


감독님 자리에 감독님은 없고 처음 보는 여자 두 명이 있다. 두식이 형이 나를 당겨 노트북을 만지는 사람 앞에 세웠다.


“자자-. 촬영에 들어가기에 앞서 소개할 친구가 있습니다.”


첫인상은 중요하다. 예의 바르게 두 손을 모으고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이런 나를 보고 서른 중반쯤 되는 여자가 인상을 썼다. 마음에 들지 않나 보다.


“누구?”

“연출부 희연이가 돌아올 때까지 그 자리를 메꿔줄 지원군입니다. 인사드려, 여기는 현장 편집 기사님이셔.”

“안녕하세요, 유일한입니다.”

“반가워요. 근데 뭔가···. 되게 어려 보인다.”


뜨끔 찔렸다.

일할 때 나이에 관련된 말을 들으면, 안 좋은 결과가 따라왔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끈기 없고 책임감 적고 이기적이다는 선입견과 함께 잘렸었다.


“두식아, 이 친구 몇 살이야?”


올 게 왔다.


“스물입니다.”

“일터에 학생이 왔네. 모니터 연결할 사람을 인사시켜준다더니, 그 친구가 이 친구야?”

“.........”

“믿고 맡겨도 되는 거냐고.”


현장 편집 기사는 손으로 감독님 자리에 놓인 모니터를 가리키더니 쭉- 포물선을 그려 세트장 입구로 옮겼다. 우리의 시선도 그 손을 따라 세트장으로 이동했다.


“여기서 저기까지 모니터 연장선을 깔아서 카메라에 연결해 줘야, 감독님 모니터에 세트장 풍경이 나오겠지?”


라고 말하며 나를 봤다.


“이 봐봐, 이 친구 지금 내가 하는 말을 처음 듣는 것처럼 듣잖아. 당황하고 있잖아.”


사실이었기에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


“두식아, 여기 학교 아니다. 가르치면서 할 시간 없어. 할 줄 아는 사람 데려와.”

“...... 제가 직접 하겠습니다.”


두식이 형의 말에, 굳어있던 현장 편집 기사의 얼굴이 펴졌다.


“그래 그게 좋겠다. 희연이란 친구도 다음 주면 온다며. 그때까지만 네가 수고해 줘.”

“네, 알겠습니다.”

“어우-. 든든하다.”


안심하며 웃는 현장 기사를 보고 속이 상했다.

어젯밤 미술팀 형들이 내게 두식이 형을 많이 도와주라고 부탁했다.


- 일한아, 세트장 가면 두식이 정신 못 차릴 거다. 촬영 전에는 소품 세팅됐나 확인해야지, 촬영 들어가며 소품 배치 틀어지나 확인해야지, NG 나면 원래대로 돌려놔야지. 그거 무한 반복하느라 쉴 시간이 없을 거야.

- 피곤하면 실수 생겨.

- 두식이 성격에 힘들어도 혼자 다 하려고 들 거야. 네가 눈치껏 도와.


알겠다고, 두식이 형의 든든한 오른팔이 되어보겠다고 말했는데···. 이게 뭐야. 오히려 내가 해야 할 일까지 두식이 형에게 줬다.

한숨이 나온다.


“일한아, 여기는 스크립터 누나야. 감독님 옆에서 실시간으로 지시사항 받아서 연출부에 넘겨주실 거야.”

“안녕하세요, 유일한입니다.”


고개를 숙였다가 올리는데 스크립터 누나가 나를 보고 활짝 웃었다.


“안녕? 어제 사무실 출근했다며?”

“네.”

“내가 하루 일찍 남양주에 오는 바람에 이제야 인사를 하게 됐네. 까비 까비 아까비!”


장난치며 웃는데 보조개가 쏙 들어간다. 이 사람이 ‘앞길 창창할 예정인 장도연’이구나!


두식이 형이 스크립터 누나에 대해 미리 알려줬다. 한국대학교 영상학과 출신에 독립영화를 두 편 만든 감독이다. 두 영화 모두 부산 국제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다. 공부로 치면 모의고사 전국 1등 같은 건가?

만족할 만한 성적을 낸 그녀가 절차대로 상업 영화 제작에 발을 담글 거라 다들 생각했지만-.

노!

연출을 더 공부하고 싶다며 거장 감독, 봉황의 영화 <봄봄못봄>의 조감독이 된다. 봉황 감독의 인맥을 자신의 인맥으로 이어지게 하려는 꼼수였다.

통했다.

봉황 감독의 영화 현장에 놀러 간 <개천에 뜨는 별> 피디가 현장을 지휘하는 장도연의 모습에 반해 스카우트한다.


‘제2의 봉황 감독이 될 인재라나 뭐라나.’


차기작 시나리오는 이미 나온 상태로 어마어마하게 재밌단다. 그런 장도연이 차기작 준비를 미루고 <개천에 뜨는 별>의 스크립터가 된 건, 신애리 때문이다.


‘캐스팅하려고 시나리오를 보냈는데, 신애리 회사에서 이미지에 맞지 않는다고 거절했댔어.’


신애리에게 직접 시나리오를 건네기 위해서 장도연은 자발적으로 스크립터가 됐다. 친해져서 자신이 여태껏 어떤 작품을 했는지 어필한 후에 시나리오를 보여줄 거라며, 동네방네 소문내는 중이다. 덕분에 내 귀에도 들어왔다.


‘곧 신애리 귀에도 들어가겠지.’


자연스럽게 신애리는 장도연이 누군가 찾아보다, 실력에 감탄하고 자신을 캐스팅하고자 하는 열정에 감동하겠지. 결국에는 장도연 영화에 출연하게 될 거고.


‘이게 장도연의 계획이겠지.’


치밀한 사람이다. 그 사람이 나를 보고 웃는다.


“유일한, 이름 좋네.”

“감사합니다.”

“나는 뭐 특별히 부탁할 건 없는데···. 아 생각났다!”


장도연은 바닥에 놓인 아이스박스를 가리켰다.


“간식 가져가. 감독님 옆에 있으면 손님과 매니저가 몸에 좋고 맛도 좋은 먹거리를 많이 주거든. 짜잔-.”


일을 달라고 했더니, 먹거리를 준다. 너한테 바라는 것이 없으니 먹고 떨어지렴-. 하는 것 같아서 기운 빠진다. 예의상 곰돌이 젤리를 들고 자리를 옮겼다.

두식이 형을 뒤따르며, 허탈해졌다.

이러다 하는 일 없이 돈만 받아 가게 되는 건 아닐까.

꿀 알바라고 좋아해야 할지, 쓸모없는 취급을 받았다고 속상해야 할지, 희비의 감정이 섞인다.

징-

징-

여기저기서 휴대폰이 울렸다.


“뭐지?”


가던 길을 멈추고 휴대폰을 열었다. 단체톡이다.

보낸 사람은 조감독. 오늘 일정이 변경되었으니 바로 확인하란다. 두식이 형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촬영 직전에 이런 연락을 받으면 쫄리는데-. 좋았던 적이 없어.”


아니나 다를까, 여기저기서 한숨이 들린다.

큰일이 터졌나 보다. 옅은 욕도 나왔다.

불안한 마음으로 첨부된 파일을 열었다. 배우 호출시간이 바뀌었다.


“뭐야, 이거!”


두식이 형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파일을 확대해 읽었다.


원래는 일정은-.

오전에 제시카만 호출, 단독 촬영 진행.

점심에 신애리 호출. 둘이 함께 나오는 장면 진행.

제시카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면 신애리 단독 촬영이었다.


바뀐 일정은-.

오전의 제시카 촬영이 사라졌다. 점심에 신애리 오면 신애리 단독부터 촬영 시작이란다. 제시카의 분량은 이후에 다시 알려주겠단다.


징-

징-


문자가 들어왔다.


[조감독: 제시카가 속한 ‘핑크 스페이스’가 필리핀에서 공연 후, 계획에 없던 팬 사인회가 잡혀서 늦게 출발했답니다. 이러한 사정으로 오전 촬영이 취소되었습니다.]


어이가 없어서 여기저기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시바- 어쩌라고.”

“최소 전날 알려줘야지. 이러면 세팅 다 바꿔야 하잖아!”

“오전 여섯 시간을 날리라는 거야?”

“퇴근도 여섯 시간 미뤄지겠네.”

“신애리 몇 시 호출이지?”

“오후 한 시입니다.”

“세 시간, 아니 두 시간이라도 빨리 와주라고 하면 안 될까? 조금이라도 당겨보자!”

“조감독님이 움직이고 있을 겁니다. 다들 기다려 보죠.”


곧 촬영이라는 생각에 팽팽하게 붙잡고 있던 긴장감이 탁, 풀렸다. 여기저기 주저앉는 스태프가 보인다. 다크서클이 판다처럼 내려와도 미소를 잃지 않던 두식이 형마저 심각하다.


“시작이 좋아야 끝까지 잘 가는데, 불길하게 왜 이러냐.”


마른 세수를 하는 두식이 형에게, 뭐라 힘을 줘야 할지 모르겠다.


“일한아, 일하자. 나는 소품 교체하러 간다. 너는···. 모르겠다. 쉬어.”


한 게 없는데 뭘 또 쉬나요. 여기저기 울상이니 어딜 가도 가시방석일 거 같다.


“안녕하세요-.”


한숨 사이로 밝고 경쾌한 음성이 들렸다. 스태프의 시선이 일제히 소리가 나는 쪽으로 향했다.


“<개천에 뜨는 별>의 시작을 응원하러 왔습니다.”


그곳에 최근 미국에서 여전사로 변신해 자신의 몸채만 한 칼을 휘두르던-.


“신애리입니다-.”


그녀가 나타났다. 다들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오후에 와야 하는 신애리가 새벽 여섯 시에 꿈처럼 눈앞에 있다.

주먹만 한 얼굴에 크고 동그란 눈, 오뚝한 코, 통통한 볼살이 오밀조밀 자리 잡은 베이비 페이스를 보아하니, 분명히 그녀다.

172센티미터의 키에 가느다란 길쭉한 팔과 다리를 보아도 분명히 그녀다.


새벽바람을 맞아 볼이 빨개진 그녀 대신, 옆에 있는 매니저가 목소리를 높였다.


“첫 촬영을 응원하기 위해서 빵과 커피를 준비했습니다-. 드시고 하시죠!”


이거 꿈은 아니겠지?

가장 놀란건 일정을 조율하는 조감독이다. 회의실에서 허겁지겁 달려와 매니저와 신애리 앞에 섰다. 오아시스를 발견한 사람처럼 입을 틀어막았다.


“와....... 이건 뭐. 감사합니다. 우선 너무 감사합니다. 실장님, 저랑 대화 좀 하시죠.”

“커피차로 가실까요?”

“그전에 드릴 말이 있습니다.”

“무슨···.”

“실례가 되는 줄 알지만, 혹시 일정을 변경해서 오전 촬영 가능할까요?”


제발, 제발! 모두 간절함을 담아 바라봤다. 조감독은 모두를 대표해 말했다.


“오전 촬영이었던 제시카의 일정에 변동이 생겨서....”

“아니요, 일정대로 하겠습니다.”


실장이란 사람은 단호했다. 살짝 화가 난 것처럼, 오후 촬영에 맞게 컨디션을 조절했는데 오전에 진행하면 배우가 체력적으로 힘들어할 거라고 했다.


“나 괜찮은데?”


신애리가 상큼하게 웃으며 끄덕였다.


“난 오히려 좋은데? 한국어로 진행하는 영화 현장이 너무 그리웠어요. 1회차의 첫 촬영이 나라면, 특별할 거 같아. 기념되고 오래 기억할 수 있잖아.”


그녀의 말에 우리는 숨죽여 환호할 준비를 했다.


“실장님, 내가 소품으로 사용하려고 가져온 것들, 차에서 챙겨와 주실래요? 감독님께 컨펌받아야겠다.”

“네가 하고 싶으면 해야지. 다녀올게-.”


오예,

오예!

오예예!


신애리 만세!


“그럼 저 이제 어디로 가요?”

“분장팀에 가셔서 준비하시면 됩니다.”

“네!”


사라지는 그녀를 보고 조감독이 소리쳤다.


“7씬부터 갑니다. 콘티 확인해 주시고 빨리 움직여 주세요.”

“네!”

“네!”


나도 그들 틈에 섞여 소리쳤다!


“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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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4화. 연출부 대타 (3) +2 24.05.08 1,735 49 13쪽
» 3화. 연출부 대타 (2) +1 24.05.08 1,787 4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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