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1 #2. 하나의 세계
베리에이션(Variation)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잔잔한 파도가 이는 나가사키 해변은 햇살 가득 따뜻한 온기가 넘쳤다. 가벼운 옷차림의 사람들이 밝게 웃으며 따뜻한 봄날을 즐기고 있다. 시베리안 허스키를 데리고 나온 남자가 해변을 산책하고 있다. 남자 옆으로 한 아가씨가 다가와 시베리안 허스키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들 옆으로는 한 학생이 벌써 반바지 차림으로 드론 스케이트보드를 타며 S자를 그리고 지나갔다. 여유롭게 해변을 거닐고 있는 사람들을 유심히 보고 있던 한 남자가 갑자기 인상을 찌푸리며 한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리고 말하다 멈추며 자신의 어깨를 뚝 쳤다.
- "플랜 B에서······."
그는 다급하게 연결을 끊고 다시 평온한 말투로 AI 미카엘에게 지시했다.
"미카엘, 작전 실행한다."
미카엘은 미리 알고 있었던 듯 상냥하게 대답했다.
"예, 엑스요원님. 시작하겠습니다."
"그리고 여기 식사할 만한 괜찮은 곳을 찾아 알려줘."
X요원은 한층 더 평온한 표정으로 걸었다.
"그러죠. 엑스요원님, 여기서 1분 거리에 있는 강원도 산채나물로 유명한 음식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곳으로 안내해 드릴까요?"
미카엘은 바로 저녁식사를 할 수 있는 괜찮은 곳을 알려주었다.
"오케이. 좋아! 그곳으로 가지. 누에차 부탁해."
X요원은 조금 상기된 목소리로 미카엘에게 말했다. 그 순간 해변 근처 별장에 있던 누에차가 순간 X요원 앞에 멈춰 섰다. 누에차는 누에고치처럼 하얀 실 같은 조직들이 엉켜져 모자이크 문양을 하고 있었고 영롱한 빛을 뽐내고 있었다.
누에고치에 입이 있다면 그 입을 크게 벌린 듯 누에차 문이 활짝 열렸다. X요원은 벌린 입으로 들어가 앉았다. 그 순간 그를 삼키 듯 누에차 문이 닫혔다. 누에차는 밤하늘의 별이 반짝반짝 빛나듯이 순간순간 그 모습이 나타났다 사라지며 빠르게 이동해 산채나물이 유명한 음식점으로 향했다.
***
[ 2072년 3월 2일 목요일 저녁 6시(현재로부터 2일 전) 대한민국 수도 세종시 ]
바람이 불어 나무에 피어있는 어린잎들이 흔들흔들 휘날리며 춤을 춘다. 그 아래 텃밭에 심어져 있던 다양한 새싹들도 이리저리 살랑살랑 흔들거린다. 저녁 여섯 시지만 돔 주택가는 한적하고 조용했다.
돔(주택)과 돔 사이에 줄지어 태양열등이 설치되어 있어 옅은 빛을 내 어둡지 않았다. 그래서 저녁에도 집 앞 텃밭에서 직접 자신들이 키우는 채소들을 가꾸는 사람들도 보였다. 돔과 돔 사이에 꽃과 나무들이 조성되어 있어 그 길을 산책하는 연인이나 가족들을 자주 볼 수 있다.
하지만 오늘은 한적하고 조용하다. 모두 돔 안에서 중요한 경기를 시청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거나, 경기를 직접 관전하러 많은 사람들이 서울로 올라갔기 때문이다. 넓은 은빛 패드들이 붙어있듯 둥근 접시 모양의 돔은 태양열등에서 나오는 옅은 빛에 반응하며 반짝반짝 빛나 보이기도 했다.
돔은 낮에는 태양의 열과 빛을, 밤에는 땅 속 열을 이용하여 전기를 생산한다. 또한 날이 좋은 날에는 지붕을 열어 하늘을 올려다 볼 수도 있다. 원형 형태인 듯 보이지만 사실 8각형 모형의 굴곡진 형태이다. 각 벽면에는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누에차가 펼쳐진 채로 붙어있다. 필요할 때 누에차로 변형되어 사용된다.
돔에 주차되어 있는 누에차는 누구나 사용 가능하며 누에차를 사용하면 비용은 그 돔 주인에게 지급된다. 이 돔에는 주인의 누에차가 아닌 것이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돔 주인의 누에차는 서울에 나머지 반이 있기 때문에 빈 공간을 다른 사람에게 대여해 주었다. 누에차를 대부분 대여하여 사용하지만 일부 직접 구매해 이용하기도 한다. 이 돔의 주인은 지금 서울에서 세계 드론 레이싱 대회 예선을 준비하고 있다.
다음 옆 돔은 푸른 색 계열의 다채로운 색들로 꾸며져 있는데 이 돔의 주인은 대한민국 대통령인 유민주이다. 2070년 취임하였고 대한민국 최연소 여성대통령이다. 현재 나이는 39세이며 37세(만 35세)에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현재 세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이탈리아 작가이며 국회의원인 안토니오 쟈크가 그녀의 남편이다. 안토니오 쟈크와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처음 만나 2년의 연애 끝에 결혼했다. 안토니오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아이들과 살고 있으며 한국을 오가며 작가로 활동 해오다 이탈리아 국회의원으로 의원직을 복무하고 있다. 5년간 의정 활동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작가로의 삶을 살아 갈 예정이다.
2040년이 되는 해 공번세위에서 국회의원 선출 방식에 대한 개헌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발표했다. 개헌안 내용은 선거에 의한 국회의원 선출 방식이 아닌 연령 25세 이상 누구나 의무적으로 5년 단임으로 복무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결의안은 각 국가에 입법화되어 전 세계적으로 통일되게 적용됐다.
안토니오 쟈크는 이탈리아에서 1년째 국회의원으로 의정활동 중이다. 또한 그 해 한국도 국회의원 선거 제도와 더불어 대통령 선거제도도 개헌을 통해 4년 중임제를 채택했다. 개헌 후 당선된 유민주 대통령은 올해가 집권 3년 차로 내년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이기도 했다.
유 대통령은 내일 있을 각국 정상 및 공번세위 위원들과의 만찬 때 발표할 연설문을 작성하고 있었다.
세계 드론 레이싱 대회가 서울 태릉에서 개최하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공번세위 위원들을 초청하여 만찬회를 열고 각국 정상들과 위원들 간의 회담을 갖기로 했다. 대한민국에서 공번세위 위원들과 각국 정상들이 모두 모이는 것은 이번이 세 번째이며 유 대통령의 취임 후 처음이다. 대한민국 정부와 공번세위는 한국의 위상을 다시 한 번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대통령은 관자놀이 부위를 손으로 꾹꾹 누르며 잠시 눈을 감고 몸을 뒤로 젖혔다. 목을 좌우로 돌리며 어깨를 앞뒤로 수차례 돌려본다. 그리고 눈을 떠 서재에서 나와 거실로 향했다.
"밍키, 세계 드론 레이싱 예선전 보여줘."
목이 잠긴 유 대통령은 거실 소파에 앉았다.
"네. 대통령님."
탁자에 있는 핑크색 큐브가 짧게 물결치며 소리 냈다.
TV에서 주경기장으로 진입하는 수많은 인파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경기는 아직 시작 전인 듯 보였다. 경기장 내 관중석은 거의 다 채워진 상태였고 곳곳에서 벌써 응원이 시작되었다. 각 나라 응원단들이 나라별 상징하는 옷들을 입고 있어 경기장 안은 다채로운 색깔들로 물들어 있었다. 그 중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붉은 색 물결이 파도처럼 넘실거렸다.
***
[ 2072년 3월 2일 저녁 6시(현재로부터 2일 전) 목요일 예선 마지막 날 ]
- "여기는 수원이에요. 아빠랑 즐거운 시간 보내고 계세요?"
- "그래. 아들 덕에 우리가 호강한다."
엄마의 목소리가 밝아 안심이다.
- "뭘요. 근데 아빠는 어디 계세요?"
- "응. 아빠는 호텔에 있는 수영장에 가셨어, 여기 와서도 수영은 빠지지 않고 하신다."
엄마는 힐끗 옆으로 눈길을 주며 웃었다.
- "역시 아빠네요. 엄마, 이탈리아는 어때요? 여전히 좋으세요? 신혼여행 때보다는 아니죠?"
나도 모르게 엄마에게 윙크하며 방긋 웃었다.
- "모르겠어. 여기 온지 3일밖에 안 되는데 너무 좋다. 우리 여기서 살며 어떨까? 아들."
어깨를 치켜세우며 콧소리 내어 웃는 엄마가 다 깜찍해 보였다.
- "남은 7일 동안 조심히 즐겁게 놀다 오세용!!"
나는 잔뜩 입에 힘을 주어 딱딱 끊어 말하며 익살스런 표정을 지어 보였다.
- "그런데 아들, 미안해서 어쩌니? 큰 경기인데 우리는 여행이나 하고."
- "괜찮아요. 아시잖아요. 경기에 가족들 오면 더 신경 쓰이는 거요. 전 괜찮으니 걱정 마세요."
엄마가 걱정하지 않게 최대한 밝은 목소리로 말하며 웃어 보였다. 패드의 시계를 보니 앞으로 예선 시작 전까지 1시간 밖에 남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엄마와 영상 연결을 끊고 경기장으로 가야했다.
본 경기 30분 전에 코스 주행 리허설을 해야 한다. 코스는 매 라운드마다 변경되며 경기 시작 30분 전 리허설 때 공개된다. 리허설은 단 두 번의 기회가 주어진다. 3라운드가 예선전 중 가장 어려운 코스가 될 것이라 예상은 되지만 지금까지 해왔던 코스 중에 똑같고 쉽지 않은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매번 리허설 때마다 집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본 경기에는 새로운 장애물들이 나타나기 때문에 코스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끝까지 코스를 완주할 수 있으며 불가피한 사고에서 부상을 피할 수 있다. 작년 마지막 예선 3라운드 경기 중 부상을 당해 결선에 진출하지 못한 경험이 있었다.
리허설을 앞두고 긴장한 듯 부상을 당한 그때 기억이 떠올랐다.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드론 레이싱 세계대회였다.
< 에피소드 1. >
누에차는 누에고치에서 나오는 섬유질을 첨단 IT기술과 접목하여 새로운 형태의 합성 물질로 만들어졌다. 형태도 누에고치와 유사하게 제작되었기에 한가을 박사가 임시로 '누에차'라 명명했던 이동수단의 이름이었다. 그것이 실제 이름으로 결정된 계기는 한글에 대한 전 세계적인 인기 덕분이었다.
누에차의 발명으로 획기적인 전기를 맞이하였다. 2차 산업혁명을 도래하게 한 증기기관의 발명과 3차 산업혁명의 시작인 인터넷의 발명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 있는 AI의 진보가 4차 산업혁명을 이끌었다면 이 누에차는 21세기 최후의 발명품으로 5차 산업혁명······. 아니, 신문명의 혁신을 가져왔다.
아이슈타인으로부터 시작한 상대성 이론과 빛의 시공간 이동을 현실로 실현해 낸 세기의 발명품이었다. 누에차의 등장으로 시간의 개념이 달라졌으며 삶과 공간의 여유 그리고 가치관의 확장을 가져왔다.
빛의 속도에 가까울 정도로 정확한 시간과 공간으로 이동하는 누에차는 전 국토를 생활권으로 만들었다. 누에차가 처음 대한민국에서 발명되고 2055년 대한민국 정부는 제주도에 시범 운행을 위해 시스템 개발과 도로정비를 추진했다.
제주도에 누에차가 이동수단으로 도입되어 시행되고 한 달이 지난 후 제주 시민의 삶은 180도 달라진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이후로 2057년, 전국에 도입하기를 시작으로 이 교통 시스템은 세기의 발명품이 되었으며 공번세위의 적극적인 추진과 설득으로 전 세계에 빠르게 도입되어 하나의 거대한 공화국으로 도약하는 길을 열었다.
누에차의 도입으로 변화되는 도시와 지방 환경은 상상 이상의 격변을 맞이하였다. 도시와 지방을 구분하지 않고 전 국토 어디든 생활환경과 인프라가 유사하게 구축될 수 있었다. 도심은 점점 지방의 환경을 갖추어갔고 지방은 도심의 환경과 시스템이 곳곳에 구축되었다.
네트워크터미널 시스템 확장은 굳이 도심에서 살아갈 이유도 또한 굳이 도심으로 모여들 필요도 느낄 수 없게 한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도심은 숲과 밭이 늘어나고 건물들의 높이는 점점 낮아졌다. 밀집되어 있던 건물이나 주택들은 넓은 대지와 숲을 품에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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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판타지 -기존의 것과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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