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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좀 써!(나님한테 하는 말)

영지를 만드는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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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인스모커
작품등록일 :
2021.05.20 08:29
최근연재일 :
2021.05.31 10:15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3,502
추천수 :
255
글자수 :
78,976

작성
21.05.25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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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
추천
18
글자
10쪽

9. 분기점

DUMMY

분기점 퀘스트.

일반적인 퀘스트완 달리 스토리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퀘스트.

선택지에 따라 게임의 난이도가 확연히 달라진다.

하지만 항상 실타래가 굴러떨어졌다느니, 하프를 켰다느니, 촛불을 켰다느니, 별 도움도 안 되는 쓸데없는 이야기만 늘어놓아 유저를 더 빡치게 만드는 퀘스트다.


“빡치는 만큼 중요하긴 하지.”


나는 혼자 중얼거리며 빼꼼 눈만 내밀고 찬찬히 그들을 살폈다.

어느새 목책 앞까지 달려온 녀석들은 칼의 사정거리에서 조금 벗어난 채 서로서로 대치하고 있었다.

병사들은 철문 앞에서 반원을 그려, 노(老)기사와 귀족 여성을 포위하고 있었고 노기사는 여성을 보호하며 그들을 막아선다.

객관적으론 봐도 병사 쪽이 더 유리하다.

레벨도 비등비등할뿐더러 숫자도 병사 쪽이 월등히 많다.

쉬운 루트를 고르라고 한다면 당연히 병사 쪽을 선택해야 하지만.


“엠블럼이···”


나는 턱을 긁적이며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가슴에 있는 엠블럼이 계속해서 눈에 밟힌다.

난 웬만한 문장은 다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내가 아는 가문 중엔 저런 문장은 없다.

게다가 병사나 노기사나 같은 문장.

같은 편의 반란이 아니면 누군가 위장하고 병사를 심어 넣었다는 이야기다.

복장을 보아 여성은 귀족.

그리고 현재 영지전이 벌어지고 있는 가문은 아드라스 가문과 마이어 가문.

대충 유추가 된다.


“마이어 가문이다···.”


아드라스 가문의 엠블럼은 기억하고 있다.

사선 배경에 까마귀가 그려진 엠블럼이 아드라스 가문이다.

그러니 내가 모르는 엠블럼이라면 마이어 가문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아마 저 여성은 마이어 가문의 여식으로 판단된다.


“그러니까 이 선택지는 마이어냐, 아드라스냐. 그걸 묻는 거네. 흐음···”


스토리상 마이어는 망하는 가문.

도와 줘봐야 득 될 게 하나도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드라스 가문을 도와주기도 꺼려진다.

분명 아드라스는 나와 대립하게 된다.

결국, 이 선택지는 꼬아놓긴 했지만, 아드라스 가문과 지금 척을 지느냐, 아니면 뒤에 척을 지느냐의 선택지다.


“···그냥 죽게 내버려 두자.”


프레야의 단검이 아깝긴 하지만, 지금 아드라스 가문과 척을 지내는 건 좋지 않은 선택이다.

현재로서는 달걀로 바위 치는 격.

최대한 숨어서 힘을 길러야만 한다.

영주민이라고 해봐야 고작 한 명이고 영지는 이제 막 시작한 깡촌.

망해가는 국왕 파벌보다는 떠오르는 귀족파에 편승해 야금야금 영향력을 확대하는 편이 훨씬 공략하기 쉽다.

나는 도끼를 움켜쥐며 목책 위에 올라서서 내 모습을 드러냈다.


“너희는 여기서 뭐 하는 건가.”


쩌렁쩌렁. 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향한다.


“누, 누구냣!”

“테샤르종!”


순간 두 그룹은 얼어붙었다.

다들 당황한 표정.

노기사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침통한 표정으로 울분까지 토해낸다.


“빌어먹을! 하필이면 테샤르종이냐! 쿨럭···.”

“...”


아···. 또 상처받는다.

피까지 토해내며 침통할 일인가.

병사 중 리더로 보이는 자가 날 보며 크게 소리쳤다.


“우리는 당신과 관여되기 싫소! 단지 저년만 여기서 데려가면 되오!”

“네이놈오오오!”


그때 노기사가 병사의 말을 끊으며 소리쳤다.

내상을 입었는지 한쪽 무릎을 꿇으면 한 움큼 피를 또 토해낸다.


“하아··· 하··· 감히, 감히! 어디서 망발을 내뱉는 것이냐! 널 돌봐주던 영애님이시다! 널 거두어 주신 마이어 가문의 영애님이시다! 네가 정녕 사람 새끼더냐! 널 거두어 준 마이어 가문에 칼을 들이대다니!! 네가 정녕 사람 새끼더냐! 다론오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노기사는 피를 튀겨가며 울분을 토해냈다.

다론이라고 불린 사내는 작게 실실거리며 웃다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너무 웃었는지 눈물이 눈망울에 어려, 흘러, 떨어져 내린다.


“크하하하! 그래 난 사람 새끼가 아니오, 후안 대장. 근데··· 정녕 마이어가 우릴 거두어 준 게 맞소?”

“네이놈오오오! 또···”


다론은 후안이라 불린 노기사의 말을 끊으며 큰소리로 외쳤다.


“기사란 새끼가아!! 돈이 없어서 아들이 굶어 죽게 생겼소···. 기사란 새끼가! 돈이 없어서 부모님 장례식도 제대로 치르지 못했소! 그렇소, 난 사람 새끼가 아니오··· 가족도 제대로 못 돌보는.”


이번엔 여성이 울먹이며 말해왔다.


“···제가 가면 되나요? 저만 가면 되는 건가요? 흑흑···”


후안이 고개를 흔든다.


“로라 드 마이어!! 쿨럭, 쿨럭···!! 정신 차리시오. 알량한 말에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되오! 수십, 수백이 당신을 위해 죽었소. 그들은 당신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쳤소! 당신의 목숨은 당신만의 것이 아니란 말이오! 그들을 위해서라도 당신은 살아야 하오! 로라 드 마이어!”

“흐흑··· 흑흑···.”

“...”


나는 그들을 보면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그 씁쓸함은 나에게 보내는 씁쓸함이기도 했다.

기존 인격의 영향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게임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선과 선의 충돌, 가치와 가치의 격돌.

둘의 사정은 알겠다지만, 그들의 가치 기준을 내가 알게 뭐냐는 생각이 먼저 든다.

어차피 끝내는 다 죽고 마는 필멸자일 뿐인데···.

그때 후안이 피를 토하며 소리쳤다.


“빌어먹을! 쿨럭, 쿨럭···. 빌어먹을! 테샤르종은 들어라! 쿨럭···”

“...”


확실하다.

저 노인네는 분명 테샤르종에게 무슨 악감정을 가지고 있다.

나는 씁쓸한 입맛을 다시며 말하라는 듯 고개를 들어 올렸다.


“말하라.”

“난 이미 독에 중독되어 죽어가는 몸이다···. 내가 죽기 전에 한 가지만 부탁해도 되겠느냐? 물론 공짜로 부탁하는 건 아니다. 쿨럭, 쿨럭···. 로라 님, 저자에게···.”

“...”


그리고 후안은 벌게진 얼굴로 로라를 바라보았다.

로라는 흐느끼며 잠시 생각하더니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허리에 차고 있던 가죽 주머니를 재빠르게 나에게 던졌다.

나는 탁! 주머니를 낚아챘다.

후안이 입을 열었다.


“거래다! 네가 좋아하는 물건이다···.”

“...”


나는 도끼를 든 채 머리를 긁적였다.

이곳에서 내가 좋아하는 물건은 나도 잘 모르는데.


“거기 지도가 있을 것이다. 아드라스가 영지전을 일으킨 이유이기도 하지.”

“...”


순간 난 와락 인상을 구겼다.

그러니까 지금, 이 노기사가 폭탄을 떠넘기려는 거네?

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관심 없다는 듯 가죽 주머니를 다시 던지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후안이 다급하게 말해왔다.


“크, 크로노스의 신기! 네가 좋아할 만한 물건이다.”

“크로노스의 신기!?”

“크로노스라고?”

“그러면 수지가 안 맞잖아?”


웅성웅성, 지켜보던 병사들은 눈이 동그랗게 커져 동요하기 시작했다.

나 또한 조금 놀란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입꼬리는 씨익- 올라가고 있었다.


“재미있네···.”


크로노스의 신기.

천상대전이 터졌을 당시 12명의 신이 죽었다고 한다.

그리고 죽은 신들은 하나같이 신기를 떨구었는데 그중 하나가 크로노스의 신기다.

게임상에서는 레전드급 아이템으로 분류되어 있으며 보스급 가문들이 이 신기를 가보로 가지고 있다.

크로노스 신기는 시나리오대로라면 아드라스 가문의 가보로 아드라스 가문을 무너뜨려야만 획득할 수 있는 아이템이다.


“그러니까··· 아드라스는 이 타이밍에 신기를 모으고 있었다?”


시나리오 서장의 앞부분이니 이런 일도 발생하나 보다.

계획을 전면적으로 수정해야겠다.

신기가 없다면 아드라스도 해볼 만하다.


“그 지도를 줄 테니 로라님을 보호해다오! 너희 종족은 받은 건 반드시 돌려주지 않느냐? 그리고 로라님.”

“흑흑···. 네, 후안 경.”

“꼭 살아남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제 목숨도 그 어깨에 짊어지게 하는군요.”

“네?! 무슨 말씀을.. 후안 경! 후안 경!!”

“후안을 막아!”

“으아아아!”


그리고 후안은 토혈을 토해내며 마지막을 향해 뛰어갔다.

분골쇄신(粉骨碎身).

글자 그대로 분골쇄신이었다.

한쪽 팔은 찔리고 썰리고 부서져서 너덜너덜.

몸 곳곳엔 칼이 박혀 울분을 토해내듯 울컥울컥.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피를 머금고, 웃으며 돌격한다.


“다로오오온!!”


그리고 끝내는 다론의 가슴에 칼을 쑤셔 넣었다.


푸욱!

“후, 후안!! 끅··· 커억···!”

“크허허허! 같이 가자꾸나··· 사테스강의 뱃놀이··· 그리고··· 미안하구나··· 대장으로서··· 널 너무 신경 못 써줬구나··· 커헉. 큭···.”

“이 영감탱이가··· 크억.”


후안과 다론은 동시에 바닥에 쓰러졌다.

묘하게도 둘의 마지막은 웃는 모습처럼 보인다.


“저년을 죽여랏!”

“죽여어어!”


그 순간 다른 병사들은 혼자남은 로라에게 뛰어갔다.

그리고 난 급히 목책에서 뛰어내리고 있었다.


‘씨발, 모르겠다!’


목책의 높이는 약 6m, 다리가 버틸지 의문이다.

하지만 계단으로 내려가기엔 시간이 역부족.

버텨라! 내 다리!


쿠우웅!!


충격에 뿌연 먼지가 피어오른다.

가슴 속 깊은 곳, 어딘가의 열망도 피어오른다.

땅은 충격에 흔들리고 덜덜 지면을 따라 흐르는 나의 시야도 흔들린다.

아니 내 다리가 흔들거리는지도.


“미친 새끼! 목책에서 뛰어내렸어!”

“뭐냐고 진짜!!”

“왜 여기에 테샤르종이 있는 거냐고!!”

“아아···.”


난 깊게 숨을 몰아쉬며 숙였던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된 거··· 다 죽인다.”


눈앞에 붉은빛 아지랑이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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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 정착지 21.05.20 338 21 11쪽
1 1. 빌어먹을 운빨 게임. 21.05.20 471 2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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