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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바수집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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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바수집
작품등록일 :
2022.05.18 02:49
최근연재일 :
2022.07.0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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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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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42,665

작성
22.06.19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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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제30 화

DUMMY

-30-


차라리 수상한 어린애라 생각하던 때의 태도가 더 편했다고 생각하면 이상할까.

카란세가 돌아간 이후, 이제 더 이상 애 취급 당할 일은 없겠거니 안이하게 생각했던 스스로가 어리석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우선 레이 님의 혈통에 관한 사실은 비밀에 부치겠습니다. 다만 시노어 기사단의 카힘 단장은 신뢰할 만한 자이니 사실을 전해두도록 하지요.”

“편하실 대로 하십시오.”


레이턴이 한숨을 삼키고 대답했다. 크레노프는 수속을 일사천리 진행시키기 위해 열심히 머리를 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크레노프의 설명을 들은 카힘은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상태로 고개만 끄덕여야 했다.

이건 주군에 대한 배신인가 아닌가에 대해 격렬한 내적 갈등을 겪으며.


***


턴헤임 후작가의 차남, 다니엘 턴헤임은 오늘 꽤나 기분이 좋았다.

이게 곧 기숙사에 들어가 부모의 눈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될 거라는 것도, 아침부터 그가 좋아하는 콘스프가 나와준 것도, 교문에서 우연히 친구들을 만난 것도 그 이유였다.

이런 컨디션이라면 오늘 있을 플로에 왕립 아카데미의 입학 시험도 문제 없이 치를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쭈? 상태 좋아 보인다?”

“흐흐, 당연하지! 공부 많이 했거든.”


다니엘이 어깨를 펴고 으스댔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최근 이틀은 쉬는 시간도 거의 없었다.

친구들도 다니엘의 말이 거짓말이라 여기진 않았다. 그 중 하나가 고개를 주억거리고 운을 띄웠다.


“후작님 때문에?”

“그렇지, 뭐.”

“턴헤임 후작님? 그분이 왜?”

“너 모르냐? 이안 형이 여기 8학년이잖아. 몇 년 전엔 연구년 신청해서 논문까지 썼대.”

“우와, 진짜?”

“그래서 자꾸 비교 당하는 거잖아.”


눈을 동그랗게 뜬 아이의 귓가에, 다니엘의 친구인 켈튼이 속삭였다. 다니엘이 그의 등을 퍽 때렸다.


“윽.”

“남의 집안 사정을 되는대로 떠들어대지 말라고! 게다가 형이 천재인 건 나랑 아아무 상관도 없으니까.”


다니엘은 똑똑한 형을 자랑스러워 했지만 이럴 땐 마냥 좋아할 수가 없었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선 다니엘이 자리를 잡고 앉아 물었다.


“너흰 공부 좀 했어?”

“난 너랑 달리 수도에 별장 같은 거 없다고. 오늘 아침에 도착했는데 공부할 시간이 있었겠냐. 켈튼, 너는?”

“원래 시험은 평소 실력대로 보는 거지.”

“그런 말 하는 사람치고 공부 잘하는 사람 못 봤는데.”

“네가 날 못 봤구나.”


켈튼이 친구들과 싱거운 농담을 하며 키득거렸다.

덩달아 웃음을 터뜨린 다니엘이 장난스레 딴지를 걸었다.


“너 그러다 떨어지면 어쩌려고?”

“이런 데를 누가 떨어지냐?”

“······.”


키득거리며 말한 농담에 주변 분위기가 싸해졌다.

자신의 말실수를 뒤늦게 깨달은 켈튼이 입을 꾹 다물고 시험 준비를 했다. 필기구를 꺼내는 손이 조금 떨리는 게 보였다.

달칵.

적막한 교실에 문이 열리며 새 인물이 들어왔다. 분위기가 분위기였던지라 모여 있던 아이들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지금 들어온 이를 쳐다보았다.


“헛!”


다니엘이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분명 본 적 있는 얼굴이었다.


‘레이 클레멘스랬나?’


제 생일 때 딱 한 번뿐인 만남이었지만 다니엘은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다른 게 아니라, 그의 여동생 엘리 때문이었다.


-오빠 오빠! 나도 파티 가도 돼?

-열 살 짜리가 파티는 무슨 파티야.

-레이 클레멘스 님도 오실 거 아냐! 너무 멋있지 않았어? 꼭 황자님 같더라.

-엘리, 우리나라엔 황자님이 없어.

-책에 나오는 황자님 말야!


마지막 목소리는 어찌나 크던지, 귀청 떨어질 듯 얼얼하던 고통까지 떠올라 그는 남몰래 진저리를 쳤다.


‘두 달 만이네.’


엘리는 엄마에게 보채 드레스까지 입고 파티장에 들어왔지만 레이 클레멘스는 거기 없었다.

누군가에게 사정을 묻기엔 다들 바빠 보였고, 보통 손님을 맞이하는 아버지 또한 그날은 갑작스레 처리해야 할 일이 생겼다며 자리를 비웠다.


‘이제 볼 일 없을 줄 알았는데 이런 식으로 재회하게 되다니.’


다니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친구들이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하거나 했지만 그는 곧장 레이턴에게 다가가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레이 클레멘스 님?”

“예?”


레이턴이 고개를 들어 다니엘을 마주보았다.

광택이 도는 흑발과 보석 같은 자안, 도자기 인형처럼 매끄러운 피부.


-꺄악!


귓가에서 엘리의 환호성이 들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다니엘이 고개를 흔들어 환청을 떨쳐냈다.


‘아니, 친해지기도 전에 외모부터 살피는 건 예법이 아니지!’


그가 마음을 다잡고 다시금 말했다.


“저 기억 안 나십니까?”

“아. 턴헤임 후작가의······.”


잠시 텀이 있긴 했지만 그 역시 다니엘을 알아보는 듯했다.


“다니엘입니다.”

“그랬죠. 실례했습니다.”


레이턴이 뻐근한 눈을 비볐다. 밤새 공부하다 온 다니엘이 보기에도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러고 보니 제 친구도 영지에서 이곳까지 며칠이나 걸려 마차를 타고 왔다고 했다.

클레멘스 백작령이라면 턴헤임 근처니, 이곳까지 못해도 삼 일쯤은 걸렸으리라.


‘양자로 들어간 거라 했었지? 아마 기대에 벗어날까 두려워 밤을 샌 모양이구나.’


그리 생각하자 측은지심이 들었다.

사실 그는 자신의 생일 전날에 들었던 아버지의 말, 클레멘스의 양자와 친하게 지내라는 식의 이야기를 들었던 걸 기억해서 그에게 말 걸어본 것뿐이었다.

적당히 인사만 하고 제자리로 돌아가려던 다니엘은 조금 더 그와 대화해보기로 하고 물었다.


“그런데 그날 함께 뵌 분은 같이 안 오셨습니까?”

“크레노프 클레멘스 님이요? 그분이 여길 왜 오십니까?”


레이턴이 의아하게 말꼬리를 올렸다. 괜히 머쓱해진 다니엘이 대꾸했다.


“아니 뭐, 누나랑 입학 시험을 같이 보기로 한 걸 수도 있잖아요.”

“···누나요?”

“누나분 아니셨어요?”

“어머니십니다만.”


둘 사이에 찬바람이 쌩하니 불었다.


“예? 아니, 나이 차이가··· 예?”


다니엘이 평정심을 잃고 연신 물음표를 띄우던 그때 교실 문이 벌컥 열렸다.

두꺼운 시험지를 품에 안은 여자가 들어와 아이들을 둘러보며 외쳤다.


“여러분, 모두 자리에 앉아주십시오!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


“하암······.”


마차에 올라탄 레이턴이 길게 하품했다.

그가 플로에 왕립 아카데미에 입학 원서를 접수하고 두 달 가량이 지났다.

한 달은 집무실의 짐 정리를 도우며 연구 자료들을 찾는 데, 나머지 한 달은 그 자료들의 사본을 만들고 공부하는 데 사용한 시간이었다.

본인이 작성한 연구 자료를 복습하는 게 뭐가 어려울까 생각하는 이도 있겠지만, 레이턴이 살아생전 완성한 논문은 단 세 개 였던 데 반해 연구 단계에서 엎어진 주제는 수십 가지, 가설 수립 단계에서 미뤄둔 것은 수백 가지에 달했다.

그리고 이 연구는 두 번째 경우에 해당했다.


‘예전의 내가 무슨 이론을 근거로 했던 건지 모르겠단 말이지.’


그는 오래 전 자신이 작성했던 논문을 읽다 말고 이번엔 클레멘스 백작 부부가 기록해 둔 연구 일지를 펼쳤다.


“마을이다.”


레이턴을 호위하기 위해 동행한 기사가 마차 문을 열어 주었다. 피차 첫인상이 좋지 않았던 마젤란이었다.

레이턴이 흘끗 창밖을 곁눈질하고 대답했다.


“그렇구나.”


그의 시선이 다시 일지로 향했다.

으득 이를 간 마젤란이 다시 고쳐 말했다.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그렇군요.”


레이턴은 그제야 보던 것을 정리하고 마차에서 나왔다.

마젤란이 미리 예약한 여관에 그를 안내했다.


“건물 한 채를 통째로 빌렸으니 따로 호위 기사가 필요친 않겠지.”

“내게 언제 호위가 있었다고.”


레이턴이 피식 웃었다. 존재 의의를 통째로 무시당한 마젤란이 얼굴을 구기고 쿵쿵대며 멀어졌다.


‘놀릴 때마다 발끈하는 게 꽤나 재밌단 말이야.’


레이턴은 피식 웃고 방문을 열었다. 안의 넓이와 가구만 봐도, 보통의 모험가용 여관과는 질이 다른 숙소임이 느껴졌다.


“···그래도 역시 집보다 편한 곳이 없는데.”


그가 듣는 이 없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학교에 한 번 올 때 삼 일, 이곳에서 다시 백작성으로 돌아갈 때까지 다시 삼 일이 필요했다.


‘요람으로 이동하면 금방일 것을.’


이번엔 혼잣말로 꺼내지도 않았다.

멋모르던 시절에야 레이턴 역시 별다른 수가 없으니 피곤함을 감수하고 마차로 삼사일씩 이동하곤 했다.

그러나 제대 후 아카데미 교수로 취임하고 나서는 상황이 달랐다.

운 좋게도 근처에 요람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 마을에 말이지.’


레이턴이 창가로 다가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방금 제 입으로 직무 유기를 선언했던 마젤란이 말과 달리 여관 입구를 단단히 지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레이턴은 그의 눈에 띄지 않도록 창문에서 단번에 뛰어내렸다.


“지금 생각하니 나도 꽤나 문제아였군.”


조용히 중얼거린 그가 옛날 일을 떠올리며 웃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의말

공모전 마감 기한에 맞추려 건강을 불태운 관계로

내일부터는 연재 속도를 다시 조절하도록 하겠습니다ㅎㅎ;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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