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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바수집 님의 서재입니다.

영웅 대접은 사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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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바수집
작품등록일 :
2022.05.18 02:49
최근연재일 :
2022.07.03 12:00
연재수 :
3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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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8
추천수 :
48
글자수 :
142,665

작성
22.06.10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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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제16 화

DUMMY

-16-


“그나저나 여기가 어딥니까? 저, 빨래하던 곳에 옷을 놓고 왔는데······ 에취!”


카란세가 말하다 말고 재채기를 했다. 레이턴은 그의 차림새를 못 본 척 가만히 눈을 돌렸다.


“빨래하던 곳에도 문이 열려 있었나 보군요.”

“문이요?”


추위에 제 팔을 감싸며 그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모르고 온 건가.’


레이턴이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이곳은 마물의 본거지, 요람이었다.

아무런 전조 없이 끌려온 것 같으니 설명을 듣자마자 카란세가 겁에 질려 패닉 상태에 빠져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레이턴은 짐짓 담담하게 대답하며 빛의 구를 다시 불러냈다.


“이곳에 오는 문 말입니다.”


카란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얼굴이 왜 그러십니까!”

“예? 웁.”


카란세가 맨 팔로 레이턴의 얼굴을 마구 문댔다. 소매로 대충 닦고 말았던 코피가 깨끗이 사라졌다.

그의 완력에 속수무책으로 끌려갔던 레이턴이 탁, 소리 나게 그의 팔을 쳐냈다.


“여기가 요람이란 말입니다! 어디서 마물이 튀어나올지 모르니 긴장하십시오!”

“에, 예!”


카란세가 딱딱하게 차렷 자세를 취했다. 신입 기사처럼 군기가 바짝 든 대답이었으나 레이턴은 한숨을 내쉬었다.


‘평화롭게만 살아서 사태의 심각성을 아직 파악하지 못했나?’


맥 풀리는 반응에, 그는 내심 고개를 젓고 걸음을 옮겼다. 카란세가 쭈뼛거리며 뒤를 따라왔다.


‘굳이 겁을 줄 필요는 없겠지.’


만에 하나라는 사태를 걱정해 엄격히 말하긴 했지만, 이 정도면 편히 움직여도 괜찮은 상황이었다.

레이턴의 시선이 요람의 벽을 따라 나열된 횃대를 향했다.


‘요새화가 끝난 공간이다.’


물론 길을 잘못 들면 그대로 굶어죽거나 마물의 먹잇감이 되겠지만.


“사제님은 우연히 들어오신 거지요?”

“예에, 잠깐 몸 좀 씻으려던 게.”


카란세가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레이턴이 고개를 끄덕였다.


“차라리 잘됐습니다. 다시 만나서 사정을 설명해야 할 수고를 던 듯하군요.”

“사정이요?”

“요람의 입구가 있다는 것 말입니다.”


카란세가 알 듯 모를 듯한 얼굴로 코를 씰룩거렸다.

하기야 마물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도 모르는 인물이었다. 레이턴은 굳이 제 쪽에서 설명하지 않고 계속 걸음을 옮겼다.


“그럼 출구는······.”


카란세가 질문을 하다 말았다. 제 앞에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운 건물을 이제야 발견한 것이다.

표면이 부식된 두꺼운 기둥과 그것이 어울릴 만큼 커다란 건물.


“아니, 지하에 웬 성이 있습니까? 성 맞지요? 신전인가?”

“유적입니다.”


레이턴이 짧게 대답하며 입구로 향했다.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입구와 제일 가까운 기둥, 어린 레이턴의 키보다 조금 높은 곳에 날카로운 것으로 새겨진 글자가 보였다.


[루탈 22년, 라블랑 기사단]


레이턴의 손끝이 그 자국을 조심스레 쓸었다.


“유적이요?”

“그걸로 괜찮습니다.”


백 년 전까지만 해도 유적에 관한 내용은 국가 기밀이었다. 지금은 달라졌을지 몰라도 함부로 그런 얘길 떠벌이는 건 안 좋은 선택이리라.

레이턴이 글자에서 손가락을 뗐다.


“솔직히 사제님께서 이곳에 우연히 들어왔다고 하셨을 땐, 어지간히 운 없는 사람이구나 생각했습니다만.”

“그, 그렇습니까?”

“지금은 반대입니다. 오히려 운이 좋으신 것 같군요. 목숨을 잃긴커녕 저와 만나지 않으셨습니까.”

“에, 예에.”

“게다가 돈도 절약할 수 있게 됐고요.”

“예?”


수수께끼 같은 말에 카란세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레이턴이 가볍게 웃으며 건물의 문을 열었다.


“남은 이틀치의 마차 대여증은 환불하자는 뜻입니다.”


카란세가 문 안을 보고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온통 빛바랜 그림 같이 칙칙하던 요람에, 아주 선명히 빛나는 그림이 하나 보였기 때문이다.


‘아니, 그림이 아니야.’


분명 안에는 훨씬 넓은 공간이 있었지만 카란세의 시선은 그것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이게 뭡니까? 움직이는데요?”

“찾고 계셨잖습니까. 출구.”


레이턴이 타박타박 걸어 그 앞에 섰다.

거울 같기도 하고 유리 같기도 하고, 연못이나 호수에 비친 잔상 같기도 한 그것은 클레멘스 백작령을 비추고 있었다.

정확히는, 영주 집무실에서 내려다보는 마을의 풍경을.


“가시죠. 이제 제가 손님맞이를 하게 되겠군요.”


***


“여, 여기가 클레멘스 백작성입니까?”


카란세는 멍청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오늘만 두 번째였다. 자신이 선 장소가 완전히 바뀌는 것이.


‘대체 무슨 원리야?’


한편 레이턴은 보다 덤덤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이제 안 쓰는 건가?’


여기는 클레멘스 백작이 대대로 사용하던 집무실이었다. 비록 레이턴은 아카데미 일과 출정에 밀려 거의 이용하지 못한 곳이었으나, 그럼에도 이곳은 그의 개인 서재나 마찬가지였다.

레이턴이 숨을 거둔 지 올해로 백 년째라 했다.

이곳을 얼마나 오래 잠가 둔 건진 모르겠지만 코팅이 벗겨진 책상과 먼지 쌓인 책장을 보니 꽤나 오랜 시간 동안 열린 적 없는 공간인 듯했다.


“예. 차라리 잘 됐습니다. 제가 먼저 이곳을 나가보도록 하지요.”

“잠시만요. 물론 레이턴 님의 성이긴 하지만 지금은 모습도 다르신데, 혼자 괜찮으시겠습니까? 침입자로 오해받는 건······.”


카란세의 걱정 어린 말에 레이턴의 시선이 무심히 그의 모습을 훑었다.


“혹 오해를 받는다고 해도, 알몸으로 돌아다니는 도착증 환자보단 어린애 혼자가 변명하기 좋을 텐데요.”

“···그렇겠네요.”


카란세가 새삼 민망한 듯 몸을 쭈그려 앉았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레이턴을 올려다보았다.


“근데 레이턴 님, 어째 키가 조금 크신 것 같습니다? 한창 성장할 나이라 그런가?”

“가보겠습니다.”


스물다섯 살에 듣는 영양가 없는 말을 무시하고, 레이턴이 문고리를 잡았다. 어쩐지 카란세의 말대로 문고리의 높이가 전보다 낮아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달칵.


“······.”


문을 열고 나오자 주변에는 어쩐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아무리 사용하지 않는 방이라고 해도 지나가는 고용인 한두 명 정도는 있을 법도 한데, 마치 폐가에 들어온 것처럼 인적이 없다.


‘방을 나오자마자 침입자라며 소란이 이는 것보다야 나을까? 썩 달갑지는 않지만.’


레이턴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비록 몇 개월에 한 번 들를까 말까 했던 장소였으나 이곳은 그의 집이었다.

레이턴은 왠지 낯설게 느껴지는 아치형의 복도를 따라 걸었다. 그나마 집무실과 달리 청소는 잘 되어 있었다.


“누구?”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레이턴의 귓전을 때렸다. 목소리를 향해 돌아선 레이턴의 눈이 순간 크게 뜨였다.


‘어린아이?’


상대는 열 살도 안 됐을 것 같은 어린 여자아이였다.

처음 만나는 자가 고용인일 때나 기사일 때, 하다못해 현 영주일지라도 그는 당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신원도 모를 어린아이를 일대일로 만나게 될 줄이야.

게다가 아이는 피부병이라도 앓는 듯 얼굴의 절반 가까이 얼룩이 져 있었다. 어쩌면 그 병 때문에 이곳을 오가는 자가 없었는지도 몰랐다.


‘현 영주의 딸인가?’


호위 한 명 대동하지 않은 것은 의아했으나 아이의 당당한 걸음걸이나 고급스러운 옷차림은 그녀가 자신과 같은 불청객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레이턴이 금세 감정을 추스르고 예를 취했다.


“기약 없이 방문한 것에 진심으로 사죄의 뜻을 전합니다. 영주님을 뵙고자 왔습니다만, 안내를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


아이가 긴 옷을 망토처럼 끌고 레이턴의 앞까지 걸어왔다. 레이턴이 소녀를 내려다보았다. 자신의 키가 컸다는 사실이 그제야 실감됐다.


‘아침보다 반 뼘은 큰 것 같은데. 갑자기 왜지?’


이유를 제대로 생각해보기도 전에, 소녀가 레이턴의 보라색 눈동자를 빤히 바라보며 작은 입술을 열었다.


“나를 죽이러 왔어?”


예상치 못한 말을 듣고 레이턴의 눈꼬리가 찡긋거렸다. 아이는 고개를 갸웃하며 혼잣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상하네. 내 얼굴을 알아보지도 못하는 멍청이를 암살자로 보내다니. 삼촌도 노망이 나셨나? 아니면 나를 어지간히 얕보았던지 말야.”


순간 그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이제 난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닌데.”

“큭.”


레이턴이 허리를 비틀었다. 그의 옆구리가 있던 곳에 어느새 아이의 단검이 파고들어 있었다.


“어머, 역시 아이라도 암살자는 맞나 봐?”

“오해십니다! 저는 그저······!”


그가 아무리 영웅이라 불리는 클레멘스 백작가의 선조라고 해도, 초대 받지 않은 군손님임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레이턴은 반격하는 대신 그녀의 단검을 피하는 데 집중하며 조금씩 뒤로 물러났다.

아이치고는 매서운 공격이었지만 숙련된 기사 정도는 아니었다.


“무서워? 그쪽으로 가면 내 호위가 있을 텐데, 다른 쪽으로 도망가는 게 어때?”

“말 안 통하는 상대와 얘기하느니 차라리 기사를 불러오는 게 낫겠군요.”

“하! 객기 부리기는.”


‘도무지 대화가 안 되는군.’


레이턴이 얼굴을 찌푸리고 얼음 막을 팔에 둘렀다. 다행히 마력이 꽤나 회복된 듯 마법 쓰기가 수월했다.

챙!

아이의 단검이 팔에 맞고 튕겼다. 뒤늦게 마법임을 깨달은 그녀가 눈을 크게 떴다.


“너, 마법······!”


그 순간 레이턴이 몸을 돌려 본채와 이어지는 문을 벌컥 열었다. 아이가 말한 대로, 그녀의 호위 기사가 문 바로 앞에 대기하고 있었다.

레이턴이 거두절미하고 소리쳤다.


“영주님을 불러주십시오!”

“큭!”


여자아이가 이를 꽉 물고 레이턴의 등을 향해 단검을 내질렀다. 레이턴이 몸을 돌려 피하자, 그녀의 단검은 레이턴의 허리에 묶인 주머니를 스쳤다.

지익.

주머니가 찢어지며 요람에서 챙겨둔 마핵이 떨어졌다.

그때, 레이턴은 보았다.

여자아이의 손에 부딪힌 마핵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모습을.


‘뭐야?’


“하······.”


레이턴의 놀람이 채 가시기도 전에, 여자아이의 몸이 허물어지듯 쓰러졌다. 기사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그녀의 몸을 받아들고 외쳤다.


“여, 영주님을 암살하러 온 자다! 잡아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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