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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바수집 님의 서재입니다.

영웅 대접은 사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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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바수집
작품등록일 :
2022.05.18 02:49
최근연재일 :
2022.07.03 12:00
연재수 :
3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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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글자수 :
142,665

작성
22.06.11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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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제17 화

DUMMY

-17-


퀴퀴한 냄새와 습기 찬 공기, 겨우 한 줌의 햇살만 들어올 수 있을 작은 창과 매트리스 없는 딱딱한 나무 침대.

레이턴은 그 침대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내 성의 감옥에 내가 갇힐 줄이야.’


여자아이는 그대로 기절한 듯했고 레이턴은 얌전히 기사들의 지시에 따라 이곳에 들어왔다. 더 이상 소란피워봤자 상황이 악화일로일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딱히 지금이라고 해서 좋은 상황은 아니다. 일단 카란세가 아직 숨어 있는 상태였으니까.’


그가 들키면 어찌될까 하는 걱정에 레이턴의 머리가 지끈거렸다.

자신만만하게 나와놓고 감옥에 갇힌 꼴을 보이는 것부터가 그의 자존심에 상처 남을 일이었다.


‘그 아이는 대체······.’


레이턴이 미간을 좁히며 소녀의 얼굴을 떠올렸다. 사실 일고여덟 살이면 소녀라기에도 민망할 정도의 어린아이였다.

그러나 평범한 아이가 아닌 것만은 확실했다.

이곳에 온 후로는 온통 의아한 일뿐이었기에, 레이턴은 무엇을 제일로 꼽아야 할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아이답지 않게 무기를 다루는 데 능숙해 보이던 것? 그녀의 손에 닿은 마핵이 스며들 듯이 사라진 것?

아니면······.


‘그 아이가 영주였다는 것.’


어두운 눈빛을 한 레이턴이 침대를 의자 삼아 앉았다.

처음부터 그 가능성을 타진했다면 상황이 달랐을지도 몰랐다. 레이턴은 뒤늦게 이전 마을에서 만담꾼 둘이 재담하던 것을 기억해냈다.


-하긴 그쪽 영지가 워낙 소문이 괴이하긴 하다만.

-그래, 애초에 영주부터 그 모양인 것을!


‘클레멘스 백작령의 저주라고 불렸던 것 같은데.’


-이제 난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닌데.


소녀의 카랑카랑한 말소리가 귓전에 맴돌았다. 얼굴 반절을 덮은 거뭇한 반점부터 뜻을 알 수 없는 말까지, 어쩌면 그것도 모두 저주와 관련된 일일지 몰랐다.


“뭐, 생각만 해봤자 의미 없는 일이지.”


레이턴이 작게 중얼거린 그때, 벽 너머로 낄낄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너도 잡혀온 거냐? 낄낄, 그분도 꽤나 몸이 달았나 보구나. 너 같은 꼬마까지 보내시다니.”

“누구십니까?”

“누구긴, 너 이전에 보내진 사람이지. 꼼짝없이 잡혀 오늘내일하는 신세지만 말이다.”


목소리는 탁하게 갈라져 있었고 웃음소리엔 가래 끓는 소리가 섞여 있었다. 그가 고초를 겪은 사람임을 아는 게 그리 어렵진 않았다.


‘이곳엔 경비가 없다. 지하 감옥으로 내려오는 입구만 지키고 있었어.’


철창 너머의 동향을 살핀 레이턴이 대답했다.


“그분이 저 말고도 사람을 보냈단 말입니까?”

“클클, 어린 녀석이 분수도 모르고······. 우리는 둘 다 버려진 카드란다, 꼬마야.”


‘버려진 카드?’


그때 누군가 지하로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와 레이턴이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기사였다. 레이턴은 그의 검 물미에 양각된 시노어 꽃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빛바랜 회색 머리카락을 올백으로 넘기고 있었다. 쉰 정도 되는 나이인 듯했으나 근육이 단단해 뒷모습만 보면 서른이라고 해도 믿길 정도였으며 무게감 있는 눈빛과 군기 잡힌 태도는 그의 성격을 대변하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군장을 갖추라 명령할 것 같은 오라로군.’


“오늘 영주님을 습격했다는 것이 그대인가.”

“······.”


레이턴은 마땅한 대답 대신 예를 표했다.

오른 주먹으로 왼 가슴을 두 번 친 후, 손가락을 펴서 이마 오른쪽 옆에 대는 것이다.

그의 인사법을 본 기사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영주님이 깨어나셨다. 그대를 보고 싶다 하시던데.”

“기꺼이 동행하겠습니다.”


예의바른 대답을 들은 기사가 고개를 끄덕이고 철창을 열어주었다. 제 나이의 반도 안 될 것 같은 레이턴을, 그것도 습격자를 칭하며 ‘그대’라는 호칭을 쓰는 게 신기하게도 자연스럽다.

레이턴은 그의 안내를 따라 철창을 나갔다.

그리고는 저에게 몰래 말을 건 남자를 따라 눈동자를 굴리는데, 그는 레이턴이 들어올 때 발견하지 못한 게 당연할 만큼 어두운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내 바로 옆 감옥에 배정된 사람인가. 오른팔은······.’


특기할 만한 사항으로, 그는 외팔을 가지고 있었다. 행색이 초췌하긴 했으나 심한 핏자국이 없는 것을 보면 선천적인 장애인 듯했다.


“가지.”


기사가 지상으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레이턴의 흑발이 빛을 받아 반짝였다.


***


‘숙부님께서 집무를 보던 곳을 접대실로 다시 꾸민 모양이군.’


레이턴이 건조한 시선으로 주변을 훑어보았다. 위치는 확실한데 내부가 달라 보이니 영 어색했다.


“곧 영주님이 오실 거다.”

“예.”


기사는 자리에 앉는 대신 레이턴의 바로 뒤에 섰다. 허튼 수를 쓴다면 곧바로 검 끝이 레이턴을 향할 거라는 압박과도 같았다.


“···아까 그 인사는 어떻게 접했지?”


기사가 잠시 찾아온 적막을 헤치고 물었다. 레이턴이 담담히 대답했다.


“영주님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렇군.”


그러고는 다시 적막이었다.

곧 올 거라던 영주 대신 고용인이 들러 다과를 준비했다. 레이턴은 거기에 손도 안 대고, 생각에 잠긴 듯 눈을 내리깔았다.

달칵.

입구를 등지고 앉아 있던 레이턴이 문 열리는 소리를 듣고 일어났다. 예를 올리려던 손이 멈칫했다.

지금 들어온 것이 아까 보았던 영주가 맞는지 헷갈렸기 때문이다.


“왜 놀라는 거지?”


소녀가 헛웃음을 섞어 말했다. 레이턴보다 확연히 작았던 키는 어느새 그보다 커져 있었다.


‘아까 전이 일고여덟 살로 보였다면 지금은 열다섯 살 쯤 되어 보인다. 마법이라도 쓴 건가?’


“실례되는 질문입니다만, 아까 전 그분과 동일 인물이 맞습니까?”

“내가 위험을 무릅쓰고 널 부른 것을 후회하게 하지 말아다오.”


그녀는 제대로 대답하지도 않고 레이턴의 맞은편 소파에 털썩 앉았다.


“물어볼 것이 있다.”

“···말씀하시지요.”

“대체 어떻게 한 거지?”

“무엇을 말입니까?”


레이턴은 정말 몰라서 물었다. 그러나 그 반문을 들은 소녀는 모욕적인 말을 들었다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나를, 어떻게 성장시켰느냐고.”


씹어 뱉듯이 뚝뚝 끊어지는 목소리에는 분함과 갈구가 담겨 있었다.

가만히 그녀의 말을 받아주고만 있던 레이턴이 이내 고개를 비딱하게 하고 섰다.


“이상하군요.”

“뭐가?”

“절 암살자라 몰아붙이시더니, 그건 암살자에게 할 만한 질문이 아니지 않습니까?”

“암살자 아니라며.”

“제가 암살자가 아니라 말씀하실 거라면 그에 맞는 예의를 갖추십시오.”

“하.”


소녀가 실소하며 다리를 꼬았다. 팔짱까지 끼고 등받이에 깊이 몸을 기대더니, 이내 턱을 치켜들고 들으라는 듯 헛숨을 내쉰다.

하지만 레이턴은 그 숨소리보다 다른 쪽에 시선이 갔다.

옷깃에 가려져 있던 그녀의 목.


‘저기에도 얼룩이 있군.’


얼굴의 반절을 덮은 것도 모자라 목까지 모반이 퍼져 있었다. 단순 색소 침착이라 보기엔 경계가 뚜렷하고, 전신으로 퍼져가는 듯한 모양이 꼭······.


“······.”


레이턴의 눈빛이 무거워진 그때, 소녀의 입술이 열렸다.


“그러지요, 이름 모를 침입자 분.”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장갑을 벗었다. 단검을 휘둘렀을 때마저 끼우고 있던 장갑 밑에는 역시나 반점이 숨어 있었다.

그녀는 장갑을 모아 한 손에 쥐고 가슴에 손을 얹은 뒤 살짝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크레노프 클레멘스라 합니다. 부족하게나마 클레멘스 백작령의 영주직을 역임하고 있지요.”


고상하게 인사한 크레노프가 허리를 펴는 대신 눈동자를 치켜 레이턴을 올려다보았다.


“그럼 이제 귀빈의 고견을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매우 바쁘신가 봅니다.”


레이턴이 동문서답처럼 말했다. 그러나 귀족들 사이에서 그것은 예를 지키지 않는 상대를 탓하는 관용구이기도 했다.

비꼬는 말에는 비꼬는 말로 응수해 주어야 하는 법.

그가 능숙하게 받아치자 크레노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녀가 헛기침을 하고 손짓했다.


“경황이 없어 실례를 범했습니다. 편히 앉으시길.”

“그 전에······.”


레이턴이 운을 띄우며 멋쩍게 시선을 피했다. 그가 이 대화에서 우위를 잡으려 한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제게 동행자가 있습니다만, 부디 모셔와 주시겠습니까?”

“···동행자 말입니까?”


크레노프가 눈썹을 찌푸렸다.

만일 눈앞의 소년이 ‘그 남자’의 지시를 받아 온 침입자라면, 동료를 불러와 달라는 부탁을 들어주는 건 그야말로 바보짓일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제 것답지 않게 성장한 손을 괜스레 쥐었다 폈다 반복한 크레노프는, 이내 결연한 눈빛으로 소년을 마주보았다.


“장소를 알려주신다면 하인을 보내지요.”

“크흠, 옷도 한 벌 챙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옷을?’


아마 평민 또는 천민 출신이라 백작성에 들어올 만한 복장을 구하지 못한 것이겠거니.

크레노프는 의아함을 뒤로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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