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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OM
작품등록일 :
2020.12.24 19:52
최근연재일 :
2021.06.11 12:05
연재수 :
3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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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7,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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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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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1쪽

"가지 말라고 말해도, 이미 가버린 상대는 돌아오지 않아."

한 편당 7500자 이상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추천곡: Adam lambert - Runnin'




DUMMY

제21화 <구름>


“......”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은 이 분위기 속에서 나는 위축되어 구석에 홀로 앉아 있었다.

체닐은 그런 내게 물병과 빵을 건네주기 위해 다가왔다.


스윽-


“..아직, 점심 전이지?”

“고마워, 체닐.”


화사로운 모습과 따뜻한 격려가 담긴 한마디, 그녀는 지금 나를 위로하고 있었다.

모든 게 나의 탓이라며, 자책하고 있던 내게 그녀는 따뜻한 온기를 가져다주며.


“...너무 자책하지는 마. 네 덕분에, 나는 살 수 있었으니까.”

“하하.. 고마워. 위로해줘서.”

“위로가 아니야. 정말이야, 너가 그때 나를 구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그저 온전히 죽음을 받아드릴 생각이었어.”


의미심장한 말을 늘여놓자,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내가 숨기고 있는 비밀이라도 있는 거야?”


체닐은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그 이야기는 아직, 내가 알아선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일까.

그녀는 한동안 말을 잃었고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진정시키려 했다.


그 모습에 나는 괜한 것을 물었다고 생각하여, 이내 그 말을 취소하기로 했다.


“아니야, 됐어. 비밀이 있든, 없든, 동료라는 건, 변함이 없으니까. 난 널 믿어. 체닐.”

“..내가 설령, 배신을 했다고 해도?”

“....그건..”


뜻밖의 물음, 나는 그녀의 물음에 답하려던 순간 로마리 차장이 떠오르며, 머뭇거렸다.


‘...배신, 그래, 로마리 차장처럼.. 그렇다면...’


쉽사리 정하지 못하자, 그녀는 헛웃음을 지으며 이 어색한 공기를 바꾸려 노력했다.

그리고는 씁쓸한 표정으로 말한다.


“..역시, 누구라도 그렇겠지..? 설령 너라도.”

“...그건..”


솔직히 지금 로마리 차장의 이름이 떠오른 순간부터, 그녀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자꾸만 불안한 생각이 드는 것, 나만일까.


“...널.. 널...”

‘..로마리 차장을 의심하지만, 반대로 체닐을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은..’


“됐어.. 더 이상은 답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돼.”

“......”


자업자득이다.

누구보다도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고, 의지하도록 해야만 하는 내가, 그런 자그마한 대답조차 망설였다니, 나는 내가 너무나도 한심하다.


“..그만 가볼게.”


그녀가 떠나가려고 한다.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또다시 머뭇거렸다.

또, 또, 그런 멍청한 짓을.


‘......’


흔들리는 손, 불안하고 초조한 이 마음.

설령 내 진심을 다 보이지 않아 오해하면 어떡하지, 실수하고 하면 어떡하지라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던 내가 고개를 들자, 아까와는 다른 뒷모습이 보였다.


쓸쓸한 뒷모습이 아닌, 잡아달라는 그런 뒷모습이었다.

이대로 내게 떠나보내게 할 것이냐며 묻는 것만 같았다.


탁-


그 순간, 나도 모르게 그녀의 손을 확 낚아채며, 그녀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가는 거야?”

“......”

“..또 사라지게..?”


어디로 가는 거냐고는 묻지 않았다.

사실, 그런 건 중요치 않았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녀를 사라지게끔 했다는 것이지.


다만, 이제는 그러하지 않을 것이다.

나를 지켜달라는 그 아련한 눈빛을 보았으니, 적어도 그런 매정한 짓은 하지 않는다.


곁에 있어 달라고, 아주 잠시라도, 감정에 솔직해지는 시간까지 기다려 달라고.

울부짖는다.


“..혼자 떠나려고 하지 마.”


.


.


.


.


.


“차장님.”


루비가 따뜻한 보온병에 차를 담아서, 만하르에게 건네준다.


“땡큐.”


간결한 그 한 문장에, 루비는 얼굴에 웃음꽃이 피며 쑥스러워하면서도, 내심 기쁜 듯했다.


“뭘요-”


후읍-


한 모금 마신 만하르는 그 온기가, 온몸에 퍼지며, 마치 피로가 모두 가라앉은 것만 같았다.

그의 옆에 있던 루비 또한 보온병에 담긴 차를 한 모금 마신다.


“따뜻하네요.”

“그래, 따뜻해.”

“이렇게 따뜻해지는 건, 정말 오랜만인 것 같아요.”

“그래, 둘이서만 대화하는 것도, 참 오랜만이지.”


분명, 예전에는 이보다 더 가까운 사이였던 것 같은, 포근함과 어색함 그 사이가 만들어내는 기류가, 루비를 더욱 몽롱하게 만들었다.


“...기억나요? 우리, 그때-”

“그래, 잊을 수가 없지.”


6년 전, 당시 루비가 고등학생에서 이제 막 대학생이 된 무렵, 처음 만난 이가 바로, 만하르였다.


세상이 무너져도, 교육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말답게, 독립 국가에서는 교육을 잠시 쉬는 때는 있어도, 결단코 포기하지 않았고, 그렇게 2년 후, 다시 학생들은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그 기점으로 많은 도시들은 발전을 위해, 학교를 재건하여 교육을 실천했다.

이 소식에, 다시 마음 다잡고서 열심히 밤낮으로 공부한 루비는 우여곡절 끝에, 꽤나 알아주는 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연히 지금의 상사, 만하르를 만나게 된 것이다.

당시 그는 소위 말하는 ‘천재’였으며, 부유한 집에서 자라 어렸을 적부터, 기계공학에 큰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아, 안녕하세요!”

“......”


하지만, 오로지 기계공학에만 관심이 있었던 그였기에, 인간관계에 대해서는 많이 소홀했다는 단점이 있었다.


휙-


“...어.. 어.. 그냥.. 가시네..”


루비에게 만하르의 첫인상은 차가우면서 인사도 안 받아주는 몹쓸 사람이었다.

그렇게 다시는 엮이지 않을 것만 그들은, 9개월 후, 우연한 사건으로부터 다시 접점이 생긴다.


“저기요-?”


짤랑,


한적한 카페, 밖에는 갑작스레 비가 쏟아지며, 카페 안으로 피신한 사람들이 여럿 보였다.


‘친구들과 약속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오늘은 못 갈 것 같네.’


갑작스러운 소나기 탓에 이도 저도 못 하는 상황인지라, 아쉽게도 친구들과의 약속은 어길 수밖에 없었다.


“어서 오세요.”


적막한 카페 안에는 머리를 말리고 있는 사람도, 비가 그칠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도, 반대로 나갈 타이밍을 잘못 잡은 이도 있었다.

그때, 정말 우연히 카페 구석에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선배님?”

“......”


만하르였다.

그 또한 누군가와의 미팅을 위해서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이었다.


“....완전 다른 사람처럼 보여..”


평소에는 꾸질꾸질하다는 느낌이 있었지만, 막상 제대로 차려입은 모습을 보니, 다른 사람 같기도 하면서 남자로 느껴지기도 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하아, 그나저나, 옷부터 말려야 하는데.”


내가 곤란한 표정을 짓자, 그런 나를 누군가가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고, 정말 우연히 고개를 돌리다 만하르와 눈이 딱 맞는다.

사실, 그가 나를 도와줬으면 하고 내심 기대했기에 그쪽으로 시선이 가버린 걸지도 모른다.


“......”


결국, 나는 만하르의 옷을 빌려 입었고, 어떻게든 물에 젖은 신세는 피할 수 있었다.


“휴..”


옷을 다 갈아입고서, 그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려 그가 앉아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어라? 뭐야, 동석이니?”


그런데 어째서인지,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검고 긴 생머리, 날카로운 고양이상에 조금은 거만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어린아이와 대화를 나누고 있던 것이다.


“음-”


그 아이는 잠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이내 흐뭇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좋아, 이 아이도 채용해주지.”

“감사합니다.”


그의 목소리를 들은 건 처음이었다.


‘달달한 초콜릿 같으면서도... 아니, 이게 아니지!’


짤랑-


그 아이가 떠나자, 만하르 또한 서둘러 자리를 정리하고 나서려 했다.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나는 그에게 다짜고짜 묻기 시작했다.


“..이, 이게 무슨 일이에요? 채용이라니요?”

“...축하한다. 취직했군.”

“아니! 그게 아니잖아요!”

“나한테 물어도.. 사장님이 꽤 너를 마음에 들어하시는 것 같더군.”

“그런데, 왜 반박을 안 했어요!? 저는.. 저는.. 아직..”

“걱정하지 마라. 너라면 잘 해낼 수 있을 거다.”


만하르는 내 어깨를 토닥이며 스쳐 지나간다.


“......”


이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인가?

당사자인 내가 안 괜찮은데, 당신이-


당신이...


“당신이..!”


스윽-


“......”


뒤돌아 또 한 번 딴지를 걸려던 내게, 그는 우산을 들이밀며 말한다.


“어서 와라. 집까지는 씌워줄게. 앞으로는 같이 일할 사이인데. 나도-”


.


.


.


“‘그 인간관계라는 걸, 해보려고’라고 말했죠? 아마. 참... 하하-”


루비가 한참 동안 배꼽이 빠지게 웃는다.

그런 루비를 보며, 수치심에 몸 둘 바를 몰랐던 만하르는 그런 루비에게 그만하라고 한다.


“하.. 그땐 내가 조금.. 사람하고 말하는 게 익숙지 않아서... 그런데, 그런 걸로 놀리냐?”

“..하하- 미안해요. 선배.”


조금은 몹쓸 장난에, 만하르는 심통을 부리는 것 같았다.

그래도, 루비, 그녀가 옆에서 나를 도와주었기에, 지금처럼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던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녀에게 감사하고 있다.


“고맙다. 루비.”

“뭘요, 저도요. 선배님.”


.


.


.


.


.


“음, 이상해.”

“무슨 고민이라도 있으세요? 루스먼 주임님?”


알레스와 루스먼은 폐허가 된 군사 기지를 살피고 있었다.


‘분명, 본 부대가 이렇게나 처참하게 당할 정도라면, 보안군이나 정규군이 아니라, 정예군이나 유닛, 아니면, ‘적인’ 정도가 휩쓸고 갔을 텐데.. 그 어떠한 단서조차도 남아있지가 않았어.’


정예군, 독립, 도시 국가나 기업 등이 보유한 특수 부대를 일컫는 말이며, 그 나라의 최고 병력이라고 할 수 있다.


유닛, 쿠이아나 아우스로 구성된 단체로 주로 무장 단체를 부르는 말이며, 기업을 제외한 작은 규모의 회사 또한 포함이기에, V-G 용병 회사 또한 어떻게 보면, 유닛이라고 부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적인’, ‘붉은 낙인’이 찍힌 자라는 뜻으로,

연맹이 정한 ‘주적’ 중에서도, 가장 위험도가 높은 인물을 꼽은 것이며, 이들이 전장이나, 전장이 아닌 민간인 거주 구역에 나타날 경우, 그 즉시 ‘레드 싸인’이 떨어진다.


계엄령과 비슷한 ‘레드 싸인’의 뜻은, 비상 그 자체다.

나라 하나를 멸망시킬 전적이 있을 정도로 강한 그들을 대적하는 것은, 그야말로 불가능에 가깝다.


반연맹군, 혁명군, 엘리트의 소속된 이들이 대부분 적인이다.

등급은, ‘C, B, A, S’, 순으로, 등급이 올라갈수록, 현상금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아진다.


“...그런데, 겨우 이 스무 명 정도에 달하는 인원한테, 우리 본 부대가 당했다는 건, 도무지 이해하려고 해도, 납득이 안 가. 납득이...”

“...하긴, 그렇군요. 제가 봐도 이상하게 느껴지긴 합니다.”


그들 중에서 가장 눈썰미가 좋은 그는, 보통 사소한 단서라도 잘 놓치지 않았다.

자신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 그것의 진상을 밝히려고 노력하는 노력가이기도 했으며, 무엇보다 그는 형사 출신이었으니까.


그는 남동생과 여동생, 그리고 아내를 처참하게 살인한 살인마를, 조사실의 문을 잠가두고서 자신의 소중한 사람이 당한 것처럼, 똑같이 그 현장을 재현했다.


조사실 안은 피로 얼룩져 있으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살인마를 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하게 살해했다.


경찰? 형사? 민중의 지팡이? 이미 차디차게 식은 가족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나?


헛수고다.

전부 헛수고다.

그를 지금 당장 죽이지 않으면, 내 평생이, 내 삶이 후회라는 단 두 글자로, 끝날 것만 같았다.


‘그를 죽인 건, 내 복수이자, 내 시작이자, 내 업적이자, 내 심정이다.’


그는 이 말을 남기고서, 18명의 죄수와 함께 탈옥하여, 지금의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평소 회사의 안전, 그리고 모두의 이익을 생각하는 율리아나는 그런 그를 받아들이기 망설였지만, 복수라는 대목에서, 그녀는 강렬한 이끌림이 느껴졌다.


“좋아, 어차피- 전장에서 살인은 무의미하니까. 모두, 승리라는 이름이 붙여지니까, 상관없어.”


그렇게 그는, 용병으로서, 다시 한번 살아나가게 되었다.

그는 입사 후, 이렇게 말했다.


‘중죄를 받아도 모자랄 살인마들을 내 손으로 죽이기 위해서, 들어왔습니다.’


오로지 증오와 복수만을 꿈꿨던 그에게 날아온 건,


“하... 참, 솔직한 친구네.”


가엔의 가벼운 소개였다.


“반갑다. 나는 가엔, 2팀의 부장이다.”

“로마리요. 그렇게 부르세요.”

“세렐 대리님은 자리에 없으십니다. 형사시라면서요? 반가워요. 저는 헬가, 당신의 담당 주임입니다.”


그렇게 지금의 팀원을 만났다.

살인자였던 나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대해준 그들의 선함에, 나 또한 잠시 그 목적을 잊으며 살았다.

고마운 분들이었다.


“후회는 하지 않아. 다만, 이제는 그런 증오심에는 사로잡히지는 않을 거야.”


가끔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며, 죽은 동생들과 아내에게 물어본다.

예전의 내 모습은 어땠냐고, 그러면 항상 그들은 말한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멋진 형, 오빠, 남편이라고.’


“좋아- 어서 이 단서들을 풀어 내보자!”

“..저도 돕겠습니다!”


루스먼을 따라, 안레스 또한 단서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


.


.


.


.


“음, 저녁 준비는, 우리들의 몫이군요.”

“그러게요. 홈 주임님.”


델사나의 아버지는 러시아에서 꽤나 유명한 식당의 주인이셨다.

딸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그는, 항상 늦은 퇴근에도, 가족들의 식사를 책임져주는 좋은 가장이었다.


“아버지의 솜씨를 물려받아서, 제가 또 요리를 잘해요.”

“그래도, 다행이네요. 처음 왔을 때는 소심한 성격 탓에, 잘 어울리지 못하면 어쩔까, 걱정했거든요.”


홈의 말이 맞았다.

소심한 성격에, 조금은 통통하다는 트라우마 탓에 사람들과 섞이는 것을 꺼리는 그녀는, 처음 이곳에 와서 같은 신입인 안레스에게 말을 거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하하- 제가 많이 그렇죠.. 소심하기도 해서, 지금은 비록 홈 주임님이랑, 루스먼 주임님이랑, 케필 주임님이랑, 안레스하고만 이야기하지만, 언젠가는 모두하고 친하게 지낼 수 있겠죠?”


모두와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그녀의 작은 소망.


“..당연하죠. 저는 믿어요. 그런 날이 오리라.”


언젠가는 이루어질 것이라며, 홈은 자랑스럽다는 미소를 보였다.

그러면서, 고향에 있는 가족들의 생각이 나기도 했다.


“저도, 아버지랑 어머니, 그리고 가장 사랑하는 할머니가 계시거든요. 아, 근데 음식은 진짜 못 하세요.”

“하하-”

“왜 그러시죠?”

“아니요.. 그냥, 홈 주임님이 할머니께 응석 부리는 모습이, 잘 상상이 안 가네요.”

“..그런 모습은 상상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별 시답지 않은 이야기마저, 따뜻한 온기가 되어, 그들을 즐겁게 만들었다.

모두가 사연이 있듯,

모두가 가족이 있듯,

닮으면서도 서로 다른 이들은, 작은 소소한 일상이 주는 따뜻함에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도 한다.


.


.


.


.


.


“안현-”

“..체닐.”


그녀는 한동안 안현에게 붙잡히고서, 입을 열지 못했다.

만감이 교차하듯, 그녀는 몇 번이고 망설이는 표정을 내게 보였다.


차가운 그녀의 냉기가, 내게로 전해졌다.

동시에 나의 따뜻한 온기가, 그녀에게로 스며 들어갔다.


“고마워.. 현아.”

“......”

“진심으로, 이 말을 하고 싶었어.”


알 수 있다.

지금 그녀의 마음이나, 생각을.

모두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적어도 그녀가 한 말이 진심이 담긴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있었다.


“내 이야기를, 들었을 거 아니야. 그런데도 망설이지 않고서 나를 구해줘서 고마워.”


고맙다고, 내게.

구해줘서, 망설이지 않아서, 곁을 지켜줘서-

진심으로 고맙다고.


“너는 모르겠지만, 참 많이 위로를 받았어. 변함없다는 그 말에.”

“사실일 뿐이야. 너는 체닐이니까.”


스윽-


나는 그제서야 잡고 있던 손목을 놓았다.

아니, 그녀가 나를 놓았다.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지금은, 이 말이 전부지만, 충분할 거라고 믿어.”

“고마워, 체닐. 나도 너에게, 말하고 싶었어. 말을 걸어줘서, 내게 먼저 다가와 줘서. 고마워.”


그 말을 전하자, 안현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어디론가 떠났다.

그로써 홀로 남은 체닐은 또다시 속박되었다.

떠나가는 그 뒷모습을 보며, 체닐은 차오르는 감정을 억눌렀다.


“왜 이래... 나답지 않게... 이러지 말자...”


마치, 오래전 자신이 동경하고, 많이 좋아했던 그 오빠의 뒷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가족의 모습도, 친구의 모습도,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도, 보인다.


그리워하고,

또, 간절하게 기도하는 마음,


애달픈 뒷모습을 아련한 눈빛으로 가득 채우며,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


.


.


.


.


“잘 있었어? 그동안 많이 외로웠지? 미안하다.”


“지금은 타지에 있어서 갈 수는 없지만, 멀리서나마 너의 이름을 불러보는구나. 너가 떠나고 벌써, 9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참,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가는구나, 라고 요즘 그런 생각이 자주 들어서 말이지. 아직도 아침에 눈을 뜨면, 너의 뒷모습이 아른거리는데, 왜... 이렇게 나는 나약한 건지.”


“그곳은 행복한가? 너가 좋아하는 피아노도, 우리 ‘샛별이’도, 잘 있는 건가? 사는 집도, 예쁜 거 맞지? 우리 집처럼 말이야. 미안하군. 참 궁금한 게 많아서.”


“요즘 들어, 네 웃음소리가 너무 그립다. 꿈에서 나타나달라고 그렇게 애원을 해도, 너는 올 생각이 없더군. 훗... 뭐, 변덕 때문에 그런 걸 수도 있지만, 섭섭하긴 해서 말이지.”


“이곳은 솔직히, 아름답지만은 않아. 그곳이 더 편할 수도 있어. 그런데 말이야, 내게는 너하고, 우리 샛별이가 없어서 더 힘들고, 무서운 곳 같아.”


“한편으론 너하고 샛별이가 이런 험난한 세상에 살아가는 것이 정말 좋았을까, 하고 생각해. 물론, 우리 세 식구가 같이 있으면 더 좋지만, 너가 힘들어 하는 표정은, 정말 상상이 안 가거든.”


“미안해, 결국엔 끝까지 내 넋두리밖에 하지 않았네. 좋은 소식도 들려주고 싶지만, 사실 내가 그렇게 말을 잘 하는 편이 아니잖아. 그래도, 한 가지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는 정말 잘살고 있어. 너를 아름답게 기억하고 있고, 하늘을 보며 샛별이를 떠올리기도 해.”


“어느덧 시간이 금방 갔네. 아쉽지만, 이제 가봐야 할 것 같군. 고향으로 돌아가면, 그때 다시 너에게로 갈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줘. 우리 샛별이하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채희야.”


그의 나지막한 한 마디가 끝이 나고, 참아 왔던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의 옆을 말없이 지키는 율리아나 또한, 고개를 푹 숙인다.


그렇게 그가 꽃을 내려놓자, 침묵이 흐른다.

구름이 끼기 시작하고, 바람이 멎는다.


“......”

“울어도 돼. 가엔. 아무도, 웃지 않아.”

“..죄... 죄.. 송... 합니다..”

“괜찮아, 미안해할 필요도,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어... 가족이잖아.”


나도, 가엔도, 라우라도, 로마리도, 만하르도, 오긴도, 루비도, 세렐도, 헬가도, 홈도, 루스먼도, 케필도, 칼린도, 체닐도, 안레스도, 델사나도, 안현도-


-모두, 가족이니까.


빈자리를 채워주고, 집을 짓고, 따뜻한 식사를 함께하고, 누군가에게는 행복을, 누군가에겐 조언을, 축복을, 기도를 해주고, 웃고, 울고, 떠들고, 먹고, 자고, 일하고, 살면서-


“-살아가면서, 누구나 사연이 있듯이, 누구나 가족이 있듯이. 이제는 여기가 집이고, 가족이니까. 이젠 울어도 돼. 우리가 울어줄게.”


.


.


.


가족이잖아.


털썩-


그의 울음을 숨어서 듣던 로마리는 그대로, 땅바닥에 주저앉는다.


“......”


꽈악-


그에게 건네줄 수 없는, 약을 쥐며.

그런 로마리를 본 안현은, 그대로 그 자리에 멈춰 서며, 입을 꾹 닫았다.


“안현... 그리고, 가엔..”


나무 뒤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라우라는 먹구름이 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울지 마. 채희야.”


찢어질 듯한 이 감정, 친구였던 그녀의 비보가 들렸던 날과 같은 감정이었다.

또한, 그때처럼, 하늘에서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날씨였다.

그가 얼마나 아내를 사랑하고, 배 속의 아이를 사랑했는지, 너무나도 잘 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그들의 결혼식에서 축가를 부르고, 행복을 빌었던 옛 팀원들의 생각이 나기도 했다.

좋은 사람들이 먼저 간다는 그 말이, 왜 이제야 깨닫게 된 것일까.

차라리, 차라리 나를 데려가지.


“.....왜, 왜...”


라우라 또한 나무 뒤에서 숨을 죽이며, 흐느껴 울었다.

작은 새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지만,

그녀의 친구가, 하늘에서도 알 수 있게,


“...하......”


애달픈 숨소리를 삼킨다.


-22에서 계속-




감사합니다. ㅎㅎ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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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오래간만이네요." 21.05.21 36 0 20쪽
32 "이기적인 용기를 내어, 타인의 실패로부터 성공을 배운다." 21.05.17 29 0 19쪽
31 "바람을 타고, 눈을 뜨고, 날개를 펼치며, 세 사람은..." 21.05.14 27 0 18쪽
30 "단편적인 그림은, 그 무엇보다 입체적인 사물의 모습이었을 거야." 21.05.12 31 0 22쪽
29 "천국을 오르고 싶은 남자." 21.05.10 45 0 18쪽
28 "너가 말한 것처럼, 잊지 않도록." 21.05.03 28 0 19쪽
27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해 바라볼게요." 21.04.23 58 0 17쪽
26 "..그렇게 해야, 널 미워하고, 다시 보지 않고, 그러면 이런 미련도 사라지니까..." 21.04.21 77 0 18쪽
25 "혁명단체의 새로운 일원이 된 걸, 축하합니다." 21.04.19 15 0 25쪽
24 "자, 시작하자- 밤의 왈츠를..!!" 21.04.16 56 0 18쪽
23 "존나 색시해. 이러니 뻑이 가지." 21.04.14 62 0 17쪽
» "가지 말라고 말해도, 이미 가버린 상대는 돌아오지 않아." 21.04.12 49 0 21쪽
21 "..결국, 경고를 무시했구나.." 21.04.09 52 0 20쪽
20 "..돌아가기 위해서, 다시 예전으로, 그렇지만, 나는 아니야.. 나는.." 21.04.07 52 0 23쪽
19 "날갯짓, 아니- 활갯짓처럼. 그 웅장한 날개는 바람을 타고 폭풍을 일으킨다." 21.04.05 69 0 19쪽
18 "..왜,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헷갈리게." 21.03.31 15 0 17쪽
17 "..우리의 인연은, 여기까지인 것 같아. 사실, 좋은 인연이길 바랬어." 21.03.29 20 0 17쪽
16 "가족의 손에 죽든, 친구의 손에 죽든, 사랑하는 손의 죽든.." 21.03.26 18 0 17쪽
15 "세상에 나오지 말았어야 했다." 21.03.24 19 0 17쪽
14 "정면돌파다." 21.03.19 17 0 17쪽
13 "그렇게, 꿋꿋이 살아가다, 언젠가 하얀 눈이 내리면, 하얀 장미가 될 거야." 21.03.17 23 0 20쪽
12 "..결국엔.. 당신도 그렇게.. 그렇게.. 떠나갈 거잖아....." 21.03.15 21 0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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