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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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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rdap
작품등록일 :
2012.11.15 06:57
최근연재일 :
2015.02.25 07:03
연재수 :
17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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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818,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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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7.28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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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회색시대-17.단단한.(8)

DUMMY

“뭐? 괴물?”


검은 괴물에 쫓겼던 심문관은 심문소로 달려가는 길에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이 무슨, 치욕에 이를 갈아도, 순간 느꼈던 두려움을 지울 수 없었다. 괴상한 괴물, 분명 소문으로는 지난 추모 난동 때 조각이 움직였다 했는데. 그런 것인가, 그런 마법이니 금지했거늘. 심문관들은 윗선에 알리기 위해 달려와 일스에게 괴물이 나타났다며 절차 뭔차 다 무시하고 떠벌떠벌 늘어놨다. 무슨 헛소리냐고 외치다 정말이라는 심문관의 주장에 일스는 잠시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자신이 이곳의 정보를 혜인에게 빼주긴 하지만, 그 계집애는 그쪽 정보를 그다지 주지 않는다. 정기적으로 다른 루트로 보고 받는 정보가 있긴 하지만 빠르지 않고 많지 않다. 허나 지난 시위 때 조각이 움직인 것은 이미 알려진 이야기. 그리고 진 일리스비.


“카르 경위.”

“예.”

“애들 따라서 한 번 가봐. 아무래도 마법사인 것 같다. 이 멍청한 새끼들이 대마법탄 쓸 생각도 못하고 도망쳤으니, 그 놈들도 벌써 튀었겠지만 어디 흔적이나 꼬리 남은 것 있으면 찾아봐. 이 병신 놈들이 잡아다가 놓친 놈들도 도로 잡아야지.”


일스가 대마법탄 이야기를 꺼내자 심문관들의 얼굴이 벌개졌다. 그 순간 생각도 못해냈고, 지금도 못해냈던 것. 카르는 그런 부하 심문관들 한 번, 일스 한 번 힐끗 보고는 알았다 답하고 길을 나섰다. 그렇게 뒤돌아가는 모습 보며 일스는 홀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 놈은, 설마 진 일리스비와 혜인 에르시테나가 자리에 여적 주저 앉아 있어도 절대 못 잡는다, 그렇게 만들어왔고 그러니 보내는 것. 일스는 소란한 마법사들의 연좌시위를 지켜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 일은 어떻게 끝날 것인지 한 치 기대조차 되지 않는다.


“이쪽, 이쪽입니다.”


부하 심문관들이 괴물을 만났던 자리로 되돌아왔을 땐 괴물도, 그들과 있었던 사람들도, 자신들이 잡았던 학생들도 아무것도 남지 않은 텅 빈 거리였다. 카르는 그런 부하들을 보며 슬쩍 한숨을 쉬었다. 시위가 격화되고 날이 갈수록 사람이 필요해지는 일이 많아 아무나 잡아 교육기간도 단축시켜가며 진압에 참여시켰더니 의지도 머리도 없다. 하기야, 저들 설명대로라면 도망치는 것 말고는 답이 없었겠지만.


“인상착의.”

“예?”

“그때 마법사로 추정되는 이들의 인상 착의 말이다.”

“어, 어, 그게, 여자 하나와 남자 하나가 있었고, 각목 들고 달려온 녀석은 조금 키가 작고 어, 검은 머리에…….”

“여자와 남자는?”


여자 하나와 남자 하나라는 말에 생각이 멈췄다. 너와 혜인이가 아닐까 하여. 그날 그토록 도망치라 말했거늘 결국 도망가지 않은 너희들은 어디 있니.


“어, 여자는 좀 크지 않은 단발에 금발이었고, 어, 남자는 갈색머리에 좀 험한 인상이었습니다.”


주저리 주저리 코는 어떻고 입은 어떻고 말하는데 오히려 붉은 머리, 회색 눈 소리가 안 나오는 것이 더 불안했다. 그날도, 도망치던 너희 둘 뒤에서 총을 쏜 날도 그 얼굴, 그 모습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여기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으니까, 그걸로 다행이겠지. 카르가 짧은 한숨을 내쉬자 심문관 둘은 흠칫한다. 많은 이들이 따르지만 또한 쉽지 않은 이가 이 상관이었으니.


“일스 경정님 말씀이 맞다. 다음부터는 바로 대마법탄을 투척하거나 버티도록. 그만한 일에 대교황청 심문관들이 도망치는 모습이 옳다 생각하나?”

“시, 시정하겠습니다!”

“잡혔던 학생들이나 추적해봐. 난 여기 더 둘러보겠다.”

“옛. 알겠습니다!”


카르가 낮게 목소리를 깔고 말하자 부하들은 흠칫하여 얼른 자리를 떴다. 카르는 그저 그 근처를 여러 바퀴 설렁설렁 둘러본 것이 다였다. 이미 해는 다 져가고, 더운 여름 바람 심문소에서도 속이 탁하던 차 마침 일스가 명령을 내려준 것이 고마운 참이었다. 진과 혜인도 아무래도 무사한 듯하고, 이대로 퇴근해버릴까, 답답한 마음이 만들어내는 게으름에 카르는 한번 픽 웃고는 허리를 펴고 그곳을 떠나 걷기 시작했다.


-챙, 챙, 챙.


거리에서 나오는 갑작스러운 악기 소리에 카르는 걸음을 멈추었다. 또, 소규모 시위인가. 카르는 긴장하며 허리춤에 달린 칼과 총을 확인했다. 사람들이 몰려있는 곳에 고개를 내밀고 보지만, 땀내나는 구호 따위는 없었다.


“광대패인가…….”


이런 시절에 광대라니, 거 참 대단한 녀석들이군. 카르는 그리 생각하며 총칼 쥔 손에 힘을 빼고 느긋하게 바라보았다.


-우와, 진짜 신기하다.

-카르, 진! 저기, 저기 저 언니 접시 돌리는 것 좀 봐!


어린 날의 기억 한 조각, 그때도 이런 여름이었던 것 같다. 광장 한 가운데에 짠하고 등장한 광대패의 놀음 모습에 마음을 뺏겨 하루 종일 그 앞에서 입을 헤 벌리고 바라보았지. 나도, 너도, 그 아이도. 그러다가 해가 한참을 저물어서 신전으로 돌아갔다가 벌을 받았던가. 하지만 그 벌받는 와중에도 그 놀이 떠올리다 보면 절로 웃음이 새어나왔더랬지. 카르는 그 기억에 살며시 웃으며 광대들이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내가 새 거지들의 왕이로소이다!”

“오호라! 네 놈 전하가 왕이시오!”


광대들의 놀이는 어렸을 적에 보았던 것처럼 재주를 부리는 것이 아니라 어디 싸구려 연극이었나 보다.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하고 나온 광대들은 제각기 자리를 잡고 쨍한 목소리 높이니, 사람들이 하하호호 웃으면서도 그네들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시절이 하 수상하여 마음 한 조각 늘 바짝 긴장하던 차, 이런 웃을 수 있는 순간 한번 놓치기 싫어서.


“암요, 내가 거지의 왕이라오, 큰 거리에서 밥 빌어먹던 큰 거지는 밥에 똥을 누어 주어서 쫓아냈고, 작은 거리에서 밥 빌어먹던 작은 거지는 물에 오줌을 싸서 쫓아내고 내가 왕이 되었지.”

“어허, 대단한 왕이시로고, 그럼 그 밥에 똥누고 물에 오줌 타는 것은 혼자 했는가?”

“사람이 어째 혼자 살겠소. 밥에 똥누고 물에 오줌 타는 짓이 어디 쉬운가, 천지사방 사람들 다 보는데?”

“그럼 누가 하였소?”

“도둑이 해주었지.”

“도둑이 거지 왕에게 무슨 볼일이 있어서?”

“거지도 가진 것이 있으니 나누어 주어서 해주었지.”


하지만 이어지는 연극에 카르는 미소를 지웠다. 이것은 누구를 향해 이야기하는 것인지 뻔했다. 너무 노골적이었다. 두 형제를 제치고 왕이 된 현왕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도둑이 지칭하는 것은 교황청.


“거지가 무슨 가진 것이 있어서 나누어 주었는데?”

“저 짝 돌맹이가 알고 보니 금이라 나누어주고, 저 짝 잡초가 알고 보니 명약이라 나누어주었지.”

“아이구, 그것 가지고 도둑이 해주셨소?”

“아니지, 그것 가지고 하면 도둑이 도둑인감?”

“그럼 또 무얼 주었나?”

“온 동네 거지들 죄다 부릴 수 있게 해주었지.”

“이 사람, 그러면 왕이 자넨가, 도둑인가?”


카르는 연극하는 광대패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허리 춤에 달린 칼을 꽉 쥐고서. 어디 학생들이 분장을 했다기 에는 목소리나 놀이하는 모양새에 일체 어색함이 없이 자연스러웠다. 놀이패 얼굴, 목소리, 연극 내용까지, 당장 잡기는 어려운 내용이나 주춤하고 있지만 보고를 올리면 이대로, 잡아갈 수 있을 것이다. 카르는 관객 쪽으로 얼굴을 돌려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본다. 움찔거리며 사람들 사이에서 빠져 나오는 이들도 있고 마냥 웃는 이들도 있다. 순간 카르는 흠칫하고 만다.


“나르?”


웃는 이들 사이에 나르가 있었고, 카르는 달려가 나르의 손목을 잡아 끌었다.


“오, 오빠?”

“너, 뭐 하는 짓이야?”


카르가 언제 저에게 이리 소리를 지른 적이 있던가. 나르는 흠칫하여 카르가 끌고 가는데로 딸려갔다. 사람 무리 뒤편에 서있던 덕에 별 소란 없이 빠져 나온 둘은 어느 문 닫은 상점 처마 밑에서 소리를 높였다.


“나르, 거리가 시끄러우니까 집에 가만이 있으라고 그랬지!”

“오빠, 공장 다녀오는 길이란 말이야.”

“일 끝났으면 얼른 들어가야 할 거 아냐!”

“가는 길에 광대들이 보여서 조금 보고 들어가려 했어.”

“너 저 게 지금 무슨 연극인줄 알고 보는 거야?”

“어? 그냥 거지들 이야기 아니야?”


나르는 놀란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눈초리다. 카르는 광대패가 놀이판을 벌여놓은 곳을 다시 돌아보았다. 연극이 어찌 진행되고 있는 줄은 모르지만 사람들은 웃고 있는 이들이 태반이다. 저들은 알아서 웃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몰라서 웃고 있는 것일 것. 나르는 성을 낸 제 오빠가 낯설고 무서웠는지 주춤거렸다.


“왜 그렇게 화를 내?”

“걱정되니까 그렇잖아.”


저 순진한 물음에 이 말고 또 무어라 답할 수 있으리오. 카르는 나르의 손목을 이끌고 집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나르는 잔뜩 굳은 카르의 모습에 입을 한 발은 내밀었지만 아무 말없이 따라갔다. 카르는 카르대로 복잡했다. 저 연극은 그들에 의해 의도 된 것인가, 아니라면 광대들의 의지란 말인가. 언젠가 일스의 명으로 그리게 되었던 관계표가 떠올랐다. 이 놈은 저 놈을 먹고, 저 놈은 다른 놈을 먹는 세계. 신법으로 명명하고, 신의 이름을 말하지만 사실은 그 뒷면의 그들만의 이야기. 선과 선의 연결, 까만 세상, 몰랐던 세상. 그를 모두가 알게 된다면.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는데 모른 척 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몰라서 알게 될 것인가.


“큰일이다! 큰일이다!”


거리 한 가운데 사람들 한 무리가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학생들처럼 보이는 그 모습에 카르는 저도 모르게 손이 칼로 갔다. 다른 손에 나르가 잡혀있었음에도. 대로 한 가운데서 그들이 큰 소리로 외쳤다.


“왕세자 저하가 연금되었다! 백성을 탄압한 왕을 규탄하다 연금되었다고 한다!”


그들의 외침에 거리가 조용해졌다. 걸음을 멈추고, 숨을 멈추었다. 나르는 불안한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카르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그 역시 아무 말 하지 못했다.




1714년 8월 23일

왕세자가 왕에게 공개석상에서 비난하다 왕이 던진 유리컵에 머리를 맞고 별궁에 연금을 당한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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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Personacon Rainin
    작성일
    14.07.29 00:38
    No. 1

    다 나름의 사정이 있고 다 나름의 애환이 있는데, 해결책도 나름 찾고 있는데......
    왜 아무도 행복하지 못한 걸까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8 벼이삭
    작성일
    14.11.12 00:25
    No. 2

    인조같은 놈이군요. 정통성도 없어, 부정도 없어..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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