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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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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rdap
작품등록일 :
2012.11.15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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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25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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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0.09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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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시대-20.아름다운.(2)

DUMMY

마법사들은 귀한 화력인 만큼 꽤 좋은 대접을 받는다. 더군다나 마법을 쓰고 나면 다들 엎어져 일어나지도 못할 만큼 앓아야 하는 만큼 숙소도 따로 깨끗한 곳을 지급받는다. 더군다나 진의 마법은, 그림으로 행하는 것인 만큼 조악하지만 책상 하나 위에 펜과 종이가 항상 자리하고 있었다. 진은 그림을 그리다 만 책상을 힐끗 보며 지나치고 그냥 자리에 누워 버렸다.


전투에 한 번 갔다 오면 자기 자신이 자신이 아닌 것 같기만 했다. 그런 생각을 한다. 이 전쟁에 자의로, 그들이 그토록 말하는 구조가 마음에 들어서, 왕세자가 좋아서, 혹은 금권을 얻을 이득을 생각해서 참여한 이들 또한 이런 기분이 들까. 아닌 것만 같아. 자신이 자신이 아닌 이런 기분, 그들은 느끼지 않는 것 같아. 마법 병단의 다른 이들도 전쟁에 처음 참여한 사람들이 있건만, 왜 유독 자신만이 이토록 모든 것이 부서진 기분이 드는 걸까. 마법 때문이겠지. 혼이 파괴되는 마법. 진은 제 생각에 웃지도 못했다.


아프고 피곤하다. 하지만 잠을 자고 싶지 않았다. 꿈 속은 어둠, 그저 악몽뿐이었다. 꿈 속에서 조차 자신은 사라져있다. 아니, 존재한다. 단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자신의 모습 뿐이었다.


칼을 가지고 싶었다. 힘을 가지고 싶었다. 시위에서 하나 둘 쓰러질 때 가장 앞장서 그들을 보호하고, 아버지와 혜인이, 그리고 주변 사람 모두 지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싶었다.


-난 내 주변만 편하면 다야.


하지만 주변들 중 편한 이는 아무도 없다. 최고의 보호를 받고 있을 아버지, 그래, 아버지만이라도 편하길 바라지만, 과연 편하실까. 헤어질 때 아버지가 겨우 집어 삼키던 눈물을 잊을 수 없다. 아니요, 아버지, 아버지는 편하셔야만 해요. 또한 시위에 앞장 서 모두를 지키는가, 그도 아니었다. 아무도 그림 이야기 따위는 하지 않는 전쟁에서 그저 적군을 죽이고 죽이는 것뿐이다. 생각하지 말자. 시선을 차단하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자. 진은 눈을 감고 등을 돌려 누웠다. 그러나 거대한 현실이 그 등 위를 짓누르고 진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앞에 앉는다.


화가 났다. 그 모든 것이 화가 나고 참담하고 끔찍했다. 다른 것이 아니다. 내게 인주를 찍게 한 그들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니다. 제 권력을 탐하는 왕세자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니다. 심문관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들 뜻대로, 하고 싶은 데로 할 수 있는데, 아무것도 못하고 이곳에서 사람 대갈통을 박살내야 하는 자신에게 화가 난 것이다. 자신이 끔찍하고 더럽고 증오스럽고 혐오스러웠다.


“씨발.”


진은 그 모든 혐오와 분노를 담아 괴물그림을 그렸다. 이것은 또 어느 전장에서 쓰일까. 어디에서 또 대갈통을 박살낼까. 그림을 그리겠답시고 펜을 잡았지만 찌직찌직 선을 이어가다 제 화에 못이겨 종이가 펜 끝에서 찢어지고 만다. 거기에 또 화가나 종이를 구기고 찢어발기고 책상에 쿵, 하고 머리를 박았다. 다 부수고 싶다. 다 박살내고 다 죽이고 싶다.


죽여서 난 화인데, 다시 다 죽이고 싶다.


진은 제 생각에 킥킥거리며 책상에 다시 쿵 머리를 박았다. 자신은 이곳에 없다. 없어야 한다. 죽은 것은 사람이 아니다. 아니어야 한다. 덜컹, 순간 문이 열리고 진은 고개를 들었다.


“마법 병단 집합 명령이랩니다.”


몰이 소식을 전해주러 들어오고 진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일어났다. 다 꼴 보기 싫다. 하지만 가야했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그런데, 정말 내가 하고 싶던 일이 있던가.


“거참, 얼마나 편하게 살아왔으면 전쟁 좀 참여했다고 그렇게 죽상이십니까? 마법사님.”


몰이 이죽거리는 소리에 진이 눈을 가늘게 떴다. 저 새끼도 지금 전장에 참여하면서, 사람을 베고 찌르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을 아는데, 저 놈은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다 보다. 부러워해야 하나. 저 튼튼한 신경줄을? 내가 한번 힘을 보였는데도 계속 옆에서 이죽거리는 저 주둥이를? 다 짜증난다.


“자기 재능을 즐길 줄 아셔얍, 으억!”

“닥쳐 개새끼야.”


진은 몰의 머리를 잡아 벽에 박았다. 몰은 아픔을 못 참고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이미 마법 때문에 체력이 다 떨어진 진의 손아귀에서는 쉽사리 벗어나 무릎으로 진의 배를 쳤다. 진은 쿨럭거리며 넘어지고 말았다.


“시발 새끼가. 마력 떨어지면 좆도 아닌 게.”


마력이 없는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데, 마법을 쓰는 자신은 자신이 아니다. 마력이 없었기에 그 순간 도망가지 못한다. 그런 자신. 그게 다시 분노가 되어 진은 이미 다 떨어진 힘을 끌어 모아 몰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개새끼야. 넌 나한테 왜 항상 불만이냐 시발새끼야. 주둥이 안 닥쳐!”

“크, 컥. 시발…….”


몸 싸움이 벌어졌다. 몰은 진에게 주먹을 날리고 진 역시 맞고 때리고를 반복했다.


“날 때 다 가지고 태어난 새끼가 뭐가 모자라서.”

“씨발아! 이게 지금 다 가지고 있는 거냐?”

“그게 네 힘이라며!”


몰의 주먹이 진의 배를 강타하고 진은 쿨럭거리며 다시 엎어졌다.


“그게 네 힘이랍시고 내 앞에서 지랄 할 때는 언제고.”

“씹새끼.”


몰이 맞아서 벌겋게 부은 얼굴로 진에게 이죽거린다.


“내가 말했죠, 형? 형은 그저 쓸모 있는 도구라고.”

“이 개좆같은…….”


자신이 인식하고 있는 그대로를 찌르자, 그게 주먹보다 더 아팠다. 해서 튀어나오는 것은 욕이었다.


“어이, 거기 뭐야!”


군인 몇이 달려와 둘을 떼어놓았다. 모두가 날카로워 질 수 밖에 없는 전장인만큼 이런 다툼은 적잖이 일어났다. 하지만, 지금 이 마법사는 벌써 몇 번째인가.


“마법사님, 그만 하십시오.”


다만 귀한 마법사라 하기에, 전장에 소중한 마법사라고 하기에 좋게 좋게 타이를 뿐이었다.


“자네, 자네도 이만 가게.”


몰의 직위는 높지 않았지만 이미 시위 때부터, 전쟁 이전부터 선전무리 가장 앞줄에서 깃발을 휘두르고 뛰어다닌 덕으로 그저 한 마디만 듣고 만다. 몰은 침을 퉤 뱉고 가버리고 진은 주춤주춤 일어나 얼굴에 나는 피를 손등으로 대충 닦았다. 전장에서는 상처 하나 입지 않고, 돌아와 입는 영광스러운 상처다.


“자네…….”


마법 병단 대장이 진의 꼴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전쟁 이래로 어깨만 스치는 사람과도 싸움이 여러 번 났다. 같은 마법사로서, 진의 마법이 발동되는 원리와 그 위험을 알고 있기에 이해는 하지만 한숨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차분하게 마법이 무엇인지, 어떤 원리인지 단계를 밟고 배워 마법사로 살았더라면, 전장에 투입되어도 이 정도는 아닐 텐데. 어린 나이에 조절 불가능할 만큼 과한 마력과 독특한 마법 때문에 어린 마법사 자신의 피해가 심했다.


“일단 회의부터 시작하지.”


회의가 시작되어도 아무것도 모르고 관심도 없는 진은 그저 말석에 앉아 대장이 말하는 데로 여기, 저기, 투입 될 곳을 말해줄 때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어디로 가든, 자신은 갈 수 밖에 없었으니, 의견 따위 소용 없는 걸. 진이 벌개진 눈으로 멍하니 앉아 주먹만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자, 그럼 다음 전투에서도 최선을 다합시다.”


회의가 끝나고 진이 대충 인사하고 일어서자 병단장의 부관이 진의 손목을 잡았다. 그에 진은 눈을 날카롭게 떴다.


“자네는 치료를 받으러 가야지.”

“상관 없습니다.”


맞아서 아프나 그냥 아프나 별 차이가 없는데. 진은 모든 게 다 귀찮아 그냥 가려 하지만 부관은 기어이 진을 이끌고 가 앉히고 응급 약품으로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하긴, 여기 있는 것도 내 의지가 아닌데, 치료 따위 내 의지로 안 한다고 무어가 달라질까. 진은 픽, 웃었다. 그 웃음이 섬뜩했다.


“내가 굳이 이걸 권하고 싶지 않았네만……”


부관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준다. 새하얀 알약.


“휴식 없는 마법사는 마법을 쓸 수 없어. 자네 상태를 보아하니 밤에 수면도 힘든 것 같은데, 약에 의지하는 것은 안 좋지만 일단 당장 휴식은 해야 할 테, 어어.”


진은 부관이 설명을 끝내기도 전에 얼른 약을 제 손에 쥐고 물도 없이 꿀꺽 넘겨 삼켰다. 어이, 이봐, 이렇게 한 번에 많이 먹으면 안 되는 거라고, 부관의 외침이 몽롱하게 울린다. 효과 좋네. 진은 앞에 모든 것이 일그러져 보였다. 모두가 꿈결같아 보였다. 선은 사라지고 색으로. 아버지의 그림처럼.


아니, 아버지의 색은 저런 것이 아니었는데. 아버지의 색은 한 없이 자유로웠는데. 여기 있는 색은 짙고 짙어 성벽에 난 이끼보다 더러운 그런 색이네. 나도 그 색의 일부니까 상관없겠지. 아버지, 아버지의 색은 사각 속에만 있어요. 그리고 나는 그 사각 속에 조차 있지 못하네요. 나는 검은 괴물 그림 속의 선 하나. 단지 그것뿐.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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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 회색시대-21.메마른.(2) +1 14.10.25 1,613 10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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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회색시대-20.아름다운.(3) +1 14.10.11 819 29 9쪽
» 회색시대-20.아름다운.(2) +3 14.10.09 826 35 9쪽
159 회색시대-20.아름다운.(1) +1 14.10.08 1,079 35 9쪽
158 회색시대-19.젖은.(4) +3 14.10.06 1,050 25 9쪽
157 회색시대-19.젖은.(3) +4 14.10.04 881 27 11쪽
156 회색시대-19.젖은.(2) +1 14.09.27 761 34 10쪽
155 회색시대-19.젖은.(1) +2 14.09.21 702 2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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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회색시대-18.뒤엉킨.(5) +2 14.08.31 915 3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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