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소용돌이 생산공장

회색시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Girdap
작품등록일 :
2012.11.15 06:57
최근연재일 :
2015.02.25 07:03
연재수 :
176 회
조회수 :
219,446
추천수 :
7,304
글자수 :
818,771

작성
14.08.04 00:00
조회
811
추천
22
글자
10쪽

회색시대-18.뒤엉킨.(1)

DUMMY

사람 무리가 무어라 외치고 지나가자, 광대패들도 연극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사람이 그리도 많이 모였거늘 어찌 숨쉬는 소리조차 나지 않느냐. 광대들 뒤쪽에서 모자를 쓴 채 얼굴을 가리고 있던 이가 슬며시 고개를 돌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런, 하며 입술을 씹으며 자리를 조심스레 떴다. 연극의 끝이 나지 않았거늘, 새로운 시작이 시작되었다.


“왕세자 연금이라…….”


시야는 얼굴을 깊이 숙이고 어딘가로 총총히 걷기 시작했다. 오늘 광대패들의 대본을 쓴 것은 자신이었다. 전공이 전공이니 큼 문학적인 맛이라던가 풍자적인 맛은 사라지고 지나치게 노골적인 맛만 쓰게 남은 대본이었으나 광대들은 환호했다. 안 그래도 이런 대본 하나 필요하다고 했다 한다.


-그림 금지법 때문에 화가들뿐만 아니라오, 광대들도 죽을 맛이라오.


경직, 그림이 금지되며 사회의 모든 문화의 흐름이 막혔다고 한다. 그네들 말로는 음악이 금지되었어도, 소설이 금지되었어도, 하물며 광대패 놀이가 막혔어도 이런 일은 벌어졌을 것이라며, 이런 연극은 언제든지 찬성이라며 쌍수를 들고 환영이라 했다. 세이즈가 아이들을 위한 간이 소학원을 열며 차분히 먼 미래를 준비한다지만, 자신 같이 성질 급한 이는 참지 못해 준비했던 것이다. 그 대사 한 줄 한 줄이 부끄러워 그네들에게 말은 못했다지만. 잘 돌아가는 지 멀리와 슬쩍 본다 나선 길에 이런 소식 들을 줄이야.


“왕세자가 연금되었다면, 후계자는 어찌되는 것이여?”

“그 그, 전하의 사촌 조카가 어디 있다고 하던데…….”


지나가는 길에 사람들 속삭이는 소리에 시야는 얼굴을 찌푸렸다. 흐름이 다시 새롭게 흐른다. 그들은, 우리를 지원한다고 나선 귀족들은, 알고 있었나 모르고 있었나. 함께 예술 해방을 위해 힘쓴다지만 갈라선 길 사이에서 만난 두 집단이다. 그러니 들어오는 정보가 한정적이고, 나가는 정보 역시 마찬가지다. 왕세자의 연금은 기획된 것인가, 아니면 우연인가. 시야는 침울하게 거리를 걸어 아지트로 돌아가는 길을 밟았다. 어느 쪽이든, 우리와 상관없는 길.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끼칠 것은 자명한 일. 가슴 속의 근심이 한 결 더 무거워졌다.

.

.

.

.

.

“왕세자가 연금?”


학생들 시위에 도움을 주고자 나갔던 진과 혜인이 물어다 준 소식에 히르는 오만상을 찌푸리고는 소파에 몸을 묻었다. 손톱까지 까득까득 깨물어제끼는 꼴이 돌아가는 모양세가 마음에 안 든다 말하는 듯했다.


“확실히 큰일이겠죠? 우리 지원해주는 사람이 왕세자계 귀족들이잖아요.”


혜인이 한 마디 거들자 히르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딸아이의 얼굴을 한 번 본다. 이 복잡하고 지난하며 더러운 싸움의 이야기를 너는 어디까지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겠니.


“그 뿐만이 아니다. 왕세자의 연금을 근거로 더 큰 싸움이 날 거야.”

“더 큰 싸움?”

“그리고 큰 싸움 속에서 우리는 잊혀지겠지.”


히르가 맥락 없이 중얼거리는 말에 혜인이 눈살 찌푸리며 무어라 한 마디 하려 하다, 그 얼굴이 자못 심각해서 날 서게 하려던 말 다시 주어 삼켰다. 아빠는, 무엇이 늘 그렇게 걱정이 되는 것일까. 여태 침묵만 지키고 있던 인휘 역시 썩 좋은 얼굴은 아니었다. 정치 따위는 잘 모르지만 이 사태가 부정적인 영향을 가지고 올 것이란 것은 자명했다. 선명한 확신. 때문에 인휘는 진의 얼굴을 슬쩍 보았다. 어른들의 분위기를 읽고 약간은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지만 사태 파악을 완벽히 한 것은 아닌 듯했다.


“알 아마스 공께서는?”


히르가 인휘에게 묻자 인휘는 고개를 저었다. 이 일로 인하여 정계에 다시 진출하게 되었다는 알 아마스 공이니 만큼, 바쁜 일이 적지 않은 터라 이 댁 신세를 진다 하더라도 쉽사리 만나는 것은 아니었다. 히르는 두어번 고개를 끄덕이든 아이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자중해라.”

“예?”

“행보 하나하나에 신경 쓰고 행동 하나에 열 번씩 생각해고 입을 무겁게 가져라. 힘을 함부로 내보이지 말고, 쉽게…….”

“아, 좀, 확실하고 명확하게 설명해주면 안 돼?”


이어지는 히르의 잔소리 같은 말에 혜인이 결국 짜증 섞인 말을 내뱉자 히르는 다시 한 번 긴 한숨을 내쉰다. 철딱서니 없는 녀석.


“나도 이 일이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몰라 이렇게만 이야기 할 수 있는 것 아니냐? 위험하고 혼란한 시기 일수록 행보에 조심하라는 뜻이다, 이 녀석아.”

“아, 아빠는 왜 그렇게 몸을 사려?”

“그럼, 이 늙은 몸 불태워서 어따 쓰려고?”


늘 그렇듯이 부녀의 살벌한 언쟁에 진은 한 걸음 물러서고, 인휘 역시 침묵을 지키지만, 그 시선을 아들에게서 떼지 않았다. 조금은 피곤한 듯 보이는 안색 뒤로는 어깨에 제가 매어준 그림 담는 통이 보인다. 이것이 다 일수는 없지만, 그래도, 조금은, 조금쯤은 안심이다.


“인휘 화백님,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집사가 찾는 소리에 혜인과 히르가 언쟁을 멈추었다. 집사의 손에는 편지봉투 한 장이 들려있었고, 이는 알 아마스 공이 궁에서부터 사람을 시켜 전해준 것이라 했다. 혹여 누군가의 손에 들어갈까 염려하여 받는 이 이름과 인사 전략하고 중요한 내용만 담았다 하니 이를 감안하여 읽으라 했다. 진이 봉투를 열어 인휘에게 전해주고, 언뜻 내용을 살펴본 인휘가 소리 내어 읽으며 모두가 들을 수 있게 했다.


“궁에서 왕세자 저하가 왕에게 현재 상황에 대한 규탄 발언한 이후 연금을 당했네. 그 발언을 아래에 첨부하네. 이 내용이 담긴 전단지가 현재 시내에 퍼져있다 하니 친구와 함께 보고 주의하도록 하게. 친구라, 히르 너를 말하는 거겠지?”

“그렇겠지. 계속 읽어봐.”

“국왕 전하께 아뢰옵나이다. 근자간에 백성이 예술에 대한 자유를 발언해야 했다 하여 교황청이 우리의 백성을 잡아 벌을 주는 일이 횡횡하옵나이다. 그 벌은 잔혹하고 무도하여 잡힌 자는 사형이나 다름없는 것이나 진배없나이다. 우리에게 국교가 있다 하나, 신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왕실의 권한과 금력을 침탈하고, 우리 백성의 목숨을 수이 다루는 바, 이는 엄연히 왕실과 나라를 무시한 처사이나이다. 그림뿐만 아니옵나이다. 교황청의 전횡은 그 영역이 닿지 않은 곳이 없어 상인들이 관리보다 심문관을 두려워하고, 농사짓는 백성은 나라에 낼 곡식보다 은밀히 심문관에게 줄 곡식을 더 가린다 하나이다.”


인휘는 잠시 침을 삼켰다.


“교황청이 이토록 전횡을 부릴 수 있는 것은 전하의 오판에서 비롯된 것이옵나이다.”

“허…….”


다른 곳에서 같은 전단을 읽고 있던 오르트도 히르와 같은 한숨을 내 뱉었다. 세이즈는 시야가 주워온 전단을 계속해서 읽었다.


“이미 국법으로 신법을 제어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있음에도, 전하와 간신들이 이를 이용치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이옵나이까? 신의 벌이옵니까? 아니오면 금권과 이득 때문이옵나이까? 신의 벌보다 두려워야 하는 것은 백성의 원한이고, 금권과 이득보다 중요한 것은 백성의 안위이옵니다.”

“와, 이렇게 이상적인 글이라니!”


오르트가 감탄인지 비아냥일 것인지 모를 것을 내뱉고 세이즈는 어깨를 움츠렸다.


“백성 없는 왕은 존재 할 수 없습니다. 이게 끝인가 봐요.”

“이거, 정말 소문대로 유리잔으로 맞을만하네, 아니, 유리잔이 아니라 술병으로 내리쳐도 이해했을 거야.”

“오르트씨!”

“농담아니라고, 이거. 진짜…….”


오르트는 세이즈의 손에서 전단지를 받아들고는 다시 한 번 눈으로 읽어 내려갔다.


“지나치게 강하고, 노골적이야. 정말 전단지 그대로 말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연금을 당한지 얼마 안 되어서 이런 인쇄물이 나돈다는 건…….”

“준비 되었다는 이야기겠지. 왕궁 소식, 안 세게 하려면 할 수도 있는데, 이렇게 빨리 시내에서 사람들이 외치고 다닌다는 건. 사람들이 벌써 다음 후계자를 논하기도 하던걸? 장조카야 제 정신이 아닌 거 다들 아는 판이니, 사촌조카까지 더듬는 사람들도 있더라.”

“하…….”


한잔 살짝 걸치고 아름다운 광경에 감탄하며 내려썼던 시 한 줄이 구둣발에 짓밟힌 느낌이었다. 이 의도된 연금 사태는 분명히 모든 논의와 과정을 지우게 될 것이리라. 권력자들과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고 움직여왔거늘, 이제 모든 힘은 권력을 향하게 될 것이고, 모든 노력은 권력자들을 위한 꼴처럼 보이리라.


“난리 났군.”


세상 일 순수하지만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당할 때마다 커다란 망치로 뒤통수를 후려 맞는 듯하다. 그 머리 깨지고 깨지고 또 깨져도 여전히 깨질 구석이 남은 걸 보니, 아직은 그다지 망가지지 않은 듯하다, 하며 홀로 쓸데 없는 위로를 해본다.


“조만간 대책회의가 열리겠네요.”


세이즈가 자신 없이 중얼거렸다. 저 역시도 왕세자의 의기 넘치는 발언에 기운이 빠지는 듯했다. 하나 틀린 말 없음에도, 그 뒤에 숨겨진 의도들을 알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그 뒤에 있는 자들 중 하나, 자신의 아버지. 그 생각에 눈을 꾹 감고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당장은, 아이들만 생각하고, 동지들을 생각하자.


“온통 뒤엉킨 꼴 한 번 보기 좋겠군.”


오르트는 제가 썼던 시가 담긴 종이를 손으로 구기며 이를 물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Personacon Rainin
    작성일
    14.08.04 16:20
    No. 1

    이런 연재가 아니라 완결된 한 권의 책으로 만나볼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 라스페
    작성일
    14.08.10 12:07
    No. 2

    아아... 마지막 줄에서야 겨우 이해했어요.
    과연, 맞서 싸우는 사람보다 어설프게 딛고 올라서려는 사람이 진짜 무서운 법이죠.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회색시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76 새글 시작했습니다. +4 15.02.25 1,328 14 1쪽
175 회색시대-완결후기. +25 14.11.03 1,314 42 7쪽
174 회색시대-終.꽃. +7 14.11.03 1,406 43 14쪽
173 회색시대-21.메마른.(7) +6 14.11.02 993 27 9쪽
172 회색시대-21.메마른.(6) +2 14.11.01 821 23 11쪽
171 회색시대-21.메마른.(5) +1 14.10.30 723 19 11쪽
170 회색시대-21.메마른.(4) +2 14.10.28 810 24 11쪽
169 회색시대-21.메마른.(3) 14.10.26 737 25 9쪽
168 회색시대-21.메마른.(2) +1 14.10.25 1,613 104 9쪽
167 회색시대-21.메마른.(1) +1 14.10.23 879 28 8쪽
166 회색시대-20.아름다운.(8) +3 14.10.21 923 27 10쪽
165 회색시대-20.아름다운.(7) +2 14.10.19 1,311 48 9쪽
164 회색시대-20.아름다운.(6) +2 14.10.17 791 23 7쪽
163 회색시대-20.아름다운.(5) +1 14.10.15 1,034 25 10쪽
162 회색시대-20.아름다운.(4) +2 14.10.13 809 23 9쪽
161 회색시대-20.아름다운.(3) +1 14.10.11 819 29 9쪽
160 회색시대-20.아름다운.(2) +3 14.10.09 825 35 9쪽
159 회색시대-20.아름다운.(1) +1 14.10.08 1,079 35 9쪽
158 회색시대-19.젖은.(4) +3 14.10.06 1,050 25 9쪽
157 회색시대-19.젖은.(3) +4 14.10.04 881 27 11쪽
156 회색시대-19.젖은.(2) +1 14.09.27 761 34 10쪽
155 회색시대-19.젖은.(1) +2 14.09.21 701 25 10쪽
154 회색시대-18.뒤엉킨.(8) +1 14.09.15 1,565 35 9쪽
153 회색시대-18.뒤엉킨.(7) +1 14.09.09 987 27 9쪽
152 회색시대-18.뒤엉킨.(6) +2 14.09.03 922 21 10쪽
151 회색시대-18.뒤엉킨.(5) +2 14.08.31 915 31 11쪽
150 회색시대-18.뒤엉킨.(4) +2 14.08.24 1,115 33 11쪽
149 회색시대-18.뒤엉킨.(3) +1 14.08.17 912 22 11쪽
148 회색시대-18.뒤엉킨.(2) +1 14.08.10 1,415 23 10쪽
» 회색시대-18.뒤엉킨.(1) +2 14.08.04 812 22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