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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 님의 서재입니다.

미천한 소년은 고귀한 자를 꿈꾼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700
작품등록일 :
2022.10.04 01:21
최근연재일 :
2022.10.19 02:59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563
추천수 :
22
글자수 :
59,275

작성
22.10.16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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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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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2쪽

어린 범이 할 수 있는 것 -8-

DUMMY

“사실 네가 보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팍은 시장 바닥을 걸으며 에이지에게 말했다.


“궁금했거든요.”

“궁금하다니?”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요.”


잠시 생각하던 팍은 교회 안에서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래 그런 말을 했었지. 잔인해도 걸어가야 할 길이 있다고 말이야.”

“그래서 아까 한 말이 그런 말인가요? 맞서 싸우자고?”

“연단에서? 그렇지.”

“그렇게 호응이 크진 않았던 것 같았어요.”


팍의 자존심이 상했지만, 사실은 사실이었다. 이런 어린애의 말에 화를 내는 건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그······렇긴 했지. 그래도 점점 위기가 다가올수록 사람들이 의지할 곳은 필요하게 되어있어. 언젠가 사람들은 내 옆으로 모이게 될 거야.”

“조합장님이 아니라요?”


팍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시대를 읽지 못하는 그 할배 옆에 있으면 험한 꼴을 당하게 될 거야. 귀족 놈들이 얼마나 잔혹한지는 너도 잘 알잖아.”


순간 말을 타고 시체를 짓밟는 기병, 어머니를 쏜 궁병, 물건을 훔치던 보병들이 생각났다. 에이지의 안색이 안 좋아지자 팍은 자신의 실언을 후회했다.


“미안하다. 듣기 안 좋으라고 한 말은 아니었어.”

“아니에요, 괜찮아요.”


에이지가 정신을 차리며 말했다. 그들은 어느새 뤼제의 와인 가게 앞에 도착해있었다. 팍은 미안함을 표정으로 내보이며 에이지에게 물었다.


“다들 힘든 건 알지?”

“그럼요.”


시장 사람들의 인내심이 바닥나고 있다는 것은 에이지도 잘 알고 있었다.


“언젠가 문제가 터질 거야. 이 마을에도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벌어질 수 있어. 그때의 넌 어떻게 할 거야?”


에이지는 대답하지 못했다. 팍은 그 망설임에라도 만족하여 에이지를 보냈다.


팍과 작별한 에이지는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뤼제와 마르셀은 전과 다르게 조용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문이 닫히는 소리에 그들의 시선이 에이지에게 꽂혔다.


“왔구나.”

“생각보다 빨리 왔네.”


에이지는 얼떨떨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뭐. 그렇죠.”


대답을 들은 두 사람은 다시 서로에게 집중했다. 에이지는 안중에도 없는 눈치였다. 마담이 이렇게 자주 찾아온 일은 없었다. 이렇게 조용한 일 또한 없었다. 에이지는 두 사람의 대화에 흥미를 느끼면서도 두 사람이 고요함을 유지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왜 이렇게 조용하지?’


에이지가 주위를 둘러봤다. 계단에 앉은 에밀리가 찌르기라도 할 눈으로 두 사람을 쳐다보고 있었다.


‘왜 그러는지 알 법하네.’


“뭐 하냐?”


에이지가 에밀리에게 다가가 물었다. 퉁명스러운 대답이 에이지에게 들렸다.


“감시하지.”

“저 두 사람을?”


에밀리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내가 없으면 바로 언성 높아지고 싸울 테니까.”

“그렇단 말이지.”


그렇다면 에밀리에게 볼 일은 없었다. 억제력에 불과한 그녀는 저 대화의 내용을 모를 테니까.


에이지는 빗자루를 꺼냈다. 바닥을 청소하는 척하며 몸을 두 사람이 앉은 테이블로 유도했다. 덕분에 그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들을 수 있었다.


“다시 확인하도록 하지. 당신 말은 정말 와인을 풀 거란 말이지?”

“그래. 싸구려 와인이지만 어쩔 수 없었어. 이거라도 한 번에 풀어야 자네 손님들이 만족하지 찔끔찔끔 풀어서는 감질만 나고 장사도 덜 될 것이 뻔하잖아.”


마르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머리가 안 돌아가는 사람은 아니어서 다행이네. 그럼 고맙게 여기지.”

“그래. 얘기는 끝났으니 옆에서 엿듣는 우리 직원에게 제대로 일하라고 말해도 될까?”


두 사람의 시선이 한 번에 에이지에게 꽂혔다. 에이지는 빗자루를 끌어안았다.


“헤헤, 들켰네요.”

“어떤 멍청이가 그렇게 가까이 와서만 비질하냐? 할 거면 좀 더 제대로 엿들어야지.”

“어이 꼬맹이. 얘 말은 과거에서 우러나온 말이니까 새겨들어. 한창일 때는 우리 가게에 와서는 정보를 모으겠다고 몸을 비틀어서까지 엿듣는 마당에······.”


뤼네가 큰소리를 내며 벌떡 일어났다. 의자가 넘어지고 구른 건 당연한 결과였다.


“됐고! 얘기 끝났으면 얼른 가라고.”

“어머, 이 양반 부끄러워하기는.”

“다음엔 이렇게 일찍 찾아오지 마. 예의가 아니라고.”

“우리 사이에? 후후.”


뤼제는 윙크하는 마담에게 중지를 날리는 것으로 응수했다. 마담은 깔깔 웃어대며 가게 문을 열었다.


“그럼 기다릴게. 내일 저녁에 오는 거로 생각하고 있어.”

“얼른, 얼른 꺼지도록 해.”


문이 닫혔다. 에이지는 마르셀이 사라져가는 창가를 바라봤다.


“뭘 보는 거야?”


에밀리가 다가와 에이지에게 물었다.


“밖.”

“밖은 왜?”


에이지가 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오늘 빵집 굴뚝에 연기가 안 나잖아.”

“그러네.”


걱정스럽다는 듯 밖을 보는 에이지에게 에밀리가 말했다.


“걱정하지 마. 주님께서 저분들을 도와주실 거야.”

“주님께서?”

“저 사람들 말고도 이 모든 상인. 시장에 있는 사람들을. 아빠가 그랬어.”


에이지가 뒤를 돌아봤다. 뤼제는 굴러떨어진 의자를 주워 제자리에 놓고 있었다.


“그러려나.”

“그렇지?”


인간을 해하는 건 대부분 인간이었다. 그렇다면 인간을 살리는 건 신의 영역인 걸까.


“마저 청소할게.”


에밀리는 빗자루를 가지러 가는 에이지를 아련하게 바라봤다.


“그래.”


저녁이 되었고, 에이지는 나갈 채비를 했다. 어느 날인가부터 에밀리는 저녁을 준비하는 일이 줄었다. 뤼제 역시 식사하라는 말이 없었다. 에이지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밖을 나오자 제법 쌀쌀한 바람이 옷 사이에 날아들었다. 일교차가 컸고 사람들의 옷은 두꺼워졌다. 에이지는 옷을 한 겹 더 껴입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어, 왔구나.”


퍼실은 빈손으로 온 에이지를 보고 말했다.


“빵을 사 온다고 하지 않았어?”

“그랬었죠.”

“그런데 왜 빈손이야?”

“빵집이 문을 닫았어요.”


퍼실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 또한 에이지에게서 마을의 일을 종종 들었다. 사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냐. 그럼 굶어야 하겠어.”

“아직 다 먹은 건 아니에요.”


에이지는 가장 높은 찬장에서 오래된 빵을 꺼내고 말했다.


“남은 게 있긴 있거든요.”


돌처럼 딱딱해진 빵을 두드려 보며 퍼실이 물었다.


“이거 먹을 수는 있는 거냐?”

“못 먹을 건 또 뭐겠어요?”


그러면서 빵을 잘라 퍼실에게 나눠줬다. 퍼실은 입맛을 다시며 쳐다보기만 했다.


“안 드세요?”


젊음의 특권일까. 사람을 죽일 수도 있을 것만 같은 빵을 으적대며 씹는 걸 보니 퍼실은 왠지 소름이 끼쳤다.


“물에 적셨다 먹는 게 아니라면 내 이빨은 다 망가질 것 같다.”


그 말에 에이지가 얼른 일어나 물을 대령했다.


“이제 드실 수 있죠?”


퍼실은 찝찝해하면서도 에이지가 가져다준 물에 빵을 집어넣었다.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퍼실의 물음에 에이지가 우물거리며 답했다.


“저요?”

“일단 다 먹고 대답해라.”


그 말에 에이지는 빠르게 빵을 씹어 넘겼다.


“저요?”

“여기 너 말고 누가 있겠냐.”


에이지는 잠시 생각하고 물었다.


“있긴 있는데······. 어떻게 아셨어요?”

“빵집이 문을 닫을 정도로 사정이 나쁜데 넌 지금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행동하고 있잖아. 일부러 뭘 숨기는 것처럼.”

“그렇네요.”


잘못된 처세술을 시인한 에이지가 퍼실을 쳐다봤다.


“무슨 일인지 말해도 될 사이까지는 된 것 같은데.”

“그런가요.”


에이지가 입을 열었다.


“시장 사람들이 꽤 힘들어요.”

“저번에도 얘기했었지. 그래서 빵집이 문을 닫은 것 같구나.”

“그것만이 아니라 오늘은 좀 이상했어요.”

“이상하다니?”


에이지는 연단에 서 있던 팍을 떠올렸다.


“새 남작과 싸워야 한다는 주장을 누가 했거든요. 원래 그 사람의 말을 사람들이 귀담아듣는 경우는 별로 없었는데 오늘은 꽤 많았어요.”

“호응하는 사람은 많았니?”

“아뇨.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이 없던 것 같던데요.”


퍼실은 풀어진 빵을 씹으면서 생각했다. 지금 누구보다도 새 남작과 붙어보고 싶은 사람이 이 마을에 있다면 그건 자신일 것이다. 말이 없고 병사가 없어도 칼 한 자루를 들고 개스의 대군을 상대하는 것은 분명 영광된 일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그 감정을 에이지에게 전염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에이지는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있었다. 퍼실은 에이지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기대도 인도도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했다.


“호응이 없다면 사람들은 저절로 사라질 거야.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위험한 일은 발생하지 않아.”

“그 후에 말이죠.”

“음?”

“그 연설한 사람하고 만났거든요. 원래 아는 사이라서요. 저한테 언젠가 이 마을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때의 전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어요.”

“그래서 뭐라고 했니?”


에이지는 잠깐 입을 열고 닫았다. 직후 이것은 말해야 한다고 확신을 얻은 에이지가 용기를 냈다.


“대답 못했어요.”


에이지는 필시 퍼실이 화를 낼 거로 생각했다. 그는 올곧고 확실한 사람이었다. 이런 중요한 일에 자신의 주관을 정하지 못했음을 알면 강한 어조로 그를 가르칠 수도 있었다. 에이지는 그것을 각오하고 있었다.


“그랬냐.”

“네.”


퍼실은 다시 빵을 먹기 시작했다. 에이지는 이상하게 보며 그에게 물었다.


“뭐······. 더 없나요?”

“뭐가?”

“제가 어떻게 말을 해야 했죠?”

“정치적인 일에는 웬만하면 끼지 않는 게 좋아. 그렇게 얼버무린 건 잘한 일이야.”

“그럼 만약에 진짜 그런 상황이 오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하죠?”


에이지의 언성이 높아졌다. 퍼실은 그를 탓하지 않았다. 정체성과 정치적 입장의 혼란은 자라나는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겪는 것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차분한 목소리를 유지하며 에이지에게 말했다.


“너에겐 소중한 이들이 있지?”


에이지는 여러 얼굴을 떠올릴 수 있었다.


“물론이죠.”

“소중한 이들이 위험에 빠진다면 넌 어떻게 할 거니?”

“구해야죠. 어떤 위험에 처하든지.”


에이지는 대답하는 것에 망설임이 없었다. 퍼실은 만족스러워하며 말을 이었다.


“그래. 네게는 힘이 있어. 다른 무력으로부터 누군가를 지켜낼 힘 말이다. 연설한 남자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람이 말한 건 바로 그걸 의미하는 거야. 너는 이 마을이 위험에 빠졌을 때 소중한 이들을 지키기 위해서 나설 수 있겠냐고.”

“저는······.”


에이지는 고민했다. 10년간 전쟁을 두려워한 자신이 무기를 들고 적과 싸울 수 있을까. 소중한 사람들이 걸려있다고 해도, 지금 여기서 내뱉는 것이 말뿐이라 해도 그는 입을 열기 주저했다. 그러다가도 주먹을 쥐었다. 미간에 힘을 줬다. 생각은 깊었다. 그리고 말하기 시작했다.


“싸워야 한다면 싸우겠습니다.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는 길이 그것이라면 가야 하겠죠. 5년 동안 나무 막대를 휘두른 건 스스로 짐작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강해져야 한다고요. 그래서 5살 때 무력했던 나와 작별하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나로 탈피하기를 바랐습니다. 이것이 그 기회라면 잡지 않으면 안 될 겁니다.”


퍼실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그거면 됐다.”


식사는 곧 마무리되었다. 에이지와 퍼실은 밖으로 나가 잠시 대련했다. 그날 밤은 유난히 바람이 쌀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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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어린 범이 할 수 있는 것 -4- 22.10.10 60 3 13쪽
3 어린 범이 할 수 있는 것 -3- 22.10.09 60 3 11쪽
2 어린 범이 할 수 있는 것 -2- 22.10.07 85 2 14쪽
1 어린 범이 할 수 있는 것 -1- 22.10.04 136 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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