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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 님의 서재입니다.

미천한 소년은 고귀한 자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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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
작품등록일 :
2022.10.04 01:21
최근연재일 :
2022.10.19 02:59
연재수 :
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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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7
추천수 :
22
글자수 :
59,275

작성
22.10.10 02:06
조회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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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3쪽

어린 범이 할 수 있는 것 -4-

DUMMY

밖을 나온 에이지는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방인과 시간을 너무 쓴 터라 지각할 위험이 있었다. 그나마 아침 운동을 하기 전에 식사를 해둬서 다행이었다.


‘아, 그 사람 밥은 어떻게 때우려고 그러지?’


그렇게 생각이 들자, 그런 난리를 친 사람에게 밥을 줘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 에이지가 중얼거렸다.


“알아서 하겠지.”


이상한 날이었다. 추수한 것을 수확하는 농부들이 평소보다 적었다. 심지어 시장에 들어가서도 에이지에게 인사하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다들 어디라도 간 듯 자리를 비우고 가게 문을 닫고 있었다. 기이하게 여긴 에이지는 뤼제의 가게 앞에서 문을 열어도 되는지 한참을 고민했다. 결국 문을 열려 손을 가까이하던 차였다.


“에이지!”


문이 열리며 에밀리가 그를 맞이하였다.


에이지가 가게 안을 두리번거리며 쳐다봤다. 손님은 당연하고 위네 조차 보이지 않았다. 얼떨떨한 표정을 짓던 에이지에게 에밀리가 말했다.


“아빠는 지금 교회로 갔어.”

“오늘이 일요일이었나?”

“아니, 그건 아니지만. 이 지역에 새로운 남작이 온다고 했거든.”

“새 남작?”

“그래. 지금 이쪽 교구를 담당하는 주교까지 와서 임명식을 하고 있대. 이렇게 갑작스레 하는 건 처음 봤지만 말이야.”

“그래 잘 됐다. 너 혹시 볼가로 남작이라고 아냐?”


에밀리는 다소 어이가 없다는 듯 되물었다.


“볼가로 남작을 몰라?”

“그러니까 누구냐고 묻는 거잖아.”


어린아이에게 간단한 도덕적 원리를 주입 시키듯 나긋나긋한 말로 에밀리가 말했다.


“여기 하바스의 영주잖아.”

“뭐?”

“정확히는 영주였지. 지금 새 영주가 들어와서 이제 아니게 되었지만.”


에이지가 혼란스러워하며 물었다.


“이상한데? 영주란 건 바뀔 수 있는 거야?”

“이런저런 일로 바뀌기도 하나 봐. 특히 지금은 귀족들이 전쟁 중이라서 툭하면 영지의 주인이 바뀌고 그런다고 하더라고.”

“뭔가 어려운데.”

“자세한 건 나도 잘 몰라. 아빠가 구시렁대는 걸 들었을 뿐이야.”


생각에 잠겨있던 에이지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닫고는 물었다.


“근데 넌 왜 여기서 있어?”

“당연히 너 오면 데리고 같이 가려고 그랬지. 빨리 나오기나 해.”


이윽고 에밀리가 먼저 나서며 문을 열었다. 에이지는 얼른 에밀리의 뒤를 쫓았다.


“저기인가 봐.”


교회 앞엔 많은 사람이 모여있었다. 에이지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왜 다들 안 들어가고 있는 거지?”


그러자 뒤에서 굵직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높으신 분들만 모시겠다는 거지.”


뒤를 돌아본 에이지와 에밀리가 놀라며 아는 체했다.


“나스하 씨?”

“팍 오빠도 여기 있었네?”


팍 나스하는 웃어 보이며 두 사람에게 인사했다. 그리고는 불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조합장과 그 가족들, 항복한 기사들한테나 들어갈 권한이 있는 거야. 일반 사람들은 밖에서 간섭하지 말라는 거지.”


에밀리가 궁금해하며 물었다.


“그런데 왜 오빠는 안 들어가고 있어? 조합장님 아들이잖아.”


팍이 교회를 보며 비웃었다.


“그런 귀족들이 작당하는 자리에 난 끼고 싶지도 않아. 교구를 위해 나왔다는 주교도, 이걸 강행한 백작도, 영지를 수여 받는 남작도 다 똑같은 녀석들이라고.”

“내가 보기엔 오빠는 조만간 죽을 것 같아.”


팍은 굳은 얼굴로 에밀리의 이마를 쥐어박았다.


“아야! 왜 때려? 틀린 말 한 것도 아닌데.”

“입 조심해. 나 같은 분자들이 오래 살아야 세상이 바뀔 거라고.”

“사회에 위협이 된다는 건 인정하고 있네?”

“이게 진짜······.”


주변에서 조용히 하라는 성화가 들렸다. 팍은 복수다운 복수도 하지 못한 채 손을 내렸다.


“저기 문이 열린다!”


구경꾼 중 누군가가 소리쳤다. 곧 하얀 말을 탄 남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앞에는 긴 창과 깃발을 든 병사들이 함께했고, 뒤에는 말을 탄 기병들이 중압감을 내고 있었다. 그 사이에 있는 것이 남작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새 남작 만세! 개스 남작 만세!”


맨 앞의 기수들이 외쳤다. 병사들은 살기를 드러내며 교회 앞에 모인 사람들에게 겁을 주었다.


우물거리던 사람들을 보던 기수들은 성이 난 듯 더욱 크게 소리쳤다.


“새 남작 만세! 개스 남작 만세!”


그러자 사람들 사이에서 호응하는 기색이 돌았다. 기수들은 계속해서 외쳐댔다. 뒤에서 지켜보는 남작은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저 자신을 옹호하는 주민들 사이를 지나고 또 지났다.


‘한심한 녀석들.’


좋지 못한 표정을 지은 팍은 자리를 떴다.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팍은 조합으로 돌아갔다.


남작이 지나가자 사람들 또한 생업을 위해 흩어졌다. 오는 도중 상인 조합장을 만난 위네 뤼제 또한 자신의 가게에 도착하여 먼저 도착해있던 에이지와 에밀리를 반겼다. 그러면서도 이내 다시 쓸쓸한 표정을 짓고는 의자에 주저앉았다.


에이지는 그 같은 뤼제의 모습을 본 기억이 많이 없었다. 어제의 마르셀과 싸우는 것부터 시작해서 경영에 많은 어려움이 있는 것은 자명한 듯했다. 넌지시 물어보고 싶었지만, 일개 직원으로서 사장의 고민을 상대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임을 안 에이지는 에밀리에게 다가갔다.


“뤼제 씨께서 고민이 깊으신 것 같은데?”

“음? 그래?”

“딸인 네가 가서 챙겨드리는 게 어떻냐?”


에밀리는 손에서 뜨개바늘을 놓지 않은 채 대답했다.


“그렇게 궁금하면 네가 직접 묻지, 그래?”

“넌 너희 아버지 일에 관심이 없냐?”

“없는 건 아니지. 다만 지금은 하는 일이 있어서 말이야.”


겨울까지 만들겠다는 털모자는 아직 그 형태도 갖춰지지 않았다. 저게 겨울이 올 때까지 만들어지면 내가 성을 갈겠다고 생각하며 에이지는 뤼제에게 다가갔다.


“뤼제 씨?”


에이지의 목소리를 들은 뤼제가 고개를 들었다.


“어, 에이지. 무슨 일이냐?”


그러면서 와인잔에 놓인 와인을 한 모금 들이킨다. 에이지는 그 모습을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제부터 느낀 건데 무슨 일이 있나요? 특히 오늘은 오셔서 계속 기분이 안 좋아 보이시고······.”


시장 바닥에서 데려온 근본 없는 녀석이라고 못 믿는 녀석들도 있었지만, 에이지가 이 가게에서 일한 것도 벌써 10년이었다. 신뢰를 깼다면 벌써 내쫓았을 것이다.


뤼제 역시 연이은 술잔으로 취기가 조금 오른 터였다. 하소연이라도 하는 느낌으로 직원에게 가게 사정을 설명하는 것이 나쁘게 느껴지지만은 않았다.


“잠깐 앉아보겠냐?”


에이지가 행주를 식탁에 두고는 앉았다. 뤼제가 신음하고는 말했다.


“아까 봤다시피 우리 영주가 바뀌었다. 하얀색 말을 타고 있던 사람은 봤지?”

“네.”

“우리 볼가로 남작을 전쟁에서 죽이고 본인이 하바스의 영주가 된 거다.”


전쟁이라는 말이 들리자 에이지의 몸이 덜덜 떨려왔다. 의도치 않게 에이지의 역린을 건드린 뤼제가 에이지를 다독였다.


“아, 마을에 별일은 없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거라. 너한테 알려줬다시피 원래 귀족들은 영지를 조심히 두길 바라지 주민들을 학살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 다 자기 밥줄 될 사람들이지 않냐. 그러니 우리를 해치러 오진 않을 거야. 다만······.”


뤼제의 말에 에이지가 진정했다. 뤼제가 말을 이었다.


“전쟁을 수행하는 데에 들었던 비용을 어디서 뽑아낼 것 같으냐?”


에이지는 잠시 생각하고는 답했다.


“새로 점령한 마을이겠죠.”


뤼제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 바로 여기 하바스 마을이겠지.”


끼익하는 소리와 함께 의자와 바닥이 마찰했다. 일어선 뤼제는 밖에 진열한 와인 중 하나를 서슴없이 꺼내왔다. 어제 진열했던 것처럼 여전히 싸구려였다. 오프너로 능숙하게 와인병을 따고는 잔에 따라 다시 한 모금을 마셨다. 에이지는 그 모든 과정을 지켜봤다.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거죠?”


뤼제가 긴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아직 그쪽에서 부탁하는 건 없었어. 다만 조합장님 말씀으로는 상인 조합이 행할 의무를 많이 강조했다고 하더구나. 아마 우리 상인들을 좀 뽑아 먹으려는 수작을 부리겠지.”

“그렇군요.”


현실적으로 이런 일이 와닿지 않은 15살 소년은 그렇게밖에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취기가 가시지 않은 뤼제가 이어 말했다.


“서쪽에서 와야 할 와인도 안 오는 마당에 만약에 그 녀석들이 큰 부담을 지게 하면 장사하기가 대단히 어려워져. 이런 식이라면 대부분 상인은 망하게 될 거야. 어쩌면 개스 남작은 그걸 노리는 것 같기도 해. 혹시나 이 도시가 상인들에 의해 자유도시가 되는 걸 막으려는 거지.”

“자유도시요?”

“그래. 자유도시. 처음 들어봤니?”

“네.”

“쉽게 말하면 우리 같은 자유민들이 영주를 내쫓고 이제부터 우리끼리 자치하겠다고 국왕에게 재가받으면 지배하는 영주가 없이 살 수 있게 되는 거야.”

“영주가 없이 살 수 있다고요?”


에이지가 몸을 기울이며 물었다. 그런 과거를 겪은 그 나이대의 아이들이 관심을 가질 법한 내용인 건 사실이지만 뤼제는 현실이 녹록지 않음을 알려주는 것을 택했다.


“그래. 실제로 우리 상인 조합은 여태까지 많은 자금을 모아놨어. 이대로 병력을 일으키는 건 꿈도 아니지. 하지만 그렇게 해서 실패한다면 우리 목은 남아나지 않을 거야. 그러니 조합장님도 몸을 사리는 걸 권고하시는 거지.”

“그래도 만약 싸우자는 사람들이 생기면 어떡해요?”

“그런 사람이 있나? 아, 팍이라면 그렇게 주장할 법 하구나. 그래서 그 녀석이 아직 어린애라는 거야. 개스 남작이 우리 영지를 키울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단순히 우리 쪽만 손해 보는 조건을 들고 오지는 않을 테니까.”


에이지는 고개를 숙인 채 생각했다. 뤼제의 말이 사실이라면 팍은 개스 남작과 적대해야 한다고 여기는 듯했다. 그리고 뤼제는 그것이 맞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분명 손해만 보지는 않을 것이라며 에이지를 다독였다. 아직 누구의 말이 맞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에이지가 할 수 있는 건 자리로 돌아가 와인병과 테이블을 마저 닦는 일밖에 없었다.


“아, 그래도 그 남작이 볼거리는 주더구나.”


몸을 돌리던 에이지에게 뤼제가 말을 던졌다.


“이거 봐라. 마지막까지 항복하지 않은 기사들의 처형식이 사흘 뒤에 있다고 하는 전단이다. 순진한 마을 사람들을 겁주려는 수작이지.”


에이지는 다시 뤼제의 앞으로 다가가 종이를 받았다.


“그런 처형식을 보고 앞으로 내 말에 반기를 들지 말라는 압박을 넣는 거야. 이런 뻔한 일을 하는 걸 보니 그쪽도 참 유치하지 않냐?”


공고문을 보던 에이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뤼제는 다른 종이도 들고 있었는데 에이지의 호기심이 그곳으로 동했다.


“그건 뭐예요?”

“아, 별거 아니다. 그냥 도주한 기사의 작위를 박탈했다는 거야.”


기사라는 말이 에이지의 신경을 건드렸다.


“기사요?”

“그래. 상금까지 걸었어. 처형식 안에 잡으면 40위그를 준다더구나.”

“40위그.”

“그래, 40위그. 꽤 큰 돈이지. 기사 이름이 뭐랬더라? 여기 있네. 퍼실드르 퍼식 오르테르.”

“퍼실드르?”


에이지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종이로 시선이 향했다. 어디로 보나 그 종이에 그려진 사람은 오늘 아침까지 함께 실랑이를 했던 그 사람이었다.


“왜? 뭐 아는 거라도 있어?”


뤼제의 질문은 날카로운 것이었다. 에이지는 천연덕스럽게 둘러댔다.


“아뇨, 그냥. 40위그나 준다길래 한 번 찾으러 다녀볼까 싶어서요.”


취기가 오르지 않은 상태였다면 뤼제는 에이지의 수상한 반응을 눈치챘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따라 사고가 제대로 안 될 만큼 취해버린 뤼제는 아무런 추궁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낮잠을 좀 자야겠다. 에밀리, 에이지. 둘이서 가게를 좀 봐다오.”


그러자 잠자코 앉아 있던 에밀리가 일어나서 뤼제를 부축했다.


“내가 천천히 마시라고 했잖아요! 이게 무슨 추태야, 진짜!”


허허거리며 에밀리와 올라가는 뤼제를 본 에이지는 침을 삼켰다. 40위그면 삶의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을 만큼 큰돈은 아니었다. 하지만 좀 더 나은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라면 있어야 할 돈이었다.


내가 구해준 기사.


그를 이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어쩔 수 없구먼.’


시계는 정오를 가리키고 있다. 퇴근까지는 6시간이란 시간이 남아 있다.


에이지는 그 시간 동안 부디 자기 집이 무탈하기를 바랐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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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어린 범이 할 수 있는 것 -6- 22.10.13 38 3 12쪽
5 어린 범이 할 수 있는 것 -5- 22.10.11 44 3 13쪽
» 어린 범이 할 수 있는 것 -4- 22.10.10 60 3 13쪽
3 어린 범이 할 수 있는 것 -3- 22.10.09 59 3 11쪽
2 어린 범이 할 수 있는 것 -2- 22.10.07 84 2 14쪽
1 어린 범이 할 수 있는 것 -1- 22.10.04 135 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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