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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 님의 서재입니다.

미천한 소년은 고귀한 자를 꿈꾼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700
작품등록일 :
2022.10.04 01:21
최근연재일 :
2022.10.19 02:59
연재수 :
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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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0
추천수 :
22
글자수 :
59,275

작성
22.10.19 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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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어린 범이 할 수 있는 것 -10-

DUMMY

찬 공기가 자기주장을 하는 저녁, 에이지와 뤼제, 에밀리는 대여한 마차를 타고 마담 마르셀의 술집 앞에 도착했다. 짐칸에는 묵직한 와인 통들이 몇 개 실려있었다.


“이것만 옮기면 퇴근이니까 열심히 해라. 떨어뜨리거나 하면 안 돼. 알았지?”


뤼네가 진중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에이지와 에밀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알아들었음을 표했다. 뤼네는 수레를 가지고 와서는 말했다.


“한 번에 두 통씩이다. 조심해서 내려야 해.”


마차 안에 와인 통은 모두 여섯 통이었다. 마차에서 내린 세 사람은 짐칸 앞에 수레를 두고 물건을 내리기 위한 준비를 했다.


“어이, 에이지. 혼자 하면 위험······.”


뤼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에이지는 그 무거운 와인 통을 번쩍 들어 올렸다. 단순히 들어 올린 것뿐 아니라 조심스럽게 마차에서 내려 수레 위에 간단하게 놓는 것이었다.


“음, 잘했구나.”


뤼제는 칭찬밖에 할 말이 없었다. 에이지가 힘이 센 편인 줄은 알고 있었으나 이 정도까지 인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뤼제와 에밀리는 둘이서 한 통을 옮기려 했으나 에밀리의 힘이 부족해서인지 잘 안되었다.


“잠깐 비켜.”


에이지가 말하자 에밀리는 군소리 없이 옆으로 나왔다. 이것마저 에이지에게만 맡기기엔 양심에 찔리던 뤼제가 에이지와 함께 통을 들어 올렸다.


“흐읍!”


숨을 참고 온몸에 힘을 준 뤼제가 수레 위에 와인 통을 놓았다. 그리고는 그 수레를 끌고는 마르셀의 가게, 고요한 파도의 뒷문을 두드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르셀이 직접 문을 열어주었다.


“어머, 왔어?”

“그래. 주문한 와인 여섯 통이다. 일단 두 통 먼저 안으로 들이지.”

“그래 주면 고맙지.”


마담은 수레를 끌고 오는 뤼제를 안으로 안내했다.


“전보다 더 세진 것 같네?”


단둘이 남은 상황에서 에밀리가 물었다.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겸손한 척하지 마셔. 집에 가면 운동이라도 하는 거야?”


무술 대련은 운동의 영역에 들어갈 수 있을까.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에이지가 대답했다.


“가끔은······.”

“그렇구나.”


순간 에밀리의 미소가 에이지의 눈에 들어왔다. 그 직후 들려온 뤼제의 말만 아니었으면 왜 웃냐고 물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다시 두 통.”


수레는 짐칸 앞에 다시 놓였고, 에이지는 익숙하다는 듯 와인 통 하나를 들어서 수레에 뒀다.


“이거 꽤 힘드네요.”


아무리 힘이 세도 두 번 연속으로 드는 건 무리한 것 같았다. 뤼제는 알겠다는 듯 말했다.


“그럼 다음 거부터는 나랑 같이하자고. 혼자 하지 말고 알았지?”

“네.”


두 사람은 생각보다 쉽게 와인 통을 옮겼다. 누구의 덕이 컸는지는 말할 것도 없었다. 마지막 와인 통을 수레에 얹자 뤼제가 두 사람에게 말했다.


“다들 가기 전에 마담한테 인사나 하고 가자고. 어서 들어와. 문은 꼭 닫고.”


에이지와 에밀리가 안으로 들어왔다. 마담은 손님을 상대하기 바빴다. 그들을 보더니 손을 내밀어 잠깐 기다리라는 신호를 보냈다. 에이지는 그동안 술집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와인 외의 다른 술로 취한 손님들은 빨개진 코를 보이고 꼬부라진 혀로 말하고 있었다. 에이지는 무의식적으로 청각에 집중했다.


“집행관 그 자식. 그런 소릴 했으니 마을에 있긴 무섭겠지.”

“그래서 여관에서 안 자고 밖에서 야영하는 거야?”

“그런 것도 있지만 60명이나 되는 병사들은 어디서 자겠냐. 그러니 밖에서 자는 거지.”

“그 빌어먹을 조약서를 옆에 두고 잘도 자겠군.”


조약서라는 말이 들리자마자 에이지는 그 테이블로 걸어갔다.


“에이지, 어디 가는 거야!”


에밀리가 말리려 했으나 에이지는 막무가내였다. 마침내 자신의 관심을 동하게 한 테이블에 다가간 에이지가 사람들에게 물었다.


“남작의 집행관은 어디로 갔는데요?”


난데없는 질문에 어안이 벙벙해진 사람들이 물었다.


“꼬맹이가 그건 알아서 뭐 하게?”


에이지는 분위기가 심각해지고 있음을 느꼈다. 최대한 장난스럽게 받을 필요가 있었다.


“아, 같이 온 녀석이랑 내기했는데요. 집행관이 여기 기준으로 동쪽에서 잘지 서쪽에서 잘지 30지그를 걸었거든요.”


그러자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껄껄대며 웃었다.


“뭐 그런 걸 가지고 내기를 했냐. 당연히 서쪽이지. 동쪽으로 가면, 더 멀어지는걸?”

“그래, 그래. 서문 밖에 들판에서 야영 중이야. 설마 너 동쪽에 건 건 아니지?”


에이지는 아차 싶었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런 빌어먹을, 돈이 또 날아가네. 없는 살림에 좀 보태보자고 내기했더니.”


테이블에 앉은 이들은 돌아가는 에이지를 비웃었다. 에이지는 뒤를 돌고는 표정 없이 에밀리의 곁으로 돌아왔다.


곧 마르셀이 에이지와 에밀리에게 다가왔고 안부를 물었다. 인사치레로 와인 한 잔을 주고는 건강히 지내라며 덕담까지 남겨줬다. 일이 끝난 후, 뤼제는 약속대로 에이지에게 퇴근을 명했다.


“그럼 수고하셨습니다. 내일 뵐게요.”


뤼제는 평소와 다르게 서쪽으로 가는 에이지를 보며 물었다.


“어이! 원래 그쪽으로 갔던가?”

“잠깐 들를 곳이 있어서요!”


그렇게 말한 에이지는 서쪽으로 달려갔다. 성문은 곧 닫힐 예정이었다. 두 경비병이 에이지를 막아섰다.


“곧 성문이 닫힐 거야.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니?”


에이지는 침착했다.


“아까 서쪽 들에 잠깐 나갔는데요. 제 친구가 소중하게 여기는 물건을 두고 왔어요.”

“무슨 물건인데?”

“작은 인형이에요.”


경비병들은 난색을 보였다.


“해도 다 졌고 들판도 넓어. 어떻게 찾겠다는 거야?”

“위치를 기억하고 있어요. 숲에 들어가기 전에 있는 나무 밑에 있어요. 금방 다녀올 테니 시간을 주세요.”


두 경비병은 에이지의 얼굴을 알았다. 언젠가 마르셀의 술집에서 술을 옮기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윽고 서로를 보던 경비병들은 길을 열어주며 말했다.


“알겠다. 대신 빨리 와야 한다.”


에이지는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들판을 향해 질주했다. 얼마간 뛰자 숲으로 들어가기 전 언덕에서 예닐곱 채는 되어 보이는 천막이 보였다. 둥글게 세운 그것의 가운데엔 모닥불이 몇 있었는데 병사들은 저마다 불을 쬐며 쉬고 있었다. 아직 자는 이들은 드물었지만 대부분 얼굴이 피곤해 보였다. 개스 남작의 본래 영지에서 여기까지 와서는 쉬지도 못했으니 그럴 만도 할법했다. 에이지는 잠시 기다리기로 했다.


몇 시간이 지나자 불 앞의 몇 명은 천막으로 들어갔고, 몇 명은 풀밭에 누워 잠을 잤다. 에이지는 포복하여 옆으로 가서 천막들을 살펴봤다. 집행관이 자는 천막은 무엇일지 생각해봐야만 했다. 고민하던 와중에 툭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의 진원지로 고개를 돌리자 한 천막만이 경호원을 세우고 있었다. 물론 그들 역시 피곤했는지 앉아서 졸고 있었다. 경호원 옆에 창이 떨어진 걸 보니 아무래도 그 창이 넘어지면서 낸 소리 같았다. 에이지는 당장 그 천막의 뒤편으로 갔다.


코 고는 소리가 에이지의 귀를 때렸다. 단 한 명의 소리였고 그것은 집행관이 내고 있다는 것을 추리하는 데는 뛰어난 두뇌가 필요하지 않았다. 천막을 살짝 들추자 드르렁 하는 소리는 더욱 크게 들렸다. 에이지는 천막의 틈으로 조금씩 기어들어 갔다.


마침내 들어가서 일어난 에이지는 불빛이 따로 필요하지 않았다. 이상할 정도로 밤눈이 밝은 그는 이런 어두움 속에서도 밖에서 비치는 모닥불에 의지하면 실루엣 정도는 구별할 수 있었다. 에이지는 조심스레 이곳저곳에 손을 뻗어 보았다.


곧 종이 몇 장을 만질 수 있었다. 조심스럽게 천막 입구로 가서 빛에 가까이 대어봤다. 빠르게 읽어봤지만 조합세 조약서라고 불릴만한 문서들은 아니었다. 에이지는 그 종이들을 원래 자리에 가져다 둔 후 다른 곳을 더듬었다. 막대에 걸린 옷가지, 물잔 같은 것들은 있어도 종이는 없었다. 에이지는 어디를 뒤져야 할지 알 것 같았다.


집행관은 그 중요한 문서를 어디에 뒀을까. 이 천막 안에 대충 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의 잠자리 근처를 뒤지기로 한 에이지는 천천히 손으로 찾기 시작했다.


“으, 으음.”


잠에서 깨는 건가! 잠에서 깨는 건가! 에이지의 심장 소리가 사방에 퍼졌다. 다행히 집행관은 다시 왕성하게 코를 골기 시작했다. 에이지는 코로 한숨을 쉬었다.


남작이 자는 이불, 그 발 쪽에서 에이지는 어떤 상자를 찾을 수 있었다.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자 말린 종이가 봉랍되어 있었다. 뜯는다면 필시 흔적이 남을 것이었다. 에이지는 잠시 생각했다.


여기에 있는 물건 중에서 이것이 가장 조약서에 가까운 물건이었다. 다른 종이들은 별 볼 일 없었고 오직 이 종이만이 그 높은 가치를 증명하듯 봉랍된 채로 상자에 넣어져 있었다. 필시 뜯을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이지는 조심스레 봉랍을 뜯은 후 펼쳐서 천막 입구로 가져갔다. 종이에 적힌 내용은 에이지가 찾던 그것이었다.


‘좋았어!’


이 빌어먹을 종이만 없다면 뤼제가 모욕당했다고 말할 이유도, 마을 사람들이 힘든 이유도 모두 없어질 것이다. 사람들이 싸울 이유도 없어질 것이며 마을은 평화롭게 존속할 수 있을 것이다. 에이지는 그렇게 믿으며 종이를 품 안에 넣었다.


‘개스 남작.’


돌아가려던 에이지는 멈춰 섰다. 고통받는 마을 사람들. 뤼제와 마르셀. 그리고 주군을 잃은 퍼실까지. 이 모든 것이 이 문서를 가져오라고 명령한 새 남작의 탓이라고 생각하니 그냥 갈 수는 없었다. 에이지는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집행관이 타는 마차엔 말이 묶여 있었다.


말의 다리 아래에는 말똥이 쌓여있었다. 에이지는 말똥을 조금 집어 들었다. 조용히 집행관의 천막으로 들어와 조심스럽게 상자 안에 손에 든 것을 넣었다. 에이지만의 만족스러운 복수였다.


들어왔던 길로 나가서는 모두가 자는 틈을 타 동쪽으로 달리고 달렸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탓인지 안 어울리게 숨이 차올랐다. 성벽 앞에 선 에이지는 서쪽 성문을 쿵쿵대며 두드렸다.


“무슨 일이냐!”


아까 출성을 허락했던 경비병과는 다른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야간 임무의 특수성 때문인지 목소리는 한껏 날카로웠다. 에이지는 겁먹지 않고 차분하게 말했다.


“중요한 서류를 가져왔습니다. 꼭 가져다드려야 해요.”

“누구에게 드릴 어떤 서류인가?”


순간 에이지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이토록 중요한 서류를 누구에게 전해준단 말인가. 뤼제? 그는 뛰어난 장사꾼이지만 마을에서 높은 사람은 아니었다. 마르셀도 다른 사람도 이 문서를 제대로 써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누구에게 드릴 서류냐고 묻지 않았더냐?”


경비병의 어투는 한층 더 날카로워졌다. 에이지는 곰곰이 생각했다.


“데시 나스하 조합장님의 아드님이신 팍 나스하 씨께 전해드릴 문서입니다.”


팍이라면 가장 먼저 보여줄 만했다. 팍이 이 문서가 돌아왔다는 것을 알면 싸우려 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마을 사람들을 설득하여 더 이상 문제가 일어나지 않게 그들의 마음을 가라앉힐 수도 있었다. 어쩌면 남작과 새로운 조약을 만들도록 협상을 해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어린 나이에도 팍과 그의 추종자들은 병력이라는 것을 알았으니까. 무엇보다 뤼제가 말한 모욕을 당했다는 것을 되돌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어떤 서류이길래 이 밤중에 심부름하는 것이냐?”


경비의 질문에 에이지는 숨을 골랐다.


“개스 남작과의 조약에 관한 문서입니다.”


경비병들은 수군대더니 곧 한 명이 마을 안으로 달려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잠옷 위에 코트를 입은 팍이 경비병과 함께 돌아왔다.


“이런, 이런. 우리 뤼제 씨네 에이지가 큰일을 낸 것 같은데.”

“큰일이요?”

“남작과의 조약에 대한 문서라고? 일단 어떤 건지나 보자고.”


경비병이 에이지에게서 빼앗듯이 조약서를 가져갔다. 그걸 받은 팍은 종이를 펴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어디서 이걸 구했지?”

“집······.”

“아니. 일단 다른 곳에 가서 얘기하도록 하지. 이 아이를 들여보내게. 우리 집으로 데리고 가지.”


경비병은 그의 말을 따라 에이지를 성안으로 들였다. 팍이 타고 있는 말 뒷자리에 올라 그의 허리를 잡았다. 말은 곧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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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어린 범이 할 수 있는 것 -9- 22.10.18 32 1 14쪽
8 어린 범이 할 수 있는 것 -8- 22.10.16 33 1 12쪽
7 어린 범이 할 수 있는 것 -7- +2 22.10.16 44 2 16쪽
6 어린 범이 할 수 있는 것 -6- 22.10.13 38 3 12쪽
5 어린 범이 할 수 있는 것 -5- 22.10.11 44 3 13쪽
4 어린 범이 할 수 있는 것 -4- 22.10.10 60 3 13쪽
3 어린 범이 할 수 있는 것 -3- 22.10.09 59 3 11쪽
2 어린 범이 할 수 있는 것 -2- 22.10.07 85 2 14쪽
1 어린 범이 할 수 있는 것 -1- 22.10.04 135 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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