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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 님의 서재입니다.

미천한 소년은 고귀한 자를 꿈꾼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700
작품등록일 :
2022.10.04 01:21
최근연재일 :
2022.10.19 02:59
연재수 :
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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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2
추천수 :
22
글자수 :
59,275

작성
22.10.09 12:05
조회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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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1쪽

어린 범이 할 수 있는 것 -3-

DUMMY

눈을 뜨자 갈색의 벽이 보였다. 갈빗대처럼 양옆으로 뻗어있는 지지대가 있었고 군데군데 작은 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신기하게 생긴 벽이로구먼. 그렇게 생각하다가 문득 한 가지를 깨달았다. 자신이 지금 누워있다는 것을. 갑옷을 입은 남자는 정신을 차리고는 몸을 일으켰다.


시트 아래 짚 더미가 부스스 뭉개지는 소리가 나는 것과 동시에 편두통이 갓 일어난 그를 괴롭혔다.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니 집 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낮은 천장이 익숙하지 않아서 벽이라고 착각했던 것 같다. 진짜 벽은 창문이 달려있었고 구멍도 없었고 서까래 같은 것도 없었다.


산에서 길을 잃고 정신을 잃었던 것이 기억났다. 누군지 몰라도 자신을 구해준 사람이 있다는 것에 그는 감사했다. 안타깝게도 집 안에 다른 사람은 없었다. 대신 밖에서 나무끼리 부딪치는 타격음이 들려왔다. 목검 수련을 하는 소리임을 간단히 알 수 있었다. 그 역시 오랜 시간 해왔던 일이었기 때문에.


어깨와 목을 푸는데 온몸이 배겨왔다. 갑옷을 입고 취침하는 것은 좋은 버릇은 아니었다. 구해준 사람이 갑옷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을 유추할 수 있었다. 남자는 지금이라도 조금 더 자유롭게 움직이기 위해서 흉갑을 벗었다. 그리고 일어나려 발에 중심을 뒀을 때였다.


우당탕하는 소리가 밖까지 들렸다. 소리에 놀란 에이지는 얼른 나무 막대를 들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괜찮아요?”


넘어진 탁자를 짚으며 일어서려는 남자를 보고 에이지가 물었다. 남자는 일어서는 걸 포기하고는 말했다.


“발목을 크게 다친 것 같아.”


에이지는 우선 남자를 다시 침대로 옮겼다. 얼마나 심한 것 같냐고 물으니 남자가 대답했다.


“일단 발을 봐야 알겠는데.”


곧 오른쪽 사바톤을 풀자 한눈에 보기에도 심하게 부풀어 오른 발목이 보였다. 에이지는 질색하며 얼굴을 찌푸렸다.


“한 달은 못 움직이겠군.”

“심하게 다치긴 했네요.”


남자는 수심 어린 표정을 짓다가 에이지를 보며 말했다.


“탁자를 넘어뜨려 미안하구나.”

“괜찮아요. 부서진 것도 아닌걸요.”


에이지는 얼른 탁자를 일으켜 세웠다. 남자는 도와줄 수 없다는 것에 사과하듯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네가 나를 구해준 것이냐?”


에이지가 손을 털며 말했다.


“네, 산에서 발견했어요. 덤불 속에서 기절해 있었더라고요.”

“주변에 나를 찾는 다른 사람은 없었니?”

“네. 다른 사람은 없었어요. 중요한 일인가요?”


남자는 옅은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별일은 아니다. 혹시 물 좀 줄 수 있겠니?”

“이름을 알려준다면요.”

“이름?”

“생명의 은인한테 그 정도는 알려주셔야죠. 저도 제가 구해준 사람에 대해 모르면 쓰겠어요?”


고개를 끄덕인 남자는 낑낑거리며 겨우 일어섰다. 왼발에 중심을 둔 채 오른손을 심장에 가져다 대고는 입을 열었다.


“퍼실드르 퍼식 오르테르. 제서 앤티츠 볼가로 남작님의 기사다.”


에이지는 신기하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기사요? 아저씨 진짜 기사에요?”


평민들이 발산하는 선망의 눈빛은 익숙했다. 특히 어린 소년의 동경심에 대한 얘기는 많이 들어왔다. 퍼실드르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 나의 주군이신 볼가로 남작께서 직접 이 칼을 내리시며······. 어라?”

“왜 그러세요?”


허리를 매만지며 허겁지겁 고개를 돌리는 기사가 당황하며 물었다.


“칼! 칼이 없어!”

“칼이요?”

“아밍 소드 말이다! 내 검 말이야! 남작님께서 손수 하사하신 것이란 말이다!”

“아 허리에 차셨던 그 검이요?”


퍼실드르가 번뜩이는 눈으로 에이지를 쳐다봤다. 깜짝 놀라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 그 눈빛은 퍼실드르가 여기 온 이래에 내뱉은 가장 무서운 표정이었다.


“그 검은 안전한 곳에 있어요.”

“어디, 어디 말이냐?”


말은 다급하기만 했지만, 표정은 이미 에이지를 잡을 듯한 표정이었다. 상대가 비록 기사지만 다리를 다친 사람이라는 걸 상기한 에이지는 침을 삼키고 당당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난 평민이고 기사랑 싸우면 지겠죠. 특히 칼 든 기사랑은요. 그렇죠?”

“그게 중요한가?”

“중요하죠! 그쪽이 은혜도 모르는 망나니 같은 사람일지 아닐지 어떻게 알고 무기를 돌려드리죠? 날 협박해서 이 집안의 귀중품을 다 털어갈 수도 있는데 말이죠.”

“그런 귀중품이 이런 집에 있다고?”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요······.”

“장난하냐!”


퍼실드르는 진심으로 화가 난 듯 소리를 질렀다. 그 음성의 크기에 에이지는 다시 쪼그라들 수밖에 없었다.


“그건 우리 기사들한테 아주 중요한 거야. 그게 없으면······.”


그렇게 말하며 오른발을 앞으로 내딛던 퍼실드르는 다시 고꾸라져버렸다. 에이지는 감히 다가갈 용기를 내지 못했다. 발목을 문지르며 통증을 가라앉히던 퍼실드르가 물었다.


“그래. 너를 도와 같이 나를 옮겨준 사람들을 불러라. 너 같은 어린애한테 이런 얘기를 한들 의미가 있을 것 같지도 않구나. 얼른 사람들을 불러!”


에이지는 머뭇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저 혼자인데요.”

“뭐?”

“제가 혼자 당신을 도왔는데요.”


퍼실드르는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에이지를 바라봤다.


“갑옷까지 입은 남자를 너 혼자 둘러메고 여기까지 왔다고?”

“네.”


여전히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퍼실드르였지만 에이지의 말의 진의를 가리려고 하지는 않았다. 대신 몸을 가구에 의지하여 문 쪽으로 향했다.


“이봐요! 움직이면 안 돼요!”


그렇게 말하는 에이지도 무시한 채 퍼실드르가 중얼거렸다.


“다른 마을 사람들이 있겠지. 그 사람들한테 말하면······.”


기대를 안은 채 문을 연 퍼실드르의 표정이 구겨졌다. 사람도 없고 집도 없다. 있는 것이라곤 마당 한 가운데에 허수아비 하나였다.


“미치겠군, 정말.”


마당의 허수아비가 자신을 비웃는 듯했다. 물론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퍼실드르는 알고 있었다. 그는 감정에 날뛸 만큼의 주도권을 허락하는 사람이 아니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헛웃음을 짓다가 절뚝거리며 돌아와 앉았던 곳으로 돌아왔다.


“혼자 사는 거냐?”


부드러운 목소리로 에이지에게 물어보았으나 에이지는 입을 뻐끔거리며 말하기를 주저했다.


“이제 화 안 낼 테니까 얘기해도 좋다.”


혼자 산다고 대답하면 자신을 해칠까 봐 두려웠다고 하는 건 그렇게 좋은 선택이 아닌 것 같았다. 대신 하루만 지나면 들통날 거짓말 보다는 그의 다리가 불편하다는 것을 고려하여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네, 저 혼자 여기서 살아요.”

“마을하고는 얼마나 떨어져 있지?”

“이 집이요?”

“그래.”

“이 근처에 시계는 없지만 30분은 확실히 넘게 걸리는 것 같은데요.”


퍼실드르는 한숨을 쉬지도, 짜증을 내지도 않았다. 대신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소년. 이름이 뭔가?”

“에이지 폴락입니다만.”

“좋아. 폴락 군. 기사의 명예를 걸고 맹세하겠다. 내가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겠니?”


에이지는 퍼실드르에게 다가가는 것이 무서우면서도 기사의 맹세라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들고 있던 나무 막대를 퍼실드르에게 주자 그가 마음에 들어 하며 지팡이처럼 잡고 일어섰다. 이내 바른 자세로 서서 에이지에게 말을 거는 그 모습이 자못 기사다웠다.


“에이지 폴락. 그대가 베풀어 준 은혜를 잊지 않겠다. 본인의 진영으로 돌아가서라도 꼭 보답하겠다. 이 일을 죽는 순간까지 기억할 것이며 절대로 그대를 실망하게 하지 않겠다.”


그러고는 오른쪽 다리 대신 나무 막대를 내리찍고는 심장에 손을 대었다. 이름을 말할 때와 크게 차이 없는 동작에 에이지는 조금 실망했다.


“기사의 명예를 걸고 맹세하겠다. 에이지 폴락, 너를 위해서.”


떨떠름하게 보던 에이지가 물었다.


“이제 끝난 건가요?”

“그래. 네가 칼을 돌려준다면 나는 남작님께 돌아갈 수 있고, 돌아가기만 한다면 꼭 보답해주겠다. 기사는 명예를 걸고 한 약속은 어기지 않아.”


에이지는 길게 한숨을 들이쉬고는 말했다.


“싫어요.”


기사는 대뜸 화를 내며 에이지에게 막대를 휘둘렀다. 다리 한쪽을 못 쓰는 처지였지만 팔의 힘만으로도 제법 아팠다.


“아니, 왜 때려요!”

“이 맹랑한 꼬맹이가 사람을 놀려? 난 지금 장난하는 게 아니란 말이다!”

“왜 이쪽은 장난하는 거로 생각해요? 지금 이렇게 툭툭 치는 것도 아파 죽겠는데 칼이라도 생기면 얼마나 아프게 찔러대겠냐고!”

“그럴 일이 없다고 몇 번이나 얘기했잖냐!”

“말만 그렇게 했지 실제로 절 때리고 있는 건 사실이잖아요!”


티격태격하던 두 사람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잠시 휴전을 선언했다. 퍼실드르는 지치지도 않았는지 숨도 고르지 않으며 말했다.


“네게 꼭 말해야 할 것 같다.”


그에 반해 에이지의 호흡은 조금 흐트러져있었다.


“뭔데요?”

“넌 아직 모르겠지만 그 검은 남작께서 직접 하사하신 검이야. 무슨 뜻이냐면 그 검이 없다면 기사의 자격이 없다는 거지.”


에이지는 잠시 생각했다. 퍼실드르는 에이지가 자신의 사정을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했다.


“그거 되게 불합리한 방법이네요.”


이젠 어이가 없어진 퍼실드르는 에이지의 이해력을 무시하기로 했다.


“아무튼 지금 볼가로 남작께서는 이 땅을 위해 싸우고 계셔. 내가 빨리 합류해서 도와드려야 해. 부탁이니, 에이지. 제발 내게 칼을 돌려주고 내가 떠나도록 도와줘. 맹세한 건 거짓이 아니니 언젠가 꼭 네게 은혜를 갚을 테니까.”


그제야 퍼실드르의 의견을 경청하던 에이지는 깊은 생각 끝에 입을 열었다.


“역시 안 돼요.”


퍼실드르는 나무 막대를 바닥에 집어 던지고는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기사치고는 상당히 추잡하고 아이 같은 모습이었지만 에이지는 신경 쓰지 않고 말을 계속했다.


“우선 당신 부상이 심해요. 걷지도 못하는데 전쟁터에 가서 뭘 할 수 있겠어요? 짐 덩이처럼 있다가 죽겠죠. 아닌가요?”


그럴 거라는 보장은 없었지만, 아닐 거라는 보장도 없었다. 퍼실드르는 못마땅해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남작님에 대한 건 제가 마을 사람에게 여쭤볼게요. 그러니 좀 쉬고 있기나 하세요.”

“네가 묻고 온다고?”

“그래요. 마침 나가면 지각하기 직전에 도착할 수 있겠네요.”

“어디서 일하는데?”


에이지가 잠시 뜸을 들이고는 말했다.


“그건 갔다 와서 알려드릴게요.”


나무 막대가 날아왔다. 에이지는 능숙하게 날아오는 그것을 잡아채고는 문밖에 던져놨다. 그러면서 문밖으로 자기 몸을 내놨다.


“좀 진정하고 있어요! 집 안 가구 같은 거 부수지 말고.”


퍼실드르가 소리쳤다.


“부술 것도 없구먼! 언제 오는데?”

“해 질 무렵에요!”


큰 소리가 날 만큼 문을 세게 닫은 에이지는 다시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퍼실드르는 눈을 감고 바닥에 누워서 자기 신세를 한탄했다.


“주님, 제 미래가 심하게 걱정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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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어린 범이 할 수 있는 것 -5- 22.10.11 44 3 13쪽
4 어린 범이 할 수 있는 것 -4- 22.10.10 60 3 13쪽
» 어린 범이 할 수 있는 것 -3- 22.10.09 60 3 11쪽
2 어린 범이 할 수 있는 것 -2- 22.10.07 85 2 14쪽
1 어린 범이 할 수 있는 것 -1- 22.10.04 136 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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