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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 마녀의 서고

에이든은 오늘도 용사를 만나지 않는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집필마녀
작품등록일 :
2023.05.14 01:16
최근연재일 :
2023.08.20 12:00
연재수 :
102 회
조회수 :
3,634
추천수 :
74
글자수 :
540,615

작성
23.05.18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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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3장. 네리우스 교단(4)

DUMMY

·········


“후우, 밖은 조금 쌀쌀한걸?”


사람들의 눈을 피해 대저택의 지붕으로 올라온 나는 가만히 연회에 참석한 사람들 하나하나 꼼꼼히 살피며 그 속에서 이졸탄의 위치를 파악했다.

그리고······.


“이블린.”


“불렀어?”


은밀하게 기척을 흘리는 존재에게 나는 말을 걸었다.


“후후후.”


그녀는 요망하게 웃으면서 내 곁으로 다가왔다.


“이상하지 않아? 네가 여기 올 수 있을 거였다면 굳이 나를 파티에 참석시킬 필요 없지 않았어?”


“미안해. 하지만 나는 아직 내 얼굴을 세간에 드러내고 싶지 않은걸? 아직 때가 아니기도 하고······.”


“······.”


세간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싶지 않다는 그림은 내가 가장 바라는 것이었다. 그걸 이블린이 비아냥거리면서 말하고 있자니 묘하게 기분이 나빴지만 구태여 걸고 넘어지진 않았다.


“그런 표정 짓지 마. 이곳의 일은 에이든이 반드시 필요해. 그리고 나도 따로 해야 할 일이 있어.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서 말이야.”


“······그럼 여긴 뭐 하러 온 거야?”


“근본적인 이유지. 혹시 무기 들고 있어?”


당연히 없다. 이곳에 무기를 숨겨오는 건 힘들다. 검문도 하는 데다 아티팩트로 인해 무기의 여부는 금방 탄로 난다.


“후후, 역시 그럴 줄 알았지. 자!”


이블린은 그렇게 말하면서 품에서 검을 꺼내 내게 던져 주었다.


‘척.’


손에 들어오는 감각이 낯설지 않았다.


“······이거, 내 검이잖아?”


“응, 숙소에서 챙겨왔어.”


볼수록 소름 끼치네. 거긴 또 어떻게 알고?

하지만 나쁘다고 할 수만은 없었다. 되려 방금까지 나빴던 기분이 반대로 좋아졌다.


‘꽈악!’


온 힘을 다해 쥐는 그 감각이 좋았다.

아나스타시아와 힘겨루기도 할 수 있는 내 악력을 견디는 나의 검.


“그거면 충분하지?”


“충분하다마다, 더할 나위 없어.”


“어떤 강적이 나와도 연약한 엘프 하나쯤은 지킬 거라고 봐도 되겠지?”


나는 검집에서 도신을 꺼내 들었다.


난 대답 대신 그저 웃어 보였다.


·········



“이, 이 시발 새끼, 또 내뺐어!!!”


「······.」


나엘리아와 불똥이 튀도록 신경전을 벌였던 아나스타시아는 머지않아 에이든이 사라진 걸 깨달았다.

어느새 사라진 것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 자신을 또 바람맞혔단 사실에 그녀는 머리꼭지까지 화가 돌아버렸다. 그렇게 나엘리아에게서 떨어져 연회장 구석 발코니로 온 아나스타시아는 부랴부랴 개인 통신용 아티팩트로 마리샤에게 연락하기에 이르렀다.


“마리샤, 당장 수색대 풀어서 그 새끼 찾아!”


물론 그녀답게 좋은 말로 시작하진 못했다.


「죄송하지만 그런 개인적인 이유로 인력을 돌리는 건 불가능해요. 그보다 에이든 씨가 거기 오셨나요?」


“아아, 있었고말고. 맨얼굴도 제대로 봤단 말이지.”


「······네?」


“쯧. 아냐, 어쩔 수 없지. 방금 말은 잊어. 일단 그 자식이 여기 있단 사실만 알아둬. 문제 일으킬 것 같으면 내가 대처하면 될 테니, 이따가 다시 연락할게.”


「아, 잠깐만요! 부단─」


통신용 아티팩트의 불이 꺼졌다.


“어이, 몰래 듣지 말고 나오지?”


아나스타시아는 어두운 곳으로 와 있었고 더 어두운 곳에서 인기척을 느꼈다.


“내가 그쪽으로 가기 전에 모습을 드러내는 게 좋을 거야.”


“······.”


아나스타시아는 살기를 띠며 한 걸음씩 걸어갔다.


“자, 잠깐, 지, 진정하세요.”


그리고 견디지 못한 당사자들이 기어 나오니.


“아.”


아나스타시아를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내, 내가 시, 실례했군.”


반쯤 풀어헤친 남녀의 밀회 장면을 그대로 봐버렸으니 당연했다.


“그, 금방 나갈 테니 신경 쓰지 말고······.”


그녀는 끝말을 잇지 못한 채 그대로 그 장소를 벗어났다.


“에이 시팔, 쪽팔리게 진짜.”


생각해보면 이런 구석진 장소에서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하다는 것을 알고 있을 그녀였다. 언제나 유념하고 멀리했기에 직접 볼 일은 없었지만 방금까지 그걸 생각하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다.

그리고 방금 광경을 또 생각하자니 판단이 다시금 흔들렸고 그 탓에 그녀는 앞을 보지 못했다.


퍽.


“우욱?!”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걷다가 그만 누군가와 부딪히고 말았는데 그것이 제법 몸집이 큰 거한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곧 혐오스럽다고 할 정도로 뇌리에 박혀버린 향이 그녀의 코끝을 찔렀다.


‘코가 썩을 것처럼 지독한 박하 향기.’


“이런, 이런 아나스타시아. 대단한 우연이로군요. 당신들 벨라라의 인도가 우릴 만나게 한 모양입니다.”


끈적한 목소리에 아나스타시아는 불쾌함을 감출 수 없었다.


“······예에, 크라우스 대사교. 이렇게 만나다니 영광입니다.”


‘왕국 정교회 대사교 벤자민 크라우스’


2미터는 족히 넘을 거한이었지만 그만큼 풍만한 몸매를 소유한 자였다. 보기만 해도 토악질이 나올 만큼 욕망이 이글거리는 얼굴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는 그녀가 가장 혐오하는 부류 중 하나였는데 똑같이 신을 섬기는 데다 정교회의 대사교씩이나 되는 주제에 수십 명의 노예를 거느리며 그걸 은총이라고 포장하는 악질 중의 악질이었다.


‘명백한 악인.’


하지만 불쾌하다는 이유만으로 아나스타시아는 그를 외면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왕국 정교회, 그러니까 아스티벨 정교회는 현재 수복 중인 고향 벨라라를 지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큰손이라고 불리는 뒷배 크라우스는 가장 많은 후원금을 지원한 물주이기도 했다.


“흠, 드레스가 아닌 것이 안타깝군요. 아름다운 그대의 모습을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공교롭게도요. 금일 샹그리아 엘프 귀빈들의 호위를 맡았습니다. 공무 중이니 연회에 따른 형식적인 복식을 갖추지 못한 점 사죄드립니다.”


“아아, 그런 뜻깊은 일은 맡으셨다니 과연, 오히려 제 생각이 짧았군요. 당신의 행동은 그야말로 신들께서 기뻐할 일입니다.”


“······.”


“허나 아쉽군요. 공무 중이라니······. 그대와 한 번쯤 긴밀하게 얘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한다니······.”


크라우스는 아나스타시아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그녀는 불쾌했지만 그렇다고 드러낼 순 없었다. 그저 흘겨보기만 할 뿐.


“······저도 어떻게 만난 대사교와 그간 회포를 풀고 싶은 마음이지만 중요한 일을 맡은지라─”


“아, 이해합니다. 신께선 모든 걸 이해하실 겁니다. 그대들의 여신 레이나도 이해와 관용을 베푸실 겁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는 그녀의 어깨에 올린 손을 쉴새 없이 쓰다듬었다.


“정말이지······, 그 높은 기개. 참기 힘들군요.”


한참을 어루만진 그가 겨우 손을 떼었다.


“그럼 즐거운 연회 보내시길. 언제 또 만날 날을 기도하겠습니다.”


“예, 대사교.”


크라우스가 뒤를 돌아가는 모습이 보였고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어지자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하아, 시발. 탐욕스러운 돼지 새끼. 존나 쳐 죽이고 싶네.”


하지만 그럴 순 없었다.

아나스타시아는 성전 기사단의 중축 중 한 명이었고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에 따른 파장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다.

비록 욕지거리를 일삼는 그녀이기에 신빙성이 없었지만, 그녀가 구별해야 하는 경우는 틀림없이 있었다.

그녀는 자타공인 인류 최강의 영웅이면서 동시에 그 굴레에 얽매여 있었다.

성전 기사단에 들어오기 전부터 그녀는 영웅이 되고 싶어 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그녀가 믿는 정의와 경멸하고 혐오하던 악은 언제나 뒤엉켜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그녀가 나고 자란 고향 벨라라의 여신 레이나는 정의와 평화를 관장하는 여신이다.

걸음마를 떼기 시작할 무렵부터 아나스타시아의 정의관은 여신의 이치와 딱 들어맞았다.

약자를 지키고 평화를 수호하고자하는 그 신념을 가지고 끊임없는 노력과 성찰을 통해 젊은 나이에 벨라라 성전 기사단의 부단장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자신의 위치를 혐오하기에 이르렀다.


‘내가 바란 영웅은 이런 게 아니야.’


정의와 악은 늘 뒤엉켰다. 서로가 증오해야 당연했다. 허나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이란 것은 타협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제공했다.

아나스타시아도 타협했다. 타협했기에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정의만을 실천했다.

크라우스 대사교도 그 타협의 결과였다.


“뭐가 인류 최강의 영웅이냐······.”


세상은 그녀를 바라지 않는다.

그녀가 영광에 목을 매는 것은 아니었지만 필요가 없는 존재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녀에 대해 그저 그런 칭호로만 기억할 뿐이었다.


“하아.”


한탄하는 그녀는 돌아가기 전에 기분을 풀고자 빈 발코니에 잠깐 발을 들였다.


“······.”


그리고 보았다.


“에이든.”


언제 어디서 손에 넣었는지 모를 검을 든 채로 지붕을 활보하는 자유인의 모습을 말이다.


“······하, 개같은 새끼가 저기 있었네.”


분명 아나스타시아에게 있어 그 행위에 대해 제지할 필요가 있었다.

귀빈들이 한가득 있는 이곳에서 무기를 쥔 채 지붕을 활보하는 수상쩍은 인물에 대해선 응당 처벌을 내려야만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역시 뭐가 있을 줄은 알았지만······.”


예의주시하면서도 그녀는 밤하늘을 등진 그 사내를 눈으로 좇았다.

그의 뒤를 따르는 암영에 마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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